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절망에 물든 이상향> 샘플그 외/AA 2016. 6. 7. 00:07
16년 8월 15일 쩜오어워드에 나올 예정인
드라마 <임상범죄학자 히무라 히데오의 추리>의 오니즈카X아리스 2차 창작 소설
<절망에 물든 이상향>의 샘플입니다.
A5 / 100P / 8000원
* 주의
- 드라마 기반이므로 당연히 원작인 작가 아리스 시리즈와 캐릭터 방향성이 다릅니다.
- 아리스가 샹그릴라 십자군의 교조가 되는 if 이야기입니다.
- 아리스->히무라 기반의 오니아리입니다.
- 망합니다.
- 19금 단계가 아니지만 성적인 암시가 들어간 표현이 존재합니다.
1
오렌지빛 석양이 창문을 넘어와 거실을 가득 메운다. 눈이 부실 정도로 밝은 석양이니 마주보면 분명히 아름다울 것임을 알지만, 안타깝게도 나에게 그것을 들여다 볼 시간은 없었다. 지금 눈앞의 원고 마감이 시급한 탓이다. 단편이라 분량 자체는 많지 않았지만 이미 몇 번 사정하여 미룬 원고다. 오늘 자정까지 넘겨야 탈이 없다. 스토리 자체는 있었지만 역시 동기가 문제다. 사이코패스니 뭐니. 온갖 걸 다 들이대도 이 사건에 맞지가 않아 골이 아팠다. 마침내 그 동기를 떠올려 어떻게든 아귀가 맞는 이야기를 짜낼 수 있게 되었을 때에는, 거실을 가득 메우던 오렌지빛은 사라지고 없었다. 벌써 밤이 되어버렸구나. 그래도 석양을 희생(?)시킨 덕분에 마감에 지장은 없을 것 같다. 나는 찌뿌둥한 어깨를 오른손으로 꾸욱 눌렀다. 근육에 찌릿찌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대로 몸을 쭉 펴 기지개를 켰다. 노트북에 켜 둔 워드 창을 보았다. 이제 마무리만 지으면 되겠군. 원고를 보며 나는 안도를 느꼈다.
좋아. 잠깐 쉬었으니 작업을 개시해 둘까. 마감 직전에 핑핑 돌아가는 머리를 두었다가는 마감시간 직전까지 또 힘을 못 쓰게 된다. 나는 기합을 한 번 넣고 자판을 두드렸다. 경쾌한 소리와 함께 나는 순식간에 몇 페이지를 써 내려갔다. 번뜩이는 마지막 문장을 향해 달려가는 원정이 지루하지 않았다. 이윽고 원정을 마무리하는 온점을 찍고 나서야 나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해냈다. 늦지 않았다. 우선 저장하고 오타가 있는지 간단하게 훑어본 뒤, 나머지는 담당에게 맡기기로 다짐하고 메일로 원고를 송신했다.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아리스가와 선생님. 원고는 됐습니까?” 됐다고 대답하니 그의 목소리가 밝아진다. 바로 확인하겠다는 답변을 받고 전화를 끊고 시계를 보니 어느덧 9시 30분이다. 마감 탓에 전날 밤 잠을 제대로 못 잤더니 잠이 쏟아지려고 한다. 길게 하품을 하고서 나는 이미 어두워진 창문을 보았다.
그 때 흠칫 놀랐다. 창문으로 낯선 그림자가 비치고 있었다. 익숙한 인영은 아니다. 애초에 이 집에는 나 혼자 산다. 누가 문을 두드린 적도 없는데 어떻게 집 안으로 들어온단 말인가. 귀신인가? 속절없는 생각을 하고서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철컥.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놀랍게도, 현관 앞에는 사람이 서 있었다. 나는 기절할 뻔 했다. 다행히 정신을 어떻게든 붙들 수는 있었다. 바로 어제 9시 30분의 우리 집에서라면 절대로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 지금 일어난 탓이다.
“너는…….”
인기척 없이, 문을 연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침입이라 창문을 보지 않았다면 그가 바로 뒤에 설 때까지 몰랐을 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모골이 송연하다. 좀도둑이라면 이 상황에 바로 도망쳤겠지만 안타깝게도 내게로 다가오는 이는 좀도둑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거물급에 가까울 것이다. 키는 약 185cm 정도, 내 오랜 친구와 비슷한 크기다. 그러나 얼굴은 훨씬 어리다. 의외로 단정한 투블럭 스타일에 가죽 재킷. 일견 세련되어 보이기도 하는 이 남자의 빛나지만 서늘한 눈동자가 그대로 나를 향해 쏟아지는 것 같다. 나는 이 얼굴을 알고 있다.
“오니즈카…….”
나는 나도 모르게 그 이름을 중얼거렸다. 사내는 오니즈카 류조(鬼塚竜三)라고 한다. ‘샹그릴라 십자군’이라고 하는 무리의 No.2이며 십자군 내에서도 특히 극단파인 모양으로, 지금은 테러 혐의로 도주 중인 도주범이다. 샹그릴라 십자군은 모로보시 사나에(諸星沙奈江)를 중심으로 하여, 그녀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이상향을 위해 혁명을 일으키겠다는 생각으로 똘똘 뭉쳐서는 테러 등으로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는 범죄자 집단이다. 누가 보아도 범죄자 집단으로밖에 보이지 않지만, 그들 내부에서는 이상할 정도로 결속력이 있고, 특히나 모로보시 사나에를 향한 충성도는 절대적이다. 사이비 종교 비슷한 느낌도 있다. 아니, 사이비다. 뭐, 애초에 나는 종교를 믿지 않는다. 있지도 않은 낙원 같은 허상에 집착하는 마음을 내가 온전히 이해하기란 불가능하겠지.
지금은 그것이 문제가 아니다. 어떤 수단을 썼는지는 몰라도 그는 지금 내 집을 알아내, 내 집의 잠긴 현관문을 열고 침입했다. 나는 그대로 얼어붙어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전에 있었던 끔찍한 기억이 생각났던 탓이다. 생각보다 그렇게 오래 된 일도 아니다. 나는 이 남자에게 납치당한 적이 있다. 그 때는 십자군의 수장인 모로보시 사나에의 명령에 의한 것으로, 그녀의 목적은 나를 통해 내 오랜 친구, 히무라 히데오(火村英生)를 끌어들이기 위함이었다. 결국 그 목적이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은 탓인지 그녀는 나를 놓아주었다. 그냥 놓아줬다면 참 좋았겠지만 그 와중에 사건 하나에 휘말려버려서 조금 골치가 아프기도 했다. 이후에 히무라는 모로보시 사나에와의 대결에 휘말려 잠시 실종되었다 돌아오기도 했다. 보통이라면 관련될 일이 없었을 법도 하건만 나, 그리고 히무라와 이들은 관련성이 있었다. 그러니 아마 이번 오니즈카의 방문 역시 내게는 영 달갑지 않은 이유일 것임은 분명하다.
“아리스가와 아리스 씨.”
차분히 그는 내 이름을 불렀다. 낮게 깔은, 차가운 목소리다.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뒤이어 이어지는 안부 인사에 혼이 빠질 것만 같다. 뭘 어찌해야 할지 몰라 나는 눈을 꿈뻑이며 그를 보았다.
“뭐, 뭔데 남 집에 불법침입이가?”
나는 어렵사리 그 말을 꺼냈다. 그러자 오니즈카는 고개를 숙였다.
“놀랐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공손한 편이라 더 기분이 좋지 않다. 갑작스러운 존대 말투 역시 마찬가지다. 납치할 당시에는 모로보시가 아닌 인간에게는 반말하는 투였던 것으로 기억을 하는데.
“남 집에 왔음 문을 두들겨야 하는 거 아이가?”
“몇 번 두드렸지만 반응이 없기에 실례를 무릅쓰고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야 그 때 나는 원고의 무아지경에 빠져 있었으니, 싶다가도 기다리지 않고 들어왔다는 점이 섬뜩하다. 애초에 범죄자에게 일반인의 상식을 기대하는 것이 무리인가. 나는 한숨을 쉬었다. 잔뜩 긴장된 다리가 아팠다.
“해서? 무가 그리 급해갖고 남의 집 문까지 따 들어왔나?”
내가 묻자 오니즈카는 나에게로 시선을 내렸다. 속을 알 수 없는 눈동자가 나를 응시한다.
“당신과 거래를 하고자 합니다.”
오니즈카는 짧게 대답했다.
“거래?”
“네. 그걸 위해 왔습니다.”
앞으로 일어날 일이 위험할 것을 직감하면서도, 나는 결국 그를 내 집으로 들일 수밖에 없었다.
“앉아도 되겠습니까?”
“그러던지.”
마치 제 집인 마냥 자연스럽게 소파 위에 앉는 오니즈카다. 나는 아직도 정신이 혼미했다. 거래라니, 정말 얼토당토않은 말이다. 도대체 나와 오니즈카가 거래할 일이 무엇이 있단 말인가. 장담하건데, 샹그릴라 십자군과 내가 얽힐 일은 없다. 이전에 히무라 때문에 얽힌 적은 있지만, 그것 역시 모종의 사건으로 어느 정도는 관계성이 옅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내 입장에서야 ‘이제 와서 무슨?’ 이란 생각이 드는 것도 당연하다. 납치되었을 당시에 하는 거래라면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소리지 하면서도 받을 수밖에 없었겠지만 지금은 그런 상황도 아니니 말이다.
“놀라게 하여 죄송합니다.”
다짜고짜 듣는 사과에 또 한 번 나는 당황하고 만다.
“아리스가와 씨를 찾아온 것은, 우리 교단의 미래를 위해 당신이 꼭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다과를 내놓을 수도 없는 미묘한 분위기 속이라 재빨리 본론으로 넘어가 준 것은 고맙다. 그러나 시작부터가 너무 충격이라 나는 나도 모르게 얼빠진 소리를 내고 있었다.
“에에?”
오니즈카는 딱히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야 놀랄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겠지.
“샹그릴라 십자군은 얼마 전 거대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야말로 변혁의 파도. 내부의 혁명이지요.”
오니즈카가 까만 눈을 매섭게 빛낸다.
“그게 내랑 문 상관인데?”
“모로보시 사나에 님은.”
내 질문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오니즈카는 말을 이었다.
“히무라 히데오에게 지대한 관심을 가졌지요.”
나는 가슴이 절로 답답해졌다. 물이라도 그냥 가지고 올 것을 그랬나. 목이 바싹바싹 타고 있었다. 왜 그 이름이 나오는 거야. 또 그 때처럼 히무라를 끌어들일 셈일지도 모른다.
‘나를 혼자 두지 마.’
참을 수가 없었다. 또 그 때와 같은 일은 사양이다.
“그러나 그 과도한 집착은 혁명의 후퇴를 불렀습니다.”
“…….”
그 뒤의 말이 생각 외의 전개라 나도 귀를 열 수밖에 없었다. 오니즈카의 차가운 시선이 나를 응시한다.
“그렇기에 내가 혁명을 일으키려 합니다.”
가라앉은 목소리는 진심을 담고 있다. 그 말투 안에 담긴 서슬 퍼런 칼날이 누구를 향했고 어떤 결말을 낳았는지, 나는 그것이 그림처럼 내 눈앞에 그려지는 것이 보였다.
“당신이 필요합니다.”
“하아?”
아니, 그러니까 왜 그렇게 되냐고. 아까부터 논리의 비약이 심하잖아.
“나는 사실 히무라 히데오에게는 그다지 흥미가 없습니다.”
오니즈카는 다시 설명하기로 한 모양이다. 그래. 그래야지. 어디부터 따라가야 하는지 전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단 말이다.
“그러나, 히무라 히데오를 지키려 하는 당신에겐 몹시 흥미가 있습니다.”
다음 말이 칼처럼 내게 꽂히는 것을 느꼈다. 그 한 마디로 인하여 작가의 쓸모없는 상상력이 마구 발휘되기 시작한다. 과연 그 뒤로 오니즈카는 무슨 말을 꺼내게 될까? 몇 가지 상상을 한 뒤에 나는 그의 말이 궁금해지기까지 한다.
“이것을 근거로, 나는 아리스가와 씨가 반드시 내 거래에 응할 거라고 믿습니다.”
오니즈카는 또박또박 제 말에 힘을 주어 말했다. 나는 어이가 없어 한숨을 쉬었다.
“무신 근거? 니 어디에다가 근거를 말했니?”
“히무라 히데오의 목숨이 걸려 있으니까요.”
“뭐?”
히무라를 납치라도 하려는 생각인가? 고작 그런 걸로 나를 움직이게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인가. 오니즈카의 기대와는 달리 나는 그런 인간이 되지 못한다. 히무라는 나의 오래된 친우이자 둘도 없는 소중한 이다. 그를 위해서라면 나는 목숨도 걸 수 있다. 내 스스로에게 장담한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이런 식으로 그의 목숨을 담보로 하는 거래에서 섣불리 샹그릴라의 손을 드는 것을 히무라가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나와 그의 세월은 괜히 쌓인 것이 아니다. 히무라는 내가 샹그릴라의 손을 든다면 자기의 목숨을 버릴 것이다. 그에 대해 전부는 모르더라도 그 정도는 안다. 그러니 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거래는 하지 않을 것이다. 오니즈카는 당연히 내 굳은 결의를 모를 것이다.
“그따구 겁박 해 봐라. 내한테 통할 것 같나?”
“협박으로 들리나?”
바보냐. 누가 봐도 이건 협박이잖아. 오니즈카는 제 큰 눈을 깜박였다.
“안타깝지만 단순한 협박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실제로 지금 모로보시 사나에는 히무라 히데오와의 대결을 준비하고 있으니까요.”
나는 떠올리기도 싫은 끔찍한 일에 또 휘말리고 말았음을 깨달았다. 애초에 오니즈카가 내게 접촉한 것부터가 이미 잘못된 것이었다. 어둠의 소용돌이 속에서 일개 작가인 내가 대체 뭘 할 수 있을까. 히무라를 지킬 수 있을까. 또 그 때처럼 히무라를 잃게 되는 건 아닐까.
“또 고딴 짓 하게 두나 봐라.”
나는 말했다. 오니즈카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말하실 거라 생각했습니다.”
“니가 내를 어찌 아는데.”
“우린 초면이 아니니까.”
하기는 총구 맞댄 사이기는 하다. 그의 총과 내 이마가.
“나는 사나에 님이 그에게 집착하는 것이 탐탁지 않아. 완벽한 시간낭비지. 우리의 혁명은 멀어. 일개 준교수 따위에게 붙들려서야 곤란하다고.”
오니즈카는 제 손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말투가 살짝 바뀌었다. 어설프기 짝이 없는 가장조차 숨기고, 이제 진짜 속내를 드러낼 생각인가.
“동감.”
뭐, 말이야 맞는 말이다. 나도 너와의 시간이 낭비고 말이야.
“하지만 그 집착이 기회가 되기도 해. 그 분이 히무라 히데오를 노리니까. 그 상황이 당신을 움직이는 방아쇠가 된 거지. 아리스가와 선생.”
오니즈카는 손을 포개며 만지작거렸다.
“덕분에 히무라를 미끼로 나도 선생에게 손을 뻗게 된 거고.”
“해서. 내한테 뭘 어쩌란 긴데?”
일단은 들어볼 수밖에.
“모로보시 사나에를 자를 생각입니다.”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끔찍한 소리를 잘도 하는군. 피식 웃는 오니즈카의 눈은 확실히 맛이 가 있다. 그럼에도 나는 나보다 어린 이 청년에게 경외심 비슷한 걸 느낄 지경이다. 범죄자에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어 선택이지만.
“그러나 모로보시 사나에는 십자군의 빛이자 절대적인 카리스마. 그 사람을 자르려 한다면 십자군에게는 새롭게, 우리의 길을 인도해 줄 사람이 필요하게 된다.”
“니 No.2 아이가? 니가 함 되지 않나.”
“나는 빛이 아니다. 전사들이 빛을 따라갈 수 있도록 먼저 앞장서는 역할을 맡고 있지.”
아아. 그러십니까. 그래서 그렇게 여기저기서 테러 저지른 거고? 기가 찰 노릇이다.
“웃길라면 더 연습을 하라. 해서 그 빛이 내란 거고?”
오니즈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 잘못 찾았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샹그릴라 십자군의 빛이라니. 애초에 할 생각도 없지만 어떻게 나를 가지고 그런 생각을 하는가. 나는 정말로 저 청년의 머릿속을 읽을 수가 없었다. 미스테리 작가로서 범죄자의 심리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소릴 누군가 들으면 웃겠지만 솔직히 내가 무슨 점쟁이도 아니고, 나는 내 앞에 있는 이 범죄자의 생각을 알 수가 없었다. 오니즈카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오히려 제대로 찾았지. 십자군에 필요한 빛은 우리를 바깥에서부터 올바른 길로 인도할 존재야. 굳이 ‘우리와 같은’ 사람일 필요가 없어.”
오니즈카는 제 다리를 꼬았다.
“오히려 우리와 같은 종류의 인간이라면 곤란해. 모로보시 사나에 같은 존재에게 홀리고 말 테니까.”
이 남자는 의외로 치밀하다. 혁명이라는 말도 안 되는 사상으로 모든 일을 결정하면서, 말도 안 되는 것을 납득하기 위한 공작은 앞뒤 모두 견고하다. 이 남자의 수배 이유가 테러를 일으키고 도주한 거였던가. 샹그릴라 십자군의 No.2이자 행동대장으로 알려진 오니즈카는 내 생각 이상으로 자기 자신에게 냉정한 이였다. 이 남자는 두렵지만, 모로보시 사나에가 가진 느낌과는 다르다. 모로보시는 확실히 주변의 공기를 제 것으로 바꾸는 힘이 있었다. 상황을 유리하게 이끌어 나갈 자신이라고 해야 할까. 반면 오니즈카가 가진 것은 거칠지만 망설임이 없는 기류.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싸워 나갈 것이라고 하는 굳건한 마음. 나는 그의 기류에서 익숙한 공기를 느꼈다. 곧 그 정체도 깨달았다.
히무라다.
이전 모로보시 사나에는 자신과 그가 닮았다고 했지만 내가 보기엔 오히려 반대다. 모로보시 사나에는 전혀 히무라와 닮지 않았다. 오히려 히무라를 닮은 건 이 남자 쪽이다. 오니즈카의 이 모습이야말로 소위 말하는 ‘저쪽 세계’의 히무라. 그야말로 거울이다. ‘사람을 죽이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는 히무라가 정말로 사람을 죽였다면 이런 모습이 되지 않았을까. 그 무서운 사실을 깨달은 나는 몸이 굳는 것만 같았다.
“빛은 반드시, 우리와 다른 시각을 가진 존재여야 해. 그래야 우리의 혁명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여태 해 왔던, 덧없이 몸을 부딪치기만 해선 혁명은 이룰 수 없어. 결국 그 끝은 자멸 혹은 멸망뿐이다.”
“늬들 존재 자체가 멸망이 당연하단 생각은 안 하나?”
도발적인 질문에 오니즈카의 눈이 매섭게 나를 노려보았다.
“당신이라면 그렇게 말할 줄 알았지. 당신에게 그런 부분의 이해를 바란 적은 없어.”
“이해의 문제가 아인데. 느희가 하는 건…….”
“명백한 범죄.”
오니즈카의 깊이 침잠한 눈은 누가 보아도 끔찍한 범죄자의 그것이었다. 들여다보려고 해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어둠 그 자체.
“알면서 느그들은…….”
“대중 중에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는 건 알고 있다. 그러나 그들 역시 언젠가는 우리의 뜻을 알게 되겠지. 아리스가와 씨. 우리는 당신 같은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혁명을 해야만 의미를 가져.”
예상은 했지만 정말로 말이 통하지 않는다. 비뚤어진 신념을 가졌고, 고칠 수도 없고 고칠 생각도 하지 않으며, 심지어 거기에 설득력까지 부여하려는 이. 이미 차고 넘치는 사실을 외면하면서 그가 얻으려는 것이 무엇일까. 나는 오니즈카가 두려웠지만, 그와 별개로 흥미가 생기고 있음을 느꼈다. 작가로서의 내가 외치고 있었다. 가까이 가면 무언가 특별한 일이 생길 것이라고. 그러나 그런 특별함을 얻느니, 지금 이대로 살아가는 것이 훨씬 낫지 않은가. 범죄랑 얽히는 건 히무라의 필드 워크를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지금 느그는 내를 설득 몬 하고 있다.”
듣는다 하더라도 내게 맞는 자리는 아니다. 분명 더 적합한 인간이 있을 것이고, 애초에 과거 나를 납치했던 놈의 말을 들어줄 이유는 없다. 아주 잠깐 혹했던 것은 사실이나, 그 잠깐으로 범죄에 뛰어들어서야 저 놈들과 내가 똑같이 되어버린다. 그래서는 안 되지. 아무렴.
“근데 어케 니들의 길을 내가 알려줄 수 있겠나?”
“…….”
오니즈카의 눈에 아주 잠깐 아쉬운 빛이 서려 보였다.
“어쩔 수 없지. 오늘은 물러나겠다.”
“아주 오지 말그라.”
훠이훠이 손짓을 해도 오니즈카는 개의치 않는 듯, 또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서 문을 열고 나갔다. 그가 나가고, 발소리가 복도에서 멀어지는 것을 알고 나서야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죽는 줄 알았다. 여차하면 목숨을 빼앗길 만한 위기상황이었음을 깨닫고 내 몸을 보니 식은 땀투성이다. 원래라면 마감을 끝내고 신나게 얼마 전 받은 와인을 마실 생각이었는데. 왜 이렇게 된 거지? 기분이 이상해져서 그냥 잘까 했지만, 결국 나는 와인을 선택했다. 그러나 그것을 신나는 마음으로 마실 수는 없었다.
'그 외 > AA' 카테고리의 다른 글
[drm] 히무라 로그 (0) 2016.04.13 [drm] 오니아리 로그 (0) 2016.04.13 [drm] 지하실의 해방 (0) 2016.04.13 [drm] (나름)鬼アリ 컷로그 (0) 2016.0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