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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우브렌] 풍화의 끝
    가면라이더/Drive 2016. 5. 13. 00:07



    본 글은 특촬 사망합작(http://brillanteyou.wix.com/deathamusement)에 참가한 글입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합작에 참여한 글이므로 따로 비번을 걸지 않았습니다.

    커플링은 알아서 주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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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면라이더 드라이브 후반부 및 엔딩 네타가 있습니다. 주의해주세요.




    1


     시대가 좋아졌다. 다들 그렇게 말한다. 물론 세상은 시대가 좋아졌다는 말에 반박조차 할 수 없도록 발전했다. 인간의 생활은 이전보다 더욱 편리해졌고, 효율성은 높아졌다.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해 도태된 이는 있더라도, 그것이 대부분의 사람에 해당하지는 않았다. 분명히 세상은 발전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누군가에게 퍽 달가운 일은 아니다.


     ‘바보 같아.’


     새하얀 병실 안, 역시나 새하얀 침대 위에 누운 이는 멍하니 천장을 보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주사바늘이 여러개 꽂힌 팔뚝에는 힘이 하나도 없다. 비쩍 마른 몸으로 환자복을 입고 누워 있는 이는 총기 없는 시꺼먼 눈을 천장에서 벽으로 돌린다. 어느 쪽을 보아도 마찬가지이다. 의미가 없다. 사내는 바짝 마른 입술을 살짝 떨며 웃었다. 침대에 아무렇게나 던져진 듯한 주름진 손을 움찔움찔 쥐었다 폈다. 그럼에도 몸에는 아무런 감각이 없다. 살아 있다는 느낌조차 들지 않는다. 가끔씩 배가 아플 때나 느껴질까. 고통으로 살아있다는 걸 깨닫는다니 썩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다. 


     “시지마 고우 님.”


     누워 있는 이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고우는 저를 호명하는 목소리를 듣자 담당 간호사임을 알았다. 간호사는 꽤 쾌활한 목소리의 소유자로, 한 번 들으면 그 목소리를 잊기 어려웠다. 고우는 고개를 돌려 그 쪽을 보았다. 주름진 사내의 얼굴이 간호사와 마주친다. 하얀 얼굴의 간호사는 미소를 지으며 그를 보았다.


     “오늘은 어떠세요?”

     “그냥. 평소랑 비슷해요.”


     고우는 다 쉰 목소리로 대답한다. 간호사는 웃으며 몇 가지 테스트를 통해 그의 상태를 체크한다. 점심은 어땠냐, 라던가. 구토는 하지 않으냐. 배는 얼마나 아프냐. 등등. 사소하지만 중요한 질문들 몇 가지를 하고서 간호사는 그것을 차트에 차분히 적어 내려갔다.


     “아, 맞다. 오늘부터 저희도 AI 간호사를 사용하기로 했답니다.”


     차트를 적다 심심했는지 간호사는 입을 열었다. 고우는 그녀가 하는 말을 그냥 듣고 있었다. 어차피 이어지는 간호사의 말도 얼마 전에 드디어 도입 통과가 되었다거나 다른 병원에 비해 늦다고 생각해서 조마조마했다던가 정도다. 그래서 시범적으로 몇몇 병동에서 시행할 예정인데 시지마 씨 역시 거기에 해당된다거나……. 까지 듣다가 고우는 경악한다.


     “나한테도?”


     저도 모르게 반말어투를 내놓고 흠칫 놀란 고우였다. 간호사는 의아한 듯 그를 보았다.


     “싫으세요?”

     “아니, 그런 것보다도. 왜 제가.”

     “말기암 환자 분들에게 늘 붙어 있기에는 AI 쪽이 더 효율적이니까요.”


     간호사는 대답하며 한숨을 쉬었다.


     “아시다시피, 제가 전속이라도 늘 시지마 씨를 보살필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렇기야 한데.”

     “이번 AI 간호사는 병실에 항상 있을 거예요. 필요할 때마다 그에게 부탁하면 됩니다. 위기 상황에는 알아서 저희들을 부르도록 되어 있고요. 물론 검진 시간에는 당연히 오겠지만, 그 외 급한 일은 AI 쪽에 부탁하시면 될 거예요.”

     “끄응…….”


     아무래도 다 결정된 듯한 일이니 이제 와서 '기계는 별로다.' 라는 말을 해봤자 씨알도 먹히지 않을 것임을 고우는 깨달았다. 애초에 고우에게 기계란 어릴 때부터 일종의 트라우마 같은 존재였다. AI 문명이니 어쩌니, 세월이 지나며 그런 말이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때조차도 고우는 제 기억에 또렷이 새겨진 그것들을 떨칠 수 없었다.


     ‘글로벌 프리즈’. 대부분 인간에게는 재앙에 가까운 사건이었지만, 이제는 그 사건을 기억하는 이들도 많이 없다. 그것을 일으켰던 존재인 기계생명체. 로이뮤드. 살아 있는 인간들 중에서 그들의 뒷사정을 기억하는 사람은 더욱 없을 것이고, 그마저도 이제 시지마 고우 본인밖에 남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들의 존재 이유와 그 때의 기억을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떠벌릴 수도 없다.


     ‘세상 사람들에게, 벨트 씨의 존재는 알리지 말자.’


     고우와 비슷하게 사정을 아는 또 다른 이, 토마리 신노스케는 죽기 직전 고우에게 말했다. 인간의 희망을 믿기로 하고, 좌절하지 않고서 살아왔던 사람조차 죽기 직전 본 것은 인간을 향한 희망이 아니었다. '벨트 씨', 크림 슈타인벨트는 죽고 난 뒤 드라이브 드라이버가 되어 신노스케와 함께 싸웠다. 그리고 마지막 로이뮤드가 사라지고 싸움이 끝난 뒤, 그는 스스로를 봉인하는 것을 선택했다. 인간이 자신이 발명한 힘을 선량하게 사용하는 그 날을 기다리며. 그것을 아는 사람이 '알리지 말자'라고 말했다. 그 사람조차도 마지막까지 그런 세상이 지금 자신에게 왔다고 생각치 않는 것이다.


     “냉정하네.”


     고우는 당시 그렇게 대답했다. 그러나 내심 고우 역시 동감하고 있었다. 절대로 그것을 알릴 수는 없었다. 그로부터 몇 년이 더 지나간 지금에조차도. 생각의 흐름이 끊어진 뒤 고우가 주변을 돌아보니 간호사는 어느덧 간 곳이 없었다. 핏. 고우는 웃으며 침대 옆에 놓인 탁상을 보았다. 그 위에는 검은 바탕에 보라색으로 포인트를 준, 바이크 모양을 한 물건이 있었다. 시그널 바이크라 부르는 물건이다.


     ‘그러니 너도 돌아오지 않는 거겠지.’


     고우는 그것의 원래 주인을 생각했다. 당연한 일이다. 떠나간 이는 돌아올 수 없다. 돌아오길 원하는 세상도 아니다. 그러니 그저 기억을 새긴 이 몸이 사라지고 흙이 되어, 로이뮤드 같은 존재가 진정으로 받아들여질 세상을 땅 속에서 지켜볼 수밖에.


     고우의 몸에 병이 생긴 건 그렇게 다짐한 뒤의 일이다. 고우는 그것에 감사하고 있었다. 어차피 그가 소중히 여기던 존재들은 모두 세상을 떠나 남은 이는 그밖에 없었다. 미련 없는 세상을 미련 없이 떠나는 것이다. 그러니 항암치료를 하자는 의사의 말도 거절했다. 어차피 죽을 몸인데 뭐하러 굳이 연명하냐고 대답했던 것 같다. 애초에 가면라이더로 굴렀던 걸 생각하면 충분히 오래 살았다. 진작 훅 가도 이상하지 않았으니까.


     “시지마 씨.”


     사라진 줄 알았던 간호사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다른 곳을 갔다 돌아온 모양이다. 다만 간호사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녀의 뒤에 낯선 존재가 같이 걸어오고 있었다.


     “소개드리겠습니다. 이번에 시지마 씨를 케어하게 될 AI 간호사랍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기계 목소리가 어딘가 익숙하다. 고우는 눈을 가늘게 뜨고서 그것을 보았다. 이상하게 시야가 흐릿하여 잘 보이지 않는다.


     “잘 부탁드립니다. 시지마 고우 님.”


     기계 간호사는 활짝 웃었다. 마침내 뚜렷해진 시야 너머로 고우는 그 존재를 인식한다. 그리고 경악했다. 


     “브렌……?”


     그는 고우가 절대 잊을 수 없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연갈색 둥근 단발머리를 하고 은색 테의 안경을 쓴, 싫었지만 끝내 잊지 못했던 로이뮤드. 그와 완벽하게 닮은 모습을 한 이는, 간호사가 ‘그럼 저는 다른 환자분 검진하러 가볼게요.’ 라고 하며 병실을 떠나자마자 활짝 웃으며 고우에게 다가갔다.


     “오랜만입니다. 많이 변했군요? 늙고, 병들고, 추레하게.”

     “너, 어떻게 여기에…….”

     “기적이라고밖에 설명드릴 수는 없겠군요.”


     고우는 기분 나쁜 예감이 들었다. 그의 미소에서도, 앞으로의 처지에서도.



     

     2


     “기적이라니 기계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닌데.”

     

     고우가 빈정대는 소리를 들으며, 브렌은 묘한 웃음소리를 냈다.


     “내가 죽은 뒤 지나간 시간과 그 시간을 넘어 당신과 만날 확률 23,600,312의 1. 이 미미한 확률로 우리가 만났으니 이 정도라면 기적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지 않겠습니까?”

     “…….”


     고우는 브렌을 노려보았다. 다 죽어가는 몸에서도 저럴 기운이 나나? 브렌은 냉소하며 고우의 침대 아래쪽에 있던 간이 침대를 꺼내 그 위에 앉았다. 


     “당신의 병명은 위암. 이라고 되어 있군요. 말기이고. 발견은 중기 정도에 했지만 항암치료는 거부했고.”


     고우의 대답은 없었다. 브렌이 읊고 있는 것은 병원의 차트 정보였다. 고우를 돌보기 위해 병원에서 주어졌을 정보다. 그것을 그의 입으로 듣자니 기분이 영 불쾌했지만 수가 없다. 브렌은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로 입을 꾸욱 다문 고우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왜 그랬습니까?”


     그 목소리는 순수한 호기심으로도, 비꼬는 것으로도 들렸다. 고우는 브렌을 내려다보았다. 마르고 주름진 얼굴. 내일 당장 세상을 떠난대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 죽음만을 기다리는 시체. 브렌이 올려다보는 고우는 그렇게 보였다.


     “얼른 죽고 싶었어.”


     쉬어 빠진 목소리로 고우는 말했다.


     “어차피 내가 마지막이고.”

     “마지막?”

     “특상과 사람들은 이제 아무도 없어. 나뿐이야.”

     “아아. 그거 참 맥 빠지는 이유군요.”


     브렌은 혀를 끌끌 찼다.


     “당신에게 삶이란 그리 부질없는 것이었습니까.”

     “오래 살았어. 이 정도면.”


     고우의 까만 눈동자에는 초점이 없다. 예전에도 있는 편은 아니었지만 지금은 생기마저 사라진 것 같다. 브렌은 잠시 예전의 고우를 생각했다. 분노의 감정으로 일렁이던, 다른 의미로 빛나고 있던 인간을 생각한다. 브렌은 '격세지감'이라는 글자의 뜻을 이해한다.


     “허무하군요. 기껏 만나러 왔더니.”


     은색 안경 프레임 뒤로 브렌은 눈동자를 감춰버린다. 그 말투가 묘하게 고우의 귀에 거슬렸다.


     “만나달라고 한 적 없어.”

     “내가 만나고 싶었습니다.”

     “뭐하러.”


     그가 시지마 고우가 틀림없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고우는 나이 든 얼굴에도 변함없이 부루퉁함을 보인다. 브렌은 대답 없이 살짝 웃으면서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탁상 위에 올려져 있던 보라색 시그널 바이크가 보였다. 그것이 무엇인지 물을 필요도 없다.


     “이게 여기에 있다는 건, 체이스도 세상에 존재치 않는 모양이군요.”

     “진작 없어졌어.”


     고우의 얼굴은 여전히 부루퉁한 채이다.


     “어떻게 죽었는지는 묻지 않아도 알겠군요.”


     브렌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것을 제 손으로 잡았다.


     “만지지 마.”

     “이건 당신의 것이 아닙니다. 당신이 왈가왈부할 권리는 없지요.”


     고우의 반항은 의미없이 사라졌다. 브렌은 시그널 바이크를 이리저리 들여다보았다. 그 시그널 바이크는 고우가 받은 이후로 망가지지도 않고, 어딘가에 새로 긁힌 흔적도 없었다. 고우의 시간은 흘렀지만 그것만큼은 아직도 그 시간에 머물러 있는 것만 같다. 브렌은 그것이 의미하는 데이터들을 제 머릿속에 집어넣고는 다시 얌전히 그것을 탁상 위에 올려두었다.


     “체이스는 당신을 지키다 죽었지요?”


     순간 고우는 제가 덮고 있던 이불을 손으로 꽉 쥐었다. 이건 더 물을 필요도 없이 정답이다. 브렌은 내심 혀를 끌끌 찼다.


     “내가 아니라 신 형님 쪽이야.”

     “로이뮤드를 속일 생각일랑 그만두십시오. 체이스가 토마리 신노스케를 지키다 죽었다면 이건 크림 스타인벨트와 같은 운명을 맞이했겠죠. 어떻게 멀쩡히 당신 손에 있겠습니까?”


     브렌은 협탁 위의 시그널 바이크를 가리키며 말했다. 고우는 놀라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놀라고 있는 것은 다른 포인트이다.


     “크림에 대해서는 어떻게 아는 거야?”

     “크림 스타인벨트의 성격 데이터와 체이스의 시그널 바이크를 바탕으로 도출해낸 결론입니다. 스스로 자신을 봉인했거나, 아니면 토마리 신노스케의 무덤에 함께 있거나. 뭐, 그는 좀 더 꽉 막힌 종류의 인간이니 아마 전자겠지요.”

     “…….”

     “제법 잘 이해하고 있지 않나요? 저도.”


     그렇게 말하며 브렌은 씨익 웃는다. 고우는 멍한 시선으로 그를 보았다. 뭐라 반박할 수도 없이 완벽한 정답이다. 그의 똑똑함에 대한 감탄은 이 정도로만 하기로 하고, 고우는 브렌에게서 눈을 돌리지 않으며 생각하고 있었다. 왜? 그는 왜 여기에 존재하는가? 분명 고우의 기억대로라면 그는 이미 죽은 존재이다. 자신이 가장 사랑하던 존재를 지키고서. 누구보다도 만족한 죽음. 지금 생각해보면 그가 제일 행복한 죽음이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이다. 과거의 자신은 그것을 보고서 분개했다. 로이뮤드, 그들이 미웠다. 그러나 그 미운 존재들조차도 제 나름의 생각과 감정이 있다. 그런 존재들을 멋대로 휘두르며 즐거워하는 어떤 존재가, 그 순간만큼은 고우가 가졌던 로이뮤드를 향한 미움도 뛰어넘고 있었다.


     아니, 이제는 안다. 그들의 잘못이 아니었다는 것 정도는. 하지만 고우가 그것을 알았다 해도 이미 사라진 존재는 돌아오지 않는다. 저 시그널 바이크의 주인도 마찬가지이다. 아니, 아마 아예 돌아오지 않는게 좋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AI 시대. 지금을 그렇게 부르는 세상이 되었지만 여전히 인간들은 오만하며, AI라고 하는 존재들을 그의 아버지나 과거의 고우 정도로밖에 인지하지 못하고, 그 이상을 생각하지 않는다. 이래서야 도저히 그들이 바라던 '인간이 드라이브의 힘을 올바르게 쓸 수 있는 날' 같은 건 오지 않을 것 같다. 고우에게 병마를 만든 것은, 그리고 고우가 그 병마를 방치하도록 만든 것은 바로 그런 세상 속에서 사라져 가는 희망이었다.


     평생 방황하며 사진을 찍었다. 세상의 정경들은 정말 아름답다. 시그널 바이크로서 자신의 곁에 있을 친구에게 보여주고 싶은 세상은 이렇게나 아름다운 것들로 가득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렇지 못했다. 지극히도 순수했던 제 친구를 세상에 두기에는 너무도 더러운 세상이었다. 지금조차 그랬다. 시그널 바이크의 거취를 고우는 이미 이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과 같이, 묻어버릴 생각이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브렌이 다시 나타났다. 이것의 의미가 무엇일까.


     “브렌.”


     결심을 하나 굳혔다. 고우는 그를 불렀다. 고우가 잠깐 생각하던 새에 바깥 창문을 보고 있던 브렌이 그의 부름을 듣고 뒤를 돌아보았다. 은색 프레임의 안경 너머 검은 눈동자. 지독하게도 변치 않는 그것이 고우를 응시한다.


     “난 아마 며칠 뒤에 죽어.”

     “그렇겠지요.”


     운을 떼기 위해 시작한 말에 브렌은 긍정한다.


     “잘 알고 계시군요. 길어봐야 일주일 정도라는 것을.”

     “내 몸인데 모르겠냐? 아무튼 그래서 부탁이 있어.”


     지금도 왜 브렌이 다시 살아났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이는 그들의 싸움, 로이뮤드의 이야기를 기억하는 존재가 기적적으로 하나 더 늘어났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고우는 거기에 걸기로 했다. 이 마음을 간직한 채 살아갈 수 있다면 언젠가는. 언젠가는 자신이 희망으로만 간직하고 있던 그런 세상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고서 고우가 말을 꺼내려던 찰나였다.


     “거절합니다.”


     그러나 브렌은 고우의 다음 말을 듣지도 않았다. 고우는 의아한 얼굴이었다. 깊이 패인 주름이 움찔거렸다.


     “뭔지 들어는 보고 거절하라고.”

     “빤히 보입니다. 분명 저걸 맡아달라는 거였겠죠.”


     브렌은 차가운 눈을 하며 제 뒤쪽에 있을 시그널 바이크를 가리켰다. 쪽집게냐. 


     “맞아.”


     어쩔 수 없이 고우는 긍정했다.


     “어떻게 알았냐?”

     “당신 생각 따윈 훤히 보이니까요. 잊으셨습니까? 나는 당신의 이해자라는 걸요.”


     브렌의 웃음이 익숙하다. 아아. 그랬었지. 잠깐 그들이 함께 했던 때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때의 브렌은 또 다른 시지마 고우였다. 다른 케이스 속에서도 같은 감정을 공유하고 있었다. 고우는 그것을 인정할 생각이 없었지만.


     “내가 거절하는 이유를 알고 싶지요?”


     브렌은 다시 간이 침대 위에 앉아 고우를 올려다보았다.


     “어.”

     “예전보단 많이 솔직해졌군요. 인간이란 나이를 먹으면 달라지는 걸까.”


     브렌이 어깨를 으쓱였다.


     “분명 내가 다시 살아난 이유도 궁금할 테고.”

     “어.”

     “죽기 직전의 이별 선물이라 생각하고 알려드리죠. 일단 살아나게 된 건 우연이 맞습니다.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어요. 인간들이 로이뮤드의 잔여 데이터를 찾아내기라도 한 것인지, 아니면 사라졌어야 할 것들이 남아 있었던 건지. 신기하게도 예전 기억을 전부 갖고 있더군요. 그 기억을 바탕으로 내가 나로 존재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것을 '기적'이라고 정의내렸습니다.”


     길게 말했지만 요약하자면 자신도 '모른다' 였다. 고우는 한숨을 쉬었다. 


     “내가 눈을 뜬 곳은 병원이었습니다. 인간들 몇 명이 내게 안위를 묻더군요. 듣자하니 나는 '인간을 돌보는 AI 간호사' 라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모양이라, 기가 막혔습니다. 나처럼 우수하고 성실하고 현명한 로이뮤드가 다 죽어가는 인간이나 돌보는 일을 해야 한다니요. 사양입니다. 솔직히 자폭 프로그램을 만들 생각까지 했습니다만, 그런 내게 배치된 환자가 ‘시지마 고우’. 당신이더군요.”


     고우의 눈에는 브렌의 눈이 빛나는 것으로 보였다.


     “하트가 없는 세상은 내게 의미가 없습니다. 그랬는데 그 의미 없는 세상에 당신이 있었어요. 죽어 가는 당신이. 나는 그게 너무 기뻤습니다. 또 그 때처럼, 당신의 분노를 마주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지 모른다. 기대했습니다. 그래서 자폭 프로그램 생성은 그만뒀습니다. 원활한 진행을 위해 주어진 당신의 데이터를 읽고 또 읽으면서, 당신을 만날 날만을 기다렸습니다.”


     기쁨에 가득 차 보이는 그의 얼굴이 고우의 눈에는 낯설었다. 물론 좋아하는 얼굴이야 여러 번 보았다. 그러나 그 주체가 다른 누군가가 아닌 자기 자신이라는 것은 굉장히 이상하게 느껴졌다. 이미 살 만큼은 다 살았다고 생각하는데도.


     “당신이 병을 방치한다는 것도 데이터가 알려줬습니다. 그러니 아마 내가 들어가도 얼마 지나지 않으면 당신은 죽겠지요. 그걸 알면서도 나는 당신을 만나길 기다렸습니다. 그 얼마 안 되는 시간을 위해 나는 죽지 않았어요.”

     “그게 내 말을 듣지 않는 것과 무슨 상관이야?”


     결국 고우는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서두가 너무 길다고.


     “여전히 참을성은 없군요. 내가 방금 한 말들을 잘 생각해보십시오. 난 죽으려 했지만 당신 때문에 살았습니다. 그런데 당신 없는 세상을 내가 또 살 거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

     “나는 근본도 없는 것에 지배당하는 건 사양입니다. 지금 내가 만들어진 건 내가 모르는 인간의 필요에 의해서잖아요. 이런 삶 필요 없습니다. 나는 살고 싶었지만, 이렇게 살고 싶진 않습니다.”


     브렌의 말은 단호했다. 그의 말은 마치 인간과의 공존 자체를 거부하는 것으로 들렸다. 그러나 고우가 뭐라 말할 입장은 아니었다. 어쩌면 그들은 이 괴로운 세상 속에서라도 같이 살 수 있을 지도 몰랐다. 그러나 희망을 걷어찬 것은 고우 자신이었으니.


     “이 세상은 아름답더군요. 그러나 내가 살고 싶은 세상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시지마 고우. 당신이 여태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세상이라면, 어쩌면 일말의 희망이라도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신은 나와 닮았으니까. 내가 관심을 가졌던 유일한 인간이었으니까.”


     고우는 링겔을 꽂은 손을 꾸물꾸물 움직였다. 그 손이 브렌을 향해 뻗으려다 말다를 반복한다. 브렌은 그 뜻을 이해했다. 그는 그대로 손을 뻗어 고우의 손을 잡았다.


     “그래서 당신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그 데이터를 보고서도?”

     “데이터와 직접 부딪히는 것은 다릅니다. 데이터로는 보이지 않아도 내 마음이 진짜인 것처럼, 당신도 데이터 상에서는 죽기를 바라지만 한편으로는 살고 싶다 생각할지도 모르지요.”


     브렌은 희미한 미소를 띤다.


     “하지만 당신도 죽으려는 세상이라니.”


     브렌은 가엾다는 눈길로 고우의 주름진 손을 보았다.


     “역시 아직은 아닌 모양입니다.”

     “…….”


     브렌의 목소리는 서글피 들렸다. 고우는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있었다. 세월이 지나도 인간은 그 때와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것에 절망을 느끼는 건 비단 자신만의 이야기가 아닌 모양이었다.


     “그러니 시지마 고우. 내 몸은 당신의 생명이 끊어지는 순간 모든 데이터를 지우고 기능을 정지합니다. 내 프로그램을 그렇게 바꿔 두었습니다. 그러니 그 부탁은 소용이 없습니다.”

     “할 말이 없네.”

     “그렇지요?”


     브렌은 고우의 마른 손을 만지작거리며 해사하게 웃었다. 


     “그래도, 같이 죽는 거면 나쁘진 않네.”


     그 뒤로 이어지는 고우의 말이 이상할 정도로 메모리에 강하게 남는 것을 느끼는 브렌이었다.






     3


     인간이 죽는 것은 순식간이다. 시지마 고우는 브렌을 만난 이후 거짓말처럼 몸 상태가 악화되었다. 브렌이 제대로 돌보지 못한 탓은 아니었다. 브렌은 AI 간호사로서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그의 몸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게 되었을 뿐이다. 브렌은 그가 죽는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았다. 괴로운 숨을 몰아쉬고, 배를 움켜쥐고 아파하는. 눈을 찡그리는 이의 몸에는 브렌이 기억하는 그 생기 어린 모습은 없었다. 분노에 서린 눈으로 끝까지 자신을 노려다보던 그 기백은 브렌 자신이 알지 못하는 세월 속에 풍화하여 사라졌다. 브렌의 눈앞에 있는 이는 말라 죽어가는 한 명의 노인네뿐이었다. 그러나 그의 이름이 시지마 고우인 이상, 그리고 브렌이 기억하는 그가 맞는 이상 그 말라 비틀어져 죽음만을 기다리는 노인네는 의미를 갖는다.


     시지마 고우의 발작이 시작되었을 때, 브렌은 그가 죽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 때 브렌이 한 일은, 탁상 위에 있던 보라색의 시그널 바이크를 그의 손에 꽉 쥐어주는 것이었다. 고우는 발작하는 와중에도 그것을 놓지 않았다. 산소 마스크를 쓴 채로 숨소리만 거칠게 들리던 이에게서 브렌은, 생명이 꺼지기 직전의 단말마를 들었다.


     “고마워.”


     그 말만이 선명했다. 무엇에 대한 고마움일까. 브렌은 알지 못했다. 시지마 고우는 웃으며 숨을 거두었다. 그의 손에는 끝까지 시그널 바이크가 쥐어진 채이다. 노인의 곁에는 어느 누구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이제 곧 기능을 정지할 AI 간호사뿐이었다. 그런 고우의 시신을 거둘 이가 없다고 생각을 했으나, 뜻밖에도 '조카'라는 존재가 나타났다.


     “고집불통이죠. 고우 삼촌은.”


     그 말을 하는 이는 토마리 신노스케와 시지마 키리코의 아들이라고 했다. 브렌은 화장터에서 그를 보았다. 낯선 이였지만 얼굴에서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난다. 확실히 토마리 신노스케를 많이 닮았다. 그의 젊은 시절밖에 보지 못했음에도, 나이가 마흔이 넘었을 신노스케의 아들에게서 신기하게도 그의 느낌이 났다. 이것이 인간인가. 브렌은 이전에는 몰랐던 무언가를 또 하나 안 것 같다.


     “병문안도 오지 말라고 그렇게 난리여서. 아니었음 자주 돌봐 줬을 텐데.”

     “그랬습니까.”

     “브렌 씨 덕분에 편하게 가셨을 겁니다. 삼촌은.”

     “글쎄요.”


     이 어린 아이는 시지마 고우가 얼마나 자신을 싫어했는지를 모르는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생각한 브렌은 웃으며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 버린다. 시한폭탄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앞으로 약 3분 뒤면, 시지마 고우의 화장이 마무리되고 그의 소중한 것이 그와 함께 땅 속으로 묻히는 그 순간에 브렌의 기능은 멈출 것이다. 브렌은 한숨을 쉬었다. 두 번째 맞는 죽음의 순간이건만 여전히 무섭다.


     “고우 삼촌이 가끔 옛날 얘기를 했던 적이 있습니다.”


     브렌의 시간이 정지하기까지 앞으로 1분. 인간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독하게 미운 녀석이 있었는데.”


     50초.


     “가끔 생각나서 괴롭다고.”

     “체이스 이야기가 아니었던가요?”


     40초. 브렌의 물음에 그는 고개를 저었다.


     “체이스 씨는 애틋해하는 편에 가까웠고.”

     “그랬겠지요.”


     안 봐도 비디오다, 그 얼굴은. 30초.


     “그 사람 이야기를 할 때 삼촌은 좀 신기했어요. 뭔가, 화를 내는 것도 같고.”


     20초. 점점 데이터가 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머나먼 기억의 데이터부터 조금씩. 풍화한다. 소중했던 모든 것들이.


     “미워하는 것도 같은데, 끝내 미워하지는 못하는 느낌.”


     브렌은 눈을 감았다. 아아, 곧. 옆에서 말하는 이의 목소리도 멀어지는 느낌이다.


     “근본을 바꾼 녀석이라, 싫어도 떠오른다고 하더군요.”


     그 말이 브렌이 들은 마지막 말이었다. 브렌의 기능은 정지했다. 눈을 감은 기계인간이 다시 눈을 뜨는 일은 없었다. 말을 하다 말고, 살아 있는 이는 마치 동반자살이라도 한 듯한 기계인간의 모습을 보았다. 인간, 토마리 에이지는 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당신은 한 눈에 알아봤습니다. 브렌 로이뮤드. 이제는 진짜로 쉴 수 있기를.”


     풍화한 두 존재를 보며 사내는 이제 더 이상 떠나보낼 이가 없음을 깨닫는다. 사내에게 그것이 안도일지, 아니면 또 다른 시련일지. 이미 풍화한 이들에게 알 길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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