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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카이] Hello, World!가면라이더 2016. 5. 6. 00:28
향초(@Rhubarb_green) 님의 커미션입니다.
어제 드렸으니 슬슬 공개해도 되지 않을까 해서(...)
아포칼립스적 분위기입니다.
- Hello, World!
존재 하나 남아있지 않은 세상은 고요하다. 무너져버린 세상에서는 낮과 밤을 오로지 눈으로만 구별할 수 있다. 들리는 소리라고는 공기나 바람의 소리나, 간혹 쌓인 잔해의 어딘가가 무너지는 소리 정도. 이 정도 쯤 되면 내가 숨을 삼키는 소리가 이 세계 안의 유일한 소리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침묵 속에 파괴된 세상은 이공간처럼 낯설다가도, 마치 늘 살았던 것처럼 친근하기도 하다. 물론 내 입장에서 이런 세계는 익숙하다기보다는 거북하다. 난 이런 고요한 세상에 머물기를 바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세계가 이런 모양이어서야 뭐가 귀중하고 하찮은지 구분을 할 수 없다. 그 말인 즉 괴도인 내가 찾아 나설 보물이 무엇인지도 모르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은 내가 자처한 일임을 안다.
이 세계는 나의……. 뭐라고 설명하면 좋을까. 설명할 방법을 모르겠으니 그냥 그 녀석의 이름인 ‘츠카사’라고만 하자. 아무튼 그 ‘츠카사’가 만들어낸 세계이다. 놀랍게도 그는 세계의 파괴자라는 이명을 가지고 있어서, 자기의 세계가 어디인지도 모르는 채 세계를 넘나드는 여행을 계속 하던 중이었다. 다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츠카사가 넘나드는 세계는 그의 영향을 받아서, 그가 떠나게 되면 그 뒤로 조금씩 무너진다는 것이다. 그는 대부분의 라이더 세계를 돌았으니, 그 라이더들의 세계가 어떻게 되었겠는가? 물어볼 필요도 없는 결말이다. 그렇기에 이 세계에서 모든 라이더들은 만났다. ‘라이더 대전’이라고 불리는 세계다. 기가 차는 이름이라고 지금도 생각한다. 대전(對戰)이라니. 모든 라이더 VS 츠카사의 구도가 어떻게 대전이겠어? 누가 지었는지는 몰라도(나루타키려나?) 얄궂은 네이밍 센스다.
그래서 그 대전의 결과가 어떻게 되었냐고? 그게 이거다. 반파(半破)된 세계. 거의 아무 것도 남지 않고, 어떠한 세계도 존재 가치를 증명하지 못하고, 모든 존재가 죽었거나 죽음만을 기다리거나. 살아있는 것이라고는 나와 츠카사 둘밖에 없는 세계.
그렇다. 내가 그렇게 만들었다.
나 참. 아무도 안 들을 텐데 누구한테 얘기를 하는 건지. 하지만 이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내가 조금 미칠 것 같으니까 듣든 말든 해보는 것으로 하자. 아직 멀쩡한 정신을 유지하고는 있지만 이렇게나 아무 것도 없는 세계에서는 아무리 나라도 약간 진이 빠진다.
열 개의 라이더 세계를 돌고 왔던 우리들은 마침내 문제의 이 곳, 라이더 대전의 세계로 건너왔다. 다만 이 세계는 이전에 겪었던 것들과는 다르게, 모든 것이 우리의 적이었다. 그리고 소중한 동료……라고 하면 되겠지. 아무튼 소중한 동료 나츠메론은 납치된 공주님이 되어버렸다. 사실 나에게도 은근히 신경을 쓰게 만드는 존재였지만, 나츠메론은 츠카사에게 꽤나 깊은 영향을 주는 존재라서 말이지. 다른 라이더들에게 공격을 당해 몸이 망가진 그 녀석이 아무런 망설임 없이 ‘구하러 갈 거야.’ 라고 말할 수 있는 존재였다. 그러니 츠카사는 결국 나츠메론을 구하는 것을 선택하였다. 당연한 결과다. 츠카사는 자기 자신에 대한 기억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지금의 자신을 받아들여준 이들, 특히 나츠메론을 굉장히 소중히 여기고 있다. 나츠메론, 히카리 나츠미야말로 그의 세계를 지탱해 준 존재다. 그것은 츠카사만큼이나 세계를 헤맸던, 그리고 츠카사가 모르는 츠카사를 알고 있을 나여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츠카사를 말릴 수밖에 없었다. 나츠메론은 분명히 함정이다. 츠카사가 성치 않은 몸으로 갔다가는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내 생각에는 차라리 나츠메론을 두고 몸을 더 돌보면 어떨까 싶기도 하다. 그러나 내 생각만으로는 츠카사를 막을 수 없었다. 내가 이런 말을 해도 츠카사는.
“만약 내가 죽는다면 세계를 너에게 줄게. 하지만 나츠미 일행만큼은 부탁해. 이런 걸 부탁할 사람은 너 뿐이다.”
그것 봐라. 내가 말리니 츠카사는 이렇게 말한다. 자신이 죽으면 세계를 나에게 주겠다고. 그러니 나츠메론을 나더러 돌봐 달라고. 어이가 없다. 내게 세계를 줘서 뭘 어쩔 생각인 건데. 나는 단순히 보물을 찾고 싶을 뿐이야. 세계에서 가장 소중한, 그리고 내게 가장 소중한 보물을.
“모든 세계를 적으로 돌리더라도 단 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 싸운다. 그게 동료라는 거다.”
네가 그렇게까지 말하지 않아도 나츠메론이 너에게 있어 내가 찾는 보물과 같다는 것은 알아. 그렇게까지 확인사살을 시킬 필요는 없다고. 츠카사.
“나도 보물을 위해 싸우겠어. 세계 같은 거 받아도 재미없거든. 역시 우리들은 동료일지도 모르겠네.”
세계 같은 걸 받아도 재미없다. 네가 없는 세계 따위 재미있을 리 없다. 그런 세계에서 살아가느니 차라리, 목숨을 던지려는 네 옆에서 같이 사라지는 게 나을 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으로 한 말이었다. 츠카사의 대답은 없다. 마음대로 하라는 듯 먼저 앞장서서 걸어간다. 비틀거리면서 나아가는 이를, 나의 소중한 보물을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딱 하나 있었다.
나와 츠카사는 나츠메론을 구하는 데엔 성공했다. 감탄스러울 정도로 나츠메론은 강한 여자라서, 자신을 향한 부조리에도 절망하지 않고 있었던 모양이다. 기가 찰 정도다. 질투할만한 구석도 남기지를 않으니 비참할 정도다. 이후 무사히 목적을 달성했던 우리, 아니 츠카사에게 우리를 도와주었던 각 세계의 라이더들이 달려들었다. 그들의 모습이 이상하다는 것은 그냥 보아도 알 수 있었다. 이럴 줄 알았지. 츠카사는 괴로워하고 있었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는 눈치이다. 그럴 만도 하다. 츠카사에게 주어진 운명이란 그의 생각 이상으로 가혹하니까. 나는 많은 세계를 돌았다. 그리고 나는 츠카사에 대해 그가 모르는 사실을 알고 있다. 당연하다. 내가 보았던 세계 중에서는 츠카사의 가능성을 증명하는 세계들도 있었으니까. 츠카사가 행복하게 지내는 세계. 츠카사가 불행한 세계. 그 수많은 평행세계는 츠카사가 존재했다는 이유만으로 전부 사라졌다. 그가 세계의 파괴자라는 운명을 지녔단 이유로.
츠카사의 싸움을 보면서 생각했다. 이 세계는 이상하다. 마치 모든 것을 파괴하기 위해 존재하는 듯한……. 바로 이 부분에서 나는 한 가지 깨달음을 얻는다. 이것은 기막힌 묘안이기도 하고, 돌이킬 수 없는 지금을 만든 트리거이기도 하다. 나는 결심을 망설이지 않았다. 이것밖에 없다고, 당시에는 생각했다. 그게 옳은 답이었을까? 다른 답이 있었을까? 그 답을 내린 것 자체에는 문제가 없었으나, 문제가 있었다면 그 답의 옳고 그름을 결정하는 것은 내가 아닌 츠카사임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는 것이다.
“안녕. 츠카사.”
나는 디엔드라이버를 겨누었다. 디케이드 수트 너머의 츠카사가 당황한 듯 나를 보는 것이 보였다. 그 일말의 반응에서 나는 그가 생각보다 나를 믿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기뻐. 나를 봐 줘서. 하지만 미안해.
탕.
“디케이드!!!”
나츠메론의 절규가 들리고 침묵이 세상을 감싼다. 아무도 나의 행동을 예상하지 못한 듯, 멈칫한 이들은 움직일 줄을 모른다.
“디케이드는 내가 죽였어.”
쓰러진 츠카사를 뒤로 하고 나는 적대하는 이들에게 말했다.
“너희의 세계는 이제 파괴되지 않겠지. 그러니 돌아가도 되지 않을까?”
고요. 츠카사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들이 섣불리 움직이지 않는 것은 내가 이런 식으로 속여 놓고 츠카사를 살릴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일지 모른다. 하지만 맹세컨대 그런 일은 없다. 나는 츠카사를 사랑한다. 그리고 철저하게 츠카사를 위해 만들어진 것 같은 이 세계의 최고의 보물은 당연히 츠카사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나는 괴도답게 그 보물을 손에 넣었을 뿐이다. 나의 보물이자 세계의 보물을 이 손으로 얻었다. 그 마음에 거짓을 담을 수 있겠어? 나는 진심으로 그에게 총알을 박았다.
하지만 운명이 내 진심을 뛰어넘었다. 지금 와서 보면, 이 결과는 그렇게밖에 말할 수가 없었다.
“카이, 토…….”
거짓말. 그리운 목소리를 듣고서도 나는 믿을 수가 없었다. 평소보다 가라앉은 그의 목소리. 내가 누구보다 사랑하는 목소리임에는 틀림이 없었지만 평소의 그와는 확실하게 다른 그것.
“…….”
디케이드, 츠카사는 일어서고 있었다. 망가졌을 슈트는 깨끗한 모습이다. 주변에서 술렁이는 소리가 들렸다. 역시 저 녀석도 우릴 속였어! 그렇게 말하는 듯 보이는 분위기다. 마음대로 생각해라. 나는 무너질 세계의 라이더들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그러나 츠카사가 일어서는 것은 예상 외였다. 십자가에 처형된 뒤 사흘 만에 부활했다는 성자의 모습이 내가 보는 모습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두렵다 못해 신성하게도 보이는 츠카사의 모습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차가웠다. 초록빛의 눈동자 안에 깊이 잠긴 어둠이 보였다. 섣불리 정의내릴 수는 없지만 츠카사의 무언가가 바뀐 것은 분명하다.
일어선 츠카사는 나를 밀쳤다. 꼴사납게도 나는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디케이드!” 나츠메론의 목소리가 멀찍이서 들리는 것 같다. 그러나 츠카사의 귀에는 더 이상 그 목소리가 안 들리는 모양이다. 츠카사는 나츠메론 쪽을 돌아보지도 않았다. 어둠을 담은 눈은 자신의 세계를 파괴당한 가면라이더들을 향해 있었다.
“전부 파괴시켜주지.”
착 가라앉은 목소리가 두렵고 아름답게 들렸다. 나는 그를 막을 새도 없었다. 결심한 츠카사는 누구보다 강한 존재다. 나는 그 가차 없는 모습, 그가 소중히 생각했을 존재들을 망설임 없이 하나하나 파괴하는 모습을 보며 그가 제 운명을 받아들이고 말았음을 알았다. 아니야. 그게 아니었어. 내가 하려던 건 그게 아니었단 말이야, 츠카사.
고요. 깊은 침묵. 그와 싸웠던 라이더들은 어느 누구도 존재하지 않았다. 격렬한 싸움의 끝으로 오자 전장은 엉망이었다. 무너진 땅. 무너진 산. 존재하지 않는 가면라이더. 그리고 나츠메론도 사라져 있었다.
츠카사는 곧 그것을 깨달은 모양이다. 놀라울 정도로 그녀의 흔적은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츠카사가 파괴자의 숙명을 받아들이고, 그 운명에 따라 가면라이더를 전부 파괴했다. 나츠메론이 사라진 건 그 대가라는 것일까? 그러나 츠카사가 그렇게 생각할 리가 없다. 츠카사의 시선은 곧 그를 멍하니 보기만 하고 있던 나를 향한다. 그 눈이 말한다. ‘나츠미를 없앤 것은 너인가?’ 나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건 사고야! 나도 상정하지 못한 일이야! 내가 너를 손에 넣는다는, 세계에게 금지된 일을 한다면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을 뿐이야! 그랬을 뿐이야. 나는 그 말을 그대로 츠카사에게 말했다. 츠카사는 잠시 말이 없었다.
“약속한 대로, 카이토. 세계를 너에게 주지.”
곧 차가운 목소리의 츠카사가 말한다.
“오직 너만을 위해 존재하는 세계다.”
“그런, 츠카사. 나는……!”
“세계는 필요 없다고 했던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츠카사는 변신을 풀고서 피식 웃었다. 슈트가 가리던 그의 얼굴을 정면에서 보았다. 그렇게 보아도 지금의 나는 츠카사를 알 수가 없었다.
“‘내가 죽으면’ 세계를 너에게 주겠다고 했지.”
“…….”
“너는 나를 한 번 죽였어. 카이토.”
“츠카사. 나는.”
“걱정 마. 난 너를 떠나지 않아. 기껏 나를 죽여 가며 얻은 세계다. 이렇게 아무 것도 없는 세계라면 너에게도 재미가 없겠지. 그러니 나를 여기에 남겨 주지.”
아아.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츠카사. 알고 있어? 그 때의 네 웃음은 정말 최고의 보물이었어. 내가 만든 최악의 상황을 보며 분노로 몸을 불태우고 있으면서도, 너를 기억하는 유일한 인물을 향해 짓는 복잡한 그 표정. 나를 바라보는 그 모습. 네 눈에는 온전히 나만 있는 그 풍경.
“너만을 위한 세계다. 어때, 마음에 들어? 사양할 필요는 없어.”
생명이라고는 존재치도 않을 살풍경을 가리키며 웃는 모습까지. 마음에 드냐고? 당연하지. 츠카사. 여기는 내게 최고의 세계야. 내가 말라 죽더라도 네가 나를 떠나지 않을 유일한 세계. 나만을 바라봐 줄 바로 그 세계야. 그러니 내가 마다할 리 있겠어? 라고. 그 당시의 나는 생각했다.
바로 그 세계에서, 나는 말라가고 있었다.
“츠카사.”
혼자서 과거를 돌이키던 사이, 내 옆에 츠카사가 나타났다. 아무리 그가 조용히 있어도 나는 그를 알아볼 수 있다. 애초에 존재로서 살아있는 이가 그 뿐이다. 감추려 하는 인기척에도 한계가 있으니 당연하다.
“지루하다면, 보물찾기라도 해보지 그래?”
츠카사가 말했다. 그의 얼굴은 놀랍도록 내가 아는 그의 모습이다. 아. 이 말엔 조금 어폐가 있다. ‘일상적인’ 츠카사의 모습이다.
“원래 그런 말은 내 전공인데.”
“네가 너무 조용하잖아. 나라도 힘을 내 줘야지.”
정말 일상적인 그와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말에 가시가 있음을 모르지는 않다.
“보물이라는 건 귀중히 여겨지는 것. 귀천이 의미가 없는 이 세계에서는 그게 진짜 보물이라 해도 보이지 않아.”
“재미있는 소리잖아.”
무너진 지평선 쪽으로 츠카사는 시선을 돌렸다.
“세계에 존재하는 이들이 소중히 여기는 것, 그게 보물이야. 내가 노리는 것도 그런 보물이고.”
“여기엔 아무 것도 없으니 보물도 없는 건가?”
“너와 내가 생각하는 게 보물이라는 말이야. 츠카사.”
츠카사는 그 말에 푸핫 웃는다.
“너와 내가 생각하는 게 보물이라. 그렇겠군. 너와 나밖에 없으니.”
츠카사는 제 팔을 만지작거렸다. 먼 시선은 나를 보고 있지 않았다. 나는 츠카사가 보는 쪽을 보았다. 하늘밖에, 보이지 않았다. 대부분이 무너져 버린 세계에 유일한 장점이 있다면 아마도 저 하늘일 것이다.
“가지.”
츠카사는 먼저 앞장서 걸었다. 나 같은 건 신경도 쓰지 않는 듯 성큼성큼 앞으로 떠나버린다. 내가 그 뒤로 저를 따라갈 것을 알면서도. 얄밉기 짝이 없는 녀석이다. 나는 한숨을 쉬며 그를 따라간다.
그의 발걸음은 멈출 줄을 모른다. 나는 폐허를 하나하나 밟아갔다. 아직은 낮이라 햇볕이 직접 몸으로 내리쬔다. 뜨거운 어깨를 어루만지면서도 계속 걸어갔다. 폐허의 잔해들이 밟힌다. 무너진 콘크리트의 흔적들이다. 나는 츠카사가 도심으로 들어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츠카사가 전 라이더를 파괴한 이 세계는 츠카사가 건들지 않아도 알아서 무너지고 있었다. 살아 있던 존재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며, 그들이 ‘살았던’ 흔적은 지반 자체가 무너져가면서 형체를 잃었다. 내가 있던 곳은 평원이라 불리는 곳이었고, 츠카사가 향하는 곳은 ‘도시’라고 불리는 곳이다. 전부 ‘인간’, 혹은 ‘생명’이라는 존재가 삶이라는 것을 지속하는 곳들이었다. 츠카사의 발걸음이 지반에 하나하나 닿는다. 그가 밟는 지반의 근처가 콰직, 콰직. 소리를 내면서 무너져 내렸다. 나는 그가 지나간 곳을 그대로 밟아 내가 무너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다. 그래도 내가 밟는 곳은 무너지지는 않는다. 나를 위해 만든 세상이라더니 거짓은 아닌가. 실없는 생각을 하며 나는 츠카사를 따라갔다.
해가 점점 지는 것이 보였다. 구름 한 점 보이지 않던 푸른 하늘이 점점 붉게 물드는 것이 보였다. 어느덧 구름도 조금 있어서, 해를 가릴 듯 말 듯 흐르고 있었지만 붉은 해의 모습은 또렷하기만 하다. 무너지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멀찍이 앞에서는 츠카사의 발걸음 소리만 들렸다. 그의 걸음은 가벼워 보인다. 기분이라도 좋은 것일까. 어디로 가는 것일까. 나는 츠카사에게 차마 물을 생각도 하지 못한다. 어떠한 말을 듣게 될지가 조금 무섭다. 물론 이 세계의 츠카사는 기본적으로 나에게 상냥하다. 나를 제대로 보아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온전함이 두렵다. 이 세계엔 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온전할 수 있다. 모르는 내가 아니다.
“츠카사.”
그러나 나는 결국 참지 못한다.
“어디에 가는 거야?”
내 말을 들은 듯 츠카사의 걸음이 멈추었다. 츠카사는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나를 돌아보았다. 츠카사와 눈이 마주쳤다. 그의 표정은 읽을 수가 없다. 예전에는 차라리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정도는 보였는데.
“좋아할 만한 곳.”
츠카사는 짧게 대답했다.
“누가?”
“…….”
츠카사는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휙 돌려 먼저 앞으로 걸어갔다. 아아. 나도 몰라. 괜히 물었나. 나는 그를 쫓아갔다. 조금 속도를 올려서 츠카사의 옆에서 걸었다. 츠카사는 시종일관 내게 시선을 맞추지 않았다. 츠카사의 모습 옆으로 무너진 콘크리트 잔해들이 보였다. 도시로 들어서고 나니 파괴된 세상은 평원에서보다 훨씬 을씨년스럽다. 흉측하게 뒤집힌 콘크리트 더미가 철골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누군가 평화롭게 살았던 집이었을 곳은 벽돌이 갈라지고 대들보가 무너져 있다. 그 안에 살던 누군가의 흔적을 부서진 벽 너머로 볼 수 있었다. 살아 있는 존재가 없어서 다행일지 모른다. 이런 모습을 바라보는 건 나나 츠카사 뿐일 테니까.
“카이토.”
낮게 깔리는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도착한 것일까. 나는 나도 모르게 앞장서고 있던 발을 멈추었다. 츠카사와 그 옆의 풍경을 좇다 보니 제대로 앞도 보지 않았기 때문에, 돌아서 보니 장애물들이 이것저것 보였다. 아무 영향이 없었던 건 츠카사 때문인 모양이다. 나를 보는 츠카사의 시선은 여전히 무엇을 담고 있는지 짐작할 수가 없다. 격렬하게 보이기도 하고, 차갑게 보이기도 한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밤이다.”
츠카사는 짧게 말했다. 그러네. 그 말대로 해가 지고 있었다. 주홍빛으로 물들어 있던 하늘이 점점 남색으로 바뀐다. 어차피 어둠이라 해도 우리에게 달라질 것은 없다. 세상은 남겨진 자들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나와 츠카사를 위하여. 츠카사가 받아들인 숙명은 그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다.
나는 슬슬 힘이 빠질 지경이었지만 츠카사는 아직 걸을 기운이 남은 모양이다. 잠깐 멈추었던 발을 다시 움직인다. 어디로 가고 싶어 하는 것일까. 아직 목적지엔 도착하지 않은 것일까. 나는 결국 나와 츠카사의 주변을 싸도는 침묵을 견디지 못하였다.
“어디에 갈 생각이야?”
아까와 똑같은 질문이다.
“좋아할 만한 곳.”
대답 역시도 똑같다.
“네가 좋아할 곳?”
약간 질문을 바꾸었다. 츠카사는 대답 대신에 고갯짓으로 앞을 가리킨다. 앞에 뭐가 있는 거지? 나는 츠카사의 얼굴에서 그가 가리킨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건…….”
별이었다. 이미 우르르 무너져버린 유원지 너머로, 별이 보였다. 남색과 보랏빛이 뒤섞인 하늘이, 기둥이고 뭐고 전부 무너져 골격만 앙상히 남은 유원지와 그 주변을 감싸고 있었다. 무너진 회전목마의 그림자 뒤로 보이는 하늘은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답다. 알알이 박힌 새하얀 별들이 가루처럼 무수히 많다. 어디가 시작이고 끝일까. 수많은 세계를 돌아보았던 나였지만 이런 광경은 처음이었다. 모든 것이 죽은 세상에서 하늘만이 제 존재를 뽐내고 있었다.
“츠카사. 이걸 보여주려고 했던 거야?”
나는 알았다. 이 하늘이야말로 이 세계의 보물이다. 아까 츠카사와 했던 말이 떠오른다. 너와 내가 생각하는 것이 보물이야. 그래서 여기로 왔을 지도 모른다. 이 무너진 세계에도 귀중한 것이 있다는 걸 보여주려고.
“그래.”
츠카사는 대답했다.
“보물찾기도 할 만하지 않아?”
츠카사가 웃으며 말했다.
“응. 그러네.”
나는 대답했다.
“이런 보물이라면, 훔칠 가치는 차고 넘치지.”
물론 하늘은 내가 도저히 가져갈 수 없는 보물임을 안다. 그러나 이 세계에서 있는 힘껏 살다 보면 언젠가는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런 덧없기 짝이 없는 희망을 가져서라도 나는 이 땅에서 살아나가야 했다. 지금 내게 주어진 운명이다. 훔칠 것이 없는 괴도는 억지로라도 훔쳐야 할 것을 만들어 내야 하는 것이다.
츠카사는 그런 나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답답했지?”
츠카사가 물었다. 그의 시선은 하늘을 향해 있었다.
“아니.”
“당장이라도 이 세계를 떠나고 싶어서 몸이 근질거렸던 주제에.”
“네가 떠나지 않는 이상 나도 못 떠나.”
나는 근처에 있던 콘크리트 더미에 몸을 기댔다.
“너를 위한 세계다. 네가 원치 않는다면 부서지겠지.”
츠카사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그 말은, 나더러 시험해보라는 뜻이야?”
나는 츠카사를 보며 물었다. 츠카사의 대답은 없었다. 나는 손을 뻗었다. 다른 세계로 가기 위함이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세계는 움직이지 않았다. 내게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나를 가두는 세계겠지. 여기는.”
나는 웃었다. 츠카사의 시선이 내게로 향한다.
“그렇게 생각해?”
또 가라앉은 목소리이다. 나는 절로 몸이 움찔한다.
“너를 가두려 한 적은 없어. 카이토.”
츠카사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그렇게 말했다.
“네가 원한다면 충분히 나갈 수 있어.”
츠카사는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는 그 얼굴을 보고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가 웃겨서가 아니다. 그의 말의 의미가 기가 막히기 때문이라고 하는 게 정확할 것이다.
“너를 죽여야 나갈 수 있겠지.”
나는 웃음을 멈추지 못하고 말했다. 츠카사의 눈이 나를 차갑게 보았다.
“내가 너를 막기를 바라는 거야? 츠카사.”
여전히 품 안에 가지고 있는 디엔드라이버를 만지작거리며 나는 물었다. 츠카사의 대답은 없다. 그러나 아니라면 아니라고 했겠지. 하지 않았다는 말인 즉, 그는 결국 숙명을 받아들인 자신을 내가 끝내줬으면 하는 것이다.
하지만 츠카사. 그것만큼은 불가능해.
“누군가는 가능했을 지도 몰라. 나츠메론이라던가.”
나와 그 사이에 금기였던 이름을 꺼내자, 츠카사가 미묘하게 눈을 찡그리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나는 안 돼.”
표정에 변화가 없는 그에게 나는 조금 가까이 다가갔다.
“어떻게 내가 널 죽일 수 있겠어?”
“한 번은 죽였잖아.”
내 말에 츠카사가 반박했다.
“그 때엔 어떻게 했다는 거지?”
“그건 죽이려고 한 게 아니야. 널 가지려고 했던 거지.”
츠카사가 무슨 생각을 하는 지도 모르고, 앞으로 어떻게 될 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그렇게 방황하는 와중에도 나는 내 옆에 있고, 내 곁을 떠나지 않는 츠카사가 좋았다. 그의 말대로 나는 그를 한 번 죽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끝을 내주기를 바라서 내 곁을 떠나지 않는. 그 사랑스러운 존재에게 내가 두 번째로 총을 겨눌 수 있을 리가 없다. 그 때에도 충분히 결심하고 한 일이었다. 너의 죽음이라는 미명 아래 너를 완전히 내 것으로 소유하기 위함이었다. 카도야 츠카사라고 하는 최고의 보물을 내 손으로 얻기 위해서.
“지금 나는 이미 널 가졌다고 봐도 틀리지 않겠지.”
그 말에 츠카사의 말은 없다.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
“그런 내가 지금 네게 총을 겨누는 건, 내 보물을 스스로 포기한다는 뜻이야. 그것만큼은 용납할 수 없어.”
이렇게 말하면 그는 어떻게 반응할까. 나를 죽이려 할까. 사실 지금도 궁금하다. 그는 분명 나를 미워할 것이다. 이 세상이 이렇게 된 것은 나의 그 결심 때문이라고 생각할 테니까. 하지만 그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해야 했지? 너를 도와 그들을 파괴했어야 할까? 그게 네가 바라던 결말이었어? 이미 멸망한 이 세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야? 너는 지금 어떤 생각을 해? 너는 지금 무엇을 바라고 있어?
나를 봐, 츠카사. 제발. 이 간절한 마음으로 나는 그에게 말한다.
“그럼 너는 절대 여길 벗어날 수 없을 거다.”
츠카사는 시선을 내리깔며 말했다.
“네가 좋아하는 보물찾기도 할 수 없겠지.”
“말했잖아. 너와 내가 생각하는 것이 보물이라고.”
아래로 향해 있던 츠카사의 시선이 다시 내 쪽을 바라본다. 그의 눈에 별빛이 비친다. 이 아름다운 하늘 아래, 이만한 보물은 없다.
“내 최고의 보물은 너야.”
늘 하고 싶었던. 늘 하고 있었던. 단 한 번도 전해진 적 없는 말을 나는 차분히 꺼내었다. 이런 소리를 하면서, 조금이나마 마음이 편안한 것은 하늘의 마력 탓일까? 츠카사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 내 말에 뭐라 대답해야 할 지 고민하는 것일까. 표정에 변화는 없었지만, 나는 그가 고민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세계에 머문 뒤 처음으로 그의 얼굴을 본 것 같다.
“내 마지막 보물이기도 하지.”
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네가 없는 세상은 의미가 없어. 네가 없는 세상에서는 저기 보이는 보물의 아름다움마저 퇴색되겠지. 말했잖아. ‘세계는 필요 없다’고. 여기 남은 세상이 정말로 너를 죽여서 받은 세상이었다면 머무를 생각 따위 했을 리가 없잖아.”
말 하나 하나를 골라 가며, 나는 그에게 말했다. 나를 봐 줘. 츠카사. 멀리 보지 마. 나를 외면하지 마. 나는 죄를 지었을지 몰라도 네가 받아들인 건 네 숙명이야. 나는 네 숙명의 일부가 되고 싶었을 뿐이야. 단순히 그 뿐이었어. 정말로.
“기특하기 짝이 없는 괴도네.”
츠카사는 몸을 낮추어, 내게 몸을 가까이 했다. 또 한 번 몸이 움찔한다.
“그럼 답은 하나로군.”
그 말과 동시에 츠카사가 주먹을 쥐고는 내 배를 퍽 쳤다. 커억. 나도 모르게 괴로운 신음을 내며 배를 붙잡았다. 그 틈에 츠카사는 내가 품에 늘 갖고 있던 디엔드라이버를 쑥 빼내어 제 손에 쥐었다.
“무슨 짓이야!”
내가 놀라 그것에 손을 뻗어도 닿지 않았다. 츠카사는 내 손이 닿을 범위보다 멀리 디엔드라이버를 쥔 뒤에, 나와 약간 거리를 벌리고서는 그것을 그대로 제 머리에 가져다 대었다. 철컥. 방아쇠의 소리가 들리고 나는 망연한 채로 츠카사를 바라보았다. 츠카사 역시 나를 보고 있었다. 또 그 때처럼 가라앉은 눈동자였다. 츠카사의 뒤로 하늘이 보였다. 종말을 고하기에 딱 적당한 풍경이다.
“츠카사.”
안 돼. 나는 츠카사에게 비틀거리며 다가갔다. 진심으로 때린 모양인지 지금도 배가 계속 아프다. 하지만 그것만큼은 안 된다.
“하지 마. 제발.”
“…….”
내가 다가서는 만큼 그는 멀어졌다. 조금씩 배에 통증이 가라앉았다. 나는 허리를 펴고 다시 츠카사에게 다가갔다. 츠카사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내가 어떻게 하려는지 보려는 모양이다. 볼 필요도 없잖아. 내 답은 처음부터 하나였는걸.
“내가 잘못했어! 뭐든 할 테니까, 제발!”
나는 츠카사에게 외쳤다. 사실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떠오르지 않는 잘못이라도 끌어 모으지 않으면 정말로 그가 떠나 버릴 것만 같았다. 츠카사는 항상 그랬다. 나보다도 더한 방랑벽. 여행을 통해 그는 자신의 존재를 계속 확인받으려 한다. 그러니 이 세계에 머무르지 못하는 건 나보다도 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안. 나는 그런 너를 해방시켜 줄 정도의 성자가 되지 못해. 그런 건 내게 불가능하니까. 네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를 봐주는 네가 좋으니까. 이런 식으로라도 네가 나를 봐 주었으면 하니까.
“재미없어졌어, 너.”
츠카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에 있으니 이상해진 건가. 과거의 너는 어디로 간 거지?”
“과거 같은 건 몰라. 너도 마찬가지잖아. 그 때의 너는 이제 없어.”
츠카사의 눈에 희미하게 감정이 일렁이는 것이 보였다. 그게 무슨 모양의 파도인지는 보이지 않았다.
“그 말이 맞네. 과거의 나도, 너도 이제 없지.”
그 말을 하면서 츠카사는 디엔드라이버를 바닥에 툭 던졌다. 나는 내 앞으로 굴러오는 것을 빠르게 주웠다. 잠깐이었지만, 그럴 리도 없겠지만 최악의 상황을 떠올리게 된다. 떠나고 싶어 하는 츠카사의 마음을 모르지 않으니까. 숙명을 받아들인다 해서 그 숙명이 무겁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는 결국 세계를 파괴했다. 나로 시작한 그 선택이 세계의 종말을 만들었다. 무거울 것이다. 충분히. 하지만 나는 그 무게를 모른다. 내가 아는 것은 그저, 그의 손으로 파괴된 세상에서도, 츠카사는 유일하다는 것이다.
나의 보물.
반짝이는 밤하늘이 담은 이는 오늘도 눈이 부시다. 나는 다시금 종말의 땅에서 살아가기로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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