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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무키리] 닿은 기억의 파편은가면라이더/Ex-Aid 2016. 12. 16. 00:31
그라파이토토에서 대박이 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높은 확률의 패배를 맞고 글을 씁니다
이 글은 2군(@2g_hit)님의 리퀘스트입니다.
* 키리야 과거 날조가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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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는 날이었다.
휴무일이었지만, 그렇다고 마냥 누워 있을 수만 있는 날은 아니었다. 어영부영 좁은 방의 청소를 끝내고 나니 기다렸다는 듯이 비가 쏟아진다. 적당히 나가서 며칠 집에서 먹을 만한 것들을 사려 했던 계획이 어그러질 뻔했다. 하지만 오늘 나가지 않으면 답이 없다. 에무는 어쩔 수 없이 옷을 대충 입고는 늘 입는 후드 점퍼를 입었다. 자그마한 비닐 우산을 쓰고서 그는 쏟아지는 빗속을 걸었다. 공기는 온통 회색 빛이다. 얼른 일이나 보고 갈 생각으로 근처 편의점에 들렀다. 쟁여둘 만큼은 쟁여 두었다. 계산을 마친 에무는 문 앞에서 미끄러질 뻔한 것을 벽을 가까스로 붙잡아 버텼다. 걱정 어린 점원의 목소리를 뒤로 하고 에무는 편의점을 나왔다.
'어라?'
우산을 막 편 에무의 눈에 스쳐 지나간 이는 그가 익히 잘 아는 이였다. 아는 척을 할 새도 없이 쌩 지나갔지만 에무가 그 사람을 놓칠 리는 없었다. 그냥 보아도 확 눈에 띄는 붉은 가죽 점퍼와 하와이안 셔츠. 비가 옴에도 우산을 쓴 채로 선글라스를 쓴 이는 분명히 쿠죠 키리야였다. 어딜 저렇게 급하게 가는 것일까. 에무는 눈으로 그를 쫓았다. 어쩐지, 쫓아가야 할 것 같다는 강한 느낌이 들었다. 안 그래도 요즘 에무는 그에 대해 계속 신경을 쓰고 있었다. 에무를 믿어. 그렇게 말했던 이는 에무에게 밥 먹듯 거짓말을 하던 이다. 에무의 입장에서는 그 간극에 대해 알고 싶은 것도 당연한 일이다.
자박. 자박. 젖은 바닥을 밟는 소리는 요란하다. 주변에 사람이 많으니 망정이다. 에무는 최대한 그를 놓치지 않으려고 걸음을 서둘렀다. 서두르다 발을 헛디딘 것도 수어 번이다. 넘어졌다가는 100% 들킬 것이다. 그러면 몹시 민망한 상황이 연출되어 버린다. 그런 난감한 상황을 에무는 그다지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가 최대한 조심해서 키리야를 쫓는 동안, 키리야는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누군가 자신을 쫓아온다는 생각은 하지도 않는 듯 보였다.
키리야가 가던 곳은 근처에 있던 공동묘지였다. 하필 이런 날에 저런 곳이라니. 에무는 살짝 불안감이 들었지만 이제 와서 멈출 수는 없었다. 최대한 키리야에게 들키지 않도록, 멀찍이서 그를 지켜보았다. 빗줄기가 하얗게 보였다. 어둑어둑한 하늘 아래 키리야는 서 있었다. 그의 앞에는 묘비가 있었다. 누구의 묘비인지는 에무의 눈에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키리야가 우산을 들지 않은 다른 손에 꽃을 쥐고 있었던 것이 뒤늦게 눈에 띄었다. 누구의 자리인지는 몰라도, 키리야의 목적은 그 묘비일 것이다. 키리야는 쭈그려 앉아 꽃을 묘비 위에 올렸다. 그리고 합장했다.
"그걸 숨은 거라고 한 거야, 명인?"
그러다 돌연 키리야가 큰 소리로 말했다. 에무는 거기에 깜짝 놀라 결국 넘어지고 말았다. 비에 젖은 탓에 바닥은 온통 흙탕물 투성이였다. 덕분에 에무의 옷은 완전히 흙범벅이 되었다. 들고 있던 비닐 꾸러미도 뒹굴고 있다. 키리야는 선글라스를 벗고 있었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저벅저벅 소리를 내며 에무에게 달려왔다.
"그렇게까지 놀랄 일이야?"
"으으……."
"생쥐마냥 몰래 쫓아와 놓고는."
핀잔을 주면서도 그는 웃으며 에무에게 손을 내밀었다. 에무는 흙범벅인 손으로 키리야의 손을 잡았다. 어떻게든 몸을 일으켰지만 이미 온 몸은 젖은 채이다. 그야말로 젖은 생쥐 꼴이었다. 감기에 걸리는 건 아닐까. 에무는 자신의 몸 상태를 걱정하면서 옆에 뒹굴던 비닐 꾸러미와 우산을 집었다. 다행히 먹을 것에는 큰 문제가 없다. 그것에 안심하며 에무는 키리야를 보았다.
"쫓아온 줄 아셨구나."
"그럼. 사실 처음부터 알았지~"
에무는 키리야를 노려보았다. 키리야는 눈을 한 번 깜빡였다.
"는 거짓말이고. 여기 오니까 보이더라고. 명인이 여길 알 리는 없으니까 쫓아왔겠다 싶었지."
"한 번 의심해보길 잘했지. 역시 거짓말이었네요. 빨리 실토해줘서 마음이 편하네요."
"저기. 지금은 내가 명인한테 뭐라 해야 되는 상황이거든?"
키리야는 기가 막히다는 듯 입을 삐죽였다.
"어쩌다가 쫓아온 거야?"
"보였으니까요."
"보인다고 보통 사람을 쫓아오진 않잖아."
키리야는 한숨을 쉬며 에무의 어깨를 툭툭 털어주었다.
"궁금했어요. 어딜 그렇게 급하게 가는지."
어깨를 털던 손이 멈칫한다.
"보통 키리야 씨는 여유로워 보였는데, 오늘만큼은 전혀 그런 느낌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
에무의 말을 듣는 키리야의 얼굴이 어두웠다. 무언가를 참아내는 듯. 그 짧은 순간에 보였던 키리야의 얼굴이 에무는 굉장히 신경이 쓰였다. 에무의 몸이 으슬으슬 떨린다. 아까 뒹군 탓일까. 에무는 떨리는 입술로 다음 말을 뱉었다.
"제가 오면 안 되는 곳이었나요?"
키리야는 대답이 없었다. 에무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얼굴에 고민의 빛을 띤다. 입을 오물오물하며 고민하던 이는 마침내 에무를 올려다보았다. 에무의 눈은 줄곧 그를 향해 있었다.
"아니, 그런 건 아니야."
"저한테는 알리고 싶지 않았던 건가요?"
몰아치는 에무의 질문에 키리야는 간단하게 대답하지 못했다. 키리야는 또 다시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고 방황한다.
"그 정도는 아니야. 친구 기일이거든. 오늘."
겨우 입을 떼는 키리야는 줄곧 에무의 시선을 외면한 채다.
"친구의……."
납득하면서도 에무는 미심쩍은 느낌을 지우지 못한다. 그도 그런 것이, 처음부터 그렇게 말하면 되는 것이다. 친구의 기일이라 묘를 찾아왔다는 것에 망설여야 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 그런데 대체 무슨 이유로 그는 망설인 걸까. 지금 에무가 가장 궁금한 것은 그것이었다. 몸이 으슬으슬 떨리는 지금 상황에서도 그 부분을 놓치고 싶지는 않았다.
"소중한 친구였나 보네요."
에무는 굳이 급하게 추궁하려 하지 않았다. 여기에서 급하게 치고 들어가면 키리야는 거짓말로 빠져나갈 것이다. 그간의 경험으로 알았다. 키리야는 어렵게 다시 에무를 마주 보았다.
"응. 맞아."
"그 버그스타에게 죽었다던 친구인가요?"
우산을 쥔 키리야의 손이 크게 떨렸다. 키리야는 잠시 있다가 "맞아." 라고 대답했다.
"그렇게 대충 얼버무리기는 한데. 정확하게는 다른 이유로 죽었어."
"사고사였던가요."
에무는 이전에 히이로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말했다. 키리야는 피식 웃었다.
"웃기는 일이야. 그것도. 발병 직전에 차에 치였거든."
에무는 눈을 크게 떴다. 아무리 그래도 제법 놀라운 사망 사유였다.
"나 그 때 처음 알았어. 사람이 그딴 식으로도 죽는구나 하고. 완전히 의문사잖아. 그런데 결국 누구 하나 그게 버그스타라는 미지의 질병이 원인이었음을 밝히지 못했단 말이야."
"하지만 그건……."
"맞아. 사고사지. 기록으로만 보면 그렇게 돼. 발증 직전에 죽었으니까."
키리야는 어깨를 으쓱였다.
"하지만 그렇게 안 죽었으면 그 녀석은 분명 버그스타가 되었겠지."
"……."
"라는 이야기. 그럴싸하지?"
"또 거짓말한 거예요?"
에무가 얼굴을 찡그리자 키리야가 킥킥대며 웃었다. 대체 왜 이러는 거야. 에무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키리야는 거짓말을 할 때 눈을 마주치지 못한다. 그러나 방금은 제대로 그의 눈을 마주하고 있었다. 그렇다는 것은.
"……거짓말 아니죠?"
"엉?"
"그게 키리야 씨의 동기였던 거죠? 버그스타에 대해 알고 싶은 이유."
의외의 공격을 받은 키리야가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에무는 한 번 크게 몸을 떨었다. 진짜 큰일이다 싶었지만 멈추기엔 늦었다. 그의 또다른 마음이 외치고 있다. 지금이 클리어 기회야. 라고.
"처음부터 그렇다고 말을 하지. 그럼 괜히 고민할 필요가 없었잖아요."
에무가 핀잔 섞인 투정을 했다.
"키리야씨가 '믿는다'고 한 말. 난 아직도 믿고 있어요."
"……."
"키리야 씨가 그렇게 말해 줬으니까, 나도 계속 알고 싶었다고요. 키리야 씨에 대해서."
키리야는 말을 잇지 못하고 에무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도 키리야 씨를 믿을 거예요. 그러니까 억지로 속이지 마세요. 나 지금 이야기도 믿어요. 거짓말이라면 이렇게 비 오는 날에 조문을 올 필요가 없으니까. 분명 그 친구는 키리야 씨에게 소중한 사람이었겠지요. 부러워요."
"명인……."
"오늘 키리야 씨에 대해서 좀 더 안 느낌이 들어요."
에무는 흙투성이 얼굴로 활짝 웃었다. 키리야는 머쓱해졌는지 손가락으로 볼을 살짝 긁었다.
"그, 명인이 안심했다면 다행이지만……."
그렇게 말하며 키리야는 에무의 얼굴에 손을 뻗어, 어설프게나마 얼굴에 튄 흙을 닦았다.
"이대로 있다간 감기 걸릴 것 같거든? 집에 들어가던가 하라고, 명인."
"아, 앗! 그런가요? 어쩐지 춥더라니!"
"이미 늦은 거 아니야? 얼른얼른 들어가라고."
"키리야 씨도요."
에무는 키리야에게 손을 내밀었다. 같이 돌아가자는 뜻일 것이다. 키리야는 피식 웃고는 그 손을 잡았다. 흙투성이 손을 두 번째 잡지만 전혀 신경쓰이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어느새 비는 그쳤다. 조금씩 구름이 걷히는 자리에는 아마도 무지개가 뜰 것이다. 자신에게 일부나마 말한 것으로 키리야 씨가 편했으면 좋으련만. 에무는 그렇게 생각하며 계속 키리야의 손을 잡고 걸었다. 에무는 고개를 뒤로 돌려,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여유를 찾은 키리야의 얼굴을 바라본다. 그러다 재차 생각한다. 역시 이 사람을 좀 더 알고 싶다고.
'역시, 부러워.'
지금까지도 그 사람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그렇게 기억될 수 있다는 점이.
그리고 마침내 에무는 자각한다. 자신이 쿠죠 키리야를 좋아하게 됐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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