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천칭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근데 제가 갈 때 계시지 않으시어.... 저는 아직 책을 못 봤군요.....괜찮겠지요....
정말 오랜만에 게천칭 쓴 것 같습니다.
좀 예전으로 돌아간 느낌이 들었어요.
4P 정도로 드려서 좀 짧습니다. 축전이 분량폭발하면 이래저래 난감하니까...
나는 분명히 죽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살아 있었다.
기적과도 같이 무사히 돌아온 이후, 나는 키사라기 겐타로에게 그가 죽은 곳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 사람을 추모하고 싶다고 말하니 그는 맥이 빠질 정도로 쉽게 내게 그 위치를 알려주었다. 사자나미 해안이라고 했다. 여름이어서 거기인가. 시답잖은 농담을 하니 키사라기가 웃었다.
“교장 선생님과는 꼭 친구가 되고 싶었는데 말야.”
자리를 떠나려던 내 귀에 그 말이 들렸다. 아마 될 생각도 없었을 걸. 굳이 그 말을 입에 담지는 않았다. 언변은 천금과도 같다. 그 진의는, 한 마디를 잘못 꺼내면 가치가 뚝 떨어진다는 것일 테다. 이 말은 나 혼자만이 갖고 있어야 할 말인 것이다. 키사라기는 절대 모를, 그 인간의 추한 구석이기도 하니까.
사자나미 해안에는 사람이 적었다. 아직 완연한 여름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여기에 서 있는 건, 듣기로 그 사람이 죽은 지 1년 뒤라고 한다. 그 죽음에 대해 들었을 때 얼마나 기가 차서 웃었던지! 그렇게나 죽고 못 살던 이사장을 위해 몸을 던졌다고 들었다. 하지만 그 존재 자체가 부정당했다. 그것이 너무나 화가 났다고 키사라기는 말했다. 그런 키사라기가 내게는 꽤 이상하게 보였다. 아마 그 점은 내가 키사라기를 영원히 이해하지 못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게 꽤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스승, 가모우 이사장은 그에게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그건 잠깐 호로스콥스 놀이를 했던 나조차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같은 상황에서도 그는 나를 더 총애했지 그를 더 총애하지는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스승은 실적주의였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그 사람은 지는 해였고 나는 뜨는 해였으니, 스승의 총애가 내게 기우는 것도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니지 않을까? 어쨌든 그런 내 입장에서 보면 스승의 반응은 그다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인연이란 게 끝이 꼭 연결되어 있지는 않다는 것이지.
인연의 끝인가.
사자나미 해안에 그 사람의 흔적은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 이후로 1년이 지났기도 했고, 무엇보다 죽었을 때 아무 흔적이 없었다고 그 키사라기가 말하지 않았던가. 새삼스럽게 당연한 것을 실감하면서도 나는 끝끝내 그 조각 하나 떨어지지 않았을까 바닥을 살펴보고는 하는 것이었다. 어리석기는. 나는 부채를 펼쳤다. 우주의 먼지씩이나 된 인간의 흔적이 여기에 있을 리가 없는데. 부질없는 것을 찾고 있다.
실은 아직도 잘 실감이 나지 않는다. 나는 1년 동안 거의 대부분을 잠들어 있었고, 어렵게 여기로 돌아온 것도 깨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훅 지나간 1년이라는 세월은, 내게는 채 두 달도 느껴지지 않는 것이었다. 대체 얼마나 많은 시간을 낭비한 것일까. 물론 그 때 죽은 것보다는 훨씬 나으니 바르고 누님에겐 감사해야 할 일이려나. 그걸 누님이라 해도 될 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렇게 짧게 느껴지는 세월이니 아무래도 나는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이 날 수밖에 없다. 나를 증오스럽게 바라보는 눈이라던가, 나를 깔보면서도 어쩌지를 못해서 안절부절못하는 그 표정이라던가. 우아한 척 하는 그 동작이나, 본성을 드러낼 때의 천박함마저. 그 모든 것이 선명한데 이제 없는 사람이라고 한다. 내게는 좀 믿기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내가 돌아와 있다는 것 자체가 그것을 증명하니 수가 없었다.
“교장 선생님.”
허공에 대고 만담이라도 할까 하다 그만두었다. 유치하기 짝이 없다고 느껴진 탓이다. 어차피 들을 사람도 없는 자리에서 하는 만담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내 재주는 듣는 사람이 있는 데에서 떠드는 것이 정답이다. 대신 최대한 그 해안을 눈에 담았다. 바다가 출렁이는 소리. 파도가 밀려오는 모습. 파도와 부딪히는 바위. 그 모든 것을 눈 안에 담다가 역시 생각한다. 조금만 더 오래 버틸 것을. 더 오래 버텨서, 최대한 그 사람의 속을 긁으면서 진득하게 살아남을 것을. 그렇다면 보았을지 모른다. 이 눈으로. 그 사람이 죽는 모습을. 어떻게 죽었을까. 어떤 얼굴을 하고 죽었을까. 만일 그 자리에 내가 있었다면 그 사람은 나한테 어떤 식으로 말을 하고 있었을까.
그것을 상상하는 건 퍽 즐거운 일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건 교장 선생님의 일그러진 얼굴. 나를 바라보는 증오스러운 눈길. 치우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 눈썹의 씰룩임 정도이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으면 여전히 그랬을까? 아니면 키사라기가 말한 대로 ‘순수하게’ 스승을 향해 웃고 있었을까. 나는 그것이 너무 궁금했다.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아 아주 아쉬울 정도로. 나는 눈을 감았다. 천천히 상상해 보았다. 이사장을 지키기 위해 뛰어드는 교장 선생님. 그 사람의 시선 안에는…….
내가 있을 리가 없었다.
퍽. 무슨 소리인가 했더니 내가 부채를 떨어뜨린 소리였다. 혀를 차며 나는 부채를 주웠다. 젖은 모래가 부채에 들러붙어 있었다. 이거 못 쓰려나. 나는 모래를 탁탁 털었다. 갑자기 기분이 확 나빠졌다. 내 재능을 더욱 높이는 내 빛나는 상상력은 이럴 때엔 그다지 쓸모가 없었다. 나는 돌아섰다. 이제 바다는 보이지 않았다. 파도 소리만 조금 들릴 뿐이었다.
스승의 눈에 들려고 필사적이던 그 사람이 떠오른다. 그 사람이 내게 가진 증오, 그 모든 것의 끝에는 스승이 있었다. 자신이 원하지 않게 태어났던 호로스콥스. 그럼에도 자신의 총애, 그 모든 것을 가져가버린 호로스콥스. 나는 그 증오를 즐겼다. 오히려 그 추악한 본면을 드러내던 이를 한없이 조롱하기에 바빴다. 그 추악함 속, 그 시선 안에는 틀림없이 내가 들어 있었다. 하지만 죽을 때. 그 때엔 분명 내가 없을 것이다. 그것이 아주 화가 났다. 왜? 별로 그 이유는 중요하지 않았다. 나를 안중에도 두지 않는 게 싫을 뿐이다. 그 사람이 보인 추악한 면모는 오직 내 앞에서만 보이던 것이다. 평소에는 웃기지도 않는 가면을 쓰고 있으니까. 스승 앞에서조차 그랬다. 오로지 내 앞에서만 보여 왔던 것이다! 그런데 상상 속에서조차 그 인간은 나를 무시하고 있었다.
용서할 수 없어. 멋대로 죽은 것도 모자라서.
부채를 쥔 손에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음을 알았다. 짓씹고 있던 어금니가 좀 아픈 것도 같다. 나는 다시 바다 쪽을 보았다. 바다 너머에 펼쳐진 하늘을 보았다. 주황색이었다. 이제 곧 해가 질 모양이다. 나는 그 쪽을 한없이 바라보았다. 곧 밤이 될 것이다. 그러면 아마 그 인간이 죽은 시간도 다가올 것이다. 그 때까지 기다려줄 생각은 없다. 어차피 흔적 하나 남겨놓은 게 없는 이상, 그 시간에 본다고 해서 나타날 리도 없다.
나는 다시 돌아섰다. 그 빌어먹을 얼굴을 있는 대로 짓밟아, 어느 누구도 생각하지 못하고 오로지 나만을 눈에 담는 순간을 생각하며. 흥. 그러게 누가 멋대로 죽으라고 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