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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이무-메론+두리안] 당근 케이크와 우울
    그 외 2015. 12. 27. 22:49



    가이무 엔딩 뒤의 이야기입니다. 네타가 있을 수 있으니 주의.




    ------------------



     "어머. 이게 누구야?"


     자와메 시의 최고 명물로 손꼽히는 유명 빵집 '샬몽'. 그 곳의 오너이자 파티쉐인 오렌 피에르 알폰조의 눈에 띈 존재는 척 보아도 차분하고 고귀한 인상을 주는 어느 사내였다. 가게 안에 어울리지 않게 홀로 앉아 있는 사내는 주변의 밝은 분위기 속에서 위화감을 풍기고 있었다. 하지만 오렌에게는 오히려 반가운 존재였다. 지금 일은 제 제자에게 살짝 미뤄놔도 되니, 오렌은 사뿐사뿐 사내에게 걸어갔다. 오렌과 사내의 눈이 마주친다.


     "메론 왕자님(君)이잖아. 여기엔 웬일이죠? 설마 날 보러?"

     "그 호칭은 그만둬라."


     사내는 질린 듯 말한다. 그러나 뒷말을 부정하지 않는 것을 보면 정말로 오렌을 만나러 오기는 한 모양이다. 내심 기쁨을 느끼며 오렌은 그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어머. 그럼 이름이 좋겠어? 쿠레시마 타카토라 주임이라고 할까?"

     "주임도 아니지 않나. 농담은 적당히 했음 좋겠군."


     타카토라라고 불린 사내는 한숨을 쉬었다. 오늘따라 그의 눈 아래 펼쳐진 다크서클이 짙어 보인다. 오렌은 그를 보며 슬쩍 웃더니, 제 손을 테이블 위에 탁 올리면서 타카토라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주문은?"

     "뭐가 좋지?"


     오렌의 시선이 거북한 듯 눈을 살짝 아래로 내리깔며 타카토라는 물었다. 오렌은 손을 턱에 짚고는 잠시 고민하는 자세를 취한다.


     "으음. 파티쉐의 추천 메뉴를 묻는 거야?"

     "……."


     대답은 없다. 그러니 오렌은 멋대로 다음 단계로 진행한다.


     "오늘의 추천 메뉴는 당근 케이크. 고민이 많은 당신에게 다가올, 달지 않은 달콤함."

     "그걸로 하지."

     "주문 감사합니다, 손님. 금방 제자가 가지고 올 거야."


     그렇게 말하며 오렌은 타카토라의 앞에 턱 앉았다. 타카토라는 놀란 시선을 그에게 던졌다. 오렌은 그 뜨거운 시선이 싫지 않다 생각하며 씨익 웃었다.


     "수심이 많아 보이잖아. 이런데는 잘 오지도 않으면서."

     "……."


     타카토라는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오렌은 그의 침잠한 눈을 보았다. 처음에는 엘레강스하고 아름다운 사람이었지만, 한 번 사라졌다가 다시 돌아온 이는 엘레강스와는 조금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오렌을 반하게 한 기품은 여전했지만, 확실히 무언가 다르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어느 정도 들은 바가 있다. 


     '샬몽 아저씨. 자와메 시를 부탁해.'


     지금은 신이 된 어떤 꼬마가 해 준 말이다. 그 이야기를 하면서 지나가듯 말했던 것도 같다. '메론 왕자님이 나에게 의지하겠어?' 그 때 오렌은 그렇게 물었더랬다.


     "타카토라라면 그러겠지만, 분명 필요할 때가 있겠지. 아저씨가 그걸 모를 것 같지는 않아."


     뭐, 꼬마의 말에 틀림은 없었다. 지금 혼자서 거북한 이의 가게에 온 사람은 정말로 고민이 많아 보였으니까.


     "내가 도와줄 수 있다면 도와줄게. 파티쉐 타임은 쓸 수 있을 때 쓰는 거라고?"

     "……내가."


     그의 주위를 멤돌며 고민을 끌어내려던 오렌의 귀에 타카토라의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그게 고민이야?"

     "저지른 죄를 돌이키면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흐음. 오렌은 다시 의자에 앉았다. 그러고서 타카토라를 슬쩍 바라본다. 타카토라의 수심 가득한 눈동자가 오렌과 마주하였다. 짙게 내려온 다크서클은 그 탓이려나. 오렌은 입꼬리를 올렸다.


     "있지, 너(君)."

     "뭐지."

     "무거운 짐을 지고 있었다고 들었어."


     타카토라는 누구에게 들었는지 굳이 묻지 않았다.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서 오렌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평생 지고 있던 짐을 한 번 내려놓으면, 어깨가 가벼워서 낯선 느낌이 들어. 군장도 그렇거든. 처음엔 느낌이 이상하다가 점점 해방감을 느끼는 거지. 아, 이제 이 어깨에 아무 것도 올리지 않아도 되는구나. 뭐, 그렇게 단련된 어깨라면 언제 짐을 져도 여유롭게 들 수 있고 말이지."


     그 때 마침 오렌의 제자, 죠노우치가 케이크를 가지고 나왔다. 타카토라의 얼굴을 보고 흠칫 놀라지만, 오렌이 고개를 젓는 걸 보면서 별 말 없이 다시 부엌에 들어갔다. 오렌은 케이크 접시를 타카토라의 앞에 가져다 주었다. 포크를 가지런히 놓고 나면 타카토라가 그것을 자연스레 집어들었다. 


     "저지른 죄를 돌이킨다는 건 다시 말해 여유가 있는 거야."


     케이크 쪽을 보던 타카토라가 고개를 들었다.


     "나, 특전사 하던 시기엔 그런 생각도 안 들었거든. 그런 생각을 하면, 특전사 못 해."


     오렌은 팔짱을 끼며 타카토라를 보았다.


     "특전사 그만두고 파티쉐 하면서, 그 죄의식이라는게 슬그머니 다시 올라오더라. 자, 일단 한 입 먹어봐."


     말을 하다가 오렌은 타카토라에게 케익 한 입을 권하였다. 타카토라는 의뭉스러운 눈으로 그를 보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한 입을 덜어 먹었다. 우물우물 씹는 그의 표정이 아까보다 조금 풀어지고 있었다. 


     "어때, 맛있지?"


     타카토라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있잖아. 내가 그걸 굳이 생각해도 그 사람들은 안 돌아와."

     "……."

     "어쩔 수 없었잖니. 살기 위해 빼앗은 거야. 너도 그랬잖아. 많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했던 거고."

     "나는."

     "그러니까 돌아오지 않는 사람을 생각하는 건 시간낭비야. 그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았기 때문에 너는 계속 살아야 하거든."


     오렌의 말에 타카토라가 놀란 눈을 하였다.


     "그래야 죄도 갚지 않겠어? 어떤 형태로든. 죽은 사람은 안 돌아와. 산 사람이 만족하는 삶을 살아야지."

     "……아직 갚아야 할 죄가 있다."

     "그걸 위해 살아야지, 뭐."


     오렌은 상당히 쉽게 말하는 편이었다. 그러나 타카토라는 그의 말 속에 든 힘이 남다름을 알고 있었다. 어른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나이차가 적은 편이었지만 어찌 되었든 그는 인생의 선배. 용병이라 돈으로 움직이는 존재이기는 했어도, 지금 그에게 하는 말이 진심임을 모르는 바 아닌 타카토라였다. 그는 대답 대신 당근 케이크를 한 입 더 먹었다. 달지도 않고 깔끔하게 들어오는 맛이 일품이다. 과연 일류 파티쉐. 그가 그 동안 쿠레시마 가에 있으며 먹었던 케익보다도 상위에 있다.


     "그게 힘들 걸 모르지는 않아."


     어느덧 반을 비워버린 타카토라를 보며 오렌은 말했다.


     "하지만 그게 또 인간이 살아가는 방법이지. 시련을 통해 인간은 강해져. 나한테는 그걸 보여준 사람이 있거든."

     "……내가 생각하는 사람도 같은 사람일 거다."

     "와. 내가 메론 왕자님이랑 마음이 통하는 날도 있잖아? 기쁜데♡"


     급격하게 저를 포옹하려는 오렌을, 타카토라는 질겁하며 피하였다. 그의 거부하는 몸짓을 보며 오렌은 아쉬운 얼굴을 하며 슬쩍 뒤로 물러났다. 경계 태세를 겨우 푼 타카토라는 다시 당근 케이크 한 입을 먹었다. 그것을 목 뒤로 넘기고 난 뒤에 그는 입을 열었다.


     "아무튼, 편안하게 먹고 가. 또 필요하면 찾아오고."


     어깨를 으쓱하며 오렌은 자리에서 물러섰다. Adieu. 가볍게 작별 인사를 하고서 오렌은 돌아서 주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주방에 들어가기 직전 슬쩍 돌아서 타카토라를 바라보았다. 혼자 케익을 마저 먹는 이는, 아까보다는 조금 풀린 얼굴이었다. 시름이 이거로 조금 풀렸으려나. 그러면 다행이겠네. 그렇게 생각하며 오렌은 다시 주방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네가 바라는 대로 했단다. 카즈라바 코우타.'


     착실하게 일하고 있는 제자를 바라보며, 오렌은 다시 작업에 착수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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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이무로는 정말로 처음 하는 연성이네요.

    어제 가이무 외전들을 봤더니 괜스레 뻐렁이 차더군요.


    메론을 위안하는 글입니다.

    두리안 언니를 정말 써보고 싶었습니다만 소재도 짬도 없었습니다.

    갑자기 떠올라서 썼네요.


    방황하는 타카토라를 한 번 붙잡는 느낌으로 썼습니다.

    이래저래 메론에게는 동정할 수밖에 없는데

    혼자 남은, 다시 기회를 얻은 타카토라의 이야기는 꼭 한 번 써보고 싶긴 했습니다


    밋치의 이야기를 쓸 수 있다면 좋겠네요.

    언제가 될 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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