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박사는 더없이 그리운 이름을 불렀다. 주름이 생긴 손을 제 창조물에게 뻗었다. 창조물은 그를 아무 감정이 없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박사는 새삼스럽게 그를 훑는다. 한쪽으로 자연스레 쓸린 머리, 흑요석 같은 눈, 새하얀 피부, 도톰한 입술. 도대체가 인간다운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존재치 않는 창조물은 박사가 기억하는 모습과 한 군데도 틀림이 없었다. 박사는 웃었다. 창조물이 도끼를 드는 것이 보였다. 앞으로 자신이 어떻게 될 지는 뻔히 보인다.
‘당신도 이런 느낌이었을까? 아버지.’
스스로 부쉈을 존재에게 박사는 덧없는 질문을 한다. 아니, 아마 달랐을 것이다. ‘아버지’가 느꼈을 것은 아마도 두려움이었겠지만 박사는 달랐다. 오히려 이 순간을 기다린 것처럼 느껴졌다. 박사는 저 도끼가 자신의 머리를 찍어 죽음을 낳을 것임을 안다. 언젠가는 이렇게 될 것이었다. 폭주하는 자신을 멈춰 주는 것이 박사가 가장 아끼는 창조물이란 점은 박사에게 있어서는 행운과 같은 일이었다. 박사는 웃었다. 박사의 얼굴은 일그러져, 제대로 된 미소가 아닌 기묘한 모양새를 띤다. 창조물은 박사를 다시 가만히 보았다.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창조물은 창조주의 태도를 이해하지 못함이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도 없다. 창조물은 무미건조한 얼굴을 한 채로 그대로 제 팔에 힘을 주어 내렸다.
퍽.
인간의 죽음은 특별한 것을 낳지 않는다. 시체는 사라지지도 않는다. 언젠가 박사의 시체는 발견될 것이다. 그러나 그의 죽음에 대해 슬퍼할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인간 세계를 혼란시킨 악인(惡人)에 대한 정당한 처벌이니 어쩌니 소리만 지껄일 이들뿐이다.
정의의 머신은 죽은 이를 내버려 두고 방을 나가며 말했다.
“인간을 해하는 악을 없앴다. 이제 돌아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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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나는 체이스를 포기하지 않을래요.”
리벤지 로이뮤드 사건 이후 다시 미국으로 떠났던 시지마 고우가 돌아온 것은 로이뮤드 부활 사건이 끝난 뒤로 5년 뒤였다. 그 동안 시지마 고우는 작은 사진전을 통해 돈벌이를 하면서 전 세계를 돌아다녔다고 하는 모양이다. 일본에 귀국하자마자 그가 찾아간 사람은 그의 누나도, 매형도 아닌 사와가미 린나 박사였다.
“애는 오랜만에 만나선 다짜고짜 그 얘기야?”
질색하는 얼굴을 하지만 이는 린나 특유의 장난기이다. 그녀는 딱히 그 이야기를 싫어하지 않는다. 애초에 자신의 사명으로 코어 드라이비어 시스템을 포함해 넥스트 시스템 등 여러 가지를 연구해 온 이다. 그리고 고우의 부탁으로 문제의 ‘체이스’ 에 대한 연구 역시 지속하고 있었다.
“전화로도 말했지만.”
고우의 얼굴이 뚱한 듯 변하지 않자, 린나는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야. 나는 너라고 봐주지 않을 거라고?”
“알고 있어요.”
린나의 말투는 절대로 그의 결정을 지지하는 방향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고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을 한 번 시작하면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자신의 남은 인생을 전부 걸어도 될지 안 될지도 모르는 일이라는 것 역시 안다. 그러나 고우는 결국 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지 않고서는 스스로가 견딜 수 없었다.
체이스를 부활시키기로 했다. 자신의 손으로. 그것을 위해서 모든 것을 감내하기로 했다. 어떠한 시련도 견딜 것이다. 무엇이건 할 것이다. 그곳이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버리는 일이라도 상관 없다. 어느 순간부터 고우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가 없는 삶을 버틸 수 없었다. 그를 잃은 죄책감에 물든 자기 자신이 계속 주저하는 것을 견딜 수가 없었다.
로이뮤드의 삶을 짊어지기로 했다. 그러나 그 삶은 생각 이상으로 무겁다. 무게를 줄이기 위해서는 죄책감이라고 하는 감정을 조금 덜 필요가 있었다. 고우는 그 방법을 체이스의 생산에서 찾았다.
체이스. 몇 년 전 있었던 글로벌 프리즈를 막는 데에 혁혁한 공을 세웠고, 이후로도 가면라이더가 되어 인간을 위해 싸웠던 완전한 선의를 지닌 로이뮤드. 그러나 선의를 가진 인공지능이 살아가기에 인간 세계는 너무도 때가 많이 탄 곳이었다. 그는 고우를 지키고 죽었다. 그의 종족이 로이뮤드라는 이유로 끝내 마음으로 그를 받아들이지 못했던 어리석은 인간을 지키고서.
시지마 고우의 죄책감의 근간은 거기에 있다.
“그게 네가 편한 길이라면 어쩔 수 없지.”
린나는 결국 포기한 듯 한숨을 쉬었다.
“대학 제대로 안 나왔지? 미국에 간 적은 있어도 할리 선생님 말 들어보면 제대로 다닌 것도 아닌 것 같고.”
“그렇게 되네요.”
카메라맨으로 전국을 친구와 돌아다니는 것, 친구가 죽은 이후로는 가면라이더로서 싸우는 훈련에만 전념한 탓에 당연히 학업이랑은 담을 쌓아온 고우였다. 결심을 굳힌 듯한 린나는 팔짱을 끼며 고우를 보았다.
“그럼 일단 무조건 대학부터야.”
“그냥은 안 되는 거예요?”
“당연하지. 연구 팀 꾸리는 데에 아무 것도 모르는 초짜를 들일 순 없잖니?”
린나는 기가 차다는 듯 말했다.
“석사나 박사 과정은 나나 할리 선생님이 도와주겠지만 당연히 그냥은 안 돼. 공부를 해야지. 지금 네 생각처럼 무작정 뛰어들었다가는 네 생을 다 바쳐도 못 만들어.”
연구와 관련될 때의 사와가미 린나는 상당히 가차 없는 인사다. 고우는 그것을 새삼 다시 깨닫는다.
“몸 쓰는 건 자신 있는데.”
“그건 넣어 두고 머리부터 채워.”
“예이.”
“나는 아무한테나 지도교수 해 주지 않는다고. 그러니 있는 힘껏 공부해서 나한테 와. 고우 군.”
기왕 하기로 한 이상 성심을 다하려 하는 듯 린나는 씨익 웃었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고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물리학이나 인공지능에 대해서 지식을 쌓아 두면 결국 그게 체이스를 되살리는 길인 것이다. 머리 안 쓴 것이 이미 몇 년의 일이건만. 린나와 헤어진 고우는 감을 찾는 것을 무작정 고민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