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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물이 거울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
    그 외 2016. 8. 17. 23:46




     "뭐야, 내가 무섭나?"


     재수없게도 웃는 그의 콧대를 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지금은 바라던 바대로 순조롭다. 이 몸을 얻은 뒤의 나는 기분이 좋다. 모든 것이 내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 같다. 그래. 모든 것이 드디어 이 손에 들어온 것 같다. 내가 추구하던 모든 것이 나를 채우는 것만 같다. 혼자 죽기는 억울하다는 이가 도술 대결을 청해 왔다. 그것으로는 내게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가소롭기 짝이 없는 짓이다. 나는 당연히 이겼다. 왜냐면 이기도록 짜여진 판이기 때문이다.


     버러지 같은 것.


     그는 내 암흑마법 앞에 쓰러졌다. 그 잘난 척 나를 비웃던 얼굴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진 채로 내 앞에 뒹굴고 있다. 그들의 어설프기 짝이 없는 계책도 실패했다. 감히 내 신선패를 빼앗으려 했던 멍청하기 짝이 없는 계획은 나의 위대함 앞에서야 한낱 휴지조각에 불과하다. 꼴 좋다. 나는 뒹구는 이에게 공격을 가했다. 내 안에 차오르는 울분을 그에게 토했다. 모를 것이다. 저 빌어먹을 낯짝을 한 이는 제 몸이 소멸될 때까지 내 분노를 이해할 수 없음이다. 빼어난 재능을 타고 나서 그 넘치는 재능을 자신이 처음부터 얻은 것인 마냥 휘두르던 놈이 어떻게 나의 분노를 이해할 것인가? 불가능하다. 그런 버러지로 태어난 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내 앞에서 뒹굴고 있는 것이다.


     그런 그를 돕겠답시고 버러지 같은 인간들이 달려들 때에도 나는 전혀 두렵지 않았다. 버러지들의 영웅심은 나의 한 끼의 반찬조차 되지 못하고 사그라든다. 뭐, 개중 두 놈 정도야 예전에 군주를 했으니 영웅심 양은 좀 된다만 그럼에도 턱없이 부족하다. 그는 버러지들을 두고 퇴각했다. 결국 그런 버러지 정도밖에 동원할 수 없는 너는 그 정도인 것이다. 나는 또 충만함을 느꼈다. 분노로만 가득하던 나의 마음을 메워주는 것은 그 대가로 주어지는 넘쳐흐를 정도의 기쁨이다.


     아아. 세상은 이제 곧 나의 것이다. 나의 모든 것을 부정하던 세상은 이제 내 것이야. 나의 옥새. 나의 꿈. 나의 세상. 모든 것. 지금 내게 주어진 이 모든 것들 중에 내 것이 아닌 것이 하나도 없다. 모두 내 손으로 얻은 것이다. 군주도. 이 힘도. 이 신선패도. 그리고 앞으로 옥새도 내 것이 될 것이다. 나는 신선이니 옥새의 관리자 자격도 충분하다. 그야말로 나의 세상이다. 내가 이 손 끝으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이 세상을 얻기 전의 나는 무엇 하나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누구처럼 도망칠 수조차 없었다. 신선의 의무라고 주어진 그 많은 것들을 나의 의무로만 알고 살아야만 했다. 그것에서 벗어날 길은 없었다. 나는 신선의 리더로 살아갔다. 어느 누구보다도 의무를 주창하며, 내게 주어진 부조리함을 남들 또한 의무로 알게 하였다. 그것 말고 너희들은 벗어날 길이 없다. 왜냐면 내가 먼저 벗어나야 하니까. 곧 드림배틀이 열린다는 것은 알고 있다. 드림배틀의 룰을 분석하여, 최상의 결과로 '내'가 승리할 수 있는 길을 찾는다. 그것은 내가 스스로 얻어야 하는 해답이었고 곧 나는 나의 '신선의 리더'라는 자리가 내게 아주 유리한 자리임을 알았다.


     "그러니 제갈량. 너 역시 드림배틀을 이끄는 영광스러운 신선으로……."

     "아. 날 신경 쓸 필요는 없어."


     리더의 힘을 이용하여 그를 이용할 생각도 했다. 그러나 내 의도대로 그는 놀아나지 않았다.


     "인간의 도구 따윈 사양이야. 난 배틀에 참가하지 않을 테니 네가 지지고 볶든 마음대로 해."


     그는 그 말을 남기고는 신선계 어딘가로 잠적해버렸다. 그 위치는 서서만이 아는 듯 하다. 뭐. 아무래도 좋다. 나는 그를 이기고 싶었지만, 그가 애초에 대결을 포기한 이상 결국 내게서 도망친 비겁자에 불과하다. 어차피 내가 만들 세상에 신선들과 같이 나아갈 생각은 없었다. 그럴 필요도 없이 신선은 자기가 선택한 군주가 우승하지 못하면 소멸되는 존재일 뿐이다. 그는 결국 제가 가진 재능을 써 보지도 못하고 소멸할 운명이다. 하! 나는 그 말을 듣고 얼마나 그를 비웃었는지 모른다. 어리석다! 어리석고 가련한 존재다! 제 한 치 앞의 운명조차 바라보지 못하면서 뭐가 선계 최고의 신선인지! 나는 그가 떠날 때까지 웃는 것을 참느라 얼마나 애를 썼는지 모른다.


     그리고 배틀은 시작되었고, 그는 참가했다. 빌어먹을 일이었다. 물론 나는 그를 대비한 보험을 몇 개씩 만들어두기는 했다. 그러나 분명히 배틀에 불참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그가 왜 갑자기 배틀에 참가하게 되었는가. 그리고 왜 하필 '유비'에게 가세하였는가. 말할 필요도 없다. 서서 때문이겠지.


     나는 그의 앞에서 최대한 약한 이를 가장하였다. 그가 알고 있을, 신선으로서의 최상을 추구하며 신선으로서 의무에 최선을 다하는 그런 존재로서의 나를 가장했다. 그는 속았다. 아니, 애초에 속지 않은 이가 없었다. 유비도, 나의 주군도, 그도 모두가 내 손 끝에서 놀아나고 있다. 나는 기뻤다. 나의 세상이 가까워질수록, 장기말들은 움직이는 이의 의도조차 알지 못하며 그저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내 세상이 다가올 때 쯤이면 늦는다. 그런 어리석은 장기말들의 아연실색한 표정을 바라보는 것은 아주 즐거운 일이었다.


     그리고 나는 사마의에서 사마염이 되었다. 불꽃(炎)처럼. 분노를 태워 내며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낼 단 하나의 존재로 탄생하였다. 이렇게나 위대한 나의 존재 앞에서는 선계 최고의 신선이니 어쩌니 하는 허명조차 무색하다. 신선의 의무가 만들어낸 가장 위대한 존재다. 군주와의 궁극의 조합. 이전의 마더컴이나 다른 신선들은 전혀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나만의 비책. 그렇다. 이렇게 세상은 내 것이 될 것이다. 나는 내 한계를 뛰어넘었다. 신선으로서의 의무를 이해한 만큼이나 한계를 느꼈던 내게, 내가 품은 분노를 이 빌어먹을 세상에 풀어야 할 당위성은 충분하다.


     하지만 유비는 또 다시 나타났다. 그러나 그의 모습은 다르다. 가슴에 박힌 신선패를 보고 알았다.


     "제갈량인가? 결국 너도 주군의 몸을 빼앗았구나."

     "아니. 나는 유비다."


     두 번에 걸쳐 대답한 이를 보고 나서야 나는 알았다. 선계 최고의 신선이라는 자는 끝까지 어리석었다는 것을. 자기 선택의 결과가 비참함만 남길 것을 빤히 알면서도 결국 그것을 선택하는 바보 천치였다는 것을. 기가 막힐 노릇이다. 나는 왜 이들에게 이길 수 없다고, 스스로 분노해야만 했는가? 왜 이 방해꾼들을 진작 제거하지 못했다고 자책했을까? 어이가 없다. 어이가 없을 정도로 약하고 어리석은 버러지밖에 되지 못한다.


     "그렇군. 제갈량은 너를 지키기 위해 자길 희생한 거군. 어리석구나. 자기가 몸을 빼앗았어야지!"

     "나는 제갈량과 함께야. 너 같은 거에게 질 거라 생각해?"


     달려드는 유비의 뒤에서, 나는 분명하게 그를 본 것 같았다. 그가 있었다. 그 자리에. 처음 만났던, 그리고 내가 알던 그대로의 재수없는 면상을 하고서. 그 버러지같은 모습으로 내 앞에 있었다.


     "어리석구나. 사마의."


     유비의 공격을 하나하나 받을 때마다 그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나는 참을 수가 없었다. 가장 어리석은 선택을 했던 주제에, 소멸한 주제에 나를 방해해!


     "네겐 알 수 없겠지. 소중한 사람이 무엇인지. 이 세상이 불타서는 안 되는 이유 같은 건 말이야."

     "건방 떨지 마라!"

     "가여운 존재야. 네게는 이 세상조차 잔해로밖에 안 보였겠지."

     "닥쳐!!!!"


     입을 다물리게 하고 싶었으나 나는 수세에 몰려 있었다. 힘을 얻은 유비는 강했다. 빌어먹을. 나는 한 번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주춤하는 칼을 보았다. 끝까지 무르구나. 어리석은 자들아. 나는 선계병들에게서 얻은 영웅심을 흡수했다. 다시 한 번 시작할 수 있다. 나는 계속 강해질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인간들의 영웅심을 빨아먹는 이상 나는 절대로 지지 않는다. 보아라. 빌어먹을 놈들아. 이것이 내 세상을 향한 복수니까.


     "너는 질 거다. 사마의."


     또 목소리가 들린다.


     "네 생각 이상으로, 나와 주군은 강하다. 이 세상도 마찬가지야."

     "이 세상이 뭐가 좋다고 이리 감싸대는 것이냐!"

     "삶은 허무하지 않으니 허무한 것은 나라."


     유비 뒤의 그는 또 웃고 있었다.


     "의무에 얽매이느라 망가진 나의 동료여. 부조리한 세상에 부조리한 길을 택한들 세상이 바뀔까."

     "도망친 네가 할 소린 아니다. 의무 따위 이행한 적 없는 주제에."

     "맞아. 나는 도망쳤어. 그러나 지금은 도망치지 않는다. 그 결과를 똑똑히 지켜보도록 해. 사마의."


     암전. 더 이상 그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어리석은 나의 동료이자 적수여. 나는 이길 것이다. 너는 재능이 있으니 나의 이 세상을 향한 원망을 모른다. 나는 죽어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이 부조리한 시스템을 깨부수기 위해서는, 세상 자체를 깨부숴야 한다.


     지켜보아라. 너의 어리석음을. 나의 승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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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일이면 파괴될 이야기라 지금 써야 했습니다.

    빌어먹을 49화.


    제목이 저 모양인건 내용으로 대충 짐작해주십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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