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장 밖을 나와, 택시를 타고 달려 키지마는 어느 곳에 도착했다. 아마노가와 학원 도시 내부에 있는 어느 해안가였다. 차가운 바람이 부는 그 앞에서, 키지마는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공기에서 소금내가 났다. 그 공기를 마시며 키지마는 바다 너머로 펼쳐진 수평선을 보았다. 수평선 너머로 어두워진 하늘을 보았다. 하지만 그는 돌아오지 않는다. 이미 사라져버린 이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알고 있으면서도. 키지마는 웃음을 짓는다.
그의 사망 소식을 안 뒤에, 자신에게 사과하던 겐타로를 처음엔 쳐냈던 키지마였지만, 바로 여기에서 그 사람이 죽었다는 걸 알려준 것 역시 겐타로였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그를 잊기로 마음먹었던 그 날, 키지마는 다시 겐타로를 만났다. 그 때 그는 알려주었다. 여기에서 그가 어떻게 죽었는지, 그리고 그가 끝까지 어떤 태도였는지도.
‘그래?’
아마 그 자리에서 키지마는 웃었을 것이다. 그러지 않고서는 스스로의 감정을 제어할 자신이 없었기에. 겐타로와 헤어지고 나서 키지마는 마음 속에서 끓어오르는 감정을 참아낼 수가 없었다. 처음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끝까지 그는 자신에 대한 후회 따위는 일말도 내비치지 않았다. 어차피 되돌아올 리 없는 마음임을 알았음에도. 그랬음에도 조금이라도 기대했던 자신을 비웃기라도 한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마음을 누를 수 있는 건 역시 그의 죽음이었다. 죽은 자에게는 어떤 말도 전해지지 않았다. 이미 사라져버린 사람에게 화를 내봐야 손해인 것은 자기 자신일 뿐이었다. 그 때의 키지마는 다시 한 번 결심했다. 자신의 마음속에서 그 사람을 보내기로. 그래서 이곳에는 단 한 번도 오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다시 돌아오고 말았다. 그것도 어느 작은 아이 때문에. 그 사람을 너무나도 닮은 아이 때문에. 이름이 분명 코우헤이라고 했지. 키지마는 생각했다. 또 볼 수 있을까. 분명 그 사람이 아님을 알고 있음에도 그 아이에 대한 호기심이 사라지지 않는 키지마였다. 하지만 그가 알고 있는 것은 이름뿐이었다. 그런 이상 키지마는 그 아이가 다시 한 번 자신의 만담을 보러 와주길 빌 수밖에 없었다. 자신에게 꽃을 줄 정도면, 어느 정도는 자신의 만담이 마음에 들었다는 것이니까. 이 상황만큼은 자신의 재능에 감사를 표하고 싶었다.
키지마는 해안가를 걸었다. 그러다가 어느 지점에서 멈춰 섰다. 멈춰선 키지마의 발밑에는 투박한 비석 같은 것이 놓여있었다. 하야미 코우헤이 교장선생 여기서 잠들다. 라고 투박하게 새겨진 비석이었다. 그 밑에는 몇 송이의 꽃이 놓여 있었다. 아마고의 사람들이 교장의 사망 소식을 알던가? 그것에 대해선 정확히 기억이 없던 키지마였지만, 설마하니 이런 자리까지 만들어놨을 줄은 몰랐다. 하지만 이곳을 아는 사람은 소수. 누구의 짓인지는 대충 짐작이 가는 키지마였다.
키지마는 그 앞에 쭈그려 앉았다. 그리고 제 오른손에서 여태껏 놓지 못했던 그 작은 꽃을 보았다. 그 아이가 주었던 꽃. 이름 모를 꽃.
“이런 거라도 괜찮을지 모르겠네요. 그래도 하야니까 봐줘요.”
그렇게 말하며 키지마는 그 꽃을 그 앞에 내려두었다. 바람이 불자, 이미 생명을 잃어가던 작은 꽃은 흔들리다가 이윽고 날아가 버린다. 키지마가 어찌 할 새도 없이 그 꽃은 보이지 않게 되어버렸다.
“이런…….”
키지마는 한숨을 쉬었다. 그에게 있어 꽤 소중한 것이었으니,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이 밤중에 그것을 찾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키지마는 바람을 원망스러운 듯 바라보더니, 다시 비석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이거 이거, 죽어서도 내 꽃은 안 받겠단 건가요?”
키지마는 부채로 그 비석을 탁탁 쳤다. 몇 번 비석을 치더니 곧 그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이래봐야 의미가 없음을 스스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키지마는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여기에 있어봐야, 그는 이제 없다는 사실만을 깨달을 뿐이었다. 이미 이 마음 속에 없다는 사실이 인지되어 있는 사실이니 이렇게 확인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키지마에게는 더 컸다. 키지마는 결국 그 해안을 떠났다. 돌아가서 잠이나 자리라. 그렇게 정리하면 다시 그 사람을 보낼 수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2
잠에서 깨지 못한 부모에게 들리지 않을 인사를 하며, 코우헤이는 밖으로 나왔다. 나오는 데에 특별히 다른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코우헤이에게는 머리를 정리할 수 있는 곳이라면 아무래도 좋은 것이다. 주택가를 지나 시끄러운 거리로 나온다. 바글바글한 사람들을 지나 어느 공원으로 들어간다. 주말인지라 여전히 공원에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거기에 마련된 산책로를 코우헤이는 무미건조하게 걸었다. 늘 느끼고 있던 것들이지만, 왠지 새롭게 느껴졌다. 그것은 아마 자신이 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 이 학원 도시는 언제 봐도 아름답군. 그렇지 않나.
그렇지. 당신만 없었다면 더 아름다웠을 텐데. 코우헤이는 쓴웃음을 지었다. 과거에게는 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점차 자신에게 과거의 기억들이 채워지는 것을 보면서 그것조차 막지 못하는 스스로가 한심했다.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에는 자신이 너무 어렸던 것일까.
공원의 산책로를 나와, 다시 거리를 걷는다. 그러다 아무 버스에나 올라타, 창문 너머로 보이는 거리를 무미건조하게 바라보았다. 문득 바다가 보였다. 그 근처 정류장에 내린 코우헤이는 그 바다로 걸어갔다. 분명 기억에 있는 바다였다. 아마 과거의 자신과 관련이 있었던 것이겠지.
돌로 된 해변가를 천천히 걸었다. 점차 이 바다에 관련된 기억은 뚜렷해졌다. 고등학생 시절의 교장 선생의 모습. 그리고 자신. 처절하게 싸웠던 흔적들. 그 사람이 이루어낸 이상. 다른 아이의 외침. 포제의 공격. 그리고 자신의.
키지마.
마지막으로 중얼거렸던 이름을 생각한다. 그리고 코우헤이는 어느 비석 앞에 서 있었다. 하야미 코우헤이 교장선생 잠들다. 거친 음각으로 쓰여 있던 그 글씨. 누구의 작품일지는 대강 짐작이 갔다. 말투가 글러먹었잖나. 그렇게 태클을 걸고 싶었지만 걸 만한 상대는 지금 여기에는 없었다.
나는 여기서 한 번 죽었구나. 그랬었지.
코우헤이는 쓸쓸히 웃었다. 그러다 밑을 바라보면, 그곳에는 하얀 꽃이 있었다. 누구의 것인지도 모를 꽃. 죽은 자신에게도 꽃을 주는 이가 있었구나. 이상한 기분이었다. 자신은 쭉 혼자였다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꽃을 줄 만한 사람이 있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놀라웠다. 그래도 아직은 남겨둔 것이 있었다. 아직은.
추억이 방울방울 맺힌다. 포제와 싸웠던 그 때의 기억. 믿음이야말로 어리석은 것이다. 라고 생각하며, 그럼에도 끝까지 그 사람이 그 프레젠타에 갈 수 있을 것이라 믿었던 자신을 생각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사람은. 믿음이라는 것은 덧없다. 그 믿음이 제대로 자신에게 보답해준 적이 없었기에. 코우헤이는 쓸쓸했다. 아무도 믿고 싶지 않았다. 결국 자신은 혼자였다. 혼자일 수밖에 없었다. 이 묘비도, 혼자였던 자신을 상징하는 것이지 않은가. 여기에 잠든 것은 하야미 코우헤이 한 사람 뿐이었다.
당신은 이 고독을 어떻게 견뎌왔어?
'자신'은 대답하지 않았다.
2.
<변태 ~HENJIN~>
제목은 모두들 아실 바로 그 패러디...지만 블레이드가 아닌 포제 글입니다.
게천칭.......인 듯 하지만 커플성보다는 그냥 키지마가 바퀴로 변신한 교장 키우는 글입니다.
A5. 페이지는 대략 30페이지 안팎 예상중. 얘도 좀 써보고.... 정보 수정할게 많군요? 깔깔?
하야미 코우헤이는 아침 해를 맞으며 눈을 떴다. 아플 정도로 눈부신 아침 햇살에, 어렵사리 눈을 뜨고 나서 기지개를 쭉 피며 우아한 아침을 시작하려 했던 코우헤이는 오늘따라 유독 몸이 잘 펴지지 않음을 느끼고는 이상히 여기고 있었다. 그 펴지지 않는 몸을 가지고 바닥으로 내려가려던 코우헤이였지만, 이상하게 오늘따라 바닥이 멀게만 느껴졌다. 아니, 먼 정도가 아니었다. 마치 5층 건물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느낌일 정도로 아득했다. 어제 잠을 잘 못자서 피곤한가. 그렇게 생각하고 내려가려 했지만, 바닥까지 가는 길 또한 아득히 멀기만 했다. 이상한 일이다. 하야미는 고개를 저었다. 그와 동시에, 그의 몸에서 푸르륵 소리가 났다. 하야미는 깜짝 놀랐다. 아무리 들어도 그것은 자신의 몸에서 나는 소리였던 것이다. 하야미는 좀 더 몸을 움직여 보았다. 푸르륵, 푸르륵. 쉭쉭. 아무리 들어도 사람의 몸에서 나는 소리는 아니었다. 하야미는 어렵사리 걸었다. 그렇게 침대 위를 미끄러져, 어렵사리 바닥에서 떨어진다. 어찌저찌 착지한 하야미는 거울을 향해 갔다. 자신의 우아한 하루를 책임지는 전신 거울. 그 앞에 선 하야미는 거울에 비치는 것을 보며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갈색과 검은 색 사이의 색을 지닌 몸, 그리고 날개. 짧은 팔다리로 기는 모습과 길게 뻗은 더듬이. 그 모습은 그야말로 지구 최장 생존 기록을 자랑하는 바로 그 벌레.
바퀴벌레의 모습이었다.
“으아아아아아악!”
하야미는 육성으로 비명을 질렀다. 어차피 이 집에는 하야미 혼자였기 때문에 이 소리를 듣고 달려올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그럼에도 난감한 건 난감한 것이다. 이것은 그야말로 어느 날 일어난 재앙이었다. 갑자기 어느 유명한 소설이 머릿속에서 떠오른다. 그 때 그 주인공이 어떻게 되었더라. 죽지 않았던가? 우아한 스스로를 보며 자기만족에 빠져 살던 하야미에게 있어 이것은 청천벽력과도 같은 것이었다. 물론 적절한 이동 속도와 날 수 있는 날개 정도는 있었지만 이래서야 일에 크게 지장이 생김은 물론이요, 자신의 사명을 다 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하야미의 머릿속에는 가장 먼저 그 사람이 떠올랐다. 자신의 주인이자 사명을 주었던 그 사람, 가모우 미츠아키. 하지만 그 사람에게 이런 모습을 보일 수는 없다. 방법이 없었다. 아니, 애초에 학교에 가다가 죽을 지도 모르는 판이었다. 사실 지금 슬슬 아침 해가 괴로워지려던 참이었다. 누구보다도 저 빛을 즐기던 자신이, 어째서 이렇게 밑도 끝도 없는 어둠으로 추락해야 하다니. 그 사실은 견디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이대로 학교를 갈 수도 없다. 어쩔 수 없었다. 오늘 하루는 쉬자. 그렇게 생각한 하야미는 그 작은 몸으로 자신의 핸드폰이 있는 방향까지 어찌저찌 움직였다. 그리고 닿지 않는 짧은 팔다리로 어떻게든 학교에 전화를 걸 수 있었다.
“아, 하야미입니다. 오늘 몸이 좀 좋지 않아서요. 죄송합니다. 제가 없더라도 일에는 차질이 없도록 해 주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다행히 이 모습이어도 목소리는 나온다는 것이 하야미에게는 기적과도 같았다. 적어도 일단 오늘은 자신이 아픈 것으로 처리가 될 테니까. 전화를 어렵게 끊고 난 하야미는 한숨(남이 듣기에는 푸르륵 소리에 불과했겠지만)을 쉬었다. 더듬이가 축 쳐진다. 이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하야미는 아직도 자신에게 일어난 거짓말 같은 일들을 믿을 수가 없었다. 물론 그렇게 따지면 애초에 조디아츠 자체가 좀 문제가 많은 시스템이지만 그 점은 지금 넘어가도록 하고.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무슨 일도 없었는데 이렇게 하루 아침만에 바퀴벌레가 된다는 건 하야미의 상식선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안 그래도 조디아츠 형태가 바퀴벌레 같다고 맨날 놀림 받는데! 하야미는 서러워짐을 느꼈다.
그러다가 그는 문득 스위치에 생각이 미쳤다. 조디아츠 스위치. 인간을 더 나은 형태로 진화시키는 스위치. 그렇다면 지금 형태보다 더 나은 형태로 진화할 수 있지 않을까? 하다못해 조디아츠 형태가 되면 도움이라도 청할 수는 있겠지. 그렇게 생각했던 하야미는 자신의 코트 주머니로 향했다. 쉭쉭 소리가 연신 그 방을 울린 뒤에, 덜그럭 하고 스위치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하야미가 스위치를 꺼내는 데에 성공한 것이다. 그 스위치를 따라가, 굴러가던 스위치를 붙잡은 하야미는 그것을 몸으로 있는 힘껏 눌러보았다. 스위치가 눌리는 소리가 나고, 스스로의 몸이 변하는 느낌이 났다. 성공인가? 그렇게 생각한 하야미였지만, 몸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여전히 자신은 바퀴벌레였다. 아니, 그 형태가 리브라 조디아츠처럼 생긴 바퀴벌레였다. 이래서야 의미가 없었다. 어떻게 해도 하야미는 바퀴벌레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