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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렌+a] 기회는 한 번 돌아올 지도 모른다가면라이더/Drive 2015. 10. 26. 22:59
이 글은 드라이브 완결 기념 합작으로 썼던
<기회는 두 번 돌아오지 않는다> http://libracollection.tistory.com/147 의 속편입니다.
전편도 그렇기 때문에 이번 편에도 드라이브 엔딩 네타가 있습니다. 주의해주세요.
브렌과 이미 고우의 곁에 있던 누군가의 이야기.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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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브렌에게 몸을 감추는 일은 굉장히 간단한 일이었다. 옆에 서 있던 사내에게 혼자 생각할 시간을 주고자 제 모습을 감춰버린 이는 사내가 저를 보지 못하는 것을 확인하자 한숨을 크게 쉬었다. 눈을 살짝 감았다 뜨던 브렌의 뒤에서 말을 거는 이가 있었다.
"그에게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그 목소리를 들은 브렌은 시선을 가늘게 떴다.
"당신이 할 소리인가요?"
브렌은 그의 말을 되돌렸다. 목소리의 대답은 없었다. 대신 그는 브렌의 뒤에서 앞으로 걸어왔다. 성큼성큼 걷는 그의 발돋움은 보였으나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나는 너처럼 하지 않는다."
"그의 앞에 나타나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악질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브렌은 어느새 슬쩍 내려온 제 안경을 다시 치켜올렸다. 브렌은 검은 눈을 가늘게 뜨며 제 앞에 다가온 사내의 형상을 한 이를 보았다.
"나는 말을 걸었다. 고우가 반응하지 않는 것 뿐이다."
말을 하던 사내를 보며 브렌은 핏 웃는다.
"당신이 말을 걸었대봤자 뻔하지 않나요."
"……."
"'들리나, 고우? 대답해라.' 이런 거나 몇 번 하고 말았겠지요. 안 그렇습니까, 체이스?"
브렌의 반격에 체이스라 불린 사내는 눈을 가늘게 뜬다. 그러나 부정의 말은 나오지 않는다.
"내가 당신을 모르겠습니까. 나름 오래 지낸 사이인데."
"지금도 너는 마음에 안 든다."
체이스는 무표정으로 시선을 아래로 내린다.
"그건 같은 마음입니다. 뭐, 목적이 비슷하니 넘어가지요."
"나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팔짱을 끼는 브렌을 보며 체이스는 말하였다.
"뭐가 말입니까?"
브렌이 되묻는다.
"왜 고우는 나를 보지 않는 거지?"
체이스가 의아한 얼굴로 묻는다. 천진한 얼굴로 눈을 깜빡이는 체이스를 보고, 브렌은 얼굴에 묘한 미소를 짓더니 갑자기 푸핫 웃는다. 체이스는 고개를 갸웃한다. 브렌의 의도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큭큭, 당신도 로이뮤드라는 겁니까."
"왜 웃는 거지?"
"학습능력이라는 게 있다는 뜻입니다. 조금 놀랐습니다. 당신답지 않은 날카로운 질문이어서."
체이스는 멍한 시선이다.
"보지 못하는 게 아니라 '보지 않는다'를 찌른 점이 훌륭합니다. 나는 당신이 마음에 안 들지만 그 점만큼은 칭찬해도 될 것 같군요."
"느낀 그대로를 말한 것 뿐이다."
"그렇겠지요. 거꾸로 말하면 당신이 느낄 정도로 시지마 고우가 허술하단 뜻도 되겠지만."
브렌은 재차 안경을 고쳐 올렸다.
"너는 그 대답을 알고 있나?"
그런 브렌에게 체이스는 물었다. 브렌은 은근하게 미소를 짓는다. 그것은 긍정도, 부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글쎄요. 안다고 해야 할까, 모른다고 해야 할까."
"하나만 해라."
"그럼 '알 것 같다' 라고 하죠."
브렌은 팔짱을 끼고 있던 손가락을 까딱까딱 움직였다.
"뭐, 간단하게 말하면 보고 싶지 않은 거겠지요."
그 말에 체이스가 한 번 더 고개를 갸웃한다.
"어째서지?"
바로 질문은 돌아온다. 브렌의 검은 눈이 그의 시선을 받았다.
"고우의 여행 목적은 나를 찾는 것이다. 고우는 나를 보고 싶어 한다. 그런데 왜 그는 나를 보지 않고 너를 보는 것이지? 우리를 보는 것은 분명히 의지의 힘이다. 너도 알고 나도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왜지?"
체이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답답함의 토로였다. 브렌은 웃음이 터지려는 것을 한 번 참았다. 예나 지금이나 체이스는 미련하다. 그렇다 하면 그렇고 아니다 하면 아니다. 그렇게나 일직선이고 미련한 존재가 그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인간의 악의에 가까웠던 브렌과는 확실히 다르게.
"시지마 고우가 당신을 만나고 싶어 하는 마음이야 진심이겠지요."
브렌은 눈을 가늘게 뜨며, 안경 너머로 체이스의 검은 눈을 바라보았다.
"그 생각대로라면 진작 그는 당신을 봤겠지요. 그게 안 되는 건 딱 하나입니다. 당신을 만나고 싶다. 그러나 만나고 싶지는 않다. 다르게 말하면 '체이스를 만날 여행을 떠나는 나'에 만족하는 모양이라고 할까요?"
브렌의 웃음은 곧 비웃음을 뜻하는 모양으로 바뀌었다. 체이스는 브렌을 노려보았다.
"고우가 그럴 리가 없다."
"그건 당신 생각이겠지요."
당장이라도 멱살을 잡을 것처럼 노려보는 체이스를 보며 브렌은 말했다.
"시지마 고우에게 당신은 만나야 할 친구이자 스스로의 죄 자체입니다."
브렌의 말에 체이스는 멈칫하였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당신은 이해하기 힘들 지도 모르겠지만, 인간에게 자기 죄를 받아들인다는 건 굉장히 어려운 작업입니다. 그렇기에 어리석고, 같은 죄를 범하는 거고."
"……."
"아까도 보셨지요. 그는 남의 행복조차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인간입니다. 그런 인간에게 죄를 받아들이라 하면 할까요?"
체이스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은 벤치에 앉아 있는 고우를 향해 있었다. 한참 앉아 멍하니 생각을 하고 있던 고우는 이윽고 청첩장에 동그라미 표시를 한다. 체이스는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 내용을 보았다.
"출석이다."
"결정을 내린 모양이군요."
"브렌, 고우는 도망치지 않았다."
체이스의 말에 브렌의 대답은 없다. 그러나 막 끄덕인 듯한 고개를 드는 것이 체이스의 시선에 확 잡혔다. 굳이 말을 더하지는 않기로 한 체이스는 브렌에게로 확실하게 시선을 돌렸다.
"고우는 죄에서도 도망치지 않을 거다."
체이스는 확신에 찬 어조로 말하였다.
"그렇다면 언젠가, 마음의 결심이 설 때 당신을 만나겠지요."
브렌은 비꼬는 양 말을 하였지만, 그의 말 속에 가시는 없었다.
"……고맙다."
그 뒤에 이어지는 체이스의 말에 브렌은 깜짝 놀라며 그를 보았다. 들을 리 없다고 생각했던 말이었던 탓이다.
"왜 당신이 내게 감사를 하죠?"
"고우의 결정에는 분명하게 네 도움이 있었다."
"무슨……."
브렌은 황당하다는 빛을 감추지 못하였다. 얼빠진 얼굴로 눈을 깜빡이는 그를 보며 체이스는 말하였다.
"난 그저 내 할 말을 했을 뿐입니다. 당신이 있었다 해도 그렇게 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렇지만 분명 거기엔 네 덕이 있었다. 대신 고마움을 표하지."
"그러니까 당신이 왜."
기분 나빠. 하고 작게 중얼거리며 브렌은 고개를 확 돌려버렸다. 연갈색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귀가 빨간 것을 본 체이스는 살짝 웃었다. 확실히 닮은 데가 있다. 그와 고우는. 아마 그렇기 때문에 브렌이 하는 고우에 대한 말에 크게 틀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말대로라도 크게 문제는 없다고, 체이스는 생각한다. 죄를 마주하고 싶지 않아 자신을 볼 수 없다면, 거꾸로 말해 죄를 마주할 준비가 된다면 자신을 볼 거라는 의미이기도 하니까. 그리고 지금의, 멀어질 지도 모르는 행복을 마주하기로 결심한 고우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러니 체이스는 지켜볼 것이다. 계속, 그를 쫓을 것이다. 지금의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그것이니까.
+
"아무래도 브렌은 눈치채지 못하는 모양이다."
"그런 것 같다."
체이스는 어디선가 들리는 목소리에 대답하였다. 그의 뒤에는 아까까지 보이지 않던, 붉은 코트의 사내가 등을 지고 서 있었다.
"그리운 친구를 어렵게 만났건만, 그가 나를 알아보지도 못한다니. 슬픈 일이야."
사내는 푹 한숨을 쉬었다.
"그의 말대로다."
"무슨?"
그런 사내를 두고 체이스가 말을 꺼냈다. 맥락에 맞지 않는 말인지라, 체이스에게 들리는 사내의 목소리는 의아함이 가득하다.
"브렌 역시 두려워하고 있을 지 모른다."
"무엇을?"
"너를 만나는 것을."
왜지? 작게 묻는 사내의 목소리를 귀에 새기며 체이스는 살짝 눈을 감았다 뜬다.
"너를 먼저 떠난 걸 죄라고 생각한다면 충분히 가능하다."
"……."
체이스의 말에 사내의 대답은 없었다.
"아까 브렌이 고우에게 한 말을 기억하나?"
"글쎄."
모르는 듯 대답은 하지만 목소리에는 흥미가 가득하다. 사내의 목소리를 들으며 체이스는 천천히 대답하였다.
"너를 만난다 해도, 네가 행복하지 않을 거라고 했다."
"……."
"브렌은, 자신의 죽음이 진 죄를 알고 있다."
사내는 한참 말이 없었다. 그러더니 곧, 바람에 스쳐 지나가듯 한 마디를 더한다.
"'죄'인가."
"그래."
"나는 다시 만날 수만 있으면 되건만."
사내는 지친 목소리를 내며, 한숨을 크게 쉬었다. 체이스 역시 한 번 심호흡을 했다.
"고우가 나를 보지 못하듯 브렌 역시 마찬가지겠지. 너무 불안해하지는 마라. 분명 준비가 된다면 볼 수 있겠지."
"그랬으면 좋으련만. 너도 알다시피 브렌은 영 솔직하지가 못해서."
어깨를 으쓱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사내는 이윽고 체이스에게서 멀어진다.
"뭐. 만날 날을 고대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그 말을 남기며 모습을 감추는 사내의 뒷모습을 흘끔 본 체이스는 어느새 고우의 뒤를 쫓는 브렌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닌 듯 닮은 두 존재가 먼저 앞서 나가는 것을 천천히 따라가며, 체이스는 죽은 뒤에도 여전히 인간이란 복잡한 존재라는 생각을 하고 만다.
체이스는 주먹을 꽉 쥐었다. 걸어가는 고우의 뒤에 서 있으면, 아마 그 역시 조만간 제 눈으로 보게 될 것이다.
그가 가장 사랑했던 두 사람의 결혼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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