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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normal (To. 가위님)가면라이더/Drive 2016. 2. 23. 00:51
- 가위님의 <해바라기바라기>의 2차 창작이라... 뭔가 3차 창작스러운 글입니다.
읽지 않으셨다면 이해가 힘들 수 있습니다. 아니, 힘듭니다.
존재의 간극을 깨닫는다. 언제부터 벌어진 틈일까. 그 자신도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단 한 번도 틈을 허용한 적은 없다고 생각한다. 들어올 여지 같은 것을 남긴 적이 없다는 것도 확신한다. 하지만 분명 틈은 벌어져 있었다. 그 안을 누군가는 파고 들었다. 그리고 그 좁은 틈을 억지로 벌려 제 공간을 만들고 있다. 아픔조차 느껴지지 않아 알지 못했다. 제 안에 무관심했던 사이 벌어진 틈 안에 그 '누군가'는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럴 리가 없는데.
사내는 입술을 씹었다. 손가락을 까딱까딱 움직인다. 지금 집 안에 제 혼자 있으니 망정이다. 타인에게는 내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이다. 바깥의 인간들은 의외로 치밀하다. 이러한 작은 부분마저도 커다란 흠이 되어 돌아올 수 있음을 사내는 몹시 잘 알고 있었다. 사내의 삶은 그런 것의 연속이었다. 그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작은 틈을 허용하면 그것은 커져서 돌아온다. 일종의 스노우볼 효과라고 해 두자. 사내는 제 벌어진 틈을 들여다보았다. 이번에도 그 스노우볼이었다. 지긋지긋하다.
사내는 앉아 있던 의자에서 일어났다. 드르륵 소리를 내며 의자가 뒤로 밀리고, 사내는 바로 앞에 있는 부엌으로 걸어가 선반에 있는 컵을 꺼내 들었다. 옆에 놓여 있는 정수기로 냉수를 컵의 반 정도로 따른다. 사내는 곧바로 한 컵을 다 마셨다. 몸이 덜덜 떨린다. 안정과는 거리가 먼 상태임을 사내는 자각한다.
'약을.'
그러다 생각을 그만 두었다. 얼마 전에 결심했다. 위장약을 제외한 것은 먹지 않기로. 물론 그것이 괜한 근성론에 의거한 것은 아니다. 더욱 당당히 제 소중한 사람의 곁에 있기 위해서는 필요한 일이다. 아까도 강조했듯, 사내에게 있어 작은 틈은 그조차도 커다란 것이 되어 돌아온다. 이 약조차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농후했다. 몇 년 째 먹고 있는 것이라 더욱 그렇다. 담당 의사에게 얘기를 한다면 기절초풍할 것이지만.
물을 한 잔 더 따라 마셨다. 차가운 액체가 목구멍으로 넘어가니, 잠시 혼란스러웠던 정신이 돌아오는 것 같다. 다행이다. 아직은 괜찮은 모양이다. 사내는 눈을 잠시 감았다 떴다. 약간은 머릿속이 몽롱하다. 사내가 방금까지 들여다 보았던 틈은 마치 심연 같다. 한 번 발을 잘못 들였다가는 그대로 빨려들어갈 것만 같다. 현기증이 났다. 마치 고소공포증 같다.
사내는 컵을 싱크대에 놓았다. 그리고 비틀비틀 걸어가, 좁은 거실 테이블에 놓인 라디오를 탁 켰다. 때마침 흘러나오는 노래는 사내에게 익숙했다. 익명의 신청자의 선곡이라고 했다.
"지금부터 들려드릴 곡은 미쿠라 토모야의 <로이뮤드> 입니다."
지독한 우연이다. 사내는 라디오를 꺼 버리려 했으나, 반주가 끝나고 흘러나오는 이의 목소리 탓에 결국 버튼을 누르지 못한다. 힘이 빠진 사내의 손가락이 버튼에 탁 걸렸다 떨어진다. 들려오는 가사는 사내에겐 지긋지긋한 것이었다. 약간은 부끄러운 과거의 흔적이라 없애고 싶다 생각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나, 이 곡만큼은 넣어보고 싶어."
그의 앨범을 만들 때조차도 폐기하려 했던 곡이었다. 그러나 수록이 되어버린 것은 순전히 그의 의지였다.
"어차피 작사, 작곡은 전부 내 이름으로 들어가잖아. 아무도 소우의 곡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을 거야. 나는 슬프지만."
"이름 같은 건 아무래도 좋습니다. 이건 당신과 어울리지 않는 노래라고요."
"아니. 그건 확신할 수 없는 거잖아. 불러볼 테니, 듣고 생각해 볼래?"
그의 의지는 강했다. 곧 그의 목소리로 곡이 흘렀다.
- 냉철한 기계인형으로 돌아가자. 흉내낸 마음은 던져 버리고.
처음 들었던 그 목소리 그대로, 라디오에서 후렴구의 가사가 흘러 나온다. 그 때의 사내는 그를 말릴 수가 없었다. 그 목소리로 전해오는 '자신'의 노래가, 마치 처음부터 그의 것이었던 것처럼 들렸다. 사내는 곡을 넣자는 그의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그의 곡이었다.
"나의 심장을 지키기 위해, 겨울도 봄처럼 얼어붙어라."
다음에 들려오는 구절을 사내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린다. 그것을 스스로 깨닫고 사내는 결국 라디오의 버튼을 눌러 꺼버렸다. 더 이상 라디오 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방 안은 침묵 속이었다. 똑. 똑. 물 떨어지는 소리만이 유독 요란스럽다. 사내는 깊이 한숨을 쉬며 테이블 앞에 앉았다. 머리가 또 아프다. 아까보다 심각하다. 그 사이에 벌어진 틈이 사내의 속을 파고 들었다.
- 노우미 씨!
틈은 어떤 형태를 지닌다. 그렇게나 떼어놓고자 하였음에도 들러 붙어서, 마침내 틈 사이로 기생해버린 어떤 존재의 모습이다. 기생충. 사내는 작게 중얼거린다. 구질구질하고, 부질이 없다. 틈이 만들어낸 심연이 뿜어내는 감정이란 결국 그런 것이다.
- 들려? 노우미 씨. 날 좀 봐.
안 들립니다. 그렇게 속으로 대답하고 나서야 사내는 후회한다. 반응조차 하면 안 되는 것이었는데, 부질없는 것의 목소리를 또 들어버렸다. 들은 것을 안 이상 그것은 또 사내를 옥죌 것이다.
- 다행이네. 들리는 것 같아. 저기, 언제까지 그럴 거야?
'실제'의 그라면 그렇지 않다. 이런 말을 사내에게 할 정도의 깜냥이 되지 못한다. 그러나 이것은 사내의 틈새가 만들어낸 것이다. 이것은 빌어먹을 정도로 사내의 마음을 잘 알고 있다.
- 언제까지, 너를 외면할 거냐고.
사내, 노우미는 대답하지 않았다. 눈을 몇 번 깜빡이고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애써서, 할 일을 찾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평소 결벽적인 일 처리로 인하여 청소는 진작 끝내 놓은 상태이고, 특별히 빨 옷도 없으며, 저녁은 진작 먹었고 먹고 싶지도 않다. 널어 둔 빨래는 금방 빨았던 것이라 아직 덜 말랐을 것이다. 노우미는 입술을 씹었다. 쿵쿵 소리를 내며 방으로 걸어갔다. 다행히 방은 조금 지저분했다. 콘서트 준비 탓에 어질러 놓은 탓이다. 노우미는 쭈그려 앉아 바닥에 널브러진 종이들을 하나하나 주웠다. 그 옆에 '틈'이 서 있었다. 틈은 노우미와 시선을 맞추기 위해 몸을 쭈그려 앉는다. 지긋이 노우미를 바라보는 그 시선은 '누군가' 자체였다.
- 대답해 줘, 노우미 씨.
"시끄럽습니다. 닥치세요."
감정에 벅차는 목소리를 내며 노우미는 쥐고 있던 종이를 확 구겼다. '틈'은 웃었다. '심연'은 그대로 손을 뻗어 노우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노우미가 그것을 노려보았다. 내가 아는 '당신'은 그따위 행동은 하지 않습니다. 노우미는 속으로 그 말을 뱉었다.
- 좋아할 거면서.
그럴 일 없습니다. 노우미가 구겼던 종이 뭉치를 집어들어 책상 위에 쾅 소리를 내며 놓았다. 현기증이 아까보다 심해진다.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가슴에서부터 올라오는 감각을 노우미는 견딜 수가 없었다. 젠장. 비틀비틀 걸으며 그는 화장실로 향했다. 변기 뚜껑을 열고 그 자리에서 구토한다. 저녁을 제대로 먹지도 않은 탓에, 입 안에서 흘러나오는 것들은 거의가 위액이다. 우욱. 몇 번을 헛구역질하면서도, 노우미는 제 뒤를 보았다. 심연은 여전히 거기에 있었다. 그 자리에서 웃고 있었다.
"……."
진정이 되면 약을 찾아 먹으리라. 노우미는 다짐했다. 먹지 않겠다는 다짐이 단 하루만에 무너진 셈이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그거라도 없으면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제 옆을 둥둥 떠다니는 저 빌어먹을 '틈'에게 금방이라도 잡아 먹힐 것만 같았다. 노우미는 숨을 몇 번 몰아쉬었다. 그리고 변기의 물을 내렸다. 상쾌한 소리와 함께 노우미가 뱉어낸 잔해가 떠내려간다. 양치를 하고 입을 깨끗이 씻어낸다. 그리고 곧바로 노우미는 약을 찾아 입에 털어넣었다. 입 안에 약을 머금고, 컵을 찾아 물을 마셔 삼켰다. 커다란 알약들을 목으로 힘껏 넘기고 나서 노우미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신기하게도 금방 현기증이 사라졌다. '심연'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노우미는 천장을 보았다. 지친 숨을 한 번 더 내쉰다. 현기증은 사라졌지만 대신 조금 어지럽다. 아직 편곡이 끝나지 않았는데. 노우미는 비틀비틀 다시 제 방으로 걸어갔다.
- '나'를 좋아하잖아?
아니, 그럴 일은 없어. 이제 곧 아주 자를 거니까.
방 문 앞 벽에 손을 뻗어, 비틀거리던 몸을 지탱한다. 이마에 남은 손을 짚으며, 노우미는 숨을 깊이 쉬었다.
- 할 수 있나, 두고 보도록 할게. 좋아해, 노우미 씨.
지긋지긋해. 그 말을 남기고 사라진 '틈'을 뒤로 하고서 노우미는 책상 의자 앞에 앉았다. 잔뜩 구겨진 종이들과 정리되지 않은 종이들이 보였다. 전부 잊어버릴 생각이다. 전부 자를 것이다. 그 생각을 머릿속에 다시 한 번 강하게 집어넣고, 노우미는 종이에 그려진 음표를 하나하나 뚫어져라 바라보기 시작한다. 노우미를 구원하는 것은 오로지 그 세계 뿐이었다.
"고마워, 소우."
오로지 그를 위해 만들어진 이 세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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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함부로 짐작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제 나름대로 주목하던 부분을 해석해 보았습니다.
이래저래 완결을 바라보는 독자로서 응원 중이니까요.
요즘 자꾸 괴로워하시던데 힘을 내시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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