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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에게 우주 - 1. 존재(存在)
    가면라이더/4z 2018. 11. 5. 23:38



    2014년.... 아마 7월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쨌든 그 때 냈던 하야미 교장 과거 책이었던 물건입니다.

    공개가 늦어진건 불과 작년까지 재고를 팔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세월이 길어졌고, 어느 순간부터 교장센세를 좋아하는 분들이 제법 늘어나서
    (저랑 같이 파주셨더라면 참 좋았을 텐데 말이죠....)
    공개를 해도 될 것 같아서 공개합니다.

    이 글이 포제로 쓰는 마지막 글이었습니다.

    원래는 이 뒤로 키지마가 과거에 난입하는 글도 쓸 생각이었지만...
    아마 그걸 못한게 이때쯤 정도전 팡인이었지 싶습니다.......

    어쨌든 재미있게 보셨으면 좋겠네요.

    원래 소제목이 4개였던지라, 4편으로 나눕니다.





    -

     그는 혼자였다. 누군가와 같이 한다는 것. 누군가와 행복을 느낀다는 것. 그것은 그에게는 너무나도 머나먼 이야기였다. 그를 낳아준 부모도, 그와 함께한 수많은 이들도 모두 그와 어울리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랬기에 그는 혼자인 것이 당연한 이였다. 혼자가 아닌 스스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이였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어쩌면 인간으로서는 지극히 도태된 존재일지도 모른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으로 살면서 사회라는 것을 제대로 느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도태된 인간은 도태될 뿐이었다. 그리고 도태된 인간은 다른 이들을 도태시켰다. 그리고 그는 최고가 되었다. 마치 자신이 여기 살아있다는 걸 알리기라도 하려는 듯, 그는 계속 위로 나아갔다. 사회 속에서 인간이 자신의 우월함을 증명할 수단이란 무엇인가. 능력이었다. 그는 그 능력에선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특히나 그가 좋아했던 물리학에 대해서는. 그렇게 그는 수석이 되었고, 그 수석의 자리에서 단 한 번도 내려온 적이 없었다. 인간사에 관심을 끊어버린 그에게 유일한 낙은 제 앞에 펼쳐지는 수식들뿐이었다. 거름이 없이 한 번에 답을 내리는 그 수식. 그리고 그 수식을 둘러싼 수많은 이론과 누군가가 이룩해낸 연구의 수단들. 그는 그 안에서 만족했다. 과학이라고 하는 것은 적어도 그의 생각에는 아주 명확한 것이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현실의 인간보다는 말이다.

     그는 위에 있었다. 하지만 그 위라는 것은 결국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안개 속에 불과했다. 지독히도 뿌옇기에 그 앞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는.

     하야미 코우헤이의 우주는 안개 속이었다.



     - 너에게 우주 君に宇宙

     



    1. 존재(存在) - 현재 페이지
    2. 침잠(沈潛) - http://libracollection.tistory.com/340
    3. 재생(再生) - http://libracollection.tistory.com/341
    4. 각성(覺醒) - http://libracollection.tistory.com/342






    1. 존재(存在)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1


     - 큰일이야. 하야미 군. 하야미 군의 부모님이 사고로…….

     왁자지껄한 쉬는 시간. 그를 부르는 담임 선생님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하야미는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자신의 옆에서 조용히 그 이야기를 전한 선생을 하야미는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하야미의 얼굴을, 충격받은 것으로 생각했던 모양인지 담임 선생은 다급히 말했다.

     “조퇴서는 써 줄 테니, 어서 병원으로 가 봐.”

     하야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재빠르게 짐을 싸고, 자신이 떠나야 안심할 선생의 얼굴을 보며 그는 학교 밖으로 걸어 나갔다. 아무도 없는 학교를 혼자 먼저 하교하는 느낌. 이상한 것이라고 하야미는 생각했다.

     “사고로. 병원에 있다.”

     하야미는 그 말을 아무렇지 않게 되뇌었다. 부모님이 사고로 병원에. 그 말은 하야미에게 굉장히 낯설게 들렸다. 낯설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충격이 들지 않는다고 할까. 하야미에게는 머나먼 말이었다. 그 머나먼 느낌은, 부모님이 입원했다는 병원에 가서도 마찬가지였다. 수술실 앞에서 신분을 말한다. ‘아아, 그 환자…….’ 그렇게 말하는 의사의 표정은 그다지 밝지 않았다. 하야미는 직감적으로 상황을 알 수 있었다. 심각한 건가. 하지만 여전히 무감각했다.

     수술실 냄새는 지독했다. 피비린내와 약품 냄새가 섞인 것 같은 공기에서 하야미는 침대 너머를 보았다.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었다. 모두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붕대로 잔뜩 몸을 감싼 그들은, 할 말이 있는 듯 하야미를 향해 입을 열었다. 산소 호흡기 너머라 하야미에게는 잘 들리지 않았다. 교통사고라고 했다. 하야미는 몸을 가까이 했다.

     “코우헤이…….”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아무 것도 듣지 못하고. 그들은 그렇게 허무하게 생을 마감해야 했다. 하야미는 그들을 가만히 보았다. 분명 자신을 낳고, 기른 이들이다. 하지만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았다. 신기한 일이라고, 스스로도 생각했다.

     하야미의 그 생각은 상주가 된 후에도 변하지 않았다. 자신을 키워줬던 이들이 관으로 들어가고, 생전 부모님의 동료였다는 사람들이 그를 위로할 때에도 변하지 않았다.

     “가엾은 것. 부모님이 없으니…….”

     그렇게 말하며 머리를 쓰다듬은 이들이 몇이던가. 그럴 때마다 하야미는 불쾌해졌다. 하지만 그는 참았다. 그들의 손이 닿은 부분을 제 손으로 쓸어내며, ‘아니오. 저는 가엾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려는 것을 입 안으로 삼켜내면서.

     사실이었다. 하야미 코우헤이는 단 한 번도 스스로를 가엾다 여긴 적이 없었다. 그것은 가엾다라는 감정이 생길 여지조차 없었던 시간을 보내 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스스로가 불쌍하다. 그런 생각을 할 여유 같은 건 이제 막 18살이 된 하야미 코우헤이 군에게는 없었던 것이다. 

     하야미 코우헤이의 부모는 소위 말하는 워커홀릭이었다. 일 때문에 집에 늦게 들어오는 것은 다반사요, 하야미가 어떤 것을 하는지도 제대로 모르는 경우도 있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요. 아, 네가 벌써 고등학생이었던가. 이런 식으로 관계가 이루어진 것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처음의 하야미는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무언으로 말했다. 나에게 간섭하지 마라. 나에게 다가오지 마라. 부모가 하야미에게 해준 것은 그저 방치였다. 그가 필요할 만큼의 돈을 주고, 그러니 알아서 해오라는 식의. 정말로 먹여주고 재워주는 것 이상의 기능은 하지 않았다. 그랬기에 하야미는 그들이 눈을 감더라도, 전혀 이상한 느낌이 들지 않았다. 소중한 사람의 상실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저 벌레 한 마리가 자신의 앞에서 죽은 것만 같은. 하야미에게 부모의 죽음은 그 정도의 느낌이었다.

     3일 째에 입관. 화장이 끝난 뒤에 쓸어 모으는 뼈의 흔적들을 하야미는 무미건조한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다. 입관까지 따라온 이들은 그런 그가 슬픔에 눈물조차 말랐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자기 멋대로였다. 하야미는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들으며 웃음을 참으려 안간힘을 써야 했다.

     안장은 거부했다. 납골당 정도면 충분하다. 하야미는 그렇게 말했다. 유골이 안착된다. 그리고 문이 닫힌다. 그렇게 하야미와 부모의 인연은 끝이 나고 말았다. 방문을 해준 사람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혼자 남은 하야미는 그들과의 작별을 분명히 했다. 뒤를 돌아보는 데에 망설이지 않았다.  



     2


     과거의 꿈을 꾸었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 과거를. 하야미는 눈을 떴다. 아침이 찾아온다. 가지고 싶지 않은 아침이. 또 다시 하루가 시작되었다. 그렇게 된 뒤로도 그는 살아 있었다. 살려고 했다. 그랬기에 여기에 있었다.

     하야미는 한숨을 쉬었다. 그들을 떠올리니 또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들은 정말로, 먹고 입혀준 것 말고는 자신에게 해준 것이 없는 이들이었다. 그 외의 모든 것은 자신이 스스로 해야 했다. 그러지 않고서는 살 수 없었다. 도와달라고 말해도 외면했던 이들이다. 외면했다. 그런데 왜 그들의 이야기를 보았던 것일까. 하야미는 몸을 일으켜 세면실로 갔다. 양치를 하며 그는 거울을 보았다. 다 늘어진 티셔츠 안, 쇄골 부분에 있던 상처가 눈에 보였다. 하야미는 눈살을 찌푸렸다. 이것은 언제 없어지는 것일까. 그것은 하야미에게는 드러내고 싶지 않은 역린 같은 것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당해온 괴롭힘의 흔적. 이것이 몇 년이 지난 지금의 자신에게까지 남아있다는 것이 하야미는 슬펐다.

     정말로, 그 때 그들은 도와주지 않았다. 하야미를 도와줬던 것은 하야미 뿐이었다. 그를 괴롭혔던 이들은 정말로 목적 의식조차 없는 쓰레기였다. 그저 재미있다는 이유 하나로 그 모든 것을 자행해왔다. 도움조차 구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도움을 구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들자. 그렇게 생각했던 하야미는 공부에 매진했다. 그로서는 나름 묘책이었다. 전교 1등이 되었다. 엘리트 주의가 강했던 이 학교는, 하야미가 그렇게 급부상하니, 그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시작했다. 참으로 우스운 일이었다. 이전에는 그의 말을 들어주지도 않던 이들이, 앞장서서 그를 괴롭히던 이들에게 철퇴를 가했다. 그들은 모두 강제 퇴학되어 학교를 떠났다. ‘그냥 아이’를 건드린 이들은, ‘전교 1등’을 건드린 대가를 치루게 된 셈이었다. 그 날, 하야미는 울었다. 이렇게 되어버린 상황이 우습고도, 억울하고도, 슬펐었다. 만일 자신이 전교 1등이라도 되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만 해도 소름이 돋는 일이었다. 이대로. 이대로 말라 죽을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그 이후, 하야미는 사람을 믿지 않게 되었다. 애초에 믿음조차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기대조차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는 차라리 자신 앞에 놓여진 책의 글자가 더 편안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의도를 숨기지 않는다. 글자라는 이름 하에 제가 하고 싶은 말을 마음대로 한다. 그것이 부러웠고, 그것에 따라 문제를 풀고 답을 적는 것이 좋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하야미는 자신이 원리를 추구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물리 법칙. 중력. 중력을 넘는 것. 우주. 원리. 어느 순간 보이기 시작한 그것은, 여태 가득 메우고 있던 하야미의 안개를 조금씩 걷어내고 있었다.

     그랬다. 우주였다. 하야미는 점차 깨닫기 시작했다. 사람이라는 것은 결국 우주의 조각에 불과한 것이었다. 근처의 사람보다도 더더욱 크고 머나먼 것이 있었다. 거기를 찾아가면 분명히. 이 사람들과 마주하지 않아도 된다. 자유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모든 꿈은, 사실 거기에 있었던 것이다. 고등학생 하야미는 공부했다. 그리고 과학으로 이름이 높던 교토 대학의 우주물리학과를 지원해, 여유롭게 들어갔다.

     그리고 또 시간이 흘러 지금이 되었다. 꿈만 같던 학부 4년의 세월이 지나, 지금 이 순간. 자신은 여전히 우주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하야미는 집을 나섰다. 하지만 그 발걸음이 마냥 가볍지만은 않았다.



     3


     “따분하군. 이걸 주제라고 고른 건가?”

     연구실 안에서 시오자와 교수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그의 문책을 듣고 있던 갈색 더벅머리의 학생, 하야미 코우헤이는 아무런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그저 그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저번에도 말했건만 또 이런 걸 골라왔군. 이 주제는 지나치게 지리멸렬해. 석사 수준의 인간이 고를 수준의 주제가 아니야. 조금 더 고상하고, 그러면서도 많은 이들의 연구가 이루어지는 그런 주제를 고르는 게 자네의 졸업에도 더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은 안 드는 건가?"

     하야미는 여전히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눈에서는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처음부터 다시. 주제 선정부터가 에러야."

     그 말을 끝으로 시오자와 교수는 자기 일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이제 더 이상 그에게서 아무 정보도 얻어낼 수 없음을 꺠달은 하야미는 가만히 그를 보다 그의 연구실을 나가려 몸을 일으켰다.

     "아, 그래. 그건 두고 가. 내가 폐기하지."

     사실 그의 논문이 기각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는 자신이 퇴짜를 놓은 원고를 항상 두고 가라고 했다. 보통은 이런 일이 있나 싶겠지만 하야미는 특별히 그 일을 신경쓰지는 않았다. 어차피 쓰레기통에 들어갈 원고라면 누가 버리든 매한가지라는 생각에서였다. 하야미는 제 원고를 두고 연구실 문을 닫았다. 아무도 없는 허한 복도 한 가운데에서 그의 고독감만이 울러퍼졌다.

     이번에도 꽝인가. 하야미에게 드는 생각은 좌절이 아니었다. 그것은 체념과도 가까운 것이었다. 체념이라고 함은 누구에게의 체념인가. 시오자와 교수에 대한 것이었다.

     하야미는 물리학이 좋았다, 어느 수식을 바탕으로 한 체계적인 이론. 그 이론이 지닌 무한한 가능성, 한 사람의 인간보다도 더 많은 신비를 담고 있는 우주의 너머. 공간. 시간. 무한히 커져가는 우주. 그 와중에도 무한히 작은 원자, 분자. 이 모든 것을 통괄하는 것이 물리학이었다, 하야미는 그 학문을 위해 자신을 바치기로 했다. 이론 속에 빠져 지내는 삶이야말로 그의 가장 큰 이상향이었다. 그랬기에 우주물리학과도 있고, 이 쪽에서는 상당히 유명세인 교토 대학에 그는 진학했던 것이다. 어릴 때부터 수석을 한번도 놓지 않았던 그였다. 이 대학에 오는 일은 어느 누구보다도 쉬웠을 것이다. 그리고 이 곳에서 무사히 학사를 지낸 뒤 석사 과정을 밟게 되었다. 우주는 부던히도 넓었다. 학사 수준으로는 하야미의 지식욕을 채울 수조차 없었다. 하야미는 스스로 공부했다. 스스로 이론을 이해했고, 스스로 새 이론을 정립해보기도 했다. 보통은 증명이 되지 않았지만, 그것만으로도 하야미는 왠지 새로운 자신의 세계를 만드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고요하고도 평화로운, 자신만의 우주. 주변에는 아무도 없는 그런 우주.

     그렇게나 우수한 그였으나 이상하게 석사 논문 단계에서는 난항이 자꾸 일어났다. 그것은 분명하게 그의 탓이라고 하야미는 생각했다. 시오자와 카즈히로. 그의 지도교수. 그는 우주물리학계에서 상당히 유명세를 떨치는 교수였다, 그가 설명하는 이론이 어느 정도 납득 가능하다고 판단한 하야미는 그를 자신의 지도교수로 선택했다. 하지만 이론만으로는 사람을 볼 수 없는 법이었다. 하야미의 생각보다 그는 훨씬 고지식하고, 제 멋대로인 인간이었다. 다른 교수가 나을 뻔했다고 생각한 하야미였지만 이미 늦었다. 그리고 그런 하야미의 예상대로 그와는 계속 갈등을 빚고 있었다. 그 이유는 하야미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주제가 이상하다며 초안부터 퇴짜를 놓으니 그에게는 그야말로 망망대해에 떨어진 느낌이었다. 그럼 당신이 마음에 들 주제는 대체 어떤 주제인 것이지? 그런 방향조차 그는 알려주지 않았다. 지도교수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라고 하야미는 생각했다.

     지친 몸으로 그는 휴게실로 들어와 앉았다. 아무도 없는 빈 테이블에 앉아 학교에 오면서 사온 샌드위치를 꺼내었다. 차분히 그것을 먹으면서 어떻게 논문을 쓸 지 다시 생각하려는 하야미였지만.

     "이야, 이게 누구야. 우리 학교 수석 아냐?"

     불쾌한 목소리로 그의 휴식을 방해하는 이가 있었다. 그 무리들이 하야미 주변을 둘러쌌다. 그 광경이 익숙한 하야미는 유치하다는 생각을 감출 수가 없었다. 아직도 이런 무리들이 있다니.

     "여태 졸업 안 하셨어? 뭐하느라?"

     하야미는 대답하지 않았다. 머저리가 멋대로 떠드는 소리의 내용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저 이 시끄러운 인간들이 빨리 제 눈 앞에서 사라지길 바랄 뿐이었다.

     "아. 수석 놓쳐서 상심이라도 했나?"

     시끄럽고 귀찮다. 말을 하는게 좋을까? 방해하지 말지? 밥 먹는 데 거슬려. 실은 그 한 마디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근데 입은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다. 아마 이 인간들과 말도 섞기 싫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 하야미는 결국 그 시끄러움을 감수하며 샌드위치를 먹기 시작했다.

     "와, 주제에 도도한 척. 상대도 안 해준다는 건가?"
     "얘 결국 그거잖아? 적응 못해서 휴학했다 뒤늦게 돌아온 거."

     그게 아닌데. 그걸 변명할 말조차 하야미의 입에서는 나오지 않았다.

     "야. 재미 없다. 가자."
     "그래. 혼자 잘난 척 살라지."

     그러다 지친 그들이 사라졌다. 하지만 하야미는 알고 있었다. 말은 저렇게 하면서 항상 그들은 자신에게 시비를 걸었다. 그들은 하야미의 동기였다. 그들이 하야미에게 그런 식으로 대하기 시작했던 건 역시 하야미가 신입생이던 시절 그들이 그 '수석' 나으리에게 도움을 받으려다 거절당한 이후였을 것이다. 그 때나 현재나 하야미에게 인간이라는 것은 관심 밖의 존재였기에 그로서는 지극히 당연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항상 시끄러운 인간들의 등장이라는 형태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하야미는 이런 현상엔 지극히 익숙한 인간이었다. 하지만 익숙한 것과는 별개로 귀찮은 것은 매한가지였다. 

     점심을 다 먹긴 했지만 속이 불편했다. 시끄러운 인간들 때문이리라. 하야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있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 수업도 이제 없고, 그는 다시 또 논문의 내용을 생각해야 했다. 하야미는 말없이 복도를 걷고, 학교를 나왔다. 가을 하늘이 그의 옆을 스쳐지나갔다.



     하야미의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익숙한 고요함을 파고들어, 그는 제 방에 들어가 불을 켰다. 열어놓은 창문에서 가을바람이 솔솔 들어왔다. 매캐한 도시의 냄새가 나는 듯하면서도 꽤나 시원하고 상쾌한 바람이었다. 하야미는 책상 앞에 앉아 책꽂이에 한가득 꽂힌 물리 이론책들을 바라보았다. 이 안에 자신이 추구하던 것이 있다. 하지만 거기에 닿기에는 너무나도 멀기만 했다. 물리학은 자신의 동반자였다. 그래야만 했다. 하지만 지금의 하야미에게 이 학문은 마치 거대한 벽처럼 다가왔다. 이런 적은 없었다. 이래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물리학은 단 한 번도 자신의 마음을 배신한 적이 없었기에.

     하지만 아직은 그 벽이 높지 않았다. 아마 잠시 쉬라는 의미에서 학문이 자신에게 시련을 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야미는 두꺼운 책을 하나 꺼냈다. 양자역학론. 그는 그것을 차분히 읽기 시작했다. 머리를 굴린다면 아마 잡다한 생각은 잊지 않을까. 그런 마음으로. 

     


     4


     “오, 오랜만이군. 잘 지냈나. 하야미 군.”

     누군가가 그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보통은 그를 거슬리게 하는 시끄러운 목소리였겠지만, 지금 하야미의 귀에 울리는 소리는 그것과는 다른 성질의 것이었다.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한편으로 자신에게 시선을 집중토록 하게 만드는 목소리. 하야미는 이 목소리의 주인을 알고 있었다.

     "가모우 교수님......"
     "안색이 좋지 않군."

     가모우라고 불린 그 남자는 여유로운 얼굴로 하야미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하야미의 어깨를 툭 쳤다. 갑자기 닿는 체온은 상당히 따뜻했기에, 하야미는 놀란 얼굴로 그를 보았다.

     "무언가 시름이 있는가."
     "아니오.. 그런 건."
     "하긴, 생각해보면 이 시기에 고민은 하나 뿐이겠군."

     그러면서 그는 소탈하게 웃었다. 하야미는 그를 불안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가모우 미츠아키. 일본 우주 학계에서는 이미 상당히 유명세를 누리고 있는 과학자이자 지금 이 대학에서 겸임교수직을 맡고 있는 이였다. 수업이 훌륭한 것은 물론이요, 인품까지 대단하니 그의 수업은 이미 대학 내외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었다. 하야미 역시 학부 시절에 그의 수업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 때의 기억은 상당히 유익한 수업이었다는 것. 그렇게 생각한 이후로 하야미는 학부 시절 들을 수 있는 그의 수업이라면 전부 찾아 들을 정도로 그의 수업에 한해 열성적인 학생이 되었다. 만약 하야미가 대학원 진학 시 지도교수로 그를 선택할 수 있었다면 주저 없이 택했을 사람이었다. 다만 가모우는 교토 대학에 소속된 정식 교수가 아니었고, 지금의 그는 자신이 건립하고 있는 학교의 일로 바쁜 이였다. 그랬기에 하야미는 시오자와를 택했던 것이다. 그런 만큼 하야미에게는 특별한 존재였다.

     "주제 선정이 어려운가?"

     신기한 건 이렇게 가끔 그는 하야미의 속을 들여다보는 듯 말을 하고는 한다는 것이었다. 논문 떄문에 고민할 것까지는 쉽게 짐작이 가능하나, 구체적으로 주제를 묻는다는 점에서 하야미는 소름이 돋았다. 그는 가끔 이렇게 알기가 어려운 면모를 보인다. 그것을 아는 사람은 몇 명 없는 듯 했다. 들려오는 소문을 보면 알 수 있는 것이었다.

     "어떻게."
     "시오자와 교수는 상당히 까다로운 사람이지. 특히나 유능한 사람에게는 말이야."
     "무슨.... 뜻입니까."
     "말 그대로의 의미일세."

     가모우는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자네같이 우수한 인재가 까다로운 교수 하나에게 붙잡혀 있는 건 인력의 낭비이지."

     그러다가 가모우는 말했다. 

     "교수님......"
     "괜찮다면, 차라도 한 잔 하겠나? 어쩌면 내가 자네에게 도움이 될 지도 모르지."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하야미는 쉽사리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해하기 어려움과 더불어 낯선 느낌이었다. 무언가의 대가를 바라는 것 말고 누군가가 자신에게 선뜻 다가온 적은 없었기 떄문에. 가모우 교수 역시 자신에게 무언가 노리는 수가 있어서 이러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야미는 왠지 믿고 싶어졌다. 무엇보다 가모우가 자신에게 바랄만한 특별한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영광입니다."

     그 다섯 글자를 하야미는 겨우 꺼낼 수 있었다. 가모우는 만족한 듯 웃으며 하야미를 이끌었다. 그들이 간 곳은 대학 근처의 어느 다방이었다.

     "이상하군. 그 주제는 내가 듣기엔 충분히 합격감인데. 소재가 아주 충실해. 자네가 생각해낸 것이라면 칭찬마저 해주고 싶어지는데." 

     가모우는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의 목소리에서 진한 아메리카노의 향기가 퍼졌다. 하야미는 불안한 듯 몸을 꼬고 앉아 가모우의 말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주제가 기각될 이유가 없는데." 

     가모우는 이상하다는 듯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하야미는 잃어버린 자신감을 되찾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래. 자네의 주제 선정은 훌륭해."
     "그런데 왜...."
     "왜 기각이 됐냐고 묻고 싶은 건가?"

     가모우는 또 다시 의미 모를 웃음을 지었다.

     "그건 나로선 알 수 없는 것이지. 나는 시오자와 교수가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면 왜 아는 척을 했는가. 하야미는 묻고 싶었지만 말은 나오지 않았다.

     "으음. 힘들어 보이는 군."

     그러다가 가모우는 또 다른 소리를 했다.

     "내 자네에게 묻고 싶은 것인데, 자네는 이 주제를 어떻게 하고 싶나? 시오자와 교수의 말을 따라 폐기하고 싶은가?"

     논문의 내용에 대해 묻는 것이었다. 하야미는 고개를 저었다. 그도 당연했다. 하야미는 그 주제를 반드시 하고 싶었다. 그랬기에 들고 갔던 것이다. 자신의 현재 입장과 모든 것을 생각하면 그것이 가장 이상적인 것이었다.

     "그래. 그렇군. 그렇다면 내 자네에게 한 가지 충고를 해주지."
     "충고라뇨?"

     가모우는 다시 커피 한 모금을 입에 담았다.

     "모든 사람에게는 겉에 보이는 것과는 다른 면모가 있다네. 그것은 어떤 사람이라도 예외가 될 수는 없어."

     그렇게 말하며 가모우는 자신이 들고 있던 가방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그것은 대학에서 내놓은 우주물리학 관련 학술지였다.

     "자네가 직접 판단해보게. 시오자와 교수가 어떤 사람인지 말이야."
     "이건...."
     "우리 대학의 학술지이지. 시오자와 교수의 논문도 있을 테니, 논문을 읽다 보면 어떤 사람인지 파악이 되겠지. 자네는 이론으로 사람을 보는 사람이니까."

     가모우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이론으로 사람을 본다는 말을 들으며, 하야미는 그와 아주 처음 만났을 때를 기억했다. 

     - 그래, 자네는 내가 어떤 사람으로 보이지?

     물리학 과목의 오리엔테이션 시간이었건만, 그는 엉뚱한 질문을 던졌더랬다. 자신이 어떤 사람으로 보이냐는 것이었다. 뭣도 모르는 학생들은 다들 입을 우물거릴 뿐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그 때 가모우가 처음으로 지목한 이가 하야미였다. 하야미 역시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한 것은 매한가지였다. 무엇보다 그는 낯선 이가 자신을 부르는 것에 익숙한 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교수님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잔뜩 긴장한 하야미는 자그마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째서이지?" 

     가모우의 목소리가 가까이에서 들려왔다.

     "언젠가 교수님의 저서를 본 적이 있었습니다. 굉장히 훌륭한 저서였다고 생각했습니다. 교수님이 펼친 이론들은 제 안에서 정말 완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 훌륭한 것을 생각해 낼 수 있는 사람이라면, 분명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가모우는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 이거, 사람을 이론으로 보는 학생이라니! 재미있어, 아주!

     그 이후였을까. 그는 제대로 하야미를 보고 있었다. 하야미 역시 그를 외면하지 않았다. 그러한 수업을 몇 번 거치고 나니 하야미는 가모우를 흠모하게 되었다. 그럴 만한 사람이었고, 그럴 만한 과정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사실 그런 자네의 눈은 틀린 것이 아니네. 그 사람의 이론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에선 그 사람을 나타내는 아주 좋은 지표이거든."

     학술지의 내용을 들여다보는 하야미를 보며 가모우는 말했다.

     "그러니 잘 생각해 보게나. 무엇이 잘못되었고, 무엇이 옳은 지를."

     가모우는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학술지는 내가 주는 것이네. 부디 잘 이용하길 바라겠네."

     그 말을 끝으로 가모우는 자리를 떠났다. 어느덧 그 테이블에는 혼자 남은 하야미와 식어가는 그의 커피만이 남아있었다. 하야미는 그것을 마시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건......'

     하야미의 눈은 시오자와 교수의 논문에서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그의 손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다음 페이지를 넘겨야겠다는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논문 내용이 지나치게 충격적이라던가 그런 사소한 이유가 아니었다.

     분명히 폐기되었어야 할 하야미의 논문이 거기에 있었기에.


     

     5

     

     어떻게 된 일인가,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다. 하야미는 여태 일어난 적 없는 일에 대해 대처하는 법이 서툴렀기 때문에. 계속 손이 떨렸다. 어떻게 해야 할까.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자신에게 도움을 줄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나마 조언을 해줄 것으로 생각했던 가모우 교수 역시 그의 앞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하야미의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공허 속에 홀로 남은 느낌이었다. 혼자는 익숙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익숙치 않다. 이런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도 없으며, 믿어줄 이도 없을지 모른다. 증거가 없었다. 아무 것도. 하야미 자신은 두 눈 다 뜨고도 자신의 논문을 빼앗긴 셈이었건만,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것이다. 그의 빛나던 능력이 낳은 부작용이었다.

     모르겠다. 모르겠다. 그의 두뇌가 사고를 포기했다. 완전히 작동 불능을 선언해버린 셈이었다. 머릿속을 뒤덮은 검은 안개가 걷힐 줄을 몰랐다. 하야미는 부유하는 기분을 떨치지 못하고 가게를 나왔다. 바깥의 햇살은 지독하게도 따뜻했다.

     하야미는 터덜터덜 걸었다. 안개 속을 걷는 듯한 막연함의 끝은 시오자와 교수의 연구실 앞에서 멈추어 있었다. 왜 이 곳으로 와버린 것일까. 아마도 제 본능은 이야기라도 해보라는 결론에 도달했던 모양이다. 하야미는 연구실 문을 두드렸다. 곧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야미 군?"

     시오자와 교수는 꽤나 놀란 얼굴이었다. 그의 시선은 하야미의 눈에서부터 그가 손에 들고 있던 학술지까지를 슥 훑어보고 있었다. 시오자와의 얼굴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교수님. 저는... 믿고 싶지 않습니다."

     하야미는 한 단어씩, 조심스럽게 입을 떼었다.

     "당신이 제 논문을... 이런 데에 이용하고 계실 줄은."

     하야미는 학술지를 펼쳐들었다. 시오자와 교수의 논문이 있는 그 페이지였다. 시오자와의 눈썹이 씰룩였다.

     "자네가 무슨 소리를 하는 지 모르겠군."

     시오자와는 피곤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논문의 내용은, 교수님이 제일 처음으로 기각시켰던 제 논문의 것입니다."  

     하야미는 말했다.

     "모르시진 않겠죠. 당신이 폐기하겠다 하셨으니."
     "전혀 모르겠는데. 난 내가 기각한 논문의 내용은 기억하지 않거든."

     시오자와는 의아하다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우연이겠지. 내가 쓴 것을 자네가 같이 썼던 게 아닌가? 그래서 내가 기각시켰던 거였던 것도 같고."
     "아니오. 교수님은 제 것을..."
     "증거는 있나?"

     시오자와는 여태껏 하야미가 본 적이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내가 자네의 기각된 논문을 내 것으로 냈다는 증거 말일세."
     "그건...."
     "자네의 말로는 증거가 되지 않아. 기각당한 자네의 논문이 발표되었나? 아니지. 내가 자네의 그 논문을 기각시켰다는 증거조차 없어. 지금 자네의 말을 증명할 수단은 자네 뿐이지. 그런 말은 아무도 믿지 않아. 하다못해 내게 그런 얼토당토 않은 말을 하려면 좀 더 그럴싸한 증거를 들고 찾아오는 게 어떻나, 하야미 군?"

     시오자와 교수는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지금 나를 찾아온 이유가 그런 되도 않은 소리를 하기 위해서였다면 어서 여길 나가게."
     "교수님!"
     "나를 음해할 시간에, 조금 더 그럴싸한 논문을 써 오도록 하게. 자네 공부의 부족을 다른 이의 탓으로 돌려도 소용은 없다네."

     그 말을 끝으로 시오자와 교수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작업 도중이었는지 그의 타자소리만이 연구실 안을 울리고 있었다. 하야미는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못하고 있었다.

     "어서 안 나가고 뭐하는 겐가?"

     그 말에 정신이 퍼뜩 든 하야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연구실 밖으로 나가버렸다. 쾅 하는 소리가 공허하게 울렸다.



     하야미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이미 예상한 일이 아니었던가? 그에게 구두로 따져봐야 소용이 없다는 것은. 하야미의 머릿속에서 점차 안개가 걷혀가고 있었다. 시궁창에도 볕들 날은 있다는 것일까? 이렇게 되고 나서야 하야미는 점차 머릿속을 정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정리하면 할 수록 깨달았다. 시오자와 교수의 말대로, 그가 자신의 논문을 베꼈다는 증거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자신의 원본 파일은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어떻게 하더라도 증명할 수단이 존재하지 않았다. 하야미는 심란한 기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심란함이라도 정리해보고자, 그는 실습실에 들어왔다. 수업이 없는 모양인지 아무도 없는 그 방에는 환기가 덜 되었는지 묘하게 매캐한 냄새가 났다. 하야미는 불을 키고 안으로 들어와 아무 의자에 앉았다. 의자에 앉자마자 한숨이 나왔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대로라면 자신은 모든 것을 빼앗길지도 모른다. 자신의 능력이 모두 남의 능력으로 위장되어 세상에 나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자리는 사라질 것이다. 사람들 사이에서 우위에 섰던 그였건만, 그 우위라는 것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게 되어버리는 것이었다. 하야미는 참을 수 없었다. 그것만이 그의 삶이었다. 그것을 위해 살아왔다. 하지만 그것마저 빼앗기려 하고 있었다.

     “보았군.”

     그렇게 고민하던 와중에 또 다시 누군가의 목소리가 되었다. 하야미는 그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하였다. 아니, 제대로 보고 있었다. 그저 입을 열 수 없었을 뿐.

     “당신은 모두 알고 있었습니까?”
     “우연히 알게 되었지.”

     ‘그’는 대답했다.

     “안타까운 일이지. 아까도 말했지 않은가. 그것은 절대로 기각당할 만한 내용이 아니었다고.”
     “그러면 당신은.”
     “자네가 알기를 바랐지.”

     그의 목소리는 하야미에게는 마치 구원처럼 들렸다.

     “그리고 지금의 자네의 한계도 말이지.”
     “한계라니요?”

     ‘그’는 웃었다.

     “자네의 능력은 아주 출중하지. 하지만 그것을 뒷받침할 힘은 부족해.”
     “힘….”
     “자네에게 그것이 없기 때문에, 자네는 능력을 빼앗기게 된 거야.”

     ‘그’는 하야미에게 무언가를 건네주었다. 그 손에 쥐어진 것은 검은 스위치였다. 척 보아도 묘한 분위기가 나는 물건이었다.

     “나는 그 부족한 힘을, 자네에게 줄 수 있네.”

     하야미는 퍼뜩 놀랐다. 그 놀란 얼굴을 보며 그는 여유롭게 말을 이었다.

     “이것은 절대적인 힘이네. 어쩌면 감당하지 못할 지도 몰라. 그래도 받겠나?”
     “…….”
     “아마 지금의 자네에게는 아주 필요할 것이야.”

     그의 손에 쥐어진 스위치를 보고, 하야미는 혼란 속에 빠져 있었다. 빈 실험실. 그 안에 있는 이는 그와 자신 뿐. 원하지 않으면 받지 않으면 된다. 하지만 그의 말에, 이미 하야미는 반쯤은 넘어가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의 말 대로였다. 하야미에게는 힘이 필요했다. 절대적이지 않더라도. 적어도 잃어버린 자신의 논문을 찾을 정도의 힘은 있어야 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자신에게는 그것이 없었다. 그것만으로 그 스위치를 받을 가치는 있었다.

     하지만 하야미는 망설였다. 그것을 받게 된다면, 앞으로의 자신이 크게 바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퍼뜩 든 것이다. 하야미의 본능은 눈치챘다. 제 앞에 있는 스위치는 분기점이었다. 앞으로의 자신과 과거의 자신을 갈라 놓을 분기점.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스스로에게 되어 있는가? 하야미는 그것에 대해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

     “망설이는 것인가.”

     그는 말했다.

     “신중한 것도 나쁜 일은 아니지. 하지만 마음의 정리는 오래 해서는 안 되는 것이네.”

     그는 스위치를 쥔 손을 거둬들였다. 하야미의 눈은 묘한 아쉬움을 담고 있었다.

     “정리만 하다가는 또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생길 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그 말을 끝으로 그는 사라졌다. 다시 아무도 없는 실습실이 되었다. 하야미는 제 앞에 놓여 있던 분동만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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