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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rm] 지하실의 해방
    그 외/AA 2016. 4. 13. 21:57




     무엇에 당한 지도 모르는 채로 눈을 뜬 나의 눈에 보인 건 지하실이었다. 아예 빛이 없는 곳은 아니었지만, 시야를 가릴 정도로 어두운 곳이기는 했다. 멍한 눈을 억지로 뜨니 누군가 내 얼굴을 찍고 있었다. 찰칵. 나이가 많아봐야 고등학생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 소녀가 들고 있는 것은 내 핸드폰이었다.


     "무슨 짓이야."

     "아, 깨어났다! 기다려. 그 분을 데리고 올테니."


     뭐가 뭔지를 모르겠다 생각하던 찰나에 나의 걱정은 한 순간에 무의미하게 되었다. 소녀가 사라지고 들어온 사람은 여성. 긴 장발을 늘어뜨린 채 붉은 입술이 도드라지던 여성의 얼굴은 많이 익숙한 얼굴이었다. 모로보시 사나에. 현재 도주 중인 샹그릴라 십자군의 실질적 리더. 나는 내 오래된 친구가 그녀를 이전에 만난 적이 있었던 것을 기억해 냈다. 그러나 그것이 지금 내 상황에 있어 도움을 주지는 않았다. 나는 지금 의자에 묶여 있었고, 빛이라고는 한 줌 밖에 드러나지 않는 지하실에 갇혀 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을 만든 것은 십중팔구 내 앞에 자리를 잡고 앉는 그녀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지금 상황을 알 수 없었다. 나는 왜 여기에 있지? 무엇을 위해 여기에 붙잡혔나? 모로보시 사나에가 노리는 것은 무엇인가?


     "샹그릴라 십자군이 내한테 무슨 용건인데."


     나는 모로보시에게 물었다. 아무리 몸을 흔들어도 단단히 묶인 밧줄은 풀리지 않았다.


     "사람 잘못본 거 아이가? 내를 납치한다 캐도 느그들 이상향인지 뭔지랑은 상관없지 않나."


     솔직히 말하면, 이 말을 꺼낼때까지만 해도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일종의 현실 도피였을 지 모른다. 그러나 모로보시의 대답은 달랐다. 그녀의 말이야말로 도피하던 나를 현실로 끄집어내리고 있었다.


     "그래. 이건 조직과는 관련 없어."

     "기면 뭔데?"

     "내 타겟은,"


     잡아먹힐 것만 같은 지하실의 어둠 아래에서, 모로보시의 눈이 형형히 빛났다.


     "히무라 히데오."


     모로보시의 입에서 나온 이름은 뜻밖의 것이었다. 


     "히무라?"


     나는 놀라 저도 모르게 그 이름을 다시 뱉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듣고도 이해할 수 없었다. 왜 그 이름이 나오지? 히무라 히데오라고 함은 나의 오래된 친구의 이야기이다. 범죄학을 전공해 나의 모교인 에이토 대학에서 준교수로 일하고 있는 그는, 범죄 현장을 통해 범인의 심리나 범죄 등을 분석하는 일종의 '필드 워크'라는 방식으로 수사를 진행하는 인간이라 나는 그에게 '임상범죄학자'라는 호칭을 붙여주었……다는게 중요한 건 아니지. 어쨌든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가 일전에 모로보시와 만난 적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모로보시에게 트리거가 된 것인가?

     

     "그와 만나서 한 눈에 알았어."


     모로보시는 제 뺨을 손으로 감싸며 말했다.


     "그는 나와 같은 이쪽 사람이라는 걸."


     모로보시의 다음 말이 들렸다. 내 머리가 순식간에 차갑게 식는 것을 느꼈다. 불안하고 갑갑하던 지하실의 공기 속에서, 마침내 머리가 딱 한 번 냉정을 되찾은 것이다. '이쪽' 사람이라니. 그럼 히무라가 범죄자라기도 하다는 것인가? 물론 예전에 한 번 그의 동기를 물었을 때 히무라는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기는 하다. '사람을 죽여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실행하지 않았다. 이미 실행한 범죄자들과는 다르다. 그런 시선으로 모로보시를 보면, 모로보시의 얼굴은 마치 사랑을 막 고백한 어린 아이의 얼굴로도 보인다.


     "데이트 하고 싶다면 직접 말하는 게 어때?"


     나는 모로보시에게 놀아날 생각이 없다. 내가 말하자 모로보시는 진심으로 아쉬운 듯한 표정이다.


     "지금 그는 본래 모습이 아냐. 나는 그가 진짜 모습을 보이도록 하고 싶어."


     모로보시의 말로 확실해졌다. 그녀의 목적이 히무라 히데오라고 한다면 내가 여기에 잡힌 이유는 어디까지나 히무라를 도발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냉정하고 침착한 히무라의 이성을 잃게 만들어, 그가 나를 잃어버릴 것이라는 불안감에 휩싸이도록 만들어, 그 끝을 자신이 조종하기 위해서이다. 정말이지 이해할 수 없다. 샹그릴라니 뭐니 하는 이상한 세상을 떠드는 것만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이 여자를, 모로보시 사나에가 어떤 인간인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 내가 여전히 내 오래된 친구를 이해할 수 없는 것과 비슷하게 말이다. 정말로 히무라 히데오는 모로보시 사나에와 같은 인간인 것인가. 


     나는 히무라와 지내면서 마음 한 구석에 늘 불안감을 안고 있었다. 그가 언젠가, 내가 닿지 않을 머나먼 곳으로 떠나버리지 않을까 하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돌이킬 수 없는 곳으로 아예 가버리지 않을까. 그러나 내가 있는 한 절대로 그렇게는 하게 두지 않을 거라고 나는 다짐했다. 그것이 내 친구의 곁에 내가 있어야 하는 중요한 이유라고, 늘 생각하고 있었다. 다행히도 내가 아는 히무라는, 평소에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 지는 몰라도 내가 모르는 먼 곳으로 떠날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그것이 모로보시를 위시한, 저 너머의 있는 인간들과 히무라의 가장 큰 차이일 것이다.


     "안타깝게도. 히무라는 널 돌아보지도 않을긴데."


     그러니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히무라 히데오는 절대로 너를 선택하지 않을 거라고. 내가 모로보시를 노려보며 말하자, 모로보시는 살짝 아쉬운 듯 얼굴을 찡그리다가 다시 나를 보며 눈을 번뜩였다. 지하실의 어둠이 요동치는 것만 같다. 나를 잡아먹으려고 달려드는 것처럼 느껴진다.


     "아리스가와 아리스를 죽여도?"


     모로보시 사나에는 웃었다. 잠시 잊고 있던 긴장이 다시 온 몸을 죄여온다. 어둠이 나를 조인다. 내가 느꼈던 공포는 나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나를 잃고 괴로워할 그의 모습에 대한 두려움이다. 나는 숨을 한 번 내쉬었다.


     "나는 그가 진심이 되도록 만들어, 그가 방목시킨 짐승을 해방시킬 거야."


     모로보시는 말했다. 서늘하게 웃는 그녀의 얼굴은 마치 실연당한 연인의 모습이다. 아닌가, 다시 새로운 사랑을 불태우는 젊은이인가. 아니, 이게 아니다. 그녀는 몹시도 정열적인 여자였지만, 안타깝게도 히무라의 취향은 아니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히무라의 여자 취향은 잘 모른다.


     "그의 진짜 모습을 보고 싶어."


     다만 지금 모로보시가 하는 말은 절대로 히무라에게 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확신할 수 있다. 이런 안타까운 내 생각을 모르는 모양인지, 모로보시는 그 말을 뱉고 혼자 자아도취에 빠졌는지 웃고 있었다. 지금도 나를 죄여오는 밧줄, 그리고 죽음에 대한 공포. 이 모든 것의 기원이 모로보시라고 하는 인간의 비뚤어진 사랑 때문이라니. 소설이라면 너무나 재미있는 소재였겠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은 현실이다. 더군다나 나는 연애 소설 작가도 아니고 말이다. 


     "그럼 죽여보던가."


     다시 한 번 강조한다. 나는 모로보시의 농간에 놀아날 생각이 전혀 없다. 지금도 긴장돼서 정말 죽을 것 같지만 여기에서만큼은 질 수 없었다. 약해 빠진 추리작가의 어설픈 도발이 희대의 범죄자 앞에서 얼마나 먹힐 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 입으로 히무라를 더럽히는 것만큼은 용서할 수 없었다. 그는 내 오래된 친구, 그리고 같은 배를 탄 동승자이다. 그를 지켜보기로 했던 나의 마음을 다시 새기며, 나는 덜덜 떨리는 와중에도 모로보시를 노려보았다.


     "내를 여까정 끌고 왔는데, 한 번 죽여봐라. 니한텐 쉽지 않겠나?"

     "상황 판단이 전혀 안 되는 거야?"


     모로보시는 말했다. 평상의 얼굴이다. 하지만 감정을 마음껏 드러내던 그녀가 갑자기 정색하는 것을 보자, 나는 희망이 조금 보이는 것 같았다. 모로보시는 히무라와 자신이 같다고 했지만 내가 보기엔 전혀 다르다. 히무라는 절대로 자신의 격렬함을 완전히 드러내지 않는다. 늘 곁에 있는 나조차도 문득문득 보이는 것이 전부이다. 그런 녀석을 모로보시 따위가 이해할 리 없다. 나는 나의 승리를 알았다. 


     "잘난 니라면 내 말 이해가 갈긴데. 내를 죽여봐야 히무라는 눈 하나 깜짝 아이한단 소리다."


     모로보시의 얼굴이 확실하게 구겨졌다.


     "니가 원하는 '진짜 모습'이 뭘 말하는 건지 내는 하나도 모르겠는데, 네가 원하는 걸 얻으려면 내 죽이는 걸로는 택도 없을 기다."

     "왜 그렇게 확신하지?"

     "히무라는 내한테도 진짜를 보여준 적이 없으니까."


     웃을 상황이 아닌데 이상하게 웃음이 났다. 말해놓고도 서글픈 기억이다. 나는 히무라의 진짜를 모른다. 이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의 곁에 있기로 다짐했고, 누가 보아도 그와 가장 오래 있었던 인간은 나임임에도 나는 히무라를 전혀 알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히무라가 나를 곁에 두고 있을 지도 모른다. 히무라는 어느 누구의 이해도 바라지 않는 듯한 인상을 줄 때가 있다. 누구도 자신의 내면을 알기를 바라지 않는 듯한, 막연한 두려움을 느끼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어디까지나 내 짐작일 뿐이지만. 나는 애초에 히무라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니까. 그의 모습에 매료되어, 무언가의 강렬한 인연을 느끼고서 그와 함께 하게 되었지만 그것이 곧 히무라에 대한 완전한 이해를 뜻하지는 않는다. 아마, 나는 히무라를 제일 모르는 인간일 것이다.


     그러니까 알 수 있다. 히무라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알 수 있다. 적어도 이렇게 쉽게, 예상대로의 패턴대로 그가 움직일 리는 없다는 것을. 자신과 닮았다고 확신하는 모로보시의 뜻대로 히무라가 움직여줄 일은 없다는 것을.


     "재미없어."


     모로보시는 질렸다는 듯한 얼굴이다.


     "자기 가치를 낮추는 남자는 최악이야."


     묘하게 아픈 말을 남기고서 모로보시 사나에는 지하실을 떠났다. 다시, 이 어둠 속에는 나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앞으로 나는 어떻게 될까? 모로보시를 도발했으니 이대로 죽게 되는 것일까. 눅눅한 공기와 공포가 마치 오래된 전우처럼 느껴진다. 나는 초조히 누군가가 빨리 내 이변을 알기를 기다리고 있다. 백마 탄 왕자가 오는 것도, 기다리고 있다.






    -



     "안나. 그의 사진을 히무라에게 보내."


     아리스가와 아리스를 감금한 지하실은 이 건물의 가장 아래였다. 한 층을 성큼성큼 올라온 모로보시 사나에는 위층에서 멍하니 앉아 있던 소녀, 오오이시 안나를 향해 말했다. 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에게 명령은 거절할 이유가 없는 의무 같은 것이었다.


     "네. 그, 저 녀석의 핸드폰으로요?"


     아무 생각 없이 명령을 수행하려던 안나가 갑자기 불안이라도 느꼈는지 확인을 요구한다.


     "빨리."

     "하지만 경찰이 조사하면 GPS로 바로 알 수 있을 텐데요."

     "곧 여길 나갈 거야."


     모로보시는 안나의 항의 아닌 항의를 묵살한다. 


     "그럼 저 소설가는……."


     그러나 무언가 성에 차지 않은 것인지 안나는 재차 물었다. 모로보시는 얼굴을 굳혔다. 그녀의 머릿속에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치욕의 순간이 소용돌이쳤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일을 순식간에 쓸모없게 만들어 버린, 저 아래에 묶인 채 잠들었을 백설공주에게.


     "이제, 쓸모 없어." 


     어렵사리 고개를 끄덕이며 안나가 핸드폰을 들어 뭐라 보낼지를 묻는다. '당신은 나와 같은 냄새가 나.' 그렇게 말하며 모로보시는 희미한 빛 아래에서, 다시 한 번 행복한 사랑의 순간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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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무라 히데오로는 첫 글입니다.


    처음 쓰는 것이다 보니 무난무난하게 각본의 빈 공간을 채우는 방식으로 쓰게 되었습니다.

    9화에서 개인적으로 몹시 아쉬웠던 부분을 쓰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아리스를 굳이 납치했던 사나에가 무엇을 근거로 아리스가 쓸모가 없다 판단했는지

    그 과정이 지나치게 생략되어 있다 보니.....

    제 나름대로 채워보겠다고 이걸 시작했습니다


    의외로 오니아리가 아닙니다 (?


    드라마를 두탕 보는 걸 마친 상황입니다만은.... 역시 2기가 필요합니다

    2기를 내지 않을거라면 작감은 빨리 자살해야 합니다 열이 뻗치니까...


    나름대로 원작을 살려보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래서 문장이 미세하게 이전 글들과 틀린 부분이 있을 것 같습니다.

    아리스가와 센세는 너무나 존잘이십니다. 여러분 원작을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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