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련님이나 니코 녀석은 유독 나를 챙기려 들었다. 그럴 필요가 없다고 몇 번이나 말함에도 영 듣지를 않는다. 그것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다만 최근 들어 그 기류가 달라졌다. 그 타이밍을 차분히 생각해 보았다. 아무래도 얼마 전에 니코가 좋아한다고 말한 것 같은 그 때부터인 것 같다.
결과만 말하면, 나는 니코 녀석의 고백을 거절했다. 왜 그랬냐고 묻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다. 애초에 거절하는 게 당연한 것이다. 니코 녀석이 나를 좋아하는 건 알고 있었다. 그 녀석은 티가 많이 나니까 모르는 게 바보인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내가 그녀를 받아줘야 하는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 니코는 나를 좋아해야 할 이유가 없다. 그것은 일종의 동경하는 감정이다. 게이머로서 살아온 니코에게 제대로 된 남자가 아직 나타나지 않았고, 나는 니코와 꽤 친밀한 관계를 맺어 왔으니 착각을 해도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니코에게 절대로 좋은 남자가 되어줄 수 없다. 애초에 나이부터 말이 안 되는 일이다. 누구한테 도둑놈 소리를 들으려고.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고, 제일 큰 이유를 대자면 나에게 니코는 정말로 소중한 환자이기 때문이다. 의사와 환자의 관계에서 연애 관계로 발전하는 건 어디까지나 드라마나 꿈의 이야기이다. 현실에서는 절대 있어선 안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니코가 스스로를 사랑해줄 멋진 남자를 만나기를 바란다. 니코는 사랑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아이다. 내가 그녀를 소중하게 여기는 만큼 그녀가 행복하기를 바란다. 그 행복은 내가 줄 수 없는 것임을, 나는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녀에 대한 나의 감정은 이 정도인데. 어쨌든 중요한 건, 그 이후로 틀림없이 그녀의 태도는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 기류가 좋은 방향으로 흐르는 지 나쁜 방향인지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주변 상황이 그것을 파악하도록 두지 않았다. 게임병 환자를 돌보느라 바쁜 중, 최근 들어서 도련님의 방문 또한 잦아졌다. 아니, 수술이 중요하지 않나? 내가 그것을 물어도 도련님은 시간 내서 왔다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내 스케쥴 걱정은 안 해도 된다. 나를 뭘로 보는 거냐.” “아니, 그렇기는 하지만.”
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도련님이 자기 스케쥴 조정도 못하는 녀석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가 내게 시간을 쏟는 이유를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빈손으로 온 적이 없으니 더 그렇다. 영양제부터 시작하더니, 어느 날은 꽃을 들고 오기도 하고, 어느 날에는 최대한 달지 않은 케이크를 들고 오기도 한다. 물론 그 선물을 사용하는 건 대체로 니코가 된다. 필요 없어서는 아니다. 오히려 과분할 정도로 고맙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함부로 사용하지도 못하는 것이다. 케이크 같은 경우는 그러다가 유통기한이 지나가는 경우도 허다해서, 안 되겠다 싶었는지 니코 녀석이 알아서 다 먹고 있었다. 처음에는 나무랐지만.
“네가 안 먹어서 썩고 있잖아. 맛없으면 맛없다고 브레이브한테 똑바로 말하란 말이야.” “아니. 맛없지는 않은데.” “그럼 왜 안 먹어.”
차마 아까워서 못 먹는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그 이후로 나는 니코를 말릴 수가 없었다. 그런 식이다.
아무튼 이 녀석들이 다 이상한 느낌이 들고 있다. 틀림없이 무언가 변화가 생기고 있다. 하지만 나는 대체 뭐가 어떻게 된 일인지 알 턱이 없었다.
그런 중 어느 날. 니코 녀석이 놀이동산을 가자고 했다.
“그럴 시간이 어디 있냐?” “없으면 만들면 되지.”
니코는 뻔뻔하게도 그렇게 말했다. 나는 기가 차서 혀를 한 번 찼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환자들을 두고 가란 말이냐.” “하루 정도는 쉬어도 문제없잖아. 백신도 다 맞았고.” “혹시 몰라.” “에무나 다른 녀석들한테 하루만 맡겨.” “말이 되는 소리를 해.”
갈 생각이 없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음에도 니코는 물러날 줄을 몰랐다. 오히려 그녀는 혀를 비죽 내밀고는 이런 소리나 하는 것이다.
“흥. 그렇게 말할 줄 알고 하루 휴업이라고 미리 공지 해 놨지롱.” “뭐?”
나는 기가 찼다.
“누구 마음대로 그런 짓을 하라고 했냐?” “하지만, 그렇게 안 하면 타이가가 쉬겠어? 네 기분전환을 위해서니까 얌전하게 따르라고.” “필요 없다고…….”
대체 왜 얘는 내 말을 안 들을까? 그렇게까지 마음 쓸 필요 없다고 매번 말을 하는데.
“필요 없다고 말하려면, 네 눈 밑의 다크써클이나 어떻게 하시지!”
니코는 내 눈을 찌를 듯 삿대질했다. 윽. 그렇게 말하니 할 말이 없었다. 요즘 들어 피곤한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럼 날 그냥 내버려 두라고. 놀이공원 가면 더 피곤하다는 거 몰라?” “안 돼. 거기라도 안 가면 하루 종일 주식이나 볼 거 아냐. 지금 타이가한테 필요한 건 광합성이라고. 따뜻한 햇빛을 보며 니코님과 즐거운 추억을 쌓는 것이야말로 기분 전환에 제일 도움이 된다 이 말씀이야.” “누가 니코님이냐…….” “특별 게스트도 있으니 기대하라고.” “하아?”
특별 게스트? 이건 또 무슨 말이야.
“네가 안 간다고 뺄까봐 특별히 부른 거니까 그런 줄 알아.” “그게 무슨 의미야.”
나는 한숨을 쉬었지만, 니코는 그 특별 게스트에 대해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멍하니 나날들을 보내고 나니 어느덧 놀이공원에 가기로 한 날이 되었다. 그 날의 나는 피곤해서, 일어나는 것도 고역이었다. 니코가 한참 나를 깨우고 나서야 겨우겨우 나설 수 있었던 나이니 특별 게스트가 누구인지 그런 건 이미 홀랑 잊어버린 뒤였다.
그랬는데.
“도련님?”
왜 네가 여기 있는 거냐. 그것도 완전 정장 차림으로.
“이게 데이트 차림이냐?”
그걸 보고 니코가 나무라는 장면까지 오고 나니, 나는 이 상황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가 눈을 깜빡이며 둘을 번갈아 바라보자, 니코가 곧 내 의도를 이해했는지 대답해 주었다.
“특별 게스트야. 브레이브가.” “도련님이?”
왜 그렇게 되는 거냐.
“제정신이냐. 바쁜 녀석을 이런 데에 왜 불러 와?” “내가 오겠다고 했다.”
내가 니코를 나무라는 것을 막는 건 도련님이었다.
“다만 이럴 때 어떤 옷을 입는지 몰라서…….”
도련님은 쑥스러운지 고개를 슬쩍 돌리더니 작게 말했다.
“이런 데를 올 일이 없었다.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군.”
도련님이 약간 가라앉아 보이는 건 내 기분 탓일까. 그 때, 근처에 있던 롤러코스터 쪽에서 비명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나는 보았다. 도련님이 그 소리를 듣고 움찔 놀라는 것을. 어이, 설마. 나는 불안함을 담아 니코를 보았다. 니코는 정말로, 즐거워 보였다.
망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악!”
니코가 나와 도련님을 데리고 간 첫 번째 놀이기구는 예상대로라고 해야 할까. 귀신의 집이었다. 저 자식, 내가 귀신 무서워하는 거 알고 일부러 데려간 것이 분명하다. 내 꼴사나운 모습을 보며 그녀는 깔깔 웃고 있었다. 분하다. 하지만 무서운 걸 어떻게 하냐고! 문득 내 어깨가 무겁게 느껴졌다. 설마 귀신은 아니겠지? 휙 돌아보니 도련님이었다. 깜짝 놀랐잖아. 겨우 한숨을 돌리며 바라보니, 도련님은 나를 붙들고서 덜덜 떨고 있었다. 굉장히 이상한 기분이었다. 물론 그 다음에 곧바로 귀신이 튀어나오는 바람에 서로 끌어안기까지 해버렸지만, 그건 별개의 일이다.
브레이브가 무서워하는 건 귀신뿐만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롤러코스터도 약한 모양이었다. 결국 여기에서 놀이공원을 즐길 만한 녀석은 니코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다. 니코 녀석한테 완전히 휘말렸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이건 휴일이 아니잖아. 날 괴롭히러 온 거냐, 사이바 니코! 니코와 같이 탄 롤러코스터에서 내린 브레이브는 정말로 울 것 같은 눈이었다. 그는 아마 이 끔찍한 경험이 처음이었을 테니까 더욱.
“야, 재미있었다.”
니코는 후련한 듯 걷고 있었다. 그래. 너는 재미있었겠지. 하아. 너라도 재미있어서 다행인가.
“놀이공원 한 번도 안 왔다더니 진짜였을 줄이야.” “그럴 이유가 없었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그가 말했다.
“헐. 진짜 공부만 한 거야?” “의사가 되는 게 꿈이었으니까.” “헤에. 그건 대단하네. 요즘은 나도 의사가 되고 싶단 생각을 하는데.” “의외로 괜찮을 지도 모르겠군.”
브레이브의 반응에 니코는 놀란 모양이다.
“안 어울린다고 할 줄 알았어.” “의사가 되려고 하는 게 어울리는 것의 문제인가?”
도련님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맞는 말이지. 아무렴.
“키리야 녀석은 비웃더라고.”
니코는 그 반응이 짜증났던 모양이다.
“감찰의는 원래 외관에 휩쓸리는 경향이 있다.” “지는 완전 홍콩 마피아처럼 생긴 주제에.”
혀를 비죽 내미는 니코는 갑자기 나를 돌아본다.
“타이가! 나 저 츄러스 먹고 싶어.” “네가 사먹어.” “브레이브도 먹고 싶다는데. 그렇지?”
니코는 도련님의 뒤에서 그의 등을 슬쩍 밀며 말했다. 도련님은 당황한 눈치였다. 그야 그렇겠지. 나조차도 아직 니코의 그것엔 적응을 못 했으니까.
“내, 내가 언제 그랬나.” “어서 먹고 싶다고 말해. 단 건데?” “단 거라고 다 먹진 않는다.” “어허. 일단 먹어 봐. 먹으면 안다고.” “너야말로 어허다. 강요를 하면 쓰냐.”
브레이브를 종용하는 니코에게 나는 결국 한 마디 던졌다. 니코는 ‘쳇.’ 소리를 내며 다시 내 쪽으로 걸어왔다. 나는 한숨을 쉰 뒤, 근처의 츄러스 가게로 가서 셋이 먹을 츄러스를 샀다. 설탕이 듬뿍 묻은 그것은 그냥 보아도 달아 보였다. 니코는 그것을 아주 맛있게 먹었다. 브레이브는 처음에는 ‘뭐 이런 게 있나.’라는 시선으로 보더니, 먹으니 마음에 들었는지 계속 우물우물 씹고 있었다. 역시 너는 그냥 단 걸 좋아하는 게 아닐까. 그런 둘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웃음이 났다. 대단히 흐뭇해지는 모습이다. 그러다 문득 생각한다. 저 둘을 보고 있으니 꽤 어울리지 않나, 하고.
한 번 그렇게 보니, 계속 그렇게 보였다. 관람차에서 두 사람이 투닥거릴 때에도. 니코가 롤러코스터 타자고 하는 것을 도련님이 한사코 거절할 때에도. 이들이 하는 양은 꽤, 잘 어울리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