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 역시 너라면 알아볼 줄 알았어. 잘 보라고. 여기에는 이 프로그램의 요소가 사용되었는데…….”
쿠로토의 이야기는 멈추지 않는다. 밝게 웃으면서 이야기를 하는 이는 누구보다 즐거워 보였다. 상대는 그 말을 가만히 듣고 있었다. 상대는 그가 하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있었다. 몰라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존재였기 때문에 그랬다. 이 세상에 이해해주는 이가 아무도 없는, 가여운 천재를 위해 만들어진 단 하나의 이해자.
쿠로토는 그 이해자와 세상을 바꾸었다. 재능만큼은 신에 필적하던 이는 끝내 그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세계를 파멸의 길로 이끌고 말았다. 그의 손끝이 만들어 낸 절망은 세상을 집어삼켰다. 이해자는 쿠로토가 그렇게 세상을 무너뜨리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의 입장에서는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쿠로토를 이해하는 것이 역할이었다. 그렇기에, 세상을 무너뜨리는 쿠로토의 감정 같은 것도 그에게는 너무나 잘 이해되는 것이었다.
“쿠로토.”
이해자는 그를 불렀다.
“정말로 이걸로 괜찮은 거냐?”
갑작스러운 상대의 질문에, 자기 이야기를 신나게 하던 쿠로토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는 눈을 몇 번 깜빡이다 상대를 보았다.
“왜 그런 질문을 하지?”
쿠로토는 의도를 잘 모르겠다는 듯 말한다.
“나는 네가 이러는 게 옳은지 잘 모르겠어.”
이해자는 솔직하게 말했다. 쿠로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말로 이게 네가 원하던 걸까. 나는 거기에 확신이 없어.”
“원하던 거다.”
쿠로토는 이해자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네가 거기에 의문을 가질 필요는 없어.”
“그런가.”
“내가 왜 너와 세계를 바꾸었는지 아나?”
이해자는 고개를 저었다. 쿠로토의 말이 이어졌다.
“나는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를 원했다. 하지만, 모두가 즐기기는커녕 어느 누구도 나의 엔터테인먼트의 진가를 알아주지 않았어. 인류는 나를 따라오지 못하고 있어. 시대는 퇴행하고 있고, 나는 계속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게임을 만들 수밖에 없었을 거다.”
쿠로토는 이해자를 바라보며 웃었다.
“그 때 너를 만난 거다. 누군가 내게 말했어. 친구가 필요하지 않냐고. 그렇다고 대답했더니 네가 왔어. 나는 알았지. 내게 필요했던 건 다른 것이 아니야. 나의 이해자. 나를 알아주는 어떤 사람이 필요했던 거다.”
이해자의 대답은 없었다.
“어차피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다면, 만족할 사람만 있으면 돼. 그게 아닌 사람들은 필요 없어.”
“…….”
정말로 그런 것일까. 이해자의 의문은 결국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
세계는 지금 또 다시 위기를 맞고 있었다.
아니, 실은 이미 끝이 났다. 어느 누구도 손쓸 틈 없이 세계의 인류는 거의 사라지고 말았다. 호죠 에무는 도시의 도로 한 가운데에 서 있었다. 평소라면 도로를 질주했을 자동차들도, 제 갈 길을 재촉했을 사람들도 모두 멈춰 있었다. 자신의 몸이 조각조각 사라지는 것을 보며, 사람들은 비명을 질렀다. 비통하기 짝이 없는 소리가 온 도시를 메운다. 그리고 소리는 점점 잦아진다. 그 자리에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점점 사람들이 사라졌다. 데이터 모양으로 조각조각난 사람들은 마치 가루처럼 흩어져 이윽고 보이지 않게 된다. 자그마한 입자들이 빛을 내며 공기 중으로 사라졌다. 참으로 아름다운 멸망이었다. 이것이 인류가 사라지는 장면이 아니었다면, 더없이 아름다운 풍경이었을 것임은 확실했다.
곧 에무의 주변에는 누구도 존재하지 않았다. 도로는 정지했고 사람들은 사라졌다. 아직은 전기가 끊어지지 않은 신호등만이 반짝일 뿐이었다. 그것이 초록불로 빛나도 지나가는 이 하나 없었다. 적막이 밀려왔다.
“왜 이렇게 된 거야.”
물어도 대답하는 이는 없다.
호죠 에무는 눈을 떴다. 오늘도 좋지 못한 아침이었다.
“허억…….”
악몽은 언제 꾸어도 익숙하지 않다. 에무는 숨을 몰아쉬었다. 긴장한 모양인지 온 몸에 식은땀이 잔뜩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 땀의 흔적이, 에무가 아직 살아있음을 의미하기도 했다. 에무는 한숨을 쉬었다. 몸은 진정되었지만, 머릿속에서 악몽의 생각은 쉬이 가시지 않았다. 그 악몽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당장의 현실이었다. 다만 꿈 쪽이 조금 더 극적으로 빨랐을 뿐이었다.
“선생님.”
에무는 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에 깜짝 놀라 그 쪽을 쳐다보았다. 에무를 부르는 목소리는 작은 공을 꼭 안고 있는 여자아이였다. 얼굴이 약간 더럽기는 했어도 아이는 건강한 편으로 보였다. 에무는 퍼뜩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가 있는 곳은 평소에 잠들던 의무실이 아닌, 지금은 아예 피난처로 쓰고 있는 CR의 회의실이었다. 그렇다면 아이가 여기에 있는 것도 이해는 됐다. 오히려 자신이 여기에 있는 게 이상한 일이었다.
“깨어나서 다행이에요.”
아이는 말했다.
“있지. 혹시 선생님 잠들었어?”
에무가 아이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 툭. 넘어졌어요. 안 일어났어요.”
“그랬구나.”
에무는 이전에 어땠는지 떠올렸다. 어쩐지 몸이 영 비실비실하더라니 몸살이라도 왔던 모양이다. 아픈 지도 모른 채, 에무는 사람들을 돌보고 있었다. 그 때 의식을 잃었던 것 같다고, 에무는 잠정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걱정했어?”
에무가 다시 묻자 아이는 또 고개를 끄덕였다.
“안 일어날까봐, 무서웠어요.”
“미안. 걱정하게 해서. 선생님은 이제 괜찮으니까.”
아이의 눈에는 걱정이 들어 있었다. 에무는 아이를 안심시키기 위해 활짝 웃었다. 아이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에무는 아이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어 주었다. 안심한 아이의 웃음을 보니 그 역시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바깥의 상황은 틀림없이 절망적이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자신을 필요로 하는 환자들은 있다. 환자들의 미소를 되찾아주는 그의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이다.
아이는 에무를 벗어나 다른 곳으로 졸졸졸 뛰어갔다. 에무는 그런 아이를 두고서 다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곳은 전뇌 구명 센터, CR의 본부이다. 원래는 CR에 소속된 의사들이 회의를 할 때에 쓰이던 공간이었지만, 문제의 사태 이후로 살아남은 소수의 사람들을 위한 피난처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었다. 필요하지 않은 의료기기들은 상당수 작동이 중지되었고, 사태가 시작될 당시 위생청에 요청하여 급하게 준비했던 피난용 물품들이 방에 가득 차 있었다. 사람마다 각각, 두 평은 될까 말까한 공간에 펼쳐놓은 모포 위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공간은 부족했지만 수가 없었다. 현재 CR의 바깥에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지금 현재는 CR만이 사람이 살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상황은 대단히 문제가 많았다. 아직은 시일이 많이 경과하지 않았기 때문에 비상식량 정도로 버틸 수 있지만 곧 식량난이 올 것이다. 그리고 발전소의 전기들이 고갈되면 분명히 전기 공급 문제도 생길 것이다. 그런 현실적인 문제 앞이었음에도, CR 바깥으로 나갈 수가 없으니 이래저래 곤란한 상황이 아닐 수가 없었다.
“소아과의. 눈을 떴나?”
에무에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 보니, 갈색 머리의 남성이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카가미 히이로, 에무의 선배이자 동료였다. 그 역시 현재 에무와 함께 남아 있는 환자들을 돌보고 있었다.
“히이로 씨.”
“의사가 환자보다 먼저 쓰러지면 어쩌자는 거냐.”
“죄송합니다…….”
에무는 난처하게 웃었다.
“이럴 때일수록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살 수 있는 거다.”
툴툴거리는 히이로의 눈에는 걱정이 가득하다. 에무는 그것을 보고 씁쓸하게 웃었다. 에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히이로는 흥. 하고 작게 혀를 찼다.
“그러고 보니 다른 사람들은요?”
에무가 주변을 돌아보며 물었다. 평소에는 근처에 있었을 익숙한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에무의 또 다른 분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