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그스타가 이 세상을 뒤덮을 때만 해도 그것이 존재하리란 생각은 한 적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해결책을 찾았다. 그것이 과연 그에게 온당한 결정이었는가. 이 세계를 그런 식으로 구해도 되는가. 나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알고 싶지도 않다. 결단코 나는 그것이 온당하다고는 생각지 않으니까.
“정말로 그렇게 할 생각이야?”
나는 재차 물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밖에 없으니까요.”
“그만둬.”
그를 말렸다.
“그것 말고 다른 방법이 있을 지도 몰라.”
아니, 아마 없을 것이다. 그걸 생각하고서 던지는 말은 공허하다. 내 습관 같은 것이다. 이런 종류의 거짓말은. 그는 내 말을 듣더니 핏 웃었다.
“키리야 씨도 다른 방법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잖아요.”
어느 순간부터 그는 내 거짓말은 너무 간단히 간파하게 되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말려도 소용없어요. 저는 이러기로 결심했어요.”
“네가 아니어도 되잖아. 너 말고 할 사람은 분명히 있어.”
“아니오. 저여야 해요.”
그는 이런 상황에서는 지나칠 정도로 단호하다.
“저는 모두를 구하기로 다짐했어요. 나도 누군가를 구하고 싶다. 그 마음이 변한 적은 지금까지도 없어요. 그리고 지금 제가 모두를 구할 수 있어요. 구할 수 있는데 손을 놓고 싶지는 않아요. 키리야 씨도 아시잖아요. 놓아버리면 정말로 의사 실격이에요.”
“너 말고 의사는 많다고!”
나라던가. 까지 말하려던 입은 그의 눈빛 앞에서 열리지 않았다. 빛이 거의 없는 새까만 눈. 열의로 빛나고 있는 그것. 내가 사랑하던 눈. 마주하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를 말릴 수 없음을 알았다.
“혼자 두지 마.”
나는 이윽고 참던 말을 꺼낸다.
“미안해요, 키리야 씨.”
그는 웃었다. 웃음 속에 담긴 감정은 분명한 미안함이었다. 알고 있다. 그 역시 안일한 마음으로 결정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그의 소중한 것들을 모두 두고 가야 하는 길이다. 그럼에도 선택했다. 그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 모두를 구하는 길을.
하지만 말이야. 그러면 지금의 너는 누가 구해주지?
“이미 결심했어요. 돌이킬 생각도 없어요. 그러니까 행복하게 살길 바랄게요. 더 이상 거짓말 안 해도 되도록.”
“돌아올 거잖아.”
나는 부질없는 단어를 입에 담았다.
“전부 해결되면, 다시 돌아올 거잖아.”
“그랬으면 좋겠네요.”
“그랬으면 좋겠다가 아니야. 그래야 해. 그런 생각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면 난 너 못 보내. 내가 갈 거야.”
“키리야 씨!”
내 말에 그는 놀라며 반색한다.
“안 돼요. 그것만큼은 절대로.”
“네가 하는데 왜 내가 못해? 난 잃을 게 아무 것도 없어. 너와는 다르단 말이야, 에무.”
“키리야 씨를 보낼 순 없어요. 그건 절대 안 돼요.”
“너는 가도 되고?”
내 말에 그는 입을 다문다. 시선을 아래로 돌리고 입을 우물거린다.
“키리야 씨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눈을 마주치지도 않고, 그는 그렇게 허튼 소리를 한다.
“그건 제가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바랄 수밖에 없지만요.”
어찌 되었든 그의 생각을 돌릴 수는 없었다. 그는 성실하다. 실수는 제법 할지라도 곧은 이다. 그렇기 때문에 보지 못하는 것이 있다. 내가 어떻게 너 없이 행복할 수 있겠어. 너와 만나기 전이라면 그럴 수 있었을 지도 모르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에무. 불가능해.
그러나 운명의 날은 다가왔다. 우리는 그 ‘마지막 해결책’을 위해 모든 버그스타를 한 자리에 모았다. 모든 가샤트는 엑제이드의 손에 들어갔다. 한데 모인 가샤트로 최종 변신한 엑제이드는 버그스타들에게 점령당한 겐무 코퍼레이션의 서버를 열었다. 그리고 네트워크에 접속했다. 지금 온 세상에 버그스타가 난립하게 된 이 난리가 난 것은 겐무 코퍼레이션의 서버가 버그스타에게 점령되었고, 그 버그스타가 일종의 포탈로서 역할을 해서 세상 밖으로 동족을 내보내는 탓이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서버를 점령한 버그스타의 게임을 클리어한 뒤 포탈 버그스타가 소멸하는 힘을 이용해서 그들의 전용 회로를 아예 닫아버리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그리고 그 방법의 조건은 다음과 같다. 모든 가샤트를 갖고 있는 가면라이더가 진입하여 게임을 클리어 해, 가샤트의 힘으로 겐무 코퍼레이션의 서버를 닫으면 버그스타의 회로가 함께 사라진다. 버그스타들의 메인 회로가 겐무 코퍼레이션에 같이 있었던 탓이니, 뭐 겐무 사장님의 화려한 업적 되겠다. 일련의 조건들을 보면 알겠지만, 이 일을 해결할 수 있는 건 사실상 호죠 에무밖에 없었다.
엑제이드는 서버에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버그스타들은 모두 형체를 잃었다. 어디론가 끌려가는 듯 말려 사라진 그 자리에는 몸이 데이터 단위로 조각나고 있는 엑제이드가 있었다.
“에무!!”
나는 외칠 수밖에 없었다. 나뿐만이 아니었다. 옆에 있는 도련님도 있는 힘껏 그를 부르고 있었다. 그의 필사적인 표정을 보았다. 나와는 달리 가지 말라고 솔직하게 외치고 있는 도련님이 부러울 뿐이다. 그에게 시선을 돌렸다. 명인은 웃고 있었다.
“모두, 고마워요. 덕분에 행복했어요.”
나는 조각나는 그의 몸에 손을 뻗었다.
“다들 대단한 사람들이니까, 분명 앞으로 더욱 잘 살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까 행복해야 해. 포기하지 말고 힘껏 살아줘요.”
네트워크에서 계속 지켜보고 있을 테니까. 그렇게 말하며 웃는 이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뜨끈한 눈가. 시선이 흐릿하다. 내가 뭐라 말할 새도 없이, 명인은 웃는 채로 조각이 되어 흩어졌다. 초록색의 입자들이 어딘가로 휘리릭 날아간다. 아마 네트워크 서버 속일 것이다. 인간은 가루를 붙잡을 수는 없다. 그의 일부나마 갖고 싶어 손을 뻗어도, 내 손에 남는 건 아무 것도 없다. 나는 털썩 주저앉았다. 멀어지는 입자들은 마치 나의 무력감 같다.
행복하라니. 어떻게 너 없이 행복하란 말이야.
미쳐가는 악몽은 그 날부터 시작되었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눈을 떴다. 뜨고 보니 아침이다. 또 이 꿈이다. 슬슬 지긋지긋하지 않나 싶다가도 나는 다른 이의 꿈을 몇 년 꿔 왔음을 깨닫고는 절로 웃음이 나왔다.
나는 고개를 돌려 달력을 보았다. 명인이 사라진 지 얼마나 되었더라. 벌써 반 년 정도 지나 있었다. 세월 한 번 더럽게 빠르네. 이를 닦고 세수를 하며 생각했다. 대충 옷을 갖춰 입었다. 어차피 감찰의무원에 가면 갈아입을 옷이니 구색 맞출 필요는 있나. 나는 옷장 안에 가득 있는 하와이안 셔츠들을 보았다. 셔츠가 생각보다 제법 많이 있다. 물론 나는 이 안에 있는 것들 중 어느 것도 입을 수가 없다.
이 셔츠는 일종의 습관이었다. 나는 과거 버그스타와 관련된 사고로 친구를 잃었다. 삶의 의미를 점점 잃어가던 어느 날, 나는 지나가는 길에 우연히 붙어 있던 하와이 관련 홍보지를 보게 되었다. 예전에는 눈도 깜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상하게도 그 홍보지를 한참동안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솔직히 하와이는 매체를 통해 익숙한 곳이다. 대체 그 때에는 뭐에 새삼스럽게 끌린 것인지 모르겠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하와이를 좋아하고 있었다. 여행 서적을 사고 로코모코를 먹으러 다녔다. 하와이안 셔츠를 사서 입고 다녔다. 지금 돌이켜보니 우스운 일이다. 당시에는 하와이가 가지고 있던 이미지가 추하게 느껴졌던 당시의 나를 감춰줄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은 그와 비슷한 이유로, 이런 종류의 셔츠는 전혀 입지를 못하고 있다. 웃기는 일이다. 내가 입은 무채색의 셔츠를 보니 실소가 터진다. 바뀌는 셔츠는 결국 내 무력함의 상징이다. 이제 하와이안 셔츠를 입지 못하게 된 건, 저 무늬와 마주하자마자 내가 지키지 못한 이가 떠오르는 탓일 것이다.
“버그스타를 박멸한 뒤에는 꼭 하와이에 가요!”
그렇게 약속한 이는 이제 더 이상 내 곁에 없었다. 그렇게 좋아하던 하와이를 떠올리면 자동으로 명인 생각이 났다. 그러다보니 더 이상 하와이를 좋아할 수가 없었다. 거기에 연관된 이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너무 괴로워서, 그것을 떠오르게 만드는 모든 물건을 한 곳에 치워놓고 나서야 겨우 안심할 수 있었다. 에무. 없는 이를 떠올린다.
쿠죠 키리야. 6세. 맞는 거라고는 이름밖에 없는 접수증을 내고 처음 그를 만났다. 천재 게이머의 힘이 필요했던 내게 그는 참으로 잘 속아주었더랬지. 얼마 속인 것도 없었건만 그는 나의 ‘거짓말’이라는 말을 싫어했다. 슬픈 눈으로, 화를 냈다. 지금까지도 그 모습이 떠나지를 않는다. 셔츠를 보면 그 생각이 절로 떠올라버린다. 나는 옷장을 닫아버렸다.
출근길은 평소와 같다. 직장에 들어가면 부검을 기다리는 시체가 줄을 서 있을 테지. 죽음이란 참으로 얄궂은 일이다. 순식간에 인간의 존재를 지우면서, 사라진 존재에게 제 흔적을 잔뜩 남겨두고 떠난다. 내가 하는 일은 그 남은 죽음의 흔적을 쫓는 것. 사인(死因)을 밝히는 것이다.
오늘 들어온 시신은 꽤 끔찍한 몰골이었다. 발견이 늦었던 탓에 이미 상당히 부패가 진행되어 있던 상황이었다. 거기다가 토막살인 사건의 시신이라, 뭐 모양을 굳이 말할 필요는 없겠지. 팔이랑 다리 한 짝씩 없다고만 하겠다. 물론 이 일 하다 보면 이런 게 한 두 건은 아니긴 하지만, 할 때마다 영 끔찍한 건 수가 없다. 으으. 시체 냄새. 옆에 있던 동료가 질색한다.
“시체 냄새 하루 이틀 맡는 것도 아니면서?”
“오늘따라 심해. 내가 예민해졌나.”
사인은 어렵지 않았다. 둔기에 의한 두개골 파열. 그것보다도 끔찍한 건 조각난 몸 쪽이겠다. 상처 부위를 보던 동료가 고개를 저었다.
“실력자 솜씨야.”
“정육점 좀 하신 쪽?”
“아니. 힘이 무식하게 센 쪽.”
확실히 잘린 부위가 놀랍도록 깨끗하다. 너무 깨끗해서 위화감이 든다. 마치 조각 같은. 나는 퍼뜩, 어떤 모습이 생각났다. 초록빛 조각이 되어 사라진. 아아. 젠장. 왜 또.
“키리야?”
동료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렵게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거봐, 오늘 냄새 심하다니까.”
내가 냄새 때문에 현기증이 난 줄 아는 모양이다. 하긴 그렇게 생각하는 쪽이 나는 낫다. 일은 계속 되었다. 그 외에도 여러 일 처리하느라 하루는 순식간에 지나갔다. 철야는 아니니 망정이지.
돌아가는 길에 나는 생각했다. 조각조각. 시신. 데이터. 명인. 언제 돌아올 지 알 수 없는 이. 인간으로서는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내 손에 잡힐 일은 없는 시체. 차라리 내 손으로 부검이라도 할 수 있었더라면 이렇게 미련이 남았을까. 쥰고의 시신 앞에서 절망했던 기억이 같이 떠올랐다. 그 때의 나는 쥰고의 시신을 만질 수 없었다. 내게는 아무런 권한이 없었다. 나의 소중한 이들은, 내가 만질 틈도 없이 내 손에서 떠나갔다. 내게 마음만을 남기고. 마음은 필요 없어. 차라리 너희의 존재가 내게 조금이라도 남았으면 좋으련만. 하다못해 데이터로라도 말이지.
데이터? 내가 제일 먼저 떠올린 것은 내 손끝에서 멀어졌던 에무였다. 그 다음으로 떠오른 건 에무의 데이터화가 이루어진 과정. 가샤트의 힘이 필요하다고 했던 것 같은데. 일단 내가 아는 모든 가샤트는 에무를 돕느라 사라졌다. 그럼 남은 가샤트가 없을까? 정말로?
나는 퍼뜩 깨달았다. 나는 어쩌면 지금이라도 호죠 에무를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거가 없는 생각일지 모른다. 하지만 조사해보지 않고 넘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는 달력을 보았다. 마침 당분간 시간이 어느 정도는 있다. 왜 나는 절망만 하고 있었지. 그리워만 해서는 아무 것도 되지 않아. 그러니 알아보자. 아주 오랜만에, 호기심이 나를 움직이고 있었다.
다음 날 방문한 건물에는 임대라는 글씨가 쓰인 종이가 여러 장 붙어 있다. 눈에 익숙한 건물. 여기가 이렇게 될 거라고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사람은 없는 듯 보였다. 비어있는 건물의 문을 여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나는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가, 가장 높은 층에 있는 사장실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내가 방문한 곳은 겐무 코퍼레이션이 있던 건물이다. 물론, 회사가 재차 도산하면서 대부분은 철수하고 대체로 빈 건물이지만, 보통 이런 곳에 버려진 자료에 뭔가 있기도 하단 말이지. 뭐라도 건질 생각에 무작정 들어온 것이다. 중요한 서버나 이런 건 아마 없을 거고. 그렇게 생각하며 잡동사니가 늘어져 있는 방 안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이곳의 사장이 쓰던 잡동사니 장식들이 눈에 띈다. 문어발은 왜 놓은 거야? 주웠던 그것을 휙 던져버렸다. 뭐 시원한 수확은 없었다. 사실 관련 정보를 조사하기에는 메인 서버가 제일 좋은데 그건 위생성에 압수됐든 사장 본인이 회수했든 했을 테니 여기서 찾아봐야 소용이 없을 테지. 사장실이 아닌 다른 곳도 둘러보았지만 똑같았다. 내가 그나마 얻은 것은 누군가 구긴 쪽지에 쓰여 있던 단 쿠로토의 주소였다. 이게 확실한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어쨌든 쫓다 보면 뭐 하나는 나오겠지. 나는 쪽지를 주머니에 구겨 넣었다.
돌아가는 중에는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오늘따라 명인의 모습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의 얼굴을 떠올릴 때마다 괴로우니 떠오르지 않는 지금이 행복한 것이겠지. 갑자기 다리에 힘이 풀려 털썩 주저앉았다. 사람이 별로 없는 거리라 다행이었다. 왜지. 싶다가 요 근래 식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아차. 그렇다고 일을 안 했던 것도 아니니. 뭐라도 먹어야 하나. 싶다가도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어렵게 다리에 힘을 주어 몸을 일으켰다. 근처 편의점에 들러 결국 사는 건 대체 식량. 영양을 채우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맛없는 그것을 씹어 먹어도 별 느낌은 없다. 감각의 일부를 잃은 것 같다. 돌아올 일도 아마 없을 것이다.
- 식사는 챙겨 드세요, 키리야 씨.
이젠 환청까지 들리네. 절로 쓴웃음이 나온다. 생각보다 내 상태는 심각할 지도 모른다.
눈을 다시 떴을 때에는 새벽 공기가 나를 맞고 있었다.
이전에 찾아 둔 주소지는 다행히도 도쿄 안이었다. 번거롭지 않은 위치에 있는 주소지를 쫓아, 그 집의 문을 두드렸다. 도쿄 안이라고 해도 외진 곳이다. 숨어 살기엔 의외로 적합할 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고 있노라면 문이 열리고 사람이 나온다. 그는 나를 보고 놀란 눈을 하고 있었다. 정답이로군. 훤칠한 키에 마른 몸. 단정하고 선량한 얼굴. 모두 내가 아는 모습이다.
“여어, 사장. 오랜만이야.”
내가 손을 흔들며 인사하면 그는 한숨을 쉰다.
“이젠 사장이 아닙니다. 그나저나 의외군요. 당신이 어떻게 여길 알고 찾아온 건지.”
“할 말이 있어. 나 좀 들여보내주지 않을래?”
사장은 흔쾌히 승낙의 의사를 보였다. 나는 현관에 섰다. 상당히 정돈된 방이다. 청소를 자주 하는 편인 모양이다. 왠지 나도 오늘 집에 가면 한 번 집을 뒤집어야 할지도. 그런 의미 없는 생각을 하며 나는 사장이 내는 차를 테이블 앞에 앉아서 기다렸다.
“손님이 온 건 오랜만이군요.”
“찾아올 사람이 없나 보지?”
“세계 파괴를 몰고 온 게임의 제작사 사장이란 인간을 찾아올 이가 누가 있겠습니까. 당신 같은 악취미를 가진 인간 말고는 없겠지요.”
“악취미는 세계 가지고 놀아봤던 당신만 하겠어?”
사장, 단 쿠로토는 내 말에 웃기만 한다. 겐무 코퍼레이션의 사장이었던 그는 버그스타를 연구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가샤트와 게이머 드라이버를 개발하여 라이더들을 바탕으로 실험하려 했던 이다. 그것까지는 아무래도 좋지만 여러 문제가 있었던 탓에, 결국 그를 수습하기 위해 나의 소중한 이는 먼 길을 떠나고 말았다. 처음부터 영 마음에 안 들었던 데다 저쪽도 나를 싫어하는 바람에 사이는 개판이었지만, 어쨌든 내 지금 목적을 위해서는 그가 반드시 필요했다.
“그 악취미인 인간에게는 무슨 일로 찾아오신 겁니까? 이제는 가면라이더도 할 수 없을 텐데,”
“그래. 덕분에 말이지. 물어볼 게 있어서 왔어.”
“뭡니까?”
되묻는 이의 시선에는 어느 정도 감이 잡혀있는 느낌이다.
“겐무의 메인 서버. 어디 있어?”
“설마 했더니 역시 그걸 물으러 온 겁니까?”
사장은 난처한 얼굴이다. 물론 그게 뻥카라는 것 정도는 나도 알고 있다.
“그거 말고 내가 당신 찾아올 일이 어디 있겠어?”
“그렇군요. 아무리 당신이 마조히스트여도 나를 일부러 찾아올 이유는 없지.”
“못 본 새에 굉장히 직설적인 성격이 되셨다, 사장님?”
“감출 필요가 없으니까요. 그리고 전 이제 사장이 아닙니다. 그냥 단이라고 부르십시오. 쿠죠 키리야.”
독설을 뱉으면서도 얼굴만큼은 선량하다. 저기에 낚인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었더랬지.
“그래서. 서버는 어디 있는데? 아직도 위생성에 가 있나?”
단은 오묘한 미소를 흘린다.
“글쎄요. 제가 그걸 알려드려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안 알려줘야 할 이유도 없지.”
“목적에 따라 알려줄 수도, 알려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 정도는 생각하고 오셨을 거고.”
당연하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당신인데. 맨 입으로 말해줄 거란 생각은 처음부터 하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