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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슌] 결정이 품은 이름은가면라이더 2015. 6. 11. 00:54
본 글은 둥지(@chinpuionstage) 님의 커미션으로 제공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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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번 신청주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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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좋은 아침입니다. 나라 슌페이입니다.
오늘도 면영당은 평화롭습니다. 안녕하세요! 하고 문을 열고서, 제 나름대로 활기차게 들어가면 늘 있는 멤버들뿐인 평화로운 하루지요. 주인인 와지마 씨와 구석에 혼자 앉아 있는 코요미라던가. 하루토 씨……는 지금 안 계시네요. 기껏 플레인 슈가도 사 왔는데 말이죠. 아쉬운 일입니다. 저는 아쉬운 대로 면영당 가운데 소파에 앉았습니다. 코요미가 힐끔 저를 보는 것 같습니다.
"하루토 씨는?"
코요미랑 눈이 마주쳤길래 저는 물었습니다. 팬텀 때문에 나갔어. 그렇게 대꾸한 코요미는 다시 구슬 쪽으로 눈을 돌려버립니다. 마음을 좀 열어줬나 싶으면 또 저렇습니다. 정말이지 코요미는 어렵습니다. 어찌저찌 하루토 씨에게 희망을 얻은 사람들끼리 함께 살아가기로 한 것도 얼마 전이지만, 마음처럼 쉽게는 되지 않네요. 아. 곧 린코 씨도 들어옵니다. 린코 씨 손에도 플레인 슈가네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먹을 사람은 없습니다. 린코 씨 역시 저랑 비슷하게 눈을 몇 번 깜빡이더니, 하루토는? 하고 묻습니다. 팬텀. 아까 대답한 걸 또 대답하려니 꽤나 성이 났던 모양인지, 코요미의 대답은 아까보다도 짧습니다. 거기에 그다지 개의치는 않는 듯, 린코 씨는 하루토 씨의 위치를 코요미에게 물었습니다. 여전히 불만은 많아 보였으나 다행히 대답은 해 주더군요. 하루토 씨가 팬텀을 쓰러뜨리러 갔다는데, 저 역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아마 린코 씨도 마찬가지였겠지요. 그래서 저는 잠깐 앉은 소파에서 일어났습니다만…….
"놓쳤어."
문이 열리더니, 제가 굳이 갈 것도 없이 하루토 씨가 한숨을 푹 쉬며 면영당으로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마력을 꽤 쓰신 모양인지 지친 기색이 역력합니다.
"하루토 씨, 괜찮으세요?"
하루토 씨는 소파에 바로 몸을 기대었습니다. 저는 곧바로 뒤로 돌아가, 하루토 씨의 어깨를 주물렀습니다. 잔뜩 굳은 어깨 근육. 이건 매번 만져드리는 데도 영 풀릴 줄을 모릅니다. 매번 긴장하시는 것일까요. 하루토 씨는 자신의 이야기를 잘 하지 않기 때문에 저는 알지 못합니다. 그래도 매번 팬텀과 싸우는 건 힘든 일이니까, 분명 지치긴 할 겁니다. 그런 하루토 씨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이렇게 몇 번 어깨를 주무르는 것이나, 팬텀과 싸우는 하루토 씨를 응원하는 것이나, 몇 가지 일을 도와드리는 것정도 밖에는 못 하지만. 그래도 저는 그럭저럭 만족하고 있습니다. 이렇게라도 하루토 씨에게 보탬이 될 수 있다면, 하루토 씨를 희망으로 믿고 살기로 한 저 자신에게도 상당히 보람이 되는 일이니까요.
그렇습니다. 하루토 씨는 제게 희망입니다. 절망에 빠졌던 저를 구해준 유일한 희망의 존재입니다. 저는 그 사람의 조수인 것이 자랑스럽고, 또 그것에 대해 일말의 불만도 가진 적이 없습니다. 그럴 틈이 어디 있습니까. 하루토 씨는 바쁜 사람이고, 그 사람을 도와줄 수 있는 역할을 제가 할 수 있다는데 말입니다. 충분합니다. 그럼요.
네. 사실 요즘은 좀 지칩니다. 거짓말해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제가 이 조수 일이 지친다고 안 나올 수는 없습니다. 물론 하루토 씨는 저를 강제한 적이 없고, 제가 나오지 않는다 하더라도 하루토 씨는 전혀 개의치 않으실 겁니다. 그리고 변함없이 팬텀과 싸우시겠지요. 그러고서 오늘처럼 잔뜩 지친 몸을 가지고서 면영당에 돌아올 겁니다. 어느 누구의 도움도 원하지 않는 모습으로 말이지요.
그게 제게는 너무도 괴롭습니다. 이걸 무엇이라고 할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무리하시는 하루토 씨가 걱정되니까 그런 것이겠지요. 하루토 씨는 더 많은 사람을 구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금 쉬셔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주변을 돌아보고, 여기에 있는 사람들에게 조금 의지해도 될 것입니다. 하지만 하루토 씨는 결단코 그런 일이 없습니다. 저든 린코 씨이든 와지마 씨이든, 심지어 코요미조차 의지하는 일이 없습니다. 혼자서 모든 걸 떠안으려는 사람입니다. 그것 때문에 몇 배는 지칠 것이 빤한데 단 한 번도 그런 이야기를 하루토 씨는 한 적이 없습니다. 그것이 가끔 분합니다. 하루토 씨에게는 저나 면영당 사람들이 그렇게나 의지가 되지 않는 것일까요? 알 수가 없습니다.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슌페이? 하루토 씨의 목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저는 제가 어깨를 주물러야 하는 사실조차 잊은 채 멍하니 서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아앗, 죄송합니다!"
저는 하루토 씨에게 사죄하고 다시 어깨를 주무르려 하였습니다만, 하루토 씨는 제 손을 붙잡았습니다. 그리고 하루토 씨의 어깨에서 제 손을 조심스럽게 내렸습니다.
"안 해도 괜찮아."
살짝 뒤를 돌아본 하루토 씨는 저를 보며 그런 말을 전합니다. 저는 멍해졌습니다. 제가 잘못한 것일까요. 주무르는 것도 잘 못하고서 멍하니 있었기 때문에, 하루토 씨의 미움을 사고 만 것일까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습니다. 괴롭습니다. 사실 별 일이 아닐 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가라앉은 기분이 좋아지지 않습니다. 뭔가 큰 잘못을 한 것만 같습니다.
목이 갑자기 아파옵니다. 숨이 막히는 것 같습니다. 꼭 목구멍에 뭔가 걸린 느낌입니다. 딱딱한 것이 목구멍에 걸려 나오지 않는 느낌입니다. 구역질도 날 것 같습니다. 몸에 이상이라도 생겼던 것일까요. 저는 화장실로 달려갔습니다. 면영당 구석에 있는 화장실로 뛰어들어 문을 잠궜습니다. 그리고 세면대에 달려든 저는 곧바로 제 목에 걸린 것을 뱉었습니다. 구역질이 쉽게 멈추지 않습니다. 기침도 몇 번 거칠게 났습니다. 목구멍 안에 걸린 게 조금씩 올라오는 느낌입니다. 목을 긁으며 올라오는 그게 너무 아파서 눈물이 날 것만 같습니다.
"크윽……!"
또르르. 뭔가가 구르는 소리가 납니다. 제가 뱉었을 침과 함께 나온 그것이 제 눈에 띄었습니다. 저는 그것을 보고, 제 눈을 의심했습니다. 세면대 안에서 구르던 것은 처음엔 모래인 줄 알았습니다만, 동그랗고 까만 보석 같은 알이었습니다. 무슨 종류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세면대의 구멍으로 들어가려던 것을 잡고서, 손 안에 넣고서 물로 한 번 씻어낸 저는, 그 동그란 것을 자세히 보았습니다. 화장실 전등에 비쳐서 반짝이는 그것은 확실히 보석이었습니다. 저는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게 어떻게 제 목에서 나온 것일까요? 무언가의 기적인 것일까요? 혹시 이거 마법이 아닐까요? 하지만 마법사가 괴롭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만일 제가 진짜 마법사가 된 거라면, 보석을 뱉은 목은 둘째 치더라도 이렇게나 가슴이 아플 리가 없습니다.
그러니 마법은 아닐 겁니다. 슬프게도 말이지요.
2
좋지 못한 아침입니다. 나라 슌페이입니다.
아무래도 저, 병에 걸린 모양입니다. 어제 한 번 보석? 아무튼 돌을 뱉은 적이 있었지요. 하지만 그건 일시적인 게 아니었습니다. 그 날 저녁에도, 그리고 지금도 현재 저는 계속 그것을 뱉고 있습니다. 목을 잔뜩 긁으며 올라오는 그것들을 뱉고 나서 세면대 위의 거울을 보았습니다. 제 눈 색이 조금 진해졌다는 착각도 듭니다. 뭐, 이건 확실히 착각인 것 같습니다만, 적어도 제가 뱉어내는 것은 진짜였습니다.
어제, 제가 뱉었다는 얘기는 하지 않고 그 보석의 종류를 코요미에게 살짝 물어보았습니다. 오닉스라고 했습니다. 이름은 정말 예쁩니다. 하지만 이것이 제 목을 통해서 입 밖으로 나온다는 건 썩 그리 유쾌한 경험이 아닙니다. 더군다나 웃긴 것은, 그 크기가 조금씩 커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대로면 뱉어내다 목에 걸려 죽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됩니다. 으으. 상상만 해도 싫습니다. 어떻게 살아난 목숨인데, 그렇게 허무하게 죽을 수는 없습니다. 보석을 뱉다 목에 걸려 죽는다니, 아무리 그래도 너무 비참한 죽음입니다. 그것만은 막고 싶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이 병이 어떻게 낫는지는 전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인터넷을 뒤져도 전혀 나오지 않던 것을요. 그렇다고 누군가에게 상담을 하자니, ‘보석을 뱉는 병’이라는 걸 믿어줄 지도 의문입니다.
아으.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이럴 때 마법이라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치친 뿌이뿌이! 를 외치면 병이 싹 낫는 거죠. 그러다 곧 상상을 멈췄습니다. 될 리가 없겠지요. 역시.
한껏 돌들을 뱉어내고 다시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요즘 화장실에 자주 가는 것 같은데, 어디 안 좋아?"
린코 씨가 물었습니다. 제법 저를 걱정하시는 듯 보였습니다. 저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암만 해도 아직은 면영당 사람들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는 않습니다. 나름대로, 저 혼자 괴로우면 그만인 것이니까요.
"얼굴이 헬쓱한데?"
하지만 린코 씨는 안심이 되지 않는 모양이었습니다. 제게 가까이 다가와서는 이마에 손을 한 번 짚어 주셨습니다. 아무래도 겉으로 드러날 정도로 제 상태는 좋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럴 법도 하지요. 시도 때도 없이 올라오는 돌 때문에 피곤하기도 했으니까요. 생각을 해보세요. 언제 올라올지도 모르는 돌에 대한 걱정도 그렇고, 그렇다고 그게 곱게 올라오지도 않습니다. 피가 나는 건 아닐까 걱정도 했지만 아직까지는 동그란 것만 나와서 그럭저럭 목에는 이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항상 목에 뭐가 걸려 있는 듯한 그 느낌도 기분이 나쁩니다. 이런 상태가 하루 종일 지속되고 있습니다. 어제부터 지금까지요. 아마 그 피곤한 게 얼굴에 드러나 버린 모양입니다.
"정말로, 괜찮아요."
저는 웃었습니다. 입 끝을 올려가며 웃자, 린코 씨는 어쩔 수 없다는 얼굴을 하며 손을 떼십니다. 안심이 되지 못했던 것일까요. 한심합니다.
면영당 안에는 저와 린코 씨 뿐이었습니다. 코요미는 와지마 씨와 함께 잠시 외출을 했다고 하더군요. 하루토 씨도 마찬가지. 설마 저희를 버리고 팬텀을 물리치러 가시거나 한 것은 아니겠지요. 아무리 신뢰가 바닥을 기어도 그렇지만은 않을 거라고 생각은 합니다.
저는 소파 위에 앉았습니다. 린코 씨도 제 앞에 앉으셨습니다. 뭔가 생각을 하시는 듯 따로 말씀은 없으셨습니다. 약간 불편한 침묵이 오가는 느낌입니다. 그 때 갑자기 구역질이 나는 것 같습니다. 또 그거 같습니다. 이틀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지긋지긋합니다. 낫고 싶습니다. 저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입을 막고 화장실로 달려가려던 차였습니다.
"슌페이 군!"
린코 씨가 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차. 이미 늦어버린 것 같습니다. 제가 잠깐 멈칫하고 몸을 돌리는 사이에, 목에 있던 것이 입 밖으로 흘러나오고 맙니다. 기침이 났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제 손에 떨어지는 검은 보석을 보았습니다. 망한 것 같습니다. 저를 따라 일어선 린코 씨의 얼굴이 놀람으로 물드는 것을 저는 보았습니다.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는데 결국 이렇게 되고 맙니다. 한심합니다.
"슌페이 군……!"
하지만 역시 린코 씨는 대단합니다. 곧바로 침착하게 제게 달려와 주셨습니다. 괜찮아? 그 목소리가 어찌나 안심이 되던지요.
"괜찮아요……."
저는 힘없이 대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도 모르는 새에 무리했던 것일까요. 갑자기 머리가 핑 도는 것 같습니다. 주저앉을 뻔한 저를 린코 씨가 지탱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소파 위에 앉혀 주셨습니다. 엉망진창이네요. 정말.
"괜찮지가 않잖아, 정말!"
린코 씨는 손수건으로 제 입가를 한 번 닦아주시더니, 제 손에 있던 것을 쥐셨습니다. 전등 빛에 비쳐서 빛나는 그것이, 제게는 몹시도 흉물스럽게 보였습니다. 린코 씨는 그걸 들여다보더니, 의아한 얼굴로 물었습니다.
"보석?"
여성분이기 때문일까요. 그냥 돌로밖에 안 보였던 저보다도 정확하게 그게 뭔지 파악해 내셨습니다.
"어떻게 된 거야, 슌페이 군? 왜 이걸……."
대답할 수 있을 리는 없습니다. 애초에 저도 알고 싶은 걸요. 왜 그게 제 몸에서 나오고 있는지 말입니다. 그 때, 마침 면영당의 문이 열립니다. 저는 긴장했습니다. 이렇게 된 이상 분명히 린코 씨가 제 몸의 증세를 알릴 텐데, 또 걱정을 끼치고 마는 게 아닐까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들어온 사람은 하루토 씨가 아니었습니다. 코요미와 와지마 씨였습니다. 저는 한숨을 돌렸습니다. 어라. 가만 생각해보니 이상합니다. 왜 저 둘은 괜찮고, 하루토 씨는 안 되는 거였을까요? 그러다 저는 깨닫습니다. 네. 하루토 씨에게만큼은 알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티는 안 내지만 걱정하실 게 뻔합니다. 더 많은 사람을 구해야 하는 사람에게 발목을 붙잡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네. 분명 그거일 겁니다.
제가 그렇게 멍하니 있는 새에, 린코 씨의 동작은 정말로 빨랐습니다. 저 대신에 제가 뱉은 걸 코요미와 와지마 씨에게 보여주시더니, 증세에 대해 물으셨습니다. 아, 괜찮은데……. 라고 생각을 해도 소용이 없는 듯 보였습니다. 제가 어영부영하는 사이에 두 사람은 그게 왜 생겨 있는지에 대해서 나름대로의 생각을 하는 듯 보였습니다. 저는 민망해져서, 이도 저도 못한 채 그대로 앉아 있어야 했습니다.
곧, 코요미가 다가옵니다.
"슌페이. 잠깐 이리로 와 봐."
그렇게 말하더니 코요미는 제 옷을 붙잡았습니다. 그 조그마한 손이 어찌나 세게 느껴지는지, 저는 아무 반항도 못하고서 그대로 끌려가야 했습니다. 코요미는 원래 쓰던 방으로 저를 데리고 갔습니다. 그리고는 저를 의자에 앉혔습니다. 코요미의 방은 특이합니다. 정말로 점집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무튼 저는 의자에 앉게 되었습니다. 이러니 마치 코요미는 점술사 같고 저는 점을 보러 온 손님 같습니다.
"보여줘 봐. 아까 그거."
코요미가 말했습니다. 아까 그거라고 하면 보석 이야기겠지요. 하지만 그건 제가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 동안 제가 뱉었던 건 전부 버렸으니까요.
"에엣? 하지만 지금은……."
"됐으니까 어서."
그렇게 말하며 코요미가 제 등을 팍 쳤습니다. 그러니 놀랍게도 제 목에 걸려 있던 것 하나가 툭 뱉어졌습니다. 또 흉한 꼴을 보이고 말았네요. 제가 민망하여 고개를 숙이고 있는 새, 코요미는 손수건을 쥔 손으로 그것을 집었습니다. 그리고 이리 저리 비춰보고 있었습니다. 코요미는 곧 다시 제 자리에 앉았습니다.
"언제부터 이랬어?"
코요미가 저를 뚫어져라 바라봅니다.
"어, 어제?"
왠지 그 박력에 밀려서, 저는 어영부영 대답하고 맙니다.
"팬텀을 만난 적이 있었어?"
코요미의 다음 질문에 저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습니다. 정말입니다. 팬텀을 만난 기억은 없습니다. 요 근래 하루토 씨는 혼자 나가셨던 걸요.
"그럼 이런 게 기적인 걸까?"
"무슨 말이야, 코요미?"
큰 눈을 찡그리며 고민하는 코요미에게 저는 물었습니다. 아무래도 코요미는 뭔가 아는 듯 보입니다. 그럼 이건 마법이랑 관련이 있는 걸까요?
"이건 그냥 보석이 아냐."
코요미의 말에, 저는 그저 눈을 꿈뻑이며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보석이긴 한데, 정확하게 말하면 감정의 결정이야. 그러니까 슌페이가 가진 어떤 마음이 결정화한다고 보면 돼."
"감정?"
코요미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저는 혼란스러웠습니다. 전혀 짐작되는 감정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떠오르는 거 없어?"
코요미가 다시 물어보았습니다. 저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감정이 결정화하려면 떠올리기 괴로울 정도로 강한 감정이 있어야 한단 말이야. 떠올려 봐, 슌페이. 뭐야?"
떠올리기 괴로울 정도로 강한 감정이라고 해도, 저는 전혀 짐작가는 것이 없었습니다. 정말로 모르겠어. 코요미에게 그렇게 말하고 저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코요미는 곧 한숨을 쉬었습니다.
"떠오르지 않아도 떠올려야 해. 그 결정화는 일종의 병이야. 네가 갖고 있는 그 감정이 해소되어야만 낫는 병. 네가 정말로 모르는 건지 나한테 숨기는 건진 모르겠지만, 이렇게까지 얘기했으니 알아듣겠지. 그 뒤로는 네 마음대로 해."
제가 제대로 말해주지 않아서 화가 났던 걸까요. 코요미는 한번 저를 쏘아보더니 방을 나가버리고 맙니다. 하지만 저는 정말로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는 걸요. 제가 왜 이러는 것인지, 어떤 감정이 저를 이렇게나 괴롭히고 있는 건지. 사실은 저도 알고 싶은 정도입니다.
나을 수만 있다면 뭐든 좋습니다. 정말로 알고 싶습니다. 감정의 결정화라니, 정말로 듣도 보도 못한 것입니다. 그러니 코요미조차도 기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게 아닐까 생각을 합니다. 일단 저는 코요미의 방을 나왔습니다. 일단은 행동해야 했습니다. 코요미의 말대로 이 병이 어떤 감정을 해소해야 낫는 병이라면, 저는 그 감정이 무엇인지 떠올려야 합니다.
그래야 이 괴로움이 끝이 날 테니까요.
3
그런 제 노력도 무용지물이라, 어영부영 며칠이 또 지나가고 말았습니다. 제가 토하는 검은 보석은 점점 많아졌습니다. 크기도 커져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증세가 심각해지니 먹을 것도 제대로 들어가지 않아서, 얼굴에 살이 조금 빠진 것 같습니다. 이런 제가 면영당 사람들은 상당히 신경이 쓰이는 모양입니다. 코요미조차도 말이죠.
"떠올랐어?"
코요미가 조용히 제게 다가와 물었습니다. 저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여전히 모르겠습니다. 다행히도 며칠 동안 열심히 납득을 시켜 줬던 덕분에 더 이상 코요미가 제게 화를 내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알고 보니 제가 걱정을 안 시키려고 숨기고 있는 거라 생각했던 모양이더라고요.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던 건 맞지만요……. 대신 코요미는 제가 품고 있을 문제의 감정에 대해 굉장히 관심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저도 알 수만 있다면 참 좋겠는데 말이죠.
"하루토."
하지만 곧 코요미의 관심은 다른 쪽으로 향합니다. 아, 드디어 하루토 씨가 돌아오신 모양입니다. 면영당 문이 열리고 기운이 하나도 없는 하루토 씨가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하루토 씨를 부르러 가는 와중이었지만 저는 이상하게 기운이 나지 않았습니다.
"오셨어요. 하루토 씨?"
그 정도로만 말하고 저는 그대로 앉아 있었습니다. 그 반응이 하루토 씨에게는 굉장히 이상하게 보였던 모양입니다. 마침 린코 씨가 주신 듯한 도넛을 물고 있던 하루토 씨는 우물우물 씹던 도넛을 손에 쥐고선 제 앞으로 걸어 오셨습니다.
"어디 아파?"
툭 튀어나온 말투이지만 분명히, 하루토 씨는 걱정하고 계셨습니다. 저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다행히 린코 씨나 다른 사람들이 말을 전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럼요. 제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신신당부를 했습니다. 하루토 씨에게만큼은 말하지 말아달라고. 그런 제 마음이 제대로 전해졌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다행히도 다들 납득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도 굳이 제가 아프단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고마운 사람들이죠.
"얼굴이 완전히 창백한데 무슨 소리야?"
하루토 씨는 의아하다는 듯 도넛을 쥐지 않던 다른 손으로 제 이마에 손을 가져다 대셨습니다. 갑작스러운 반응에 당황한 저는, 이마에 열이 잔뜩 오르는 것 같았습니다. 열은 없는데. 하루토 씨는 손을 떼고서 작게 한 마디를 하셨습니다. 다행이라 생각했습니다. 지금 되게 열이 오르고 있었거든요. 쿵. 쿵. 이상합니다. 이거 분명 제 심장 소리인데 왜 이렇게 크게 들리는 걸까요. 그 돌이 아니더라도 제 몸에 이상이 생기고 만 것일까요? 저는 고개를 숙였습니다. 한번 오른 열은 간단하게 식지를 않습니다. 계속 쿵쿵거리는 가슴에 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오늘도 팬텀 때문에 나간 거야?"
그 와중에 린코 씨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아. 그랬지. 오늘은 확실하게 쓰러뜨리고 왔어."
"잠깐만. 내가 전에도 얘기하지 않았어? 왜 팬텀과 싸우면서 나한테는 얘기를 안 하는 거야!"
그러고 보면 요즘 따라 하루토 씨는 혼자 나가는 일이 잦았습니다. 팬텀을 물리치러 갈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린코 씨는 그런 하루토 씨에게 몇 번이고 자신을 불러달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하지만 하루토 씨는 단 한 번도 그것을 들어준 적이 없습니다.
"혼자 충분히 물리칠 수 있으니까."
하루토 씨는 간단하게 대답합니다.
"도움이 필요할 지도 모르잖아!"
"그럴 때엔 부르잖아."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쩌려고 그래?"
"원래 항상 혼자 싸웠어. 새삼스러울 일도 없다고."
하루토 씨는 소파 위에 털썩 앉았습니다. 고개를 숙이던 와중에도 제게는 하루토 씨의 얼굴이 보였습니다. 눈가에는 짙은 다크 서클에 전체적으로 그림자가 진. 누가 보아도 지쳐 보이는 얼굴이었습니다. 분명히 저희에게 말을 하지 않을 뿐이지 굉장히 힘드실 겁니다. 하지만 하루토 씨는 그렇습니다. 끝내 말을 하지 않습니다. 린코 씨 역시 그것을 지적하셨던 것이겠지요. 저도 굳이 편을 들자면 린코 씨 쪽이겠네요. 전 지금 자리에 만족하고 있지만 역시 요즘 하루토 씨는 너무 무리를 하고 있어요. 조수로서 한 마디 해도 될 것 같습니다.
"린코 씨의 말대로예요."
속이 메슥거리지만 저는 말하기로 했습니다. 말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저는 쿵쿵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했습니다. 하루토 씨의 시선이 저를 향하는 것이 보입니다. 갑자기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입술이 바짝 마르는 것 같습니다.
"요즘 하루토 씨, 이상해요. 그래도 조금은 저희에게 의지해 주는 줄 알았는데."
"……."
하루토 씨는 말이 없습니다.
"저나 린코 씨가 그렇게 못 미더운 거예요?"
이상하게 가슴이 아프고 괴롭습니다. 몸이 안 좋기 때문일까요. 하루토 씨가 고개를 살짝 돌리는 것이 보였습니다. 입술을 우물우물하시는 것도 보입니다. 도넛을 먹는 것은 분명히 아닙니다.
"못 미더운 건 아니야."
"물론 팬텀에 비해 저희가 약하긴 하지만. 그래서 아무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아니야."
하루토 씨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하루토 씨의 말이 거짓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 말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아마 여기서 멈춘다면 분명 하루토 씨는 또 그렇게 하실 겁니다. 우리 몰래 팬텀을 물리치고, 우리가 모르는 고통을 안고서 계속 혼자서 싸우겠지요. 안 됩니다. 그러면 하루토 씨가 너무 괴로울 겁니다.
저는 그걸 보고만 있고 싶지 않습니다. 왜냐면…….
아.
속이 메슥거립니다. 이건 보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구역질이 나 입을 막고 있으면, 하루토 씨가 저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립니다. 슌페이! 하고서 소파에서 일어나 제게로 옵니다. 저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제발 오지 말라고 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걸 말할 입은 지금 목구멍 안에서부터 올라오는 뭔가에 막혀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돌을 토하는 것은 익숙해졌다 생각했는데 아닌 모양입니다. 아니, 그럴 법도 합니다. 이번 돌은 굉장히 큰 것 같습니다. 올라오면서 사정없이 목구멍을 긁으면서 오고 있습니다. 그것이 스쳐 지나가는 자리마다 따끔거리면서 아픕니다. 콜록. 콜록. 기침이 났습니다. 기침 기운을 따라 그것이 올라옵니다. 있는 힘껏 올라오는 그것 때문에 목이 너무도 아팠습니다. 눈물이 날 것 같습니다. 어떻게 이 고통을 표현해야 좋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누굴 막고 할 새도 없었습니다. 그저 무의식적으로 목을 붙잡고서, 그걸 뱉어내려 용쓰는 것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이 모습이 하루토 씨에게 보인다는 사실조차도 저는 완전히 잊어버렸습니다. 그 정도의 고통이었습니다.
그것이 이윽고 혀뿌리에 닿는 게 느껴집니다. 한 번 구토를 시도하면, 제 목을 잔뜩 긁고 올라온 그것이 정체를 드러내고 맙니다. 혀끝에 닿는 감각이 이전과는 분명하게 다른 것을 느낍니다. 뾰족했습니다. 살짝만 닿아도 다칠 것 같았습니다.
기침이 또 한 번 나왔습니다. 그와 동시에 저는 그것을 뱉어냈습니다. 같이 흘러나오는 침에 피가 섞여 나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잔뜩 모가 지고 날이 선, 새까만 보석이 탁상 위로 떨어졌습니다. 겨우 뱉어낸 것에 어렵사리 정신을 수습하고서 주변을 돌아보면 면영당 사람들 전부 제 옆에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하루토 씨를 포함해서요. 저는 몹시 난감해졌습니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되는 걸까요?
"슌페이."
하루토 씨가 저를 부르는 소리가 났습니다. 눈물이랑 콧물을 질질 쏟아낸 흔적이 가득한 얼굴임을 알면서도 저는 본능적으로 그 사람을 향해 돌아보았습니다. 그러다 제 꼴이 민망함을 깨닫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이건 대체 뭐야?"
하루토 씨가 잔뜩, 걱정하는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내심 기쁩니다. 하루토 씨가 이렇게까지 저를 생각해주실 줄이야. 하지만 저는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습니다. 그렇게 숨기고 싶었던 상대에게 이 꼴을 들키고 말았으니까요. 그것도 여태 보여준 적 없는 가장 추한 모양새로 말이죠.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몰라요."
거짓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걸 몸 안에 넣어 놓고서 왜 가만히 있었어."
하루토 씨는 이런 부분에선 상냥한 사람입니다. 그 점이 좋지만, 지금만큼은 어렵습니다. 거기다 이런 말을 하루토 씨에게 듣는 것도 조금 우스운 상황이지 않나요? 하루토 씨는 자기 힘든 걸 그렇게 숨겨왔으면서, 왜 제게는 말하라고 하는 거죠?
"하루토 씨도 숨기는데, 굳이 제가 말할 필요가 있나요?"
눈가가 조금 떨렸습니다. 이상하게 눈물이 날 것 같네요. 뭐가 그리도 억울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하루토 씨에게 들킨 게 문제였던 것일까요. 아니면 아무 이야기도 안 해주는 하루토 씨에게 화가 난 것일까요. 이제는 저도 제 감정을 알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뱉어낸 저것도 문제입니다. 여태 저런 적이 없는데, 갑자기 모가 났습니다. 앞으로 저런 게 계속 나왔다간 큰일입니다. 저, 정말로 죽게 되고 만다고요!
'네가 품고 있는 어떤 감정의 결정이야.'
코요미의 말이 그 때 떠올랐습니다. 아마 코요미는 여차하면 이런 게 나온다는 것까지는 몰랐겠지요? 알긴 하지만 자세히는 모르는 눈치였으니까요. 하지만 이 모난 보석을 보니 제 안에 떠오르는 뭔가가 있습니다. 사실 제 병에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왜 여태 그걸 생각하려고 들지 않았던 건지 의문이 들 정도로요. 돌이 며칠간 제 안에서 생기고 구토로 나오고 하는 이 일련의 과정. 그 전에는 공통적으로 딱 한 가지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네. 하루토 씨였습니다. 하루토 씨의 걱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맨 처음 이것을 토했을 때에도 하루토 씨가 있었지요. 팬텀을 물리치지 못하고, 지친 몸으로 서 있는 그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제 앞에 하루토 씨가 있고, 저는 이 사람에게 섭섭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 섭섭함이 무엇에서 오냐면 역시 제가 하루토 씨에게 바라는 그 문제의 감정이겠지요. 이것은 감정의 결정이라 했습니다. 그럼 제가 격해지는 만큼 이것이 모가 나는 게 아닐까요?
그 순간 코요미의 목소리가 또 들렸습니다. 그리고 저는 깨닫고 말았습니다. 제 안에서 결정화하는 이 감정의 이름을 말입니다.
하루토 씨는 말이 없습니다. 아마 아까 제가 한 말에 대해 마땅히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하신 것이겠지요. 사실 이건 하루토 씨가 뭐라 할 문제가 아닙니다. 코요미가 그것을 얼핏 알고 있었다는 건 다르게 말해 하루토 씨도 이것에 대해 조금은 알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여기 있는 면영당 사람들에게 절대로 제 병을 하루토 씨에게 알리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하루토 씨가 저나 린코 씨를 두고서 혼자 팬텀을 물리치러 나가시는 이유와도 비슷하겠지요. 하지만 하루토 씨는 너무 혼자 끌어안습니다. 저와는 다르잖아요. 안 그래도 조수의 몸으로 하루토 씨에게 짐이 될 지도 몰라 불안한 제가, 어떻게 이런 걸 얘기해서 걱정을 끼치겠어요.
목이 아파옵니다. 또 그게 나오려는 것일까요.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눈가가 시큰했습니다. 눈물이 뚝뚝 떨어졌습니다. 제가 방금 깨달은 감정이, 지금도 쿵쿵 뛰는 가슴이 저를 괴롭게 하고 있었습니다.
어쩌죠. 하루토 씨.
아무래도 저, 하루토 씨를 좋아하나 봐요.
멍하니 저를 보고 서 있던 하루토 씨를 두고, 저는 면영당을 뛰쳐나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했습니다. 어차피 이대로라면 저는 죽을 겁니다. 그러니까 최대한 아무에게도 걱정 끼치지 않고 싶습니다. 이 결정을 만드는 감정은, 하루토 씨를 좋아하는 제 마음이니까요. 아마 절대로 해소될 일이 없을 겁니다.
흐릿하게 보이는 낮의 햇살에 우울해지는 오후입니다.
이상, 나라 슌페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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