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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무키리] メリクリ
    가면라이더/Ex-Aid 2017. 12. 11. 00:13


    12월 10일 히어로 온리전에서 내놓은 에무키리 배포본입니다.

    부스 찾아와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즐거웠습니다.


    제목은 메리크리라고 읽습니다. 네. 보아의 그 곡 모티브입니다.

    8월의 여름에 이 노래를 들으며 12월엔 반드시 이 소재를 쓰고 싶다고 결심을 했네요.


    곧 크리스마스라서, 꼭 이 때에 내고 싶었던 글입니다.

    내게 되어 기쁩니다.



    --------------------




     그 날에는 비가 왔다. 아니, 눈이었던가? 기억을 돌이켜 보니 둘 다 섞여서 어느 쪽이 정답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때에는 비가 왔다. 비가 어마어마하게 쏟아지고 있었다. 새하얀 그림자는 빗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남겨진 그는 마치 빗속에 잠길 듯,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 자리에 도착한 모두가 그를 향해 우르르 달려갔다. 그는 사라지고 있었다. 그 모습에 놀라는 이들을 보며, 너무 놀았던 것 같다고 그는 말했다. 


     “에무. 세계는……, 인류의 운명은 맡길게.”


     그는 자신의 게이머 드라이버와 노란 가샤트를 누군가에게 주었다. 주어진 물건을 받은 이는 울고 있었다. 빗속이라 그가 흘리는 것이 비인지 눈물인지는 알 길이 없었지만.


     “잊지 마. 네가 웃고 있는 한 너는 너야.”


     점점 희미해지는 모습 속에서 그는 말했다. 어느 누구도 잊지 못하도록.


     “네 운명은……. 에무, 네가 바꿔!”


     Game Over. 모두에게는 잔혹하게만 들렸을 그 효과음 끝에 그는 새하얗게 흩어졌다. 형체를 잃고, 새하얀 데이터들의 잔해는 잠깐의 시간조차 허용치 않고 공기 중에 흩어졌다. 그 시간에 대해서는 참혹하다는 한 단어로 표현이 가능할 것이다. 


     그것은 모든 일이 끝난 지금조차도 기억에 남아 있다. 아마도 죽기 전까지는 계속 잊지 못할, 지독하게도 낫지 않을 마음의 상처일 것이다. 호죠 에무는 아주 가끔, 비가 쏟아지는 날에 그 날을 떠올린다. 지금 시점에서 그 일은 이미 지난 일로 치부할 수 있었다. 그 때 새하얗게 사라졌던 그 사람도 지금은 그의 곁에 돌아와 있었다. 그 모습이 온전한 인간의 형태, 에무가 알던 그대로의 모습이라고 하기는 어려울 지라도 에무는 그것이 그라고 확신한다. 그는 에무가 얻었던 동료였다. 계속 그렇게 있고 싶었기에, 있을 수 없게 되었을 때 한동안은 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기억 속에 지독하게도 남았던 그 날. 2016년의 크리스마스. 에무는 그 때 한동안 그 날의 악몽을 꾸기도 했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 너무 많이 생각해서 언제 그게 떠오르지 않았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 긴 시간은 끝이 났다. 그 날을, 그 상처를 가슴에 품으며 살기로 했고, 그의 뜻대로 훌륭하게, 맡겨준 대로 해내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였을까, 아니면 운명의 장난이었던 것일까. 그는 다시 돌아왔다. 버그스터의 몸이 되어서. 그 후로도 시간이 지났다. 다시 돌아온 그는 처음에는 에무를 미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것이 그가 시작한 또 하나의 거짓임은 금방 드러났다. 그는 이후로 자연스럽게 CR에 합류해, 에무와 마지막까지 함께 싸웠다. 


     그 후로도 또 시간은 흘렀다. 그리고 곧 그 때가 온다.

     2017년의 크리스마스.

     쿠죠 키리야가 죽은 지, 딱 1년이 되는 날이었다.







     “크리스마스에 시간 있어?”


     12월의 어느 날, 업무 마무리로 정신이 없는 에무에게 들린 말이었다. 에무는 흠칫 놀라며, 그 말을 했을 이를 바라보았다. 에무의 옆에서 건들거리며 대답을 기다리고 있던 쿠죠 키리야는 에무가 생각보다 크게 놀라는 것을 보며 씨익 웃었다.


     “그렇게 놀랄 일이야?”

     “놀랄 일이죠! 키리야 씨가 그런 소리 한 적이 없잖아요.”

     “그랬나?”


     키리야는 오른쪽 입꼬리를 올리며 머쓱하게 웃었다.


     “그리고, 시간이 있을지 없을지 몰라요. 아시잖아요.”


     에무가 한숨을 푹푹 쉬며 말했다. 


     “맞다. 그랬지.”


     한동안 병원 일을 안 한 탓에 감이 떨어진 모양이다. 키리야는 더욱 머쓱해졌다. 대학병원은 휴일에도 쉬지 않음은 물론이며, 로테이션 제이므로 에무가 그 날 비울 수 있는 시간에는 제한이 있었던 것이다. 


     “근무표 나오기는 했으니 봐야 할 텐데, 아마 그 날엔 오전 근무일 것 같아요. 정확히 보면 말씀드릴게요.”

     “에, 정말?”


     그 뒤로 이어지는 대답에 키리야는 저도 모르게 놀란 티를 내고 말았다. 


     “다른 약속은 없어?”

     “CR 기념 파티는 크리스마스 이브 때 모이기로 했잖아요.”

     “아니, 그거 말고. 당일에 말이야.”

     “당일에요?”


     키리야의 말을 들은 에무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역시 그 날은 안 되려나. 라고 내심 포기하고 있던 키리야의 귀에 에무의 목소리가 들렸다.


     “없어요. 딱히.”

     “에엣?”

     “왜 놀라시는 거예요?”


     이번엔 에무가 이상하다는 듯 그를 보며 말했다.


     “마치 제가 약속이 있길 바라신 것 같은데.”

     “아, 아니야. 그런 거.”


     에무는 수상하다는 듯 키리야를 바라보았다. 키리야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웃음으로 얼버무리려 했다.


     “저한테 약속이 있을 거라 생각하셨으면 왜 물어본 거예요?”

     “혹시나 하고……. 파라드랑 게임 약속이라도 잡았을지 모르고.”

     “없어요. 진짜로. 다음날이 휴일이라 파라드랑은 그 때 게임하기로 했어요.”

     “그래? 그렇구나…….”

     “설마 아껴 쓰라고 부른 거 아니죠?”


     되도 않은 말은 받을 생각이 없다는 듯 에무가 딱 잘라 말했다. 키리야는 다시 고개를 여러 번 저었다.


     “그런 거 아냐. 그냥 시간 있으면 나한테 좀 내달라고.”

     “그걸 뭐 그리 고민하면서 말해요. 좋아요. 시간 정해지면 알려드릴게요.”


     굉장히 흔쾌히 수락한 에무를 보며 키리야 쪽이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다. 먼저 말을 건 것은 자신이었음에도. 다시 남은 업무를 처리하느라 분주한 에무를 보며, 키리야는 그를 방해하지 않으려고 일부러 멀리 떨어져 앉았다. 


     묘하게도 그는 바쁜 에무를 보면 안심이 되었다. 그가 살아 있는 것을, 지금도 열심히 환자를 위해 싸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일까. 다시는 이 모습을 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키리야는 자신이 이 모습을 다시 보지 못할 날을 생각한다. 버그스터로 살아 있는 몸이지만, 인간으로서 살아 있는가 하면 그렇다고 하기는 조금 어렵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른다. 이미 데이터화한 인간을 구할 수 있는 신약이 발명되어, 운이 좋게 그 역시 인간의 몸으로 돌아갈 수도 있고 아니면 아예 데이터 삭제로 인한 죽음을 맞을 수도 있다. 아니, 사실은 모든 일이 끝나면 가장 먼저 죽음을 맞이하려고 키리야는 생각했다. 그러지 못한 것은 그는 희생자이며, 반드시 치료하겠다고 말한 에무 덕분이었다. 키리야가 생각하기에 자신은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를 살리겠다고 말해준 건 그가 가장 좋아한 이였다.


     키리야는 거기에 조금이라도 보답하고 싶었다. 왜 하필 크리스마스였나. 그 생각은 의미가 없었다. 크리스마스가 아니면 안 되는 것이었다. 두 사람 모두.


     에무는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저녁쯤에 시간이 될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전날에는 두 사람 모두 CR의 크리스마스 겸 연말 기념 파티에 있었다. 그 때에는 정말로 왁자지껄했다. 누구 하나 빠지지 않았던, 정말로 기념적인 크리스마스 파티. 멀찍이 서 있던 하나야 타이가마저도 나중에는 가장 가운데에 앉아서 니코가 시끄럽다는 둥의 푸념도 하고 있었다. 같은 싸움을 했던 동지, 혹은 적은 어찌 되었든 하나의 추억을 이브에 만들었다.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날씨가 추웠다. 눈이 올 것 같다는 말이 있었다. 오늘은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될지도 모른다느니 어쩌느니, 날씨를 담당하는 아나운서나 TV 방송 같은 곳에서는 하루 종일 그 이야기로 북적북적했다. 이전까지는 그저 공휴일에 지나지 않았던 크리스마스였다. 이름이 붙는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간단히 들뜨던 사람들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차피 키리야는 공휴일이라고 해서 일을 안 해도 되는 입장도 아니었으니, 크리스마스라고 해도 그 날을  제대로 보낸 기억도 없었다. 작년과 올해가 유별난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올해 크리스마스는 유독 길게 느껴졌다. 에무가 오기를 기다릴 동안, 키리야가 CR에서 멍하니 있었던 탓일지 모른다. 막상 당일이 되니 키리야는 그를 기다릴 동안 무엇 하나 손에 잡히지 않았다. 집중이 안 돼 미칠 지경이라, 하다하다 결국 머리를 쥐어 싸고 말았다.


     “뭐가 잘 안 되는 모양이지, 쿠죠 키리야?”


     게임기 속의 신이 말을 걸었다.


     “너도 심심하냐?”


     화면 속 쿠로토를 보며 키리야는 애매한 웃음을 지었다.


     “심심하다니. 내 머릿속은 언제나 크리에이티브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지금처럼 멍이나 때리는 너와는 다르게 말이지!”


     크게 웃는 쿠로토를 키리야는 무시했다. 의미 없이 노트북을 몇 번 건드리다, 키리야는 입을 열었다.


     “크리스마스인가…….”

     “크리스마스가 뭐 어쨌단 거냐?”


     쿠로토가 물었다.


     “어쩌긴? 오늘이잖아.”

     “아, 그랬나.”

     “어제 기념으로 잘만 놀아놓고.”

     “별로 의미는 없어서.”


     쿠로토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솔직히 네가 의미 없다고 말하면 안 되는 거 아니냐?”

     “왜 그렇지?”


     기가 찬 키리야는 쿠로토를 노려보았지만, 쿠로토는 태연한 얼굴이었다.


     “작년에 네 녀석이 나를…….”

     “아. 그 때가 크리스마스였나.”

     “전혀 몰랐냐! 멀쩡한 인간을 죽여 놓고는!”


     어느 정도 예상한 반응이었지만 쿠로토는 무덤덤했다. 딱히 그것을 잘못한 일이라고도 생각지 않는 것이다.


     “죽인 적은 없다. 게임 오버를 시켰을 뿐이지.”

     “그거나 그거나.”

     “그거나 그거나가 아니다. 뭘 모르는 군. 네가 그 때 내 손에 게임오버를 당한 게 아니라면 어떻게 여기에 있지?”

     “네가 게임 오버를 안 시켰다면, 난 이런 몸이 아니라 인간이었을 거네요.”

     “하지만 내 덕분에 넌 안 죽는 몸이 되었지 않나?”


     의문을 제기하는 쿠로토의 얼굴은 태연했다. 그런 그에게 키리야는 더 따지기를 포기했다. 어쨌든 오늘의 의미를 다시 떠올리게 한 것으로 충분하다. 반성도 안 하는 이에게 백날 말을 해봐야 이해도 하지 못한다.


     쿠로토와 의미 없는 말싸움을 하는 동안에도 시간은 지나갔다. 점점 저녁에 가까워져 다행이라고 생각하던 키리야였지만, 에무가 말한 시간이 지나도 에무는 CR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아주 약간, 초조해졌다. 에무가 늦는 이유는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일이 제대로 안 끝난 것이다. 의사에 레지던트, 대학병원이면 자주 있는 일이기는 했다. 알고 있었다. 그러나 불안한 것은 수가 없다.


     결국 에무가 모습을 드러낸 건 약속했던 시간보다 두 시간은 넘은 뒤였다.


     “죄송해요, 키리야 씨!”


     9시가 다 되어가는 중, 에무가 소리치며 CR에 들어왔다. 너무 급하게 들어온 탓에 무언가에 걸려 넘어지려는 에무를, 키리야는 가까스로 붙잡았다. 


     “괜찮아?”

     “네. 죄송해요. 너무 늦었죠?”


     자세를 바로 잡으며 에무가 말했다. 키리야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늦을 수도 있지, 뭐.”

     “갑자기 급한 환자가 생겨가지고. 사람이 부족해서 투입됐어요. 빨리 끝낸다고 끝낸 건데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요.”


     에무가 시무룩한 얼굴로 말했다. 


     “뭐 어때. 잠깐이라도 보고 가면 되지. 어차피 내일 휴일이라면서.”

     “그러면 근처에 있는 일루미네이션이라도 보러 가요. 광장에 되게 크게 해 놨더라고요.”


     키리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에무는 나갈 준비를 했다. 하얀 가운은 벗고 두터운 더플코트를 입고 마이티 그림이 끝에 살짝 그려진 머플러를 둘렀다. 에무가 그러는 동안에도 키리야는 딱히 다른 옷을 입거나 하지 않아서, 준비를 마친 에무가 키리야를 의아한 듯 쳐다보았다.


     “그렇게 나가면 춥지 않아요?”

     “이런 몸이라서.”


     키리야는 어깨를 으쓱였다.


     “제가 추워 보이니까 이거라도 두르고 있어요.”

     

     그러면서 에무는 자기가 둘렀던 마이티 머플러를 풀어 키리야의 목에 둘렀다. “훨씬 안 추워 보인다.” 하며 뿌듯해하는 에무를 보며, 키리야는 피식 웃어버린다. 어차피 이 행위가 키리야에게 의미가 있지는 않다. 이것을 두른다고 하여 목이 특별히 더 따뜻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자기가 추워보인다는 이유로 에무가 둘러준 것은, 이상하게도 아주 약간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물론 착각일 테지만.


     키리야는 에무와 함께 CR의 밖을 나갔다. 이미 하늘은 어두웠다. 도시의 불빛이 가득한 거리를, 두 사람은 느긋하게 걸었다. 에무가 말한 광장은 세이토 대학 부속 병원에서 그다지 먼 거리는 아니었다. 병원에서 광장까지 짧은 거리, 복작임 속의 침묵으로 이어진 길. 이윽고 두 사람의 시야에 광장의 모습이 들어왔다. 에무의 말대로, 광장 한가운데에 크리스마스를 기념한 거대한 일루미네이션이 있었다. 크리스마스 트리 모양으로 만들어진 그것은, 색색의 전구로 위부터 아래까지 메워 화려한 빛을 자랑하고 있었다. 가장 꼭대기에는 별 모양의 전구, 그리고 그 아래에 둘러싼 색색의 빛. 사람들의 눈을 끌어 모으기에는 충분해 보였다. 그 때문인지 많은 사람들이 그 앞에 서서 사진을 찍거나 하고 있었다. 신기해하는 얼굴들. 웃는 얼굴들. 거기에 있는 사람들은 어느 누구도 슬퍼하거나 괴로워하지 않았다. 그 광경이 주는 잠깐의 행복에 사로잡혀, 일시적이나마 행복한 꿈을 꾸고 있는 것일 테다.


     “사진 찍을래요, 키리야 씨?”


     에무가 핸드폰을 들고 물었다.


     “나는 괜찮아. 에무를 찍어줄까?”


     키리야가 말하자 에무는 고개를 저었다.


     “같이 찍어요.”


     핸드폰을 위로 활짝 올린 에무는, 화면 안에 일루미네이션과 두 사람이 보이도록 위치를 맞추었다. 화면 안에 활짝 웃는 에무의 모습이 보였다. 키리야는 거기 비치는 자신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 몸으로 살아가게 된 뒤에도, 마음 어디에선가는 불가능한 일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웃어요, 키리야 씨.”


     에무가 말했다. 키리야는 한껏 웃어보았다. 다만 화면 안에 비치는 건 역시나 홍콩 마피아처럼 생긴 어색한 얼굴이어서, 찰칵 소리가 난 뒤 사진을 본 에무는 결국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사진 잘 못 찍죠, 키리야 씨?”


     웃으면서 에무는 말했다.


     “안 익숙해서.”


     키리야는 머쓱하게 웃었다.


     “저도 익숙하진 않아요.”

     “그런 것 치고 괜찮게 나왔는데?”


     막상 사진을 보면 일루미네이션의 빛이 강해서, 그렇게 잘 나온 사진이라고 하기는 어려웠다. 그럼에도 손바닥 안에 담긴 추억은 지금 이 자리에 서로가 살아 있음을 실감하게 한다. 


     오늘은 크리스마스. 2017년의 크리스마스.

     2016년을 뛰어넘어, 그들은 지금 이 자리에 서 있었다.


     두 사람은 사진을 찍은 뒤, 근처에 마련된 벤치에 앉았다. 그들이 앉아 있는 사이에도 꽤 많은 사람들이 지나갔다. 시야 속에 들어왔다 사라지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눈에 담는다. 그 속에 있는 키리야는 자신이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존재라는 생각 자체를 잊게 된다.


     “원래도 오늘은 비워 두려고 했어요.”


     문득 에무가 말했다. 키리야는 의아한 듯 에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CR 사람들이랑 보내는 거면 어쩔 수 없었을 텐데, 그게 아니니까요.”

     “왜? 에무랑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있었을 텐데.”

     “네. 있었죠.”


     그렇게 대답하며 에무는 키리야를 보았다.


     “여기에도 있었고요.”

     “…….”


     사실이라 부정은 할 수 없었다.


     “실은 키리야 씨와 반드시 보내고 싶었어요. 오늘은. 그래서 먼저 물어봐 줬을 때, 되게 기뻤어요.”

     “그랬구나.”

     “키리야 씨도 잊지 않았구나. 그 생각이 먼저 들었어요.”

     “…….”


     키리야의 마음이 무거워졌다. 두 사람은 지금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작년, 2016년의 크리스마스를.


     “네게 맡긴 건 잘한 일이라고 지금도 생각해.”


     키리야는 어렵게 입을 열어 말했다.


     “이렇게 훌륭하게 해내 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지만.”

     “…….”


     에무의 얼굴에서 조금씩 웃음기가 사라졌다.


     “키리야 씨가 이렇게 돌아온 뒤에도, 모든 일이 끝난 뒤에도, 가끔씩 그 때 꿈을 꿔요. 많이 극복했다고 생각했는데도 그렇더라고요. 키리야 씨가 돌아와도 바로 사라지지 않았어요.”

     “…….”

     “그 때는 제게 아직도 꽤 큰 충격이라는 거겠죠.”


     벤치에 놓여 있던, 에무의 차가운 손이 떨리고 있었다. 키리야의 눈에는 그것이 추워서인지 다른 이유에서인지 보이지 않았다. 키리야는 그 손을 잡았다.


     “여기 있어.”


     그렇게 말하는 키리야의 눈은 에무 대신 일루미네이션을 보고 있었다.


     “사라지지 않을 거죠?”


     에무가 물었다. 키리야는 대답할 수 없었다. 차마 그렇지 않다고, 당당하게 에무에게 말할 수 없었다.


     “떠나지 않을 거라고 대답해 주세요.”


     에무의 목소리는 낮게 떨렸다.


     “계속 제 곁에 있겠다고. 동료로서 함께 싸워주겠다고.” 


     침묵.


     “다시는 저한테 전부 맡기지 않겠다고.”


     침묵. 무엇 하나 키리야가 똑바로 대답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렇겠죠.”


     에무는 체념한 듯 말했다.


     “키리야 씨가 그런 사람인 건 알고 있어요. 하지만 저는 역시 키리야 씨가 살아 줬으면 좋겠어요. 끝의 끝까지, 삶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키리야 역시 알고 있었다. 에무는 그렇게 말할 사람이라는 것을. 그리고 실제로 에무 자신도 그렇게 할 것을. 그렇기에 함부로 대답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자신조차도 확신할 수 없는 일을 에무에게 거짓으로라도 대답할 자신이 없었다. 이미 약속했다. 에무에게는 거짓말을 하지 않기로. 아니, 거짓말을 하더라도 에무 쪽에서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그럴 때의 에무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키리야는 두려워진다. 하지만 키리야는 이럴 때의 자신이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는 알고 있었다. 에무에게 작년과 같은 기억을 더 이상은 주지 않아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오히려 그렇기에 계속 곁에 있겠다는 확언을 키리야는 할 수가 없었다. 분명 자신의 선택에 따라 에무는 또. 


     “에무.”


     키리야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난 그걸 약속할 수가 없어.”

     “알아요.”

     “살아가려고 노력할 거야. 허투루 죽을 생각은 없어. 하지만 죽지 않고 계속 네 곁에 있을 거라는 보장이 내게는 없어.”

     “상관없어요.”


     키리야의 손 위에 에무의 손이 포개졌다. 이상하다. 따뜻하다.


     “그럼에도 저는 키리야 씨가 필요해요.”

     “…….”


     키리야의 눈이 커졌다. 반칙이잖아. 그런 말을 해버리면. 


     “지금도 키리야 씨가 곁에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알고 보니 이게 꿈이면 어쩌죠? 눈을 뜨면 다시 키리야 씨는 없어져 있고 그러면. 저는.”

     “그렇지 않을 거야.”


     마침내 키리야는 에무를 똑바로 볼 수 있었다. 생각 외로 마주 본 에무는 슬퍼 보이는 표정이 아니었다. 오히려 엉망진창인 것은 키리야의 얼굴이었다. 에무는 그를 보고 웃었다.


     “이제야 돌아보시네요.”

     “에무, 나는…….”

     “키리야 씨가 떠나려는 때는 분명 있겠죠.”


     에무는 일루미네이션의 빛에 비치어 더욱 반짝이고 있었다.


     “그 때엔 혼자 떠나지 마세요. 그런 생각이라면 절대로 안 놔줄 겁니다.”


     키리야는 그조차 바로 아니라고 말할 수 없었다. 에무는 한숨을 쉬고 말을 이어갔다.


     “이 기회에 키리야 씨는 알아야 해요. 당신 목숨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주변에 있다는 걸.”

     “하지만 에무는…….”


     모든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겠어? 라고 말하려다 키리야는 입을 다물었다. 딱히 그의 책을 잡으려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그는 호죠 에무라는 인간에게 모든 것을 맡길 수 있었다. 그가 영원히 반짝임을 잃지 않기를 바라면서. 그러니까 그가 키리야에게 살라고 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있는 힘껏, 소중한 목숨을 아껴 가며 살아가라고 에무가 말할 수 있는 건, 에무가 스스로를 포함한 모든 사람이 그러길 바라기 때문인 것이다. 


     “키리야 씨는 제게 처음으로 생긴 동료예요.”


     에무는 자신이 둘러싸게 된 키리야의 손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소중한 사람이 함부로 목숨을 버리는 걸 바라는 사람이 어디에 있어요.”


     에무가 차라리 다른 사람과 자신을 마찬가지로 대했으면 좋겠다고, 부활한 뒤의 키리야는 늘 생각해 왔다. 자신이 그에게 덜 소중하다면, 혹시라도 자신이 다시 죽음을 맞이하는 날 조금이라도 덜 슬퍼하게 될 테니까. 지금 이 순간조차도 키리야는 그것을 바라고 있었다. 소중한 동료라는 말은 너무나 기뻤다. 하지만 소중한 존재라는 건 잃고 난 뒤에 커다란 상처를 남기는 법이다. 키리야 자신도 그것을 잘 알고 있으며 에무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럼에도 에무는 또 자신에게 곁에 있어 달라고 말하고 있었다. 키리야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곁에 있어주겠다는 말도 할 수 없었고, 자신을 소중히 여기지 말라는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무엇 하나 정하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 검은 하늘에서 새하얀 점들이 떨어지고 있었다. 하얀 눈송이는 바람에 흩날려, 에무가 꽉 잡고 있던 손 위로 툭 떨어졌다. 물방울을 남기고 사라진 그것을 에무는 보았다.


     “눈이야. 에무.”


     키리야는 웃으며 말했다.


     “네. 눈이네요.”


     에무가 대답했다. 두 사람은 동시에 하늘로 시선을 올렸다. 아까까지는 아무 반응도 없던 하늘이, 새하얀 눈으로 가득 메워졌다. 주변 거리에서는 눈이라고 신나 하는 목소리들이 들렸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라고 좋아하는 목소리들. 묘하게 들뜬 공기 속 차디찬 눈송이. 방울방울 손등 위로 떨어지는 눈송이, 그 앞에 보이는 호죠 에무의 시커먼 눈. 키리야에게는 이것이 꿈만 같았다. 에무만 그런 것이 아닐 것이다. 키리야 자신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 때엔 비가 왔는데.”


     에무가 씁쓸하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키리야의 가슴은 쿵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아직도 그는 작년을 떠올린다고 했다. 그것은 키리야 역시 마찬가지였다. 에무는 자신이 바라는 것을 훌륭하게 했고, 많은 성장을 했다. 그럼에도 잊지 못하는 과거였다. 키리야 자신에게 있던 트라우마와 비슷하다. 그것으로 살아온 키리야는 에무의 심정을 알 수 있었다.


     계속 같이 있겠다는 약속은 할 수 없었다. 하지만 키리야는 알았다. 계속이 아니더라도 괜찮으니까. 적어도 지금만큼은.


     “오늘은 떠나지 않을게.”

     “…….”


     키리야의 말에 에무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에무가 원할 때까지 옆에 있을 테니까.”

     “키리야 씨…….”

     “내년에도 가능하면 옆에 있을게. 에무가 필요 없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진 않을 거예요!”


     키리야의 말에 에무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이렇게 매년 약속하면, 난 아마 에무 곁을 못 떠나겠지?”


     키리야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에무는 곧 그의 말뜻을 알아듣고는 같이 웃었다.


     “그러네요. 그렇게 되네요.”


     에무는 자신의 손에 힘을 주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키리야의 손을 꽉 잡은 것처럼 된다.


     “그러면 말한 김에 내년에도 저랑 크리스마스를 보내겠다고 약속하세요.”

     “어. 그건…….”

     “이제 와서 빼기예요?”

     “아니, 그런 건 아니고. 나는 좋아. 후회하기 없기다.”

     “당연하죠!”


     비에 씻기던 이는, 그 다음 해에는 눈에 뒤덮인다. 키리야의 머리에 어느덧 쌓인 눈을, 에무는 손을 놓은 뒤 탁탁 털어주었다. 살살 그의 머리카락을 터니 물방울이 흩어져 떨어졌다. 그 뒤에 에무는 키리야의 어깨도 탁탁 털어준 다음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키리야는 얼결에 그를 따라 일어났다.


     “어디 가려고?”

     

     키리야가 물었다.


     “오늘까진 제 곁에 있겠다고 했었죠?”


     에무의 말에 키리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일단 저희 집까지 데려다 줘요.”


     에무는 키리야에게 손을 내밀었다. 활짝 웃는 에무의 볼은, 추위로 빨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키리야 자신이야 전혀 느끼지 못했지만, 아마 꽤 추웠을 것이다. 키리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가 내민 손을 잡았다. 


     에무의 손은 아까보다 차가웠다. 자신이 그의 손을 따뜻하게 해줄 수 있을 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조금이나마 따뜻해지도록. 키리야는 에무의 집에 도착할 때까지 그의 손을 놓지 않았다.





    - End



    2017년 12월 25일

    누군가의 1주년 기일을 기념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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