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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우+브렌+신노스케] 기회는 두 번 돌아오지 않는다가면라이더/Drive 2015. 10. 6. 01:04
이 글은 가면라이더 드라이브 완결 기념 합작(http://spinningsurprise.tistory.com/11)에 냈던 글입니다.
사실 저 셋이 메인인데... 언급 안 된 둘까지도 나오는 아주 혼파망 글입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쓰다 보니 그만..... 원래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 드라이브 엔딩을 포함한 전반적인 후반부 네타가 있습니다. 주의해주세요.
시지마 고우는 푸른 하늘을 등진 채로 서 있었다. 지중해의 눈부신 태양이 그의 등을 사정없이 쬐고 있다. 바다의 냄새가 진하게 나는 그 곳에서 시지마 고우는 후드를 쓴 채로 서 있었다. 좋은 태양이네. 카메라를 들어올려 마음에 드는 풍경 하나를 찍어낸 그는 여유롭게 셔터를 몇 번 누르고는 흐르는 땀을 닦았다. 휴. 역시 내리쬐는 태양을 오래 맞고 있으려니 더운 건 수가 없다. 털레털레 걸어 근처의 카페로 장소를 옮긴 그는, 에스프레소에 설탕을 잔뜩 넣어 마시며 바깥을 쳐다보고 있다.
"그거, 꺼내지 않는 겁니까?"
갑자기 나타난 사내의 목소리에 고우는 곧바로 미간을 팍 찌푸린다.
"또 너야?"
"주머니의 그거. 안 열어보는 겁니까?"
연갈색 머리카락의 사내는 고우의 후드 주머니 속에 있는 봉투 하나를 가리켰다. 고우는 그것을 흘끔 보더니 고개를 다시 휙 돌려버린다. 고우의 옆에 선 사내는 제가 쓴 은색 프레임의 안경을 치켜 올린다.
"안 가실 생각입니까?"
"날짜가 안 맞아."
"어차피 당신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일정 아닙니까."
"못 간다고. 시끄러워."
혼자서 중얼거리는 그에게 순간적으로 시선이 집중됐다 사라진다. 고우는 스스로 너무 큰 소리를 냈다는 걸 깨닫고는 소리를 낮추었다.
"내가 그만 꺼지라고 몇 번이고 말했잖아. 널 원한 게 아니었다고."
고우의 목소리에 사내는 후후 웃었다.
"제가 몇 번이고 말씀드렸잖습니까. 저를 쫓아낸들 그가 당신 옆에 나타나주는 건 아니라고."
사내는 고우의 옆에 스윽 기대었다. 그러나 고우의 어깨에는 어떠한 무게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고우가 그를 올려다 보았다. 막 마신 커피의 맛은 여전히 썼다.
"아니까 좀 조용히 할래?"
"……."
고우의 말대로 정말 조용히 하는 이를 보면서 고우는 한숨을 푹 쉬었다. 어쩌다가 이 녀석이 붙은 거야. 답답함을 감추지 못한 얼굴로 제 옆에 앉아 있는 사내를 바라본다. 그는 고우와 시선을 마주하자 씨익 웃는다. 화사하게 웃는 꼴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수가 없다. 사라지라 사라지라 말을 해도 사라지지를 않으니까.
고우가 사내를 데리고 다니기 시작한 것은 얼마 전부터였다. 사실 데리고 다닌다고 하기도 어렵다. 그가 멋대로 쫓아다니는 것이니까. 그 때의 고우는 지금과 비슷하게 세계 곳곳의 사진을 찍고 다니고 있었다. 원없이 사진을 찍은 그가 카메라 화면으로 확인한 사진에는 이상한 것이 찍혀져 있었다. 통상적으로는 보이지 않는 어떤 사내의 모습이었다. 누구인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어이가 없어 한숨을 쉬는 고우의 뒤에 그 목소리가 들린 것도 순간이었다.
"오랜만입니다. 가면라이더 마하."
고우가 흠칫 놀라며 뒤를 돌아보니 사내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고우가 기억하는 모습 그대로, 은색 프레임의 안경에 녹색 마이에 회색 체크무늬 바지. 질릴 정도로 잊혀지지 않는 얼굴이다.
"브렌."
이름을 불린 사내는 활짝 웃는다. 고우는 멍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네가……."
"우연의 일치라고 해 둘까요."
혼이 빠진듯 중얼거리는 말에 브렌은 안경을 치켜올리며 웃었다. 고우의 시선이 떨리고 있었다.
"살아난 거야?"
"육체가 다시 생겼냐는 질문이라면 아닙니다."
"그럼 대체 어떻게 나타난 거야?"
"아까도 말씀드렸듯, 우연의 일치입니다."
브렌은 천천히 고우의 주변을 한 바퀴 돌았다.
"내가 혼으로 떠도는 동안, 누군가의 혼을 '절실하게' 보고 싶었던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인간의 말로 파장이라고 하는 것이 아주 우연히 맞았다. 뭐, 이런 이유입니다."
"진짜로 우연이네."
고우는 한숨을 쉬며 머리를 긁었다. 그러다 퍼뜩 뭘 깨달은 듯 브렌을 보았다.
"잠깐, 그러면 잘만 하면 그 녀석을 다시……!"
"그건 어려울 겁니다."
잠깐 솟아났던 고우의 희망은 단 한마디로 깨어졌다.
"왜?"
"말했잖습니까. 우연의 일치라고. 그런 똑같은 우연이 또 일어날 확률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시는지?"
"하지만 모르잖아!"
고우는 자신이 뭘 하려던 건지도 잠시 잊고 브렌에게 소리쳤다. 브렌은 고개를 저었다.
"내가 절실하게 바랐기 때문에 네가 왔다며! 그럼 그 녀석도 다시……."
"다시 한 번 말하죠. 무리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브렌의 얼굴은 고우가 알던 이전과는 달라져 있었다.
"내가 당신과 만난 것도 평소라면 절대로 일어날 리 없고, 놀라울 정도로 완벽하며, 다시는 일어날 일 없는 우연이란 말입니다. 다른 말로는 필연이라고 하죠."
"필연일 정도면 그 녀석이어도 되잖아. 왜 너인 거야."
"'체이스'라면, 당신의 곁에 이미 있잖습니까."
브렌은 한숨을 쉬며 고우의 주머니를 흘끔 보았다. 고우는 흠칫 놀라며 제 주머니 안에 있는 것을 꺼냈다. 보라색의 시그널 바이크. 이 세계에서 그가 존재했음을 증명하는 거의 유일한 증거였다. 그것을 본 고우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체이스가 아니라 내가 나온게 굉장히 억울한 모양인데, 오히려 억울한 건 내 쪽입니다. 당신이 이미 가지고 있는 걸 바랐기 때문에, 그 욕심이 나를 부른 겁니다. 체이스와 '혼'으로서 가장 오래 교감한 내가 말입니다."
"……."
"말이 어렵습니까? 그냥 기적이라고 생각하십시오."
"기적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고우는 시그널 바이크를 꽉 쥐고서는 주저앉았다. 왈칵 올라오는 것을 뱉을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끙끙대는 이를 브렌은 가만히 바라볼 뿐이었다.
그 이후로 그는 계속 고우의 뒤를 쫓아다녔다. 떠나려 해도 마음대로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거기다가 브렌은 고우의 눈에만 보이는 모양이었다. 덕분에 가끔 그와 대화를 하다 격해지면, 주변을 먼저 살펴봐야 하는 상황에 오는 경우가 많은 고우였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고우가 아무렇게나 주머니에 쑤셔넣은, 고우에게 온 국제우편에 대해 브렌은 굉장히 관심이 많아 보였다. 우편의 송신인을 같이 보았으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만 열어보시는게 낫지 않겠습니까. 어차피 피할 수 없는 건데."
입을 다물고 있던 브렌은 고우가 에스프레소 잔의 절반 정도를 비우자 다시 입을 열었다. 에스프레소의 양을 생각해보면 몹시 짧은 시간이다. 고우가 인상을 팍 구겼다.
"안 본다니까."
"후회한다니까요. 정말로. 당신이 보고 싶어 했던 모습이잖습니까."
브렌은 고우의 팔을 붙잡는다. 그리고 쭈그려 앉아 고우를 올려다본다. 고우가 흘끔 그를 본다. 그러다 푹 한숨을 쉰다.
"너랑 상관있는 일이 아니잖아. 왜 이러는 건데."
고우가 묻자 브렌은 눈을 몇 번 깜빡이고서 대답했다.
"지금 그걸 안 보는 당신이 무슨 심정인지 아니까."
"……."
고우는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결혼이란 인간에게 있어 사랑이 이뤄지는 궁극의 행복이라고 알고 있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꼭 그런 건 아니라는 것도 압니다.
"……."
"무서운 거 아닙니까? 두 사람이 당신에게서 멀어지는 게."
네가 어떻게 알아. 그렇게 말을 꺼내려던 고우였으나 말은 나오지 않았다. 이 빌어먹을 기계인간(의 혼)은 예나 지금이나 자기 속을 들여다보는 건 기가 막히다. 사실 둘이 함께 했던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것도 고우 쪽에서는 기회를 노려보기 위해 결탁한, 그 정도의 존재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함께 지내는 동안, 고우 본인의 속내가 브렌의 입을 통해 드러나는 경우가 제법 있었다. 그리고 오늘도 마찬가지다.
"알았어. 알았으니까. 일단 나가자고."
결국 고우는 남은 에스프레소 잔을 다 비워버리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그리고 어영부영 풀어두었던 제 가방과 카메라를 다시 매고는 성큼성큼 카페 밖을 나가보았다. 기다리십시오, 시지마 고우! 하며 쫄래쫄래 쫓아오는 브렌은 철저히 무시한 채로 고우는 어디론가 뛰어갔다. 낯선 이국의 거리가 그의 옆으로 빠르게 지나간다. 한참 달리다 그가 도착한 곳은 도시 내에 조성되어 있던 커다란 공원이었다. 거기에 있던 벤치에 고우는 털썩 앉는다. 그리고 셔터를 몇 번 누른 뒤에 한숨을 푸욱 쉰다. 그리고 어느새 제 옆에 앉아 있던 브렌을 보았다.
"네 말대로야."
그렇게 말하며 고우는 주머니 안에 있던 봉투를 꺼냈다. 국제우편봉투의 송신인은 '토마리 신노스케' 라고 되어 있었다. 고우는 봉투를 뜯고 안에 있는 것을 보았다. 편지는 두 장 들어있었다. 하나는 고우나 브렌이 이미 알고 있는 것이었다.
- 새 사랑을 축복하는 자리에 당신이 함께 했으면 합니다. 신랑 토마리 신노스케 / 신부 시지마 키리코
출석, 결석이 쓰여 있는 부분까지 읽은 고우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무섭다고. 누나도, 신 형님도 나한테서 멀어진다고 생각하면."
브렌이 고우를 보고 있었다. 안 갑니까? 그가 물었다.
"몰라."
고우는 일단 그것을 접어두고 다음 편지를 펼쳤다. 고우. 잘 지내고 있어? 라고 시작되는 글자는 악필이라 읽기에 편하지는 않았지만, 편지에 구구절절 쓰인 것은 고우 자신을 향한 걱정 뿐이었다. 꼭 한 번 보고 싶으니 와 줬으면 좋겠다라는 말로 마무리가 된 편지의 끝에는 토마리 신노스케라는 이름이 쓰여 있었다.
"동생 사랑이 참 극진하긴 하군요."
뒤에서 편지를 흘끔 보던 브렌이 말했다.
"이렇게나 부르는 데 안 가는 것도 문제 아닙니까?"
"시끄럽다니까."
고우가 브렌을 휙 쏘아보았다.
"뭐가 고민인 지는 나도 압니다."
그 눈빛에 굴할 브렌은 아니었다.
"하지만 안 가면 정말로 후회합니다."
"대체 네가 뭔데 자꾸 그러는데."
고우가 미간을 팍 구기며 말하였다.
"체이스도 그렇고, 네가 우리에 대해서 뭘 안다고 그렇게 떠드는 건데."
"모르지는 않습니다만."
"알지도 못하잖아!"
브렌의 표정에 특별히 변화는 없었다. 눈을 몇 번 깜빡이더니 브렌은 한 번 심호흡을 하였다.
"당연히 당신보다야 모르겠지요."
"거 봐."
"하지만 당신보다 잘 아는 것 하나는 있습니다. 적어도 이 순간은 당신에게 중요한 선택이고, 가지 않으면 분명 후회한다는 걸요."
"정말, 아까부터!!"
고우가 벌떡 일어나 성을 낸다. 벤치 위에 그대로 앉아 있는 브렌은 눈을 깜빡이며 고우를 빤히 쳐다본다.
"앵무새냐? 똑같은 소리만 하고!"
"당신이 계속 그렇게 만들고 있지 않습니까."
"네가 옆에서 재잘재잘 안 떠들어도, 내가 알아서 한다니까?"
허리춤에 손을 올리고 고우는 브렌을 쏘아보았다.
"그래. 한 번 들어나 보자. 대체 왜 자꾸 가라고 하는 건데? 네 말따라 두 사람이 나한테 멀어지는 게 무서워! 누나의 결혼식인데도 그렇단 말이야!"
"그러니까 마주해야 합니다. 당신은."
브렌의 검은 눈동자가 갑자기 빛났다. 고우는 마른 침을 삼켰다.
"무서우니까 맞서야 하는 거라고요. 두 사람 다 당신이 좋아하는 사람이잖아요."
"너."
"나는 한 번 죽으면서 알았습니다. 나는 내 선택에 후회가 없었어요. 그래도 죽는 순간은 너무 무서웠어요! 메딕이 뭔데 나한테 이렇게 만드는지 모르겠다는 생각. 너무 아파서 왜 그랬을까 후회도 엄청 했어요! 하지만 하트를 보고 알았어요. 하트가 저기 살아 있었어요. 그리고 하트를 지켜줄 사람은 내가 아니라 그 여자였어요."
"……."
"그런데 죽기 직전에 딱 하나, 후회되는 건 있더군요."
"뭐가?"
인상을 찌푸린 채로 고우가 물었다. 브렌은 한숨을 푹 쉬며 대답했다.
"하트가 행복한 얼굴을 못 봤습니다."
"뭐?"
고우는 순간 맥이 탁 빠지는 느낌이었다.
"하트가 행복해하는 얼굴을 못 봤단 말입니다. 나는 그게 너무도 후회가 남아요. 그것만 생각하면 다시 살고 싶어진단 말입니다."
"이봐, 하트도 이미."
"알아요. 난 죽은 이후로 단 한 번도 하트를 못 만났습니다. 그리고 이제 와서 하트가 나를 보면 행복해할 것 같아요? 나는 압니다. 절대 안 됩니다. 그럴 수 없게 되어버렸단 말입니다."
"그거랑 이게 무슨……."
"그런 나를 앞에 두고 당신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의 행복한 모습을 그저 무섭다는 이유로 피한단 말인가요?"
브렌은 벌떡 일어서 고우의 멱살을 팍 잡으려다 만다. 잡히지 않음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인상을 찌푸린 고우에게 브렌의 시선이 그대로 꽂혔다. 저를 노려보는 눈빛에는 질투와는 아주 다른, 어떠한 감정이 타오르는 것을 알았다. 기계 인간 주제에. 아니, 이제 이런 말은 하지 않기로 했던가. 고우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런 건 용납 못합니다. 그리고 분명 보지 않은 당신은 후회하게 될 거예요. 멀어지는 두 사람이 무섭죠?"
브렌의 물음에 고우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반대입니다. 이번에 가지 않으면 정말로 멀어질 겁니다. 좋아하는 사람을 직접 마주하지 않아서, 도망쳐서 생긴 후회는 어떻게 해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브렌."
"예전의 나였다면 절대 이런 소리 안 했을 테지만, 죽으면서 좀 많이 바뀌어서 말입니다."
브렌은 안경을 고쳐 썼다. 흥분을 진정시키며 그는 다시 벤치에 앉았다.
"지켜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고, 도망치는 게 답은 아닙니다. 당신도 뼈저리게 알겠지요. 그러니 있는 기회는 소중하게 여기십시오."
멍한 시선의 고우를 보며 브렌은 말했다.
"시지마 고우. 당신만큼은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당신은 나와 많이 비슷했으니까요."
그 말을 남기며 브렌은 스르륵 사라졌다. 고우는 퍼뜩 놀랐으나, 가끔 있는 일임을 떠올리고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이제 혼자 생각하고 선택하라는 뜻이겠지. 고우는 정말로 아무도 없게 된 벤치 위에 털썩 앉았다. 고개를 들어 보이는 하늘은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이다. 탈 것만 같은 태양빛을 쐬며 생각한 고우는 결국 다짐했는지 고개를 숙여, 아까 접어두었던 청첩장을 집어 펼쳤다. 주머니 속에 있던 펜을 꺼내, 그는 '출석' 칸에 동그라미를 친다.
후회는 하고 싶지 않았다. 아까 들었던 이의 말이 사무쳤다. 기회라는 말도 떠올랐다. 그런 기회조차 박탈당한 존재 앞에서 기회를 차려 했으니 당연한 결과인가. 고우는 청첩장을 접으며 생각하였다. 일본 가는 비행기는 언제 타면 되려나? 그는 한참 벤치에 앉아 멍하니, 곧 만날 이들에 대해 생각했다.
*
"역시 와 줬구나, 고우!"
"미안. 급하게 공항에서 오느라고."
엉망진창인 정장을 고쳐 입으며, 고우는 제 앞에 선 키 큰 사내를 향해 웃어보였다.
"청첩장 답장이 늦어서 조마조마했다고. 키리코도 널 보면 기뻐할 거야."
"누나야 당연하지. 나는 나름 귀여운 동생이라고?"
푸핫 웃는 고우의 머리를 쓰다듬는 사내, 토마리 신노스케는 연미복을 쫙 빼입은 모습이었다. 오늘 누구보다 행복할 결혼식의 주인공이니 당연하다.
"나 참. 못 보던 새에 더 뻔뻔해져서는."
"신 형님은 변하지를 않네, 정말."
서로의 웃음소리가 신랑 대기실을 크게 울렸다. 그 사이에 신노스케는 고우의 머리를 또 한 번 쓰다듬었다. 머리 망가질라! 고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차피 안 만진 거 다 알아."
신노스케가 핀잔 섞인 목소리로 그의 말을 막았다. 고우는 또 웃음을 터뜨렸다.
"못 당하겠다니까. 정말이지."
"아무튼 잘 왔어, 고우. 안 오면 어쩌나 했었단 말이야."
"내가 어떻게 여기를 안 오겠어."
고우는 실실 웃으며 슬쩍 거짓말을 더한다. 안 올 생각이기도 했단 말을 굳이 신노스케에게 할 필요는 없으니. 신노스케는 고우를 보며 안심한 듯 웃었다.
"하지만 청첩장 보낸지 한참이 됐는데 답장도 안 오고. 연락이 안 가면 어쩌나 했다고. 고우는 워낙 여기저기 떠도니 수소문도 문제였고. 전화를 걸어도 안 받고."
"그건 미안, 신 형님."
사실 이미 받아둔 상태에서 미루고 있었으니, 내심 찔린 고우는 신노스케에게 빠르게 사과했다. 신노스케는 괜찮다는 듯 활짝 웃었다.
"그나저나 예상보다 조금 빠르지 않아? 난 누나 때문에라도 조금 더 미룰 줄 알았는데."
"뭐, 그러려고 했는데……."
"설마……."
신노스케의 얼버무림의 의미를 안 고우가 눈을 흘긴다. 신노스케는 곧바로 고우에게 사과의 제스처를 취한다.
"미안, 고우! 키리코는 어떻게든 행복하게 만들 테니까!"
"신 형님. 지금보다 두 배는 더 일해야 하는 거 아냐?"
"아. 아마 그렇겠지."
신노스케는 닥친 현실을 생각했는지 한숨을 푹 쉬었다. 완전히 가장이구만. 그 모습을 보며 고우는 생각하였다. 안에서 뭔가 울렁이는 것도 같다. 잊고 있던 것이 떠오른 탓이다.
"그래도 부럽네. 결혼 축하해. 누나를 행복하게 해주지 않으면, 내가 바로 달려갈 테니까?"
그걸 애써 감추며 고우는 활짝 웃었다. 난처해하던 신노스케는 고우의 말에 곧바로 웃음으로 화답하였다.
"당연하지. 나만 믿어, 고우. 더 이상 내 소중한 사람들을 슬프게 만들지 않을 테니까."
연미복 차림으로 주먹을 꽉 쥐는 신노스케를 보며, 고우는 핏 웃었다.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을게. 그 말을 남기고 대기실을 나온 고우는 연회장에서 얌전히 그들이 나오기까지를 기다렸다. 하객으로 온 익숙한 얼굴들과 인사를 나눈다. 모두들 오랜만이라는 말을 전하고 있었다. 워낙 방랑벽이 많은 고우라, 일본에 있는 한 만나기가 힘든 탓이다. 고우가 일일이 거기에 화답하고 나서 자리에 앉으니, 이제 결혼식의 시작이었다.
오기를 잘 했다. 고우는 그렇게 생각했다.
신랑으로서 서 있는 신노스케나, 제대로 인사를 못 했던 그의 누나는 누가 보아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한 쌍이었다. 그 모습이 너무도 눈이 부셔, 고우는 제 안에서 부글부글 끓는 감정과 드디어 맞닥뜨려야 함을 알았다. 새하얀 드레스. 가장 아름다운 신부. 그리고 그 옆에서 웃는 신랑. 도망치려 했던 이유를 새삼스럽게 다시 깨닫는다. 한 때 품었던 마음이었다. 사실 그는 키리코의 자리를 바랐다. 저 자리에 자신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그것이 불가함을 알았다. 알게 된 후에도 그들 사이를 조금이라도 질투하는 자신이 무서웠다. 그래서 도망치려 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머나먼 것이었다. 그들은 이제 하나가 되었다. 하나가 된,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이들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아마 고우가 악마랑 계약을 했더라면, 이 장면을 보고서 멈추라 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아, 젠장."
눈물이 흘렀다. 서로에 대한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는 이들 앞에서, 눈물이 흘러서 멈추지를 않았다. 흐릿한 눈으로 보고 있으면, 어느새 식을 마무리한 그의 누나가 앞에 서 있었다.
"왜 그리 울고 그래, 고우. 좋은 날에."
누나, 키리코의 울음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고우는 그녀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결혼 축하해. 누나. 울음이 섞여 제대로 전달됐을 지도 모르는 소리를 내며, 고우는 새하얀 신부를 안고 울었다. 그런 고우의 등을 쓰다듬어주는 익숙한 손길에 더욱 눈물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이윽고 고우가 울음을 그치고 자리에 돌아가, 식을 마무리하고 그들이 여행을 떠나는 것을 지켜보았다. 웨딩 카가 멀어지는 것을 보고 난 고우는, 갑자기 탈력하는 느낌에 그대로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후후. 후후후후……."
고개를 숙인 채 실소를 터뜨리는 그의 옆에 갈색의 구두가 보였다.
"잘 하셨습니다. 고우."
여태 보이지도 않던 브렌이었다. 고우는 엉망진창인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브렌은 웃고 있었다. 평소 늘 지니고 있던 비웃는 느낌이 아닌, 정말로 활짝 웃는.
"왜 체이스가 아니라 너인 건지는 지금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네 덕에 후련하다. 고마워."
고우가 그렇게 말하면, 브렌은 의외라는 듯 놀란 얼굴을 한다.
"기계인간인 나한테는 죽어도 그런 소리 안 할 줄 알았습니다만."
"나도 너처럼 조금 바뀌어서 말이야."
그럼, 이제 일어나볼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몸을 푸는 고우를 보며 브렌은 핏 웃었다.
"체이스와는 언젠가 분명 만나게 될 겁니다."
그리고 그가 한 마디 더하였다.
"당신이 원하고, 이미 거기에 있으니까요."
그렇겠지. 고우는 작게 화답하였다. 그리고 웨딩카가 멀어지는 반대편으로 걸었다. 브렌은 여유롭게, 그의 뒤를 따라서 걸었다. 고우는 또 다시 여행을 떠나게 될 것이다. 언젠가 만날 친구를 찾는 여행을. 조금 시끄러운 동반자가 생기기는 했지만, 그 정도의 여흥은 괜찮겠지.
정장을 입은 채로 힘껏 걷는 그의 뒤로 붉은 노을은 천천히 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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