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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카이] Dry Heart가면라이더 2016. 5. 24. 12:12
샬롯스프(@anotherside_rdy)님의 커미션입니다.
늘 쓰던 것과는 조금 다른 방식이 된 것 같습니다....
슈퍼 히어로 대전의 네타를 약간 포함하고 있습니다.
"너는 너만의 길을 가."
떠난 이가 남긴 말이었다.
처음 그 말을 들을 때만 해도 카도야 츠카사는 납득했다. 그들 사이에 그럴 만할 일이 있었으니까. 작전 때문이었다고는 해도 잠시나마 깨어진 우정에 슬퍼하고, 상처받은 이가 있었다. 그. 카이토 다이키는 겉으로는 ‘우정 같은 거 믿지 않아.’ 같은 소리를 하던 이라 츠카사는 자신의 작전으로 인해 상처를 입은 이의 모습을 보면 제 실수를 깨달았다. 솔직하지 못한 녀석. 다른 이들이 악당들의 장치를 가지고 변모한 그를 쓰러뜨리는 모습을 보며 그렇게 생각했던 것도 같다.
“일단 말해두는 건데, 만약 내가 우정이라고 하는 걸 느낀 적이 있었다면 그건…….”
그래서 혹시나 싶은 마음으로 꺼낸 말이었다. 너덜너덜해진 이가 제 우정마저 빼앗겼다고 생각할까봐. 그러나 그의 대답은 달랐다.
“말하지 마! 너 같은 건 두 번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아!”
츠카사의 말을 다짜고짜 가로막고서 그는 말했다. 그 뒤로는 잊지 못할 거라는 말도 남기며, 그는 츠카사의 카드를 가지고 사라졌다. 어디로 갔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찾으려 마음을 먹는다면 찾는 것은 어렵지 않겠지.
그렇게 생각해서 보내 주었던 것 같다.
그러나 며칠 뒤 츠카사는 후회했다. 그런 식으로 보내는 것이 아니었다. 츠카사는 제 가슴 속에 이글거리는 감정을 누르며, 싸움이 끝난 벌판 위에 계속 서 있었다. 대쇼커도, 대쟌가크도, 슈퍼전대도, 가면라이더도 전부 떠나고 아무도 없는 세계이다. 모든 세계에 간섭할 수 있는 츠카사나 마벨러스의 힘으로 다른 세계에 있는 이들을 억지로 끌어들여 만든 세계이다. 아마 츠카사가 마지막으로 떠난다면 사라질 운명을 맞을 것이다. 이 거짓 덩어리의 세상에 미련을 갖지는 않았다. 그러나 발을 떼지는 않는다. 스스로 냉정해지기 전에는 떠날 수 없다는 판단 하에 츠카사는 이 아무 것도 없는 세계에 남아 있는 것이었다. 실제로 지금도 츠카사는 분을 삭이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게 화가 가라앉지 않는다. 그것은 분명, 떠나버린 이가 츠카사 스스로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를 보지 않는 츠카사 따위' 의 소리를 하던 이였다. '나도 너의 동료일 지도 모르겠네.' '참, 해삼 싫어했던가?' '나를 떠나지 마.' 떠난 이에 대해 츠카사가 기억하는 모습은 그런 식이었다. 언제나 그는 츠카사의 곁을 맴돌았다. 츠카사가 어느 세계를 가도 그는 츠카사를 찾아냈다. 우연히 마주친 것처럼 말하지만, 분명 그는 츠카사를 찾았을 것이다. 그리고 애써 만난 츠카사가 어떤 돌발 행동을 하더라도, 불만불평은 할지라도 결국은 츠카사의 뜻을 따라 주었고, 츠카사를 기다렸던 이다.
그런 존재가 떠나가 버린 것이다.
츠카사는 본디 떠나는 이를 붙잡는 성격은 아니다. 애초에 그 자신조차도 스스로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그러니 가까워진 이들이 츠카사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자신에게 실망해 떠나더라도 수가 없다. 항상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카이토만큼은 달랐다. 그는 츠카사가 모르는 츠카사에 대해 알고 있었다. 아무리 츠카사가 물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마치 그것을 약점처럼, 아니면 자기만의 비밀인 것처럼 간직하고 있다. 그 비밀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그 때문인지 그는 츠카사를 떠나지 않았다. 츠카사가 그를 떠나도 결국은 그와 만났다. 그가 따라왔다. 처음부터 그랬던 양 당연하게. 떼어내려고 해도 떨어지지 않았다. 심지어 얼마 전에는 ‘내가 상처입은 만큼 너도 상처 입어 봐.’ 같은 소리까지 했던 이다. 그럴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네 갈 길을 가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져 버린 것이다.
츠카사는 주먹을 꽉 쥐었다. 이런 식으로 헤어질 것이라면 처음부터 없을 것이지. 거기까지 생각하다 츠카사는 스스로에게 놀란다. 그는 떠나가는 이들에겐 익숙하다. 이미 수도 없이 겪었다. 그가 파괴자라고 하는 말도 안 되는 운명 속에서 살아가는 동안 계속. 그러니 누가 그를 떠나더라도, 그게 소중한 존재더라도, 처음부터 예상했던 것처럼 무덤덤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카이토라는 인간 하나가 그를 떠난다고 이렇게까지 제 속이 뒤집힐 일인 것인가. 츠카사는 이해하지 못하였다.
카이토가 츠카사를 떠난다고 해도 츠카사가 카이토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가 어떤 세계에 머무르고 있고, 그 세계에서 어떤 모습을 하고 있더라도 츠카사는 알아볼 자신이 있었다. 세계를 떠도는 이들만의 특이점 비슷한 것일까. 그동안 카이토가 자신을 쉽게 찾아온 것 또한 같은 이유일 것이다. 여태까지 츠카사 쪽에서 그런 시도를 하지 않았을 뿐.
바로 최근. 문제의 쇼커의 대수령을 자처하던 시절에도 그랬다. 이 세계에 카이토가 쫓아왔다는 것은 바로 알았다. 알려 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느껴졌다. 그렇기에 전함에 숨어든 카이토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카이토를 붙잡은 츠카사는 말했다. 부디 내게 협력했으면 한다. 그 말을 카이토는 분명히 거절했다.
“내 여행길은 내가 정해.”
어째서? 너는 그렇게나 나를 원했던 주제에. 츠카사는 그 때를 떠올렸다. 이상하게 속이 뒤틀렸던 기억이 남아 있었다. 츠카사는 조금 더 생각의 회로를 이어보았다. 그가 고카이 블루와의 어설픈 우정 놀이를 했던 것도 기억이 난다. 츠카사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가 갈구하던 이는 분명 카도야 츠카사 자신이었다. 그러나 대수령을 자처했던 그 짧은 기간 동안, 카이토는 츠카사 자신이 아닌 다른 이를 지키려 하고 있었다. 그렇게 둘까 보냐. 그 때의 그를 공격한 것은 진심이었다. 그것을 뒤늦게 츠카사는 깨달았다.
츠카사는 벌판의 모래를 괜히 발로 찼다. 퍽 소리가 나고 먼지가 일어났다. 츠카사는 눈을 가늘게 떴다. 곧 깨달았다. 여기서 이렇게 이글거리는 마음을 불태워봐야 소용이 없다. 카이토를 만나야 했다. 나의 길을 가라고는 했지만 어차피 파괴자의 숙명을 안은 이상 결국은 방황하는 몸이다. 즉 츠카사가 어느 길을 가든 그의 길이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카이토가 가는 길을 따라 가는 것을 제 길로 삼더라도 상관이 없지 않은가. 거기까지 생각하다 츠카사는 마른 입술을 살짝 핥았다. 기분이 이상하다. 이렇게까지 매달릴 일인가? 다시 한 번 생각했다. 별 일 아닌데. 라고 생각했다 곧 가슴이 이글이글 끓는 것을 느꼈다.
‘카이토를 봐야겠군.’
그렇게 결론을 내린 츠카사는 세상의 문을 열었다. 츠카사의 뒷모습이 일렁이는 회색의 아지랑이 속으로 사라지자, 벌판으로 남아 있던 세상은 스르륵 무너지기 시작했다.
예상대로 카이토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츠카사가 도착한 세상은 아까 있었던 세계처럼 허한 곳이었다. 바람에서 소금 냄새가 났다. 바다가 있는 모양이다. 츠카사는 몇 걸음 걸어갔다. 자박 자박 모래 밟는 소리가 났다. 이 근처에 그가 있다는 것은 직감할 수 있었다. 아마 카이토도 눈치 챘을 것이다. 아무도 없는 해변이었다. 파도가 몇 번 왔다 가는 소리를 들으며 걷다 보니, 멀찍이 사람의 그림자가 보였다. 그 그림자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아보는 건 어렵지 않았다. 츠카사는 달렸다. 멀찍이 느껴지는 인기척에 카이토가 흠칫 놀라며 츠카사 쪽을 돌아보는 것이 보였다. 잠깐 놀란 얼굴을 하다가 태연한 척 표정을 바꾼다. 분명 그는 예상치 못한 것이다. 츠카사가 자신을 쫓아올 것을.
“어떻게 된 거야?”
자신에게 달려와 어깨를 붙드는 츠카사를 보고, 카이토는 평소의 목소리 톤으로 묻는다.
“왜 여기로 왔어?”
“가는 길 따라.”
“거짓말은 여전히 서투네.”
카이토가 피식 웃었다.
“무슨 변화가 있었던 거야?”
일단 그를 붙잡고 본 츠카사였지만, 카이토의 그 질문에는 간단히 대답하지 못했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하지. 일단 만나고 보자는 마음이었다. 얼굴이라도 보면 알게 될 게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그러나 막상 그 장본인을 마주하여도 츠카사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오히려 머릿속은 더 새하얘지는 것 같다.
“아무래도 두고 볼 수 없어서.”
아주 어렵게, 츠카사는 그 한 마디를 떼었다.
“널 혼자 두고 갈 수가 없었어.”
“뭘 새삼?”
카이토는 정말로 모르겠다는 듯이 묻는다.
“조금 이상한데, 츠카사. 어디 아프기라도 한 거야?”
그 목소리에는 명백한 비웃음이 담겨 있다. 아직 화가 풀리지 않았군. 츠카사는 직감적으로 깨닫는다.
“나는 멀쩡해. 카이토.”
“아니, 이상하잖아.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 같은 건 아무래도 좋아 보이더니?”
“…….”
카이토는 제 어깨를 잡고 있던 츠카사의 손을 아래로 내렸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츠카사의 눈이 이전과는 조금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나 그 이유가 도통 무엇인지 카이토에게는 짐작도 되지 않았다.
“데리러 왔을 뿐이다. 새로운 여행의 장으로.”
“왜?”
카이토가 어깨를 으쓱였다.
“항상 보고 싶어 했잖아? 내가 가는 여행길을.”
츠카사는 당연하다는 듯 말한다. 그랬다, 너는 그러지 않았나, 카이토. 츠카사가 카이토를 내려다보는 눈빛은 이전보다 어둡다. 카이토의 시선이 드디어 그 어둠을 알아보아도, 여전히 그의 생각은 알 수가 없다. 차라리 대수령 때가 지금보다 더 명확했다. 여태 츠카사는 이런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더욱 들여다보기 두려운 것도 있다.
“보고 싶어 하긴 했지.”
카이토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냐.”
“어째서?”
“말했잖아. 내 여행길은 내가 정해. 지금은 쉴 때라고 내가 판단했어. 그 뿐이야.”
카이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그는 애써 허세를 가장한다. 지금의, 들여다 볼 수 없는 츠카사는 어렵다. 어떤 말을 할지 전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지금도 보면, 어떤 특정한 감정으로 제 온 몸을 불태우고 있다. 그 정체가 무엇인지 흥미가 생기면서도, 알고 싶지 않은 게 카이토의 심정이었다.
“너와 내 여행길은 항상 같았잖아.”
츠카사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지금은 갈림길이라고 해 두면 되지 않을까?”
카이토가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진짜 이해가 안 가네, 너답지가 않아.”
“뭐가 말이냐.”
츠카사가 눈을 가늘게 떴다.
“너는 평소 하던 대로 갈 길 가면 되잖아. 이렇게 날 붙잡을 게 아니라. 항상 멋대로 앞서 가 놓고는 지금 왜 뜬금없이 나를 찾아와?”
“뭐라고 말해야 할지는 모르겠다만, 너를 데리고 갈 거다. 그렇게 정했다.”
츠카사는 대답했다. 카이토에게 그 말은 꽤 놀라운 것이었지만, 부질없는 행위기도 했다. 카이토의 눈에 아주 조금, 지금 츠카사가 불태우는 감정의 정체가 보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만 지금 츠카사의 행동은 카이토에게 있어 고집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유도 알려주지 않은 채로 그저 데려가겠다고만 하고 있다. 네가 몇 살이냐. 그 소리가 입 밖으로 나오려다가 차마 나오지 못하고 도로 들어간다. 카이토는 한숨을 쉬었다. 이렇게 되면
“저기, 츠카사. 내가 언제까지 널 따라다닐 거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야. 꼭 그렇진 않으니까 말이야.”
츠카사의 미간이 구겨졌다.
“솔직히 그렇잖아? 우정 같은 건 흥미 없지만, 그런 흥미 없는 것에 관심을 가졌던 나를 바보 취급한 녀석이 있어. 그런 녀석을 굳이 내가 따라가야 할 필요가 있을까?”
“카이토.”
“아, 설마. 정말로 그 때 상처 입은 거야? 네가?”
카이토는 눈을 깜빡이더니 놀란 듯 츠카사를 올려다보았다. 카이토의 얼굴에 비치는 것은 명백한 조롱이었다.
“놀라운데. 네게 내가 받은 상처의 일말이라도 느끼게 하고 싶었지만, 솔직히 기대는 안 했는데.”
“멋대로 하는 상상도 거기까지야.”
츠카사는 울컥하는 것을 삼키며 말을 뱉었다.
“뭐, 밉진 않아. 네가 그런 종류의 인간이라는 것도 모르지 않으니. 하지만 내가 그걸 안다고 해서 전부 참을 수 있는 건 아니란 말이지. 나는 인내심이 좋지 않은 편이라서 말야.”
카이토는 자신이 들고 있던 디엔드라이버를 빙빙 돌렸다.
“그러니까 네 지금 행동은 의미가 없어, 츠카사. 지금 네가 이러는 건 후퇴밖에 안 돼. 알고 있어?”
츠카사는 입술을 깨물었다. 카이토는 그의 말을 들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로 그의 말대로 후퇴하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그러나 츠카사는 카이토를 데리고 가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후회할 지도 모른다고. 충분히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직감이 말해주고 있었다. 문제라면 그 후회할 이유를 츠카사 자신도 명확한 단어로 정의를 내릴 수 없다는 것이지만.
“아니. 나는 제대로 가고 있어.”
츠카사는 카이토의 말을 부정하려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네가 필요해.”
어쩔 수 없다. 지금은 이 말밖에 할 수 없었다.
“그래?”
카이토는 기가 차다는 얼굴이다.
“여태 그런 적 없었잖아.”
“카이토!”
츠카사는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그는 명백하게 자신을 피하고 있었다. 카이토는 이유를 모르겠다 하지만, 이유를 모르겠는 것은 츠카사도 마찬가지였다. 카이토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다. 이런 적이 없었다. 아니, 애초에 카이토는 츠카사가 이렇게 찾아올 필요도 없이 알아서 쫓아오는 이였다. 알아서. 당연하게 자신의 옆에 있는.
“신기하네. 오늘 해는 제대로 된 방향으로 떴는데.”
“…….”
츠카사를 이런 식으로 밀어내는 것이, 카이토에게 편할 리는 없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우정을 버린 이다. 자신의 외침을 들어주지 않은 이다. 솔직히 늦었다. 쫓아와 준 것은 좋지만, 그렇다고 바로 좋다 하고 따라가기엔 카이토의 기분이 내키지 않았다. 카이토가 생각하기에 아직 그는 반성하지 못했다. 지금 츠카사의 행동 자체가 그 증거다. 그가 하는 일은 떼를 쓰는 것에 불과하다. 진짜로 잘못한 것을 알고 있다면 아마도. 카이토는 입술을 깨물었다.
“있잖아, 츠카사. 아까부터 계속 말하잖아. 내 여행길은 내가 정해.”
카이토는 츠카사에게서 눈을 돌려, 넘실거리는 파도로 시선을 돌렸다.
“내가 널 쫓은 것도 내가 좋아서였고, 내가 지금 널 따라가지 않으려는 것도 내가 그렇게 하고 싶어서야. 여기까지 나를 쫓아와 준 건 진짜 갸륵하다 싶은데. 그 정성에 내가 꼭 보답을 줘야 할 필요는 없잖아?”
카이토는 다시 고개를 돌려 츠카사를 보았다. 그 특유의 포커 페이스로 웃으면서.
“내 말이 잘 이해가 안 가는 거야? 혹시 학습 능력 문제인가?”
카이토의 비웃는 얼굴을 보자, 새하얗던 츠카사의 머릿속에 어떤 감정이 자리를 채운다. 계속, 요 며칠 동안 눌러왔던 것이다. 막던 것이 사라지니, 멈출 줄을 모르고 감정은 하염없이 끓어오른다. 츠카사의 입술이 떨렸다. 저도 모르게 그는 주먹을 꽉 쥐었다.
쿵.
안개가 낀 것 같던 의식이 둔탁한 소리와 함께 또렷해졌다. 정신을 차린 츠카사의 눈에 보인 건 제 꽉 쥔 주먹과 그것을 맞은 듯 모래 바닥을 뒹굴고 있는 카이토의 모습이었다. 츠카사는 스스로에게 놀랐다. 왼뺨을 손으로 감싸고 있는 카이토도 놀란 듯 동공이 커져 있었다. 곧 카이토는 얼굴을 굳히고는 비틀비틀 일어서더니 츠카사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그 반동으로 츠카사는 오른쪽으로 고꾸라졌다.
“너……!”
뺨을 감싸 쥐며 츠카사는 카이토를 노려보았다.
“맞은 만큼은 돌려줘야 얘기가 되지.”
카이토가 손을 탁탁 털며 말했다. 소금 바람이 불었다. 바람이 훅 츠카사에게 밀려들어옴과 동시에 카이토의 다음 주먹이 츠카사의 얼굴을 향해 날아들었다. 츠카사는 제 몸을 감싸며 카이토가 지른 주먹을 피해 뒤로 한 번 구른 뒤에 일어났다. 해보자는 거냐. 먼저 친 쪽이라 이런 상황이 된 것에 변명거리는 없었지만, 한 대 이상을 갈기려 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츠카사는 자신에게 달려드는 카이토의 발차기를 피해, 방어가 비어 있는 쪽으로 팔을 뻗었다. 카이토는 몸을 앞으로 기울여 그것을 피하고는 내려놓은 발을 디딤 삼아 뒤로 발을 차올렸다. 츠카사는 놀라며 화들짝 뒤로 몸을 뺐다가, 빠르게 자세를 고쳐 잡고 중심을 잡으려는 카이토의 얼굴로 재차 주먹을 날렸다. 카이토는 그것을 어떻게든 피할 수는 있었지만 뒤로 이어지는 츠카사의 발차기에 배를 직격으로 맞고 뒤로 밀려났다. 카이토는 고통 섞인 숨을 뱉어냈다. 주도권을 잡아낼 생각으로 츠카사는 맞은 곳을 본능적으로 감싸는 카이토의 턱을 가격했다. 멈춰야 한다. 무의식의 소리가 들렸지만 츠카사의 몸을 감싸는 격한 감정이 그것을 허상으로 만들었다. 츠카사의 주먹에 날아간 카이토는 다시 바닥을 뒹굴었다. 그의 몸은 모래로 엉망이었다. 그는 입술에 흐르는 피를 손등으로 닦고는 팔로 지탱하며 겨우 몸을 일으켰다.
“말로 안 되니까 폭력 행사인거야?”
카이토가 입안에 고였던 피를 툭 뱉었다.
“왜 거부하는지, 내게 이유를 납득시켜. 카이토.”
“그건 내가 할 말인데. 내가 왜 가야 하는지, 날 납득시켜 봐. 츠카사.”
카이토는 몸을 탁탁 털었다. 그 새에 성큼성큼 걸어온 츠카사는 대답 없이 다시 주먹을 날랐다. 가벼운 기합 소리를 내며 카이토는 주먹을 피해 그의 가슴에 거침없이 오른발을 날렸다. 츠카사는 가슴팍에 그대로 카이토의 일격을 맞고 뒤로 물러섰다. 쏴아. 파도 소리가 들렸다. 카이토가 츠카사에게로 날아오고 있었다. 츠카사는 오른쪽으로 몸을 돌려 카이토의 공격을 피한 뒤 그대로 발을 뻗어 카이토의 옆구리를 가격했다.
“커억!”
이번엔 제대로 맞은 모양인지, 카이토가 비틀거리며 다시 바닥 위를 굴렀다. 파괴자는 육탄전에서 뒤지지 않았다. 애초에, 그럴 생각도 없었다.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해변의 모래 위에서 몸을 떠는 카이토를 츠카사는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감정이 일렁였다. 그 자신조차 명확히 정의내리지 못하는 것이 가감 없이 카이토를 향해 쏟아졌다. 바닥을 뒹굴면서, 카이토는 츠카사의 쏟아지는 감정들을 보았다. 숨이 막힌다. 왜 이렇게 되어버린 거지? 돌아봐도 그는 알 수가 없었다. 그저 늘 바라보던 것이 자신을 바라보지 않기에, 더 이상 바라보지 않기로 했을 뿐이다. 잠시 떨어뜨려 놓고, 다시 한 번 마음을 정리할 생각이었다. 그 뿐이었는데 어째서. 카이토가 그런 생각을 하는 새에 츠카사는 카이토의 멱살을 잡고 그를 끌어올렸다. 제법 무거운 편이었지만 카이토는 힘없이 끌려 올라갔다. 카이토는 막힌 숨을 크게 뱉어냈다. 츠카사는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시선 너머로 일렁이는 감정이 또 보였다. 현기증이 났다.
“학습 능력 어쩌구 소리를 했겠다.”
츠카사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너는 어차피 나를 떠나지 못해. 그걸 다시 한 번 네게 가르쳐 주지.”
이제는 반박하기도 지친다. 카이토는 한숨을 쉬었다.
“이래서 지금의 너와 여행을 할 수 없는 거야.”
카이토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내가 없어보니 좀 알겠어?”
“…….”
“모르겠지. 너는 절대 내 마음을 이해하지 못해. 그러니 이렇게라도 알려줘야지. 내 비참함을. 내 괴로움을, 내 실망감을 말이야!”
그 새 잠시 아껴둔 기운을 담아 카이토는 있는 힘껏 츠카사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퍼억 소리가 크게 들리면서 츠카사가 옆으로 고꾸라져 모래 위로 넘어졌다. 넘어지며 츠카사는 카이토의 멱살을 놓쳤다. 놓친 그대로 카이토는 비틀거리며 다시 섰다. 츠카사는 모래가 잔뜩 묻은 얼굴로 카이토를 노려보았다.
“고작 이것밖에 안 되는구나, 너는.”
코피를 질질 흘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츠카사를, 카이토는 차갑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점점 슬퍼지는데. 내 기대가 자꾸 무너지잖아.”
카이토는 말을 이었다. 차갑던 시선이 이윽고 감정으로 일렁인다. 카이토의 그것은 몹시 복잡하다. 분노와 슬픔, 안타까움이 뒤섞인. 다만 더 이상 츠카사의 눈에는 그것이 보이지 않았다. 츠카사는 코피를 손등으로 스윽 닦으며 일어서, 지친 숨을 쉬며 카이토를 노려보고 있었다.
“실망이야. 츠카사.”
파도 소리가 울렸다. 츠카사의 머릿속을 아까와 같은 새하얀 안개가 뒤덮었다. 안개의 이름은 아직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츠카사를 지금까지 휘감았던 감정 그 자체일 것이다. 안개의 탓일까. 츠카사는 분노했다. 실망이라고 하는, 카이토의 그 단어 자체에 이성을 그대로 잃고 말았다. 츠카사는 제 손을 털면서 카이토에게 달려들었다. 카이토의 어깨를 확 붙잡고 그를 밀어 넘어뜨렸다. 카이토가 중심을 잃고 넘어져 굴렀다. 츠카사는 카이토의 어깨를 놓지 않은 탓에 둘은 같이 모래 위를 몇 번 굴렀다. 모래를 몇 번 뒤집어 쓴 뒤에야 츠카사가 카이토 위에 올라타는 각도가 되었다. 퍽. 한 번 내리친 주먹을 카이토가 있는 힘껏 막아내지만 그렇다고 하여 일방적인 린치를 그가 버텨낼 각은 되지 못한다. 얼굴을 막으려 팔을 들면 그의 주먹은 얼굴 쪽이 아닌 배 쪽을 내리친다. 카이토가 고통스러운 신음을 냈다. 츠카사는 그에 개의치 않았다. 카이토가 막을 수 없는 곳을 집중적으로 두들겨 팼다. 몇 번, 일방적인 린치 뒤였다. 카이토는 숨을 몰아쉬고 있었지만, 눈을 뜨지 않았다. 다음 일격을 먹일 생각으로 카이토의 멱살을 쥐어 올리던 츠카사는 그것을 깨달았다. 그는 기절해 있었다. 엉망인 얼굴로.
“…….”
츠카사의 주먹은 멈추었다. 그리고 감정의 안개는 걷혀졌다. 아무 것도 없는, 허한 머릿속에서 츠카사에게 보이는 풍경은 피와 멍으로 범벅이 되어 있는 카이토의 기절한 얼굴과 제 더러워진 손과 하얀 모래였다. 쏴아. 평온한 공기를 가장이라도 하려는 듯 파도 소리가 들렸다. 파도와 바람 소리. 하늘은 새하얀 구름 몇 점을 품은, 푸르고 맑은 색이었다.
“크큭……크흐.”
츠카사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킥킥거린다. 어느 누구도 들어줄 리 없는, 쉰 목소리로 새어 나오는 웃음이다. 잠시 그리 웃다 츠카사는 카이토를 보았다. 그는 여전히 눈을 뜨지 않았다. 츠카사는 무의식적으로 그의 뺨을 제 손으로 만졌다. 손끝에 닿는 살의 느낌이 낯설다. 곧 그는 자신이 카이토의 얼굴을 제대로 만져본 적도 없었다는 것을 떠올린다.
“카이토.”
쓰러진 이를 왜 그리 갈구했을까. 감정의 폭풍이 사라진 뒤 돌아보는 자기 자신은 이해할 수 없는 짓만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쓰러진 카이토의 몸을 보는 순간, 츠카사는 문득 깨닫는 것이 있었다.
‘나와 협력하지 않겠나?’
츠카사가 대수령을 자처하던 시절의 카이토는 대담하게도 대쇼커의 기지에 침입한 적이 있었다. 부하로 위장한 것들로 그를 둘러싸고 협력을 요청했다. 그러나 그는 거절했다. 거절 후 다른 세계 너머로 사라지는 이를 보고 당시 자신은 어떤 감정을 느꼈던가.
“아쉬웠지.”
츠카사는 카이토 옆에 털썩 앉았다. 기절한 이가 깨어나기를 기다릴 참이다. 하늘은 맑고, 바람 소리는 상쾌하고, 파도 소리는 안정감을 준다. 카이토가 왜 이 세계를 골랐는지 이해가 된다. 생각이 정리되는 곳이다. 아마 그도 이 안에서 정리하고자 했음이다. 무슨 마음에 대한 것인지는 깨어난 뒤에 다시 물어볼 생각이지만, 이 모양 이 꼴로 제대로 대답을 해 줄지는 모르겠다. 츠카사는 카이토의 머리카락을 쓸었다. 버석버석한 모래의 느낌이 난다.
그 뒤의 일도 생각한다. 자신이 카이토를 공격했을 때 어떤 느낌이었는지. 그리고 조금 더 전으로 돌아간다. 카이토를 볼 때. 카이토가 자신을 따라왔을 때. 자신을 봐달라고 절박하게 외칠 때. 츠카사 자신이 어떤 느낌이었는가를. 츠카사의 기억 속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랬을 텐데. 츠카사에게 몰아친 감정의 폭풍이, 그게 아니라고 외치고 있었다.
츠카사는 다시 카이토의 얼굴을 보았다. 상처를 입은 채 쓰러진 카이토의 모습이 보였다. 츠카사는 가지고 있던 카메라를 들었다. 그가 직접 제 손으로 츠카사에게 돌려준 것이었다. 찰칵. 찍어봐야 자신의 세계가 아닌 곳의 사진이 제대로 나올 리는 없다. 알면서도 애써 그것을 담는다.
‘누군가를 생각하면 걱정이 되고.’
카메라를 다시 집어넣는 츠카사의 머릿속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린다.
‘없으면 불안하고, 찾아야 될 것 같고.’
나츠미캉의 목소리다. 또 하나의 소중한 존재.
‘그 사람의 행동 하나하나에 자기 자신을 잃을 것만 같다면.’
과거의 언젠가, 이 비슷한 감정에 대해 그녀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그 때 들었던 답변이다. 신기하게도 지금 와서 그것이 떠오른다.
‘그런 걸 츠카사 군이 느끼고 있다면,’
왜?
‘그건 분명 그 사람을 좋아한다는 뜻이에요.’
확신에 가득 찼던 그녀의 목소리를 기억한다. 츠카사는 다시 카이토를 보았다. 혼절한 카이토의 얼굴 위로 몰아친 츠카사 자신의 감정이 보였다.
‘행동 하나하나에 자기 자신을 잃을 것만 같다면.’
“그런 거였나.”
츠카사는 제 얼굴을 감쌌다. 이걸 어떻게, 이 차오르는 것에 대해 어떻게 반응을 하면 좋을까. 어떻게 하면 좋을까. 알지도 못한 채 부유하는 마음이 어쩔 줄을 모르는 채로 츠카사의 몸을 다시 감싼다. 이런 식이었다. 아까도 이런 식으로 그를.
“그런 거였어?”
자조의 웃음이 마구 터져 나온다. 아까와는 분명히 다른 방향이다. 이미 기절한 이가 듣는다면, 이런 자신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면 분명 아까보다 더 크게 비웃을 것이다. 츠카사 자신도 믿을 수가 없었다. 지금 그가 내린 결론이 그 스스로도 믿어지지 않는 탓일 것이다.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단 한 번도 그런 방향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이라면 지금 자신이 일으켰던 모든 행동이, 올바르지 못한 방향으로 잃어버린 이성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좋아한다고? 내가? 저 녀석을?
얼굴을 감싸던 손을 내려, 츠카사는 절망을 담아 제 주먹으로 바닥을 쳤다. 퍽. 모래가 후욱 공기 중으로 올라왔다. 카이토는 여전히 깨어나지 않는다. 기절한 이는 어떤 세상을 떠돌고 있을까. 세계를 넘나드는 이조차도 누군가의 마음을 넘나들 수는 없다. 그러니 알지 못한다.
새하얀 파도가 멀찍이서 밀려온다. 하늘은 푸르다. 머나먼 바다 역시 푸르다. 푸른 색, 새하얀 색. 그리고 붉게 물든 카이토 다이키의 얼굴.
감정의 안개. 그 정체는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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