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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이의 이해
    그 외 2016. 6. 4. 22:03



     신선은 드림배틀의 승리를 위하여 존재한다. 드림배틀을 조정하여, 더 크고 아름다운 꿈이 승리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신선은 드림배틀에 참가하는 군주를 선정하여 그에게 배틀에 임할 수 있는 힘을 줄 수 있다. 살아남은 군주들 중 꿈의 힘이 강한 이들은 레인보우 이벤트를 통해 신선을 선택할 수 있다. 신선은 도술로 군주를 비호한다. 강한 도술은 군주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 그러나 신선은 스스로 다른 군주를 공격할 수 없다. 신선의 도술은 오직 자신의 군주를 위해서 사용되어야 한다.


     몸에 새겨진 룰들을 차분히 읽을수록 남는 것은 의문점이다. 왜? 왜 그렇게 해야만 하지? 신선은 생각했다. 그러나 신선의 머리에서 난 결론은 '그렇게 만들어졌기 때문' 이었다. 신선은 납득할 수 없었다. 자신이 배워 온 모든 지식, 도술, 상식. 그 모든 것을 조합한 뒤에 나온 결론이 이것일 리가 없었다. 신선은 풀숲 위로 드러누웠다. 그렇게 태어났기 때문이야. 신선의 목소리가 들렸다. 빌어먹을 어머니의 목소리도 들렸다. 그러나 신선은 고작 그런 이유로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부조리를 납득할 수 없었다. 


     "생각을 해 봐. 말이 안 되잖아."


     어차피 이런 이야기, 어느 신선에게 해도 소용이 없다. 그들은 그저 '그것이 우리의 의무다' 라는 멍청한 소리나 말할 뿐이다. 도술이 빼어나면 무엇을 하나. 근본이 멍청이인 것을. 누구도 듣지 않을 이야기라면 바람이 들을 뿐이다. 신선은 아무도 없는 수풀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드림배틀에서 승리하면 신선이 얻는 보상이 있다는 건 알겠어. 그런데 내가 달라고 해서 받는 보상이 아니잖아. 이걸 받고 내가 꼭 좋아할 거라는 보장이 있어?"


     살랑.


     "옥새는 자신의 힘을 나눠주지. 군주의 꿈을 대가로. 군주는 자기가 품은 거대한 꿈을 이룰 수 있겠지. 그런데 그 뒤는? 꿈을 이룬 사람의 뒤는 어떻게 되는 건데? 서책에서도 유독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라고 말하며 뒤를 보여주지 않는 것들이 있지. 나는 그런 것들을 읽지 않은 지 오래 됐지만 그게 조금 부조리하지 않아? 꿈을 이루면 그것으로 끝이야?"

     "옥새의 힘을 가져 꿈을 이룬다고 치자. 그럼 그 뒤 군주는 정말로 행복할까? 그게 정말 군주가 원하는 소원의 형태라고 보장할 수 있어? 옥새가 단순히 군주를 착취하는 물건인 것은 아니고?"

     "그럼 신선은 어떻게 되는 건데? 그 보상으로 신선은 정말로 만족할 수 있을까? 내 의의가 그것이라고 생각하는 멍청이들이라면 모르겠지만 그런 멍청이들만 신선이 되는 건 아니라고."

     "레인보우 이벤트에서 왜 주군만이 신선을 고를 수 있지? 신선은 왜 주군을 고를 수 없어?"

     "어떤 군주는 자기에게 주어진 힘이 어떤 의미를 갖는 지도 모를 텐데, 그것은 어떻게 설명할 셈이야? 모든 것을 신선의 자율에 맡기고 있잖아. 우리는 거짓말을 할 수 없지만, '말하지 않을 자유' 정도는 있어."

     "왜 신선은 군주의 공격에서 내 몸을 지킬 수 없는 거지?"

     "말이 안 되잖아! 전부!"

     "이런 허술한 룰로 드림배틀이 여태까지 완성이 됐다는 거야?"


     살랑. 살랑. 어느 누구도 신선에게 대답을 주지는 못하였다. 신선은 주먹을 꽉 쥐고 바닥을 탕 쳤다. 신선의 손에, 새하얀 소매에 흙이 잔뜩 묻었으나 그는 개의치 않았다. 대답해 줄 이가 없다. 최고의 도술도 진실을 알려주지는 않는다. 이 세계에서 날고 긴다고 해도 그 근본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상 무엇 하나 소용이 없다. 신선은 다짐했다. 그 결론이 날 때까지는 절대로 드림배틀에 참가하지 않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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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저녁은 오므라이스야. 라며 사내는 신선의 앞에 접시 하나를 내놓았다. 향긋한 냄새가 나는 볶음밥 위에 예쁘게 놓여진 계란 지단. 케찹이라 불리는 빨간 소스로 '제갈량에게♡' 라고 그려놓은 것을 보니 신선은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음을 터뜨리고 만다.


     "어때? 마음에 들어?"

     "그럴 리가 없잖아요. 이게 뭡니까. 유치하게."


     신선은 턱짓으로 그릇을 가리키며 말했다. 좋은 말을 기대했던 모양인지 주인을 기다리는 강아지마냥 눈을 반짝반짝 빛내고 있던 사내는 신선의 시큰둥한 반응에 입을 쭈욱 내밀었다. 신선, 제갈량은 그릇 옆에 놓여진 숟가락을 들어서 가장 먼저 하트 부분을 향해 숟가락을 푹 찍어버린다. 숟가락의 침범으로 갈기갈기 찢어진 하트 모양은 밥과 한 뭉치가 되어 제갈량의 입 안으로 들어갔다. 최대한 무표정을 유지하려 했던 제갈량이지만, 입 안에 퍼지는 맛은 오늘도 상급이다. 그는 생각한다. 아마 웬만한 선계의 음식조차도 이것을 이기기란 힘이 들 것이라고.


     "케찹 모양은 유치한데 신기한데 맛있단 말이죠."

     "그래? 다행이다."


     사내는 활짝 웃었다. 이런 것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좀 않았으면 좋겠는데. 제갈량은 내심 한숨을 쉬었다. 사내는 제 몫의 그릇도 가져온 뒤에 제갈량이 앉은 식탁에 마주 앉았다. 잘 먹겠습니다. 사내의 그릇의 케찹은 평범했다.


     "자기 건 평범하게 해놓고."


     제갈량은 제 숟가락으로 사내의 그릇을 가리켰다.


     "난 어차피 내가 먹을 거고."

     "저한테 이런 장난질 할 거면, 저한테도 이런 기회를 주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흐응. 그런가? 다음에는 그렇게 할게. 뭐라고 쓸 거야?"


     사내도 수저 한 입을 입 안에 넣고 우물우물 씹는다. 제갈량은 그런 사내를 흘끔 보더니 말했다.


     "저도 유치하게 가볼까요. 대왕바보유비. 라고."

     "그건 그만 두는게 좋겠어……."


     사내, 유비는 한숨을 쉬었다. 제갈량은 그를 보며 피식 웃었다.


     "농담입니다. 주군."


     눈꼬리를 휘며 웃는 제갈량을 보니, 유비는 다시 활짝 웃는다. 오므라이스 그릇을 비우면서 제갈량은 어쩌다 자신의 처지가 이리 되었는지 한 번 돌아본다. 분명히 드림배틀에는 나가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상황이 급변하여, 세상이 그를 그렇게 안일하게 살도록 두지를 않았다. 지금 제갈량의 앞에 있는 사내는 현재 그의 주군이자, 그의 가장 소중한 친구의 소중한 사람이자 원수. 이루 말할 수 없는 복잡한 관계 속에 있는 이였다. 처음엔 주군으로 할 생각 따위 없었다. 소중한 이를 죽인 이였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사내 때문에 죽었을 제갈량의 소중한 이는 이렇게 말했다.


     '유비님을 잘 부탁해.'


     참으로 가혹한 이다. 잃어버린 것만으로도 괴로운데, 그 고통을 끊임없이 새기라고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친구가 남긴 마지막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던 제갈량은 조건을 걸었다. '마초패를 얻어오라'고. 사내는 그 조건을 이수했다. 제갈량은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그 의외성에 놀랐다. 이상한 것 투성이였다. 싸우는 것이 아닌, 서로를 지킨 결과로 얻어낸 영웅패라는 것은. 제갈량은 그 의외성에서 자신의 방향을 찾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여태 보았던 드림배틀의 기록에서 '대체적으로' 보이는 모습이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따르기로 했다. 고통을 마주하기로 하고서.


     "그나저나 몰랐어. 신선은 자기 몸을 지킬 수 없다는 걸."


     반 정도 그릇을 비운 유비가 말했다. 제갈량은 놀랐다.


     "모르셨단 말입니까?"

     "응. 강하다고만 생각했지."

     "주군은 항상 제 기준의 바보치를 초월하시는군요."


     제갈량은 머리를 짚었다. 그의 바보력에 통탄하려던 순간, 제갈량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서서가. 말하지 않던가요?"

     "서서가?"


     유비는 그 이름을 듣고 고민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들은 적 없었던 것 같아. 정말로 몰랐으니까."

     "그런."

     "지키지 못한 건 맞으니까. 그걸 알았더라도 크게 달라지진 않았을 지도."


     유비는 시무룩한 얼굴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제갈량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굳은 얼굴로 유비를 바라보았다.


     "식사 중에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주군. 서서는 어떻게 죽었던 겁니까?"


     제갈량이 물었다. 그의 다급한 얼굴을 본 유비는 눈을 한 번 깜박이더니 입을 열었다.


     "잠깐 꽃을 보고 가겠다고 했어. 그런데 미쳐 있던 동탁에게 습격을 당했어. 그리고 남은 생명 에너지를 써서……."


     당연히 유비에게도 괴로운 이야기다. 제갈량은 최대한 평정을 유지하며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물론, 당연히 그런 평정은 불가능하여 제갈량은 저도 모르게 입술을 씹고 있었다.


     "어쨌든. 그 때 그런 룰이 있다는 것은 모르셨단 거지요?"

     "응. 그 싸움 때 처음 알았어."

     "만일 미리 알고 계셨다면 분명 달라졌을 겁니다."

     "제갈량?"

     "그랬다면 절대로 서서를 혼자 두지 않았을 것 아닙니까."


     유비는 잠깐 멍하니 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갈량은 재차 머리를 짚었다. 나의 소중한 이여. 태만에도 정도가 있어. 그런 중요한 사실을 말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냔 말이다. 이것은 신선의 목숨이 걸린 중요한 문제이니까. 이것은 모든 신선에게 통하는 룰이다. 아무리 강한 신선이라도, 다른 군주를 공격할 수 없다. 그런 식으로 드림배틀에 개입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서서가 아무리 선계에서 도술이 가장 약한 존재라 할 지라도 기본적으로 신선이다. 몸을 지킬 수는 없더라도 시간을 끌 수는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룰 때문에. 그녀가 신선이었기 때문에 죽음을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빌어먹을. 처음 제갈량이 서서의 죽음을 알았을 때에는 자책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런 군주에게 가는 것만큼은 막았어야 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서서가 죽은 것은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었다. 앞에 있는 제 주군을 탓해서는 아무 것도 해결이 되지 않는다. 역시 드림배틀에는 참가해야 했다. 그 근본을 바꾸기 위해서라도. 왜 그걸 서서를 잃고 나서야 알았던 것일까. 늦은 자책은 소용이 없다.


     '이런 허술한 룰로 드림배틀이 여태까지 완성이 됐다는 거야?'


     과거 자문했던 일을 생각한다. 그냥 만들어졌을 리 없다. 분명 이런 식의 희생들이 있었을 것이다. 기록은 온전히 그것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이 눈이 새기는 것은 분명 기록의 글자와는 다를 것이다. 새겨야 한다. 이 사람을. 이 고통을 앞에 두고서.


     "고마워. 제갈량."


     그가 생각에 빠진 사이에, 빈 그릇에 수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유비가 숟가락을 놓고서 제갈량을 보고 있었다. 그는 웃으며, 제갈량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제갈량은 의아했다. 감사받을 일을 한 적이 없다.


     "주군?"

     "그렇게 말해 줘서, 고마워. 하지만 알아. 내가 그걸 알았다의 여부는 중요치 않다는 걸. 결국 서서를 혼자 뒀기 때문에 그렇게 된 거잖아? 그럼 역시 내 잘못이지 뭐. 내가 약했기 때문에 서서가 생명 에너지를 써 가면서 나를 지켜줬던 거고."

     "생각 외로 잘 알고 계시는군요. 자신의 처지에 대해서."


     제갈량이 그를 보며 가장 감탄하는 부분은, 바보는 바보인데 의외로 자기에게 냉정하다는 것이었다. 꽃밭에 가 있나 싶다가도 꼭 그렇지만도 않다. 약한 듯 보이지만 그렇지도 않다. 저 너머에서 자신들을 지켜보는 장기알들이 그를 열렬히 따르는 이유가 거기에 있을 것이다. 제갈량은 생각했다. 여전히, 불완전한 주군이다. 그러나 의외성이 있다. 그 의외성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지금 와서는 조금 알 것도 같았다. 그래. 이런 군주여야 한다.


     이런 군주여야, 룰을 뒤집을 수 있다.


     "자자. 그런 의미에서 식후 수련입니다. 30분 휴식 후 시작해주십시오."


     그렇게 말하며 제갈량은 유비에게 새로운 메뉴얼을 건네어 주었다. 그 메뉴의 내용을 보고 유비의 얼굴이 파랗게 질리기는 했지만, 곧 마음을 다잡았는지 알겠다고 힘차게 외치며 고개를 끄덕인다. 30분 열심히 쉬어야겠다. 하면서 먼저 달려가버리는 주군의 뒷모습을 보면서, 제갈량은 제 남은 밥을 마저 먹기 시작했다.


     조금씩 시작하면 된다. 그가 가진 모든 의문은 분명 '그렇게 태어났기 때문'이라고만 귀결되는 문제는 아닐 것이다. 그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만일 해결되지 못한다면. 그 부조리가 여전히 이 몸을 옥죄는 족쇄라면.


     그 때엔 부술 것이다. 이 사람이 지닌 꿈의 힘으로.


     가장 소중한 사람이 선택한 사람이다. 그 힘을 믿을 것이다. 다 먹은 접시를 싱크대에 올려놓으며 제갈량은 길게 하품을 한다. 이제 곧 주군을 뺑뺑이 돌릴 생각을 하며, 그는 살짝 미소를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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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 장르 첫 글이란 이렇게나 아슬아슬한 것입니다....


    삼국전으로는 첫 글입니다.

    제 나름대로 제갈량의 행동을 납득해보기 위해 썼던 것이라고 해야 할까

    정확히 말하면 정리용이군요....


    아무래도 최애커플이 어수로 자리를 탁 잡아버릴 것 같아서...

    일단 어떤 느낌인가를 스스로 정리하는 느낌으로 써봤습니다.


    다만 량쨩 포지션이 포지션이라 너무 앞날이 걱정이 되는 것입니다... 아아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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