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면라이더 에그제이드 우라와자 가면라이더 스나이프 1화의 네타가 소량 있습니다.(마키의 등장 등)
- 이 책의 내용은 본편과 일절 관련이 없습니다.
- 사망 소재가 있습니다.
1
“아이고. 환자가 줄을 섰네, 줄을 섰어.”
세이토 대학 부속 병원, 거기에 방사선과 전문의로 있는 천재 의사. 하나야 타이가의 또 다른 호칭이다. 이미 세계에 널리 알려진 방사선과 천재의 진료실은 이미 낯선 병을 찾아달라는 환자들로 만원이다. 레지던트에서 전문의가 된 것도 벌써 5년. 그 동안 하나야는 세이토 병원에서 계속 미지의 병들을 찾아 왔다. 시작부터 이미 천재라는 소리를 들어 왔던 이의 소문은 점점 퍼져, 하나야의 스케쥴은 꽉꽉 채워져 있었다. 그의 진찰을 받기 위해서는 6개월 전부터 예약해야 할 정도로. 그 스케쥴 표를 바라보고 있던 하나야의 친우이자 병리과 의사인 마키는 한숨을 푹 쉬었다.
“준교수 임용 후보씩이나 되어서 내 스케쥴 걱정할 여유가 있냐?”
그런 마키를 보며 하나야는 웃었다.
“내가 그렇게 된 것도 뭐, 네 옆에서 찡찡댄 덕 아니겠어. 그러니 네 걱정을 안 하게 생겼냐? 네가 과로사로 쓰러지기라도 했다간 나도 큰일이 난다고.”
“그러냐.”
하나야는 피식 웃었다.
“여하튼, 너무 무리하지는 마라.”
마키는 하나야의 어깨를 탁 쳤다. 육중한 무게감에 하나야가 움찔 몸을 떤다. 마키가 나간 자리에 혼자 남은 하나야는 오늘의 일정이 빼곡하게 쓰여 있는 달력을 보았다. 휴식 시간, 퇴근 시간을 제외한 시간은 모두 진료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 그런 달력을 보니 자신이 너무 달렸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도 하나야를 필요로 하는 환자는 많았다. 자신의 병이 어디에서 온 것인 지도 모르는 채 고통 받는 이들을 하나야는 외면할 수가 없었다. 가능한 스케쥴은 최대한 잡다 보니 결국 더 많은 사람의 예약을 받을 수는 없게 되었다. 자신의 이상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다고, 하나야는 확신했다.
‘어디 봉사활동이라도 가야 하나.’
자신을 필요로 하는 이들은 여기에도 있지만, 더 아래에도 있을 것이다. 하나야 타이가는 자신의 재능을 이해한다. 그렇기에 그 재능이 필요한 이들이 어떠한 이들인지도 안다.
“봉사활동을 가는 게 재능을 낭비하는 길 아닙니까.”
그 날 저녁에는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는 약속이 있었다. 본디 말이 많은 편이 아닌데다가 말이 서툰 편인 하나야는 바쁜 스케쥴까지 더해져 만나는 사람은 적은 편이었다. 그 적은 사람 중 하나를 저녁에 만나게 되었다. 그나마도 마무리를 하느라 퇴근 시간보다 조금 더 늦어져, 식당 예약 시간에서 30분은 지나야 겨우 상대를 만날 수 있었다. 이런 일은 하나야에게 잦은 편이었지만, 상대는 그 때마다 ‘괜찮다.’는 말을 반복했다.
오늘 하나야가 그 고민을 말하자, 상대가 한 말이 그것이었다. 하나야는 미디움 레어로 익혀진 스테이크 한 조각을 주워 먹으며, 제 앞에 앉은 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단정하고 차분한 숏컷 머리에, 자신보다 몇 센치 키가 큰 잘생긴 남자. 현재 겐무 코퍼레이션이라는 게임회사의 사장을 하고 있는 그는 단 쿠로토라는 이름을 가진 이였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당신의 재능은 무료로 쓰이기엔 아깝다는 것입니다.”
스테이크를 냠 입 안에 집어넣으며 쿠로토는 말했다. 하나야는 그를 의아한 듯 쳐다보고 있었다.
“내게 이런 재능이 있다면, 더 많은 사람을 위해 이 재능을 써야 한다는 생각을 해.”
하나야는 스테이크를 우물우물 씹다 삼킨다. 입 안에 남는 육즙의 향을 음미하다 보면 쿠로토의 말이 이어진다.
“그건 당신의 오만일 뿐입니다.”
쿠로토는 턱에 제 손을 괴었다.
“당신의 직업은 미지의 병을 찾아내는 것. 그러나 봉사활동이라는 건, 그 미지의 병을 찾아도 치료할 수 없는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니까. 거기에 하나야 선생님의 빛나는 재능을 쓴다 하여도, 그들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
하나야는 반박할 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
“차라리 모르는 게 나은 병이라는 것도 존재합니다.”
쿠로토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죽음의 이유를 모르는 게 행복일 지도 모른다는 것이지요.”
“꼭 그럴까? 나는 내가 왜 죽는지 알고 싶을 것 같은데.”
“그게 하나야 선생님이 강하다는 증거.”
쿠로토는 스테이크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 볼을 부풀리며 먹는 이는 이미 1인분을 추가로 주문한 상태다.
“죽음의 원인이 뭐가 중요할까. 내가 죽는다는 사실 이상의 무게를 갖지 못하는 것에, 인간은 보통 의미를 두려고 하지 않습니다. 특히나 나을 수 없다면 더욱.”
“……잘 모르겠어.”
그렇게 말하며 하나야는 남은 스테이크 조각 중 하나를 입 안에 넣었다. 아직 반이나 남아 있다. 쿠로토는 하나야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입에 안 맞습니까?”
“아니. 그런 건 아닌데. 그냥 잘 안 들어가네.”
거짓말은 아니다. 잘 안 들어가는 것도 사실이다.
“하나야 선생님이 무리할까봐 걱정입니다.”
“괜찮아. 죽지는 않아. 내가 죽을 수는 없어.”
하나야가 그렇게 대답하자 쿠로토는 만족한 듯 웃는다.
“다행이네요. 부디, 계속 그렇게 삶에 대한 의지를 가져 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사장 씨는 되게 이상한 걸 걱정하네.”
하나야가 살짝 뚱한 목소리로 말하자, 쿠로토는 말없이 스테이크를 입 안에 넣었다.
“하나야 선생님은 제가 걱정하지 않으면, 언제 죽을지 불안하니까.”
하나야는 파핫 웃어버린다. 스테이크를 입 안에 또 집어 넣으며 하나야는 쿠로토에 대해 생각했다. 도대체 어쩌다가 그와 친구가 되었는지는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5년 전부터 그와는 꾸준하게 친교를 맺어 왔다. 그는 게임 회사의 젊은 사장이자 개발자였다. 하나야는 게임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니었다. 간혹 슈팅 게임 몇 번을 한 것이 전부다. 그나마도 쿠로토가 알려준 것이다.
‘하나야 선생님은 슈팅 게임에 재능이 있으시네요.’
그 말 때문이었을까? 어느 순간부터 하나야는 슈팅 게임 정도는 열심히 하게 되었다. 그것이 하나야에게 또 다른 삶의 활력소가 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언제부터 만났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가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하나야에게는 이유 모를 충족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마키 선생님이 준교수 후보라고 하더군요.”
어느 새 그릇을 비운 쿠로토가 말했다. 하나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왜 하나야 선생님이 아니라?”
“병리 쪽 자리가 비니까 그렇겠지.”
“제가 알기로는 세이토의 병리학과에 자리가 비지는 않던데요.”
“…….”
입가에 묻은 소스를 고상하게 닦으며 쿠로토는 말을 이었다.
“저는 걱정이 됩니다.”
“또 뭐가?”
하나야도 결국 그릇을 다 비웠다.
“하나야 선생님은 그야말로 수정 같은 사람. 그런 당신이 세상 밖의 풍파에 깨지는 것이 말이지요.”
“그건 그 때의 일이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는 것인가요.”
쿠로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테이블 위에 있던 계산서를 드는 이를 하나야는 만류했다.
“또 네가 내려고? 그런 짓은 하지 마. 이번엔 내가 낸다.”
“아니오. 제가 뵙자고 했으니, 당연한 일입니다.”
“내가 돈을 못 버는 것도 아니고.”
하나야가 돈을 낼 틈도 없이 쿠로토는 빠르게 계산을 마무리해버린다. 식당 밖을 나온 두 남자는 근처의 공원으로 가, 비어 있는 벤치에 앉는다. 쿠로토는 의외로 사장이라는 신분 치고는 소탈한 이라 그다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하나야가 처음 그것에 놀랐을 때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좋아하는 사람과 같이 있는 데에, 장소가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그 소탈한 웃음이 하나야는 퍽 좋았다. 언제 만났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대체 뭐 때문에 만났더라. 아무리 생각해도 하나야와 쿠로토는 접점이 없었다. 같은 대학 출신도 아니며, 일을 하다 환자와 의사 관계로 만난 것도 아니다. 도저히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러나 떠올리려고 하면, 이상하게 생각의 회로가 꼬여버린다. 머릿속에 위화감만 가득 남은 채, 결국은 무엇 하나 떠오르지 않고 끝이 나 버린다. 이유를 여전히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옆에서, 자신을 좋아한다며 계속 친구로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는 이를 하나야가 차 낼 방법은 없었다.
“마키 선생님과는 너무 가까이 지내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벤치에 앉은 뒤 쿠로토는 말했다.
“왜?”
“마키 선생님은 좋은 분이지만, 좋은 사람을 곁에 둔다고 꼭 좋은 일이 생기는 것은 아니니까요.”
하나야는 여전히 의문이 가득한 눈이다.
“그 준교수 자리. 원래는 하나야 선생님의 것이었다는 소문이 돌고 있더군요.”
쿠로토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팔짱을 끼며 말했다.
“누가 그런 소리를 해.”
“글쎄요. 세이토 안에서는 공공연한 모양입니다만.”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아는 방법이 있지요.”
하나야의 미간이 구겨진다.
“하나야 선생님은 수정 같은 분이라, 주변의 더러움은 신경 쓰지 않고도 빛이 나는 분이지요. 하지만 그렇기에, 당신의 아름다움을 묻혀 가려는 존재들도 있기 마련입니다.”
“그게 마키라는 거냐.”
“꼭 그렇다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종류의 인간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을 뿐이니까.”
쿠로토는 어깨를 으쓱였다.
“하지만 하나야 선생님. 조만간 알게 될 겁니다. 그런 기생충들은 제 정체를 오래 숨기지를 못하고 곧 자기의 더러움을 드러내기 마련이거든요.”
“사장 씨.”
“후후.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하나야 선생님의 친구인데, 너무 심하게 말했던 모양입니다.”
쿠로토는 하나야의 어깨를 툭툭 쳤다. 아까의 마키와는 전혀 다른 동작이다. 가벼우면서도, 어쩐지 떼고 싶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 쿠로토와 인사를 하고 헤어진 하나야는, 이상스럽게도 오늘따라 쿠로토가 닿은 감각에서 벗어나지 못함을 느끼고 있었다.
이 상황 자체는 자주 있는 일이었다. 하나야는 이것을 스스로 ‘위화감’이라고 정의내리고 있었다. 위화감이라고 명명한 건, 그 상황 자체가 하나야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고, 억지로 만들어진 상황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떤 식이냐면, 쿠로토가 닿은 곳의 감각은 이상하게 사라지지 않는다거나, 쿠로토와 왜 만났는지를 떠올리려 하면 생각이 막힌다거나. 여하튼 하나야가 현 상황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하면 그렇게 된다. 그리고 곧 하나야는 생각을 포기하게 된다. 답이 안 나오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상하게 그 이상 생각을 하면안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던 탓이다. 그렇게 넘긴 ‘위화감’이 수어 번이다. 하나야는 이번에도 그 감각을 느낀다. 그리고 더욱 이상함을 느꼈다.
‘왜 이런 일이 생기지?’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지 않았다. 하나야는 혼자 남은 벤치에서 일어났다. 시간은 이미 11시가 다 되어 간다. 혼자 사는 집에 돌아가, 아무도 없는 방에서 잠을 청하면서도 하나야는 그 이상한 감각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그리고 하나야가 쿠로토의 말이 옳음을 알게 되는 건, 그 날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2
“네가 나에 대해서 어떻게 알고 있는지 나는 알아야겠다. 방사선의.”
팔짱을 끼며 자신을 노려보는 히이로를 보며, 하나야는 피식 웃었다.
“이젠 무면허의라고는 부르지 않는 모양이지?”
그리고 다음에 스스로 뱉는 말에 하나야는 놀랐다. 그 말에 놀란 건 히이로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멀쩡히 면허가 있는 의사를 왜 내가 무면허라고 불러야 하지?”
“…….”
대답할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요 일련의 흐름으로, 하나야가 이해하게 된 것이 있다. 어째서인지 하나야는 히이로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어쩐지 그와는 정을 쌓은 것 같다. 어디에서? 전혀 기억이 없었다. 하지만 히이로를 보면 이상하게 걱정이 되었다. 그가 잘 살아가고 있는지.
그러니까 왜?
“손님이 계셨군요.”
하나야가 이도 저도 못하는 새, 병실에는 새로운 사람이 들어왔다. 목소리부터 존재를 강하게 어필하는 단 쿠로토였다. 히이로는 쿠로토를 흘끔 보았다. 그리고 의문을 담은 목소리로 말했다.
“왜 겐무 코퍼레이션의 사장이 여기에 있지?”
“비즈니스라고 할까요?”
쿠로토는 웃으며 대답했다.
“하나야 선생님에게 볼일이 있어 왔을 뿐입니다. 당신에게 용건을 일일이 말해야 할 이유는 없군요.”
“…….”
히이로는 말을 잇지 않았다. 맞는 말인 탓이다.
“다음에 다시 오지, 방사선의.”
묘하게 위화감이 남는 단어를 남겨두고 히이로는 휙 돌아섰다. 병실을 성큼성큼 걷는 이의 뒷모습에는 자신감, 혹은 오만이 꽉 들러붙어 있었다. 문이 닫힌 병실에는 쿠로토의 모습만이 보였다. 쿠로토는 간이 의자에 앉아, 하나야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비즈니스니 어쩌니 했다만, 여기 올 시간은 있는 거냐? 신작이 곧 나온다고 하지 않았어?”
하나야의 물음에 쿠로토는 피식 웃을 뿐이다.
“개발은 사원들이 잘 해줄 테니까요. 사장인 저는 결재나 잘 해주면 되는 일입니다.”
“그렇다고 여기 막 오면 되냐. 좋아하는 일까지 버려두고.”
“저를 걱정해주시는 건가요?”
뜻밖의 되물음에 하나야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쿠로토는 하나야의 손을 다시 잡았다.
“환자만 걱정할 줄 아시는 하나야 선생님이 저를 걱정해주시다니. 이렇게 기쁜 일이 또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