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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슌] 보석이 보여준 마음은가면라이더 2016. 3. 31. 00:27
역시나 둥지(@chinpuionstage) 님의 커미션입니다.
이전에 썼던 결정이 품은 이름은(http://libracollection.tistory.com/104)의 뒷편입니다.
꽤 예전에 썼던 겁니다만 여기에 올리는 건 늦게 되었네요. 샘플 갱신 겸 해서 올립니다.
요란한 폭발음이 들렸다. 폭음과 함께 사라지는 마력의 앞에, 소우마 하루토는 서 있었다. 약간은 기분이 좋지 않은 듯 손을 갈무리하며 그는 제가 끼고 있던 반지를 흘끔 보았다. 그를 마법사로서 있게 해주는 물건. 이것과 자신의 남은 마력 덕에 그는 오늘도 팬텀을 쓰러뜨려 또 한 사람을 구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상스럽게도 마음은 편하지 않다. 자신과 비슷한 이들의 희망이 되려 하였던 하루토에게 얼마 전부터 이유 모를 근심이 스멀스멀 피어 올라오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애초에 하루토에게 근심이란 팬텀을 불러들이는 해악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기에 그것을 오래 품으려고 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쉬이 떨쳐지지 않는 것은 그 근심의 원인이 하루토의 주변 사람에게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가는 길에 헝그리에 들러 혼자 먹을 정도의 플레인 슈가를 샀다. 하루토는 그것을 입 안에 넣고 우물우물 씹었다. 도넛을 콱 베어 무는 입 안에 가득 단내가 났다. 나름대로 격한 싸움 뒤에 그에게 주어지는 잠깐의 휴식이었다. 지친 몸이 당을 받아들이고는 조금씩 활력을 되찾는다. 몸에 기운이 생기면 머리도 돌아가는 법이다. 그러다 보니 하루토는 곧 떠올리고 싶지 않던 것을 하나 떠올리고 만다.
'그 녀석. 분명히 이상해.'
그는 면영당에 있는 골칫거리 한 사람을 떠올렸다. 나라 슌페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였다. 정말, 첫 만남부터 골칫덩어리였다. 마법사가 된다느니, 제자를 시켜 달라느니. 한창 하루토에게 민폐를 끼쳤던 이를 하루토가 구한 이후로는 자진해서 면영당을 다니며 그를 돕고 있었던 이. 평소 그렁그렁한 눈을 하고서 시끄럽게 하루토의 주변을 방방 맴돌았을 이였다.
하지만 요 근래 들어 그가 조용했다. 지나칠 정도로. 그 정도의 극적인 변화라면 애초에 사람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 성격이라도 바로 이상하다는 걸 파악할 것이다. 그런 부분에 있어 자기 자각이 없는 것일까?
'아니, 아니야.'
그 정도의 극적인 변화라면, 주변에서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면영당 사람들은 다들 좋은 사람들인지라, 그의 변화를 보고만 있을 이들이 아니다. 그러나 이상하게 정황은 움직이지 않는다. 그는 계속 그 상태였다. 어딘가 아픈 그 상태 그대로. 치료라도 해줘야 할까? 하루토는 그 묘하게 거슬리는 느낌을 참기가 어려웠다. 차라리 처음부터 그런 인간이었다면 상관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남의 기운마저 가져다 쓰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기운이 넘치던 슌페이가 그렇게 된 상황 자체가 하루토에게는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었다.
멍하니 걷다 보니 어느덧 면영당이었다. 하루토는 봉투 안에서 또 하나의 도넛을 꺼내 물었다. 그리고 봉투를 옆구리에 끼고서 문을 열었다. 면영당 안은 익숙한 분위기이다. "하루토." 하고서 그를 반겨주는 코요미와 그의 앞으로 뛰어 들어오는 린코라던가. 평소와 별반 다르지는 않다.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오셨어요. 하루토 씨?"
소파에 있던 이, 슌페이가 인사하였다. 그러나 움직임은 없다. 그 주변의 공기만이 무겁다. 이 미묘하기 짝이 없는 분위기가 답답하다. 하루토는 저도 모르게 물고 있던 도넛을 손에 쥐었다. 그리고 소파에 앉은 그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슌페이가 놀란 듯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디 아파?"
결국 하루토는 그 말을 꺼냈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하루토의 눈에 비치는 슌페이는 잔뜩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누가 봐도 환자의 모양이다. 역시 아파 보인다고 생각했던 건 착각이 아닌 듯 했다.
"얼굴이 완전히 창백한데 무슨 소리야?"
도대체가 알 수가 없다. 하루토는 내심 혀를 차면서 슌페이의 이마에 손을 대었다. 그가 움찔 놀라는 것이 보였지만, 하루토는 그 반응에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손 안에 닿는 체온을 느껴보았다.
“열은 없는데.”
당연할 정도로 정상 체온이었다. 하지만 그 아무렇지도 않은 행동에 슌페이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 모양이 마치 저를 피하려는 듯한 느낌이다. 하루토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오늘도 팬텀 때문에 나간 거야?"
그 때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린코였다.
"아. 그랬지. 오늘은 확실하게 쓰러뜨리고 왔어."
하루토는 긍정하였다. 안 그래도 쓰러뜨려서 한시름 덜고 온 차였다. 그러나 하루토의 생각과는 달리 린코는 눈썹 끝이 올라가더니 갑자기 하루토에게 성큼성큼 걸어가 버럭 화를 내었다.
"잠깐만. 내가 전에도 얘기하지 않았어? 왜 팬텀과 싸우면서 나한테는 얘기를 안 하는 거야!"
"혼자 충분히 물리칠 수 있으니까."
하루토의 대답은 빨랐다. 애초에 그는 린코가 왜 그렇게 화를 내는 지도 이해하지 못하였다. 그는 그저 할 일을 하였을 뿐이다. 팬텀이 나타났다. 게이트가 열리기 전에 물리쳤다. 절망하려는 이에게, 희망이 되어주었다. 그가 한 일이었다. 늘 하던 일이며 또한 옳은 일이다. 그녀가 화를 낼 일이 아니다. 오히려 수고했다고 해도 모자란 것이다. 하루토는 고개를 갸웃했다. 린코의 미간이 잔뜩 구겨져 있었다.
"도움이 필요할 지도 모르잖아!"
린코의 목소리가 커졌다. 하루토의 눈이 가늘어졌다. 정말이지, 영문을 알 수가 없다.
"그럴 때엔 부르잖아."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쩌려고 그래?"
"원래 항상 혼자 싸웠어. 새삼스러울 일도 없다고."
하루토는 소파 위에 앉았다. 린코는 그런 그를 기가 막히다는 듯 쳐다보고 있었다. 말을 듣고 보니 나름 그녀의 의도를 알 것도 같은 하루토였다. 나름 걱정한 건가. 그렇게 생각하며 하루토는 한 번 숨을 내쉬었다.
"린코 씨의 말대로예요."
그 때 마주보고 앉아 있던 슌페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루토가 흠칫 놀라며 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는 안절부절 못하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마주하는 눈동자가 단호한 빛을 띠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이런 얼굴도 할 줄 아는 녀석이었다. 새삼스럽게 깨닫는 하루토였다.
"요즘 하루토 씨, 이상해요. 그래도 조금은 저희에게 의지해 주는 줄 알았는데."
"……."
"저나 린코 씨가 그렇게 못 미더운 거예요?"
못 미덥다니. 반대야. 그런 마음이면서도 하루토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잠시 돌린 채, 제 할 말을 마음속으로 정리할 뿐이었다. 사실 조금 당황한 채였다. 몇 마디 책망 정도로 끝날 줄 알았는데, 생각 외로 강한 직구였다.
"못 미더운 건 아니야."
애써 말을 꺼냈다.
"물론 팬텀에 비해 저희가 약하긴 하지만. 그래서 아무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아니야. 그럴 리가 없잖아."
하루토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그 부정의 동작에도 슌페이의 얼굴은 변하지 않는다. 오히려 일그러진다. 그 얼굴에 담은 감정을 하루토는 쉬이 읽어낼 수가 없었다. 슬픔? 아니, 조금 다르다. 화를 내는 것도 아니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 지 몰라서, 잠시 멍하니 그를 바라보는 하루토였다.
그러나 갑자기 슌페이가 구토 소리를 내더니 입을 막고 있었다. 슌페이! 저도 모르게 하루토는 달려갔다. 슌페이는 고개를 저었다. 그를 오지 못하게 함이었다. 저도 모르게 멈칫한 하루토의 시선 너머로, 기침하는 슌페이의 모습이 비치었다. 누가 보아도 고통스러운 모습이었다. 괜찮긴 뭐가 괜찮아. 누가 봐도 이상하잖아. 하루토는 입술을 씹었다. 그런 그를 전혀 알아채지 못한 자신이 답답해졌다. 그렇게 자책 아닌 자책을 하고 있던 사이에, 코요미나 린코도 하루토의 옆에 서서 슌페이의 모습을 불안한 눈빛으로 보고 있었다. 이들의 얼굴을 보고 하루토는 직감하였다.
‘알고 있었군.’
정말로 모르고 있던 건 자신뿐이었던 모양이다. 하루토가 눈을 가늘게 뜨며 슌페이를 보았다. 그 때 슌페이가 기침을 크게 하며, 무언가를 뱉어내었다. 침에 섞인 피가 그의 입에서 뚝뚝 흘렀다. 탁상 위로 떼구르르 구르는 검은 것이 보였다. 잔뜩 모가 난, 검은 보석이었다. 하루토의 눈동자가 커졌다. 그에게는 낯이 익은 것이었다. 일전에 한 번, 면영당에 이것을 치료하러 온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그는 과거에 ‘게이트’였다. 통상적으로는 이런 일이 없다. 왜냐면 언더월드에 있는 팬텀을 물리치고 나면 마력은 사라지고 마니까. 하지만 아주 간혹, 완전히 소멸되지 않은 마력이 인간의 신체에 부작용을 일으킬 때가 있었다. 그가 뱉는 보석은 남은 마력의 덩어리와 비슷한 것이다. 그런데 하필 슌페이도 그런 상태였던 것이다. 진작 알아챘더라면! 하루토는 생각했다.
"슌페이."
그의 부름에 슌페이는 고개를 들었다. 눈물 콧물 범벅인 얼굴이 그를 한 번 마주하다, 고개를 숙여버린다.
"이건 대체 뭐야?"
"몰라요."
난감한 색을 감추지 못한 그의 목소리에 슌페이는 대답하였다.
"이런 걸 몸 안에 넣어 놓고서 왜 가만히 있었어."
하루토는 애써 말하였다. 애초에 알아채지 못한 자신의 잘못임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러자 순간적으로, 슌페이의 시선에 낯선 감정이 보였다 사라졌다.
"하루토 씨도 숨기는데, 굳이 제가 말할 필요가 있나요?"
약간 떨리는 눈가가 보였지만, 말은 마치 가시와 같다. 하루토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마치 검에 깊이 찔린 느낌이다. 슌페이의 몸을 날카로운 검이 둘러싼 모양이 연상이 되었다. 손을 뻗으려 해도 닿지 않는다. 강력한 거부 의사이다. 하루토는 불안해졌다. 물론 슌페이는 절망이 이미 한 번 걷어진 이다. 그러니 그가 다시 게이트가 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하지만 그의 행보엔 걱정이 되었다. 희박하다는 말은, 다르게 말하면 ‘없지는 않다.’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슌페이는 정말로 억울하다는 듯 눈물을 뚝뚝 떨구고 있었다. 그렇게 되니 하루토는 더 말을 붙일 수가 없었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슌페이는 몇 번 입술을 오물거리더니 결국 돌아섰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막을 새도 없이 면영당 밖으로 뛰쳐나갔다.
“슌페이 군!!”
린코의 목소리가 크게 올라갔다. 그러나 그는 뒤돌아보지 않고, 문 너머로 사라져버렸다. 누가 형사 아니랄까봐 곧바로 추적자의 자세로 문 밖으로 뛰쳐나간 린코였지만, 곧 고개를 저으면서 다시 돌아왔다.
“슌페이 군이 원래 이렇게 빨랐나? 흔적도 안 보여.”
린코가 거칠게 숨을 한 번 뱉었다.
"이렇게 될 줄 알았어."
그 옆에 선 코요미가 한 마디 뱉었다. 하루토는 그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짐작은 했지만, 알고 있었구나."
하루토가 말하자 코요미가 눈을 찡그리며 말했다.
"바보가 하루토한테는 말하지 말라고 해서 말이야."
"아무리 그래도 저 지경까지 두냐고."
하루토는 이마에 머리를 짚으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어쩔 수 없잖아. 순전히 슌페이의 문제인 걸. 내가 하루토에게 말한들 해결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어."
"그걸 어떻게 알아."
"왜 하루토 군한테 말하지 말라고 했겠어. 뻔하잖아."
린코가 두 사람의 대화 사이에 끼어들었다. 하루토의 눈이 린코를 향한다. 정말로 이유를 모르겠다는 눈치라 린코는 한숨을 살짝 쉬더니 말을 이었다.
"하루토 군이랑 관련이 있어서지."
"나랑?"
"처음에는 우리도 몰랐으면 싶은 눈치였지만. 우리가 알게 됐을 때 하루토 군에게만큼은 말하지 말아달라고 그랬어. 코요미는 반대했지만, 너무 절절해서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더라."
아무리 그래도, 라는 말을 하려다 하루토는 입을 다물었다. 누군가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하루토 씨가 말을 안 하는데, 제가 말할 필요가 있겠어요?
그런 의미였나. 하루토는 머리를 짚었다.
“그나저나 하루토 군은 병에 대해서 아는 거야?”
린코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루토는 고개를 끄덕였다.
“본 적이 있어. 과거 게이트였던 사람들 중에 팬텀이 사라진 뒤에도 마력이 남는 경우가 있는데, 그게 감정과 섞여서 폭주하는 경우야. 보석은 그 폭주 과정에서 나오는 찌꺼기 같은 거고.”
“그렇구나.”
“그 감정을 자연스럽게 해소시키면 낫는 병이야. 방치하면 위험하지만. 아무튼, 어서 슌페이를 찾아보자. 이대로 두면 정말로 위험해."
하루토는 다짐을 굳히며 입을 열었다. 그 때 린코가 의아한 얼굴을 한다.
"무슨 뜻이야?"
"뱉는 보석에 모가 났다는 건, 이미 임계점이란 뜻이야. 이제 한 번 더 뱉으면 슌페이는 죽어."
그녀의 질문에 하루토는 대답했다. 린코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뭐?! 그럼 얼른 슌페이 군을 찾아야 하잖아. 찾아보고 올 테니까!"
그 말을 남기고 린코는 쏜살같이 사라져버렸다. 자, 잠깐! 하고서 하루토가 뒤늦게 붙잡으려 해도 소용이 없었다. 순식간에 면영당 문 밖으로 사라져버린 린코를 어떻게 할 수도 없이 하루토는 한숨을 푹 쉬었다. 어디에 슌페이가 있을 줄 알고 찾는다는 말인가. 아무리 형사라지만.
“가루다.”
하루토는 제 사역마를 불렀다. 붉은 새의 형상을 한 그것이 하루토의 손 위에 착 앉았다. 슌페이를 좀 찾아줘. 그 말을 전하자, 그것은 창문을 통해 바깥으로 날아갔다. 곧 소식을 전해줄 것이다. 아무리 그가 빠르더라도 가루다가 찾지 못할 정도로 멀리 떠나지는 못하였을 것이니. 그리고 예상대로 그것이 소식을 보내 주었다. 하루토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다녀올게. 바보 데리러.”
코요미에게 말하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루토는 그대로 면영당을 나가, 가루다가 가리킨 장소를 향해 달렸다. 그가 달려가는 옆으로 사람들이 빠르게 지나간다. 정돈된 거리를 있는 힘껏 발돋움해, 하루토는 단 하나의 목적을 찾아 가고 있었다. 가루다가 가리킨 곳은 어느 정도 예상한 대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이었다. 마을의 한 곳에 있는 얕은 개천. 그 위에 있는 다리. 슌페이는 그곳에 혼자 서 있었다. 다리 난간에 몸을 기댄 채로, 어디인지도 모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눈가를 덮은 다크서클과 바짝 마른 입술. 그리고 핏기 없는 얼굴색. 어딘가를 바라보는 시선에 초점은 맹하다. 아마도, 서 있는 것이 고작일 것이다. 하루토는 그에게 다가갔다. 슌페이는 걸음 소리를 듣고서 그를 돌아보았다.
“하루토 씨.”
슌페이의 눈은 어떻게 알았냐는 듯 커져 있다.
“왜 도망쳤어?”
다짜고짜 직구다. 슌페이는 난처한 웃음을 지었다.
“혼란스러웠으니까요.”
“왜, 말하지 않았어?”
아까 했던 질문의 반복이다. 슌페이는 더더욱 난처한 빛을 감추지 못하였다.
“아까도 말씀을 드리지 않았던가요.”
하루토에게는 풀어지는 평소의 슌페이를 생각하면, 지금의 그는 지나칠 정도로 완고하다. 입을 꾹 닫고 있는 그를 보며, 하루토는 답답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조금씩 한계가 보이는 것 같다.
“하루토 씨도 말하지 않잖아요.”
“상황이 달라. 너와 나는.”
“뭐가 다르죠. 마음은 같을 텐데.”
슌페이는 힘없이 웃었다.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고, 폐가 되고 싶지 않았어요. 그 뿐이에요.”
“…….”
그의 큰 눈이 한 번 깜빡였다. 눈꺼풀이 한번 덮였던 눈에 물기가 서려 있었다. 하루토는 힘겹게 침을 삼키고 말하였다.
“네가 괴로워져.”
“괜찮아요.”
“절망하게 될 지도 몰라.”
“더 이상 절망하지 않아요.”
슌페이가 짓는 것은 여전히 힘없는 웃음이었다.
“말해 줘. 슌페이.”
하루토는 한 마디를 더한다.
“네가 품고 있는 걸.”
“안 돼요.”
그러나 슌페이는 고개를 저었다. 하루토는 한숨을 쉬었다. 아까부터 계속 중요한 기점에서 막혀버리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하루토는 밀려오는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만다.
“네가 가진 병은 감정의 찌꺼기 같은 거야! 그걸 해결해야 낫는다고! 대체 왜 그렇게 고집을 피우는 거야?”
짜증 섞인 목소리에 흠칫 놀라면서 슌페이는 고개를 숙였다. 명백하게 하루토를 피하는 시선이 바닥 쪽을 맴돈다.
“코요미한테도 그 비슷한 소리를 들었어요.”
잠깐 침묵이 지나가고 슌페이의 기어들어가는 목소리가 들렸다.
“감정을 해소해야 낫는 병이라고 하셨죠. 그러면 이건 절대로 못 낫는 병이에요.”
“무슨 의미야.”
“진정될 리 없어요. 지금 이 순간에도 커지고만 있는 걸요.”
여전히 시선은 바닥을 향한 채이다. 떨리는 목소리는 갈 곳을 모르는 채 헤매는 것만 같다. 하루토는 마른 입술을 살짝 핥았다. 저렇게나 혼란스러워하면서 왜 알려주지 않는단 말인가. 그러다 문득 하루토는 아까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린코가 했던 말이다. ‘슌페이가 숨기려 했던 건 하루토와 관련이 있기 때문.’ 그리고 아까 보였던 슌페이의 태도도 떠올랐다. 다그치는 듯, 그러나 분명히 그를 걱정하고 있었던.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아니, 알고는 있었다. 그저 외면하고 있었을 뿐이다.
마주해야 하는 것인가. 하루토는 잠시 고민하였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임계점은 이미 지나 있다. 정말로 그가 죽을 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망설일 시간 같은 걸 만들 수도 없었다.
“슌페이.”
하루토는 다시 침을 삼켰다. 운을 떼는 몸짓이 자연스러우면서도, 긴장된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난 너를 죽게 둘 수 없어.”
“하루토 씨.”
“어떻게 지켜낸 희망인데.”
어느새 긴장한 듯 굳어 있던 슌페이의 입술이 호선을 그렸다.
“괜찮아요. 하루토 씨가 틀린 건 아니니까. 하루토 씨가 구해내야 할 사람들은 아직 더 있잖아요. 절망에 빠진 사람들을 구해주세요. 저는 죽은 뒤에도 응원할 테니까.”
말을 마친 슌페이는 허리를 깊이 숙였다.
“못난 조수였지만, 그 동안 감사했습니다.”
하루토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미 현 시점에서 슌페이의 감정을 알게 된 상태이다. 더 이상 가만히, 그가 이런 이야기를 하도록 둘 수는 없었다. 하루토는 오른손을 뻗어 슌페이의 손을 붙들었다. 고개를 들어올린 슌페이가 놀란 눈을 하였다.
“아직 끼고 있네.”
오른손에 있는 반지를 보고, 하루토는 말하였다. 슌페이는 얼굴을 살짝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
“내가 그 때 얘기했지. 네 마지막 희망이라고.”
“네.”
슌페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때를 떠올리는 모양이었다.
“그 말은 변하지 않아. 내가 너의 마지막 희망이야. 나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어. 그러니까 너도 멋대로 포기하지 마.”
“하루토 씨.”
“해결책은 알았어. 나는 네 병을 고친다. 너는 절대 여기서 죽지 않아.”
무슨 수로? 라는 눈치였다. 그러나 슌페이의 눈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하루토는 보았다. 거기에서 시선을 돌린 하루토는 슌페이의 손을 제 이마에 가져다 대었다.
“걱정 많이 했어.”
슌페이의 손이 움찔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신경이 쓰여 견딜 수가 없었어. 네게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슌페이의 입술이 오물거렸지만, 하루토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하루토는 말을 이었다. 그저 전하기 위해서.
“나는 네 마지막 희망이지만, 유일한 희망이고 싶어.”
“하루토 씨.”
“이제 와서 네가 없어진다면 힘들어질 거야.”
하루토는 고개를 들어 슌페이 쪽으로 시선을 향하였다. 또렷한 검은 눈동자가 슌페이에게 바로 꽂혔다. 하루토가 쥐고 있는, 슌페이의 손에 미세한 떨림 같은 것이 느껴졌다. 긴장하고 있음이라. 그와 동시에 슌페이의 표정이 이상했다. 마치, 금방이라도 무언가를 토해내려는 듯한.
‘이제 다 왔군.’
슌페이의 시선이 크게 흔들렸다. 그걸 본 하루토는 깨달았다. 이것은 그에게 주어진 시험이었다. 그가 뱉어내는 것이 절망이 될 것인지, 희망이 될 것인지. 잔뜩 긴장한 얼굴을 어떻게든 감추며 하루토는 입을 열었다.
“슌페이. 나는 너를…….”
그 뒷말이 나오려는 직전에, 슌페이가 하루토의 손을 뿌리쳤다. 그리고는 입을 막았다. 제 식도를 통해 역류하는 무언가를 막기 위함일 것이다. 그러나 그의 노력도 소용이 없이 슌페이는 곧 무언가를 뱉어내었다. 투명한 타액과 함께 슌페이의 손바닥에 남은 건, 여태 그가 뱉어냈을 오닉스가 아니었다. 동그랗고, 타오를 듯 붉게 빛나는 보석.
“루비, 인가.”
하루토는 중얼거렸다. 슌페이는 신기한 듯 그것에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저가 뱉은 걸로는 처음 보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더니 그는 눈을 몇 번 깜빡였다. 그러더니 하루토를 바라보았다. 놀라는 표정은 하루토가 늘 바라보던 그 얼굴이었다.
“어라.”
그는 믿기 힘들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더 이상…….”
아마 그 뒤에 생략된 말은 ‘아프지 않다.’는 말일 것이다. 하루토는 안도의 한숨을 푹 쉬었다. 다행히, 그의 믿음에 건 도박은 성공적이었다. 슌페이의 얼굴에 핏기가 돌고 있었다. 하루토는 순간 풀리려 한 다리를 억지로 붙잡았다. 의식하지 않으려 하였으나 역시 긴장되는 순간이었던 모양이다.
"하루토 씨의 색."
이상하게 붕 뜨는 마음을 진정시키던 하루토에게 들려온 목소리는, 묘하게 들떠 있는 슌페이의 것이었다.
"이거, 하루토 씨 색이에요."
"그런가?"
"마지막 희망이 되어주겠다고 제게 약속하셨던 그 색이에요."
"아, 그랬나."
하긴 변신한 상태였다. 하루토는 새삼스럽게 그를 처음 구해낼 때의 기억을 떠올린다.
"감사합니다. 하루토 씨. 또 신세를 지고 말았네요."
그 앞에 선 슌페이는 머리를 긁적이며 웃는다. 슌페이의 얼굴에는 아까 보였던 불안감이 더 이상 비치지 않았다. 아무 것도 말하지 않겠다 할 때의 느낌이 아니다. 불안한 느낌이 확실히 전보다 사라져 있다. 극복한 것일까. 이는 분명 안도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이상하게 마음이 켕기는 하루토였다. 분명 일은 해결했는데. 하지만 현 시점의 하루토로서는 그 켕기는 무언가가 어떠한 것인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역시 하루토 씨는 대단해요. 저, 또 감동했어요!"
하지만 이렇게 말하며 제 옆을 방방 뛰어다니는 슌페이를 보고 나니 현재 남은 고민은 아무래도 좋은 것 같은 하루토였다. 좀 시끄럽지만 싫은 녀석은 아니고. 아까 말한 것이 거짓말은 아니니까. 단언하건데 그것 하나는 장담할 수 있다. 걱정한 것도 사실이고. 유일한 희망이 되고 싶었던 것도…… 거짓말은 아니고. 다행히도 슌페이 역시 제 마음을 믿어주었기 때문에 비로소 일으킬 수 있는 기적이었다.
그러니 지금 이 상태로도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그런 안일한 생각을 하며 하루토는 슌페이를 데리고 면영당으로 발길을 돌렸다. 아마 소식을 기다리는 이들이 있을 테니까. 먼저 앞서서 성큼성큼 걷는 하루토의 뒤를 쫓아오는 슌페이는 살짝 긴장한 걸음이다. 그것이 아주 조금 의아한 하루토였지만, 아마 뒤에 있을 린코나 코요미의 잔소리 때문이겠거니 막연하게 생각하고 만다.
해프닝이 끝난 뒤에 남는 건 기나긴 일상과도 같은 평화이다.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안일하면서도 소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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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뵙겠습니다. 나라 슌페이입니다.
보석을 뱉는 기묘한 병에 걸린 이후로 며칠이 지났습니다. 하루토 씨는 뭐…. 평소와 같고 린코 씨나 코요미도 그렇습니다. 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면영당의 풍경입니다. 아, 그래도 나름 변한 건 있습니다. 하루토 씨가 조금씩 말을 하시기 시작했습니다. 놀랍지 않나요? 그 하루토 씨가, 고충 같은 걸 저희에게 얘기를 하신다는 거예요. 아, 물론 전부 다는 아니겠지요. 분명 그 중엔 저희가 모르는 것도 존재할 겁니다.
하지만 그게 어디인가요. 덕분에 그 전에, 하루토씨가 왜 며칠 동안 혼자서만 팬텀을 물리치고 다니셨는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알고 보니 그 팬텀이 꿈과 관련된 힘을 가져서, 그에게 당하는 사람들은 괴로운 기억만을 계속 떠올린다고 하는 모양입니다. 하루토 씨 역시 거기에 휘말렸던 것 때문에, 저희들에겐 그런 괴로움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는 말을 덧붙이시더군요. 나름 저희 걱정을 하셨던 거지요. 굳이 그렇다는 말을 하지는 않으셨지만 말입니다. 그로 인하여, 제가 돌아온 뒤 못한 얘기를 마저 하자며 길길이 뛰시던 린코 씨도 조용해졌습니다. 그 이후로는 평범합니다. 정말로 평범한 면영당의 일상입니다.
그러다가도 저는 가끔 생각하고는 합니다. 그 때 하루토 씨가 병을 낫게 하려고 제게 해주었던 말들. 그게 과연, 하루토 씨의 진심이었을까. 아, 물론 하루토 씨를 의심하는 것도 아니고. 그 말은 분명 진심이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거지요. 그 말의 의미가 정말로 제가 원하던 답이었던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저를 구하기 위해 그런 말을 하신 것인지. 하지만 그 때의 제게는 그걸 판단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정말 기뻤거든요. 아마 그것 때문에 병이 나은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가슴이 마구 벅차올랐습니다. 하루토 씨가 저를 위해 그런 말을 해주신다는 것도, 나름대로 저를 생각하고 계셨다는 걸 알게 된 것도 기뻤습니다. 그걸 알았다고 간단히 나아 버릴 병이었다니. 제 안의 하루토 씨는 생각보다 평가가 낮았던 것일까요.
그 이후로 나름 그 문제에 대해 고민을 했습니다. 애초에, 제 마음이 어영부영이었던 탓에 하루토 씨도 휘말린 느낌이었으니까요. 그것도 시간이 지나니 진정이 되덥니다. 이것 때문에 병까지 앓았다 생각하면 황당할 정도로 맥이 빠지는 결말이었습니다. 그래도 제 안에 변화가 생겼으니까요. 이걸로 만족해야지요.
네. 저는 마주하기로 했습니다. 제 마음과.
하루토 씨가 제 진심을 아실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고민했던 대로, 정말 저를 낫기 위해 짜낸 말일 지도 모릅니다. 네. 그렇기 때문에 저는 더욱 용기를 내야 합니다. 그걸 알려면 제가 하루토 씨랑 부딪쳐야 하는 것입니다. 이번 일로 배운 것은 그것입니다. 저는 제 마음을 마주하지 않았고, 깨닫기 전까지는 계속 부정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러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제가 지닌 현 상황을 인정하고, 설사 그 결말이 제가 원하는 게 아니더라도……. 그건 어쩔 수 없는 거겠죠. 마음이라는 게 결국 같지는 못하는 걸요. 제가 하루토 씨를 향한 제 마음을 외면한 것도 그 때문일 겁니다. 마음이 같지 않기 때문에. 하루토 씨가 저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거기에 대해서 완전히 자신감을 상실한 상태였거든요.
괜찮습니다. 저는 더 이상 외면하지 않을 겁니다. 그게 하루토 씨가, 제 마지막 희망이 준 과제입니다. 저는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절망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변하지 않았으니까요. 그 사람이 계속 희망으로 있는 한, 제가 절망할 일이 어디에 있겠어요.
그러니 저는. 오늘 말하려 합니다.
숨길 수밖에 없었던, 그 마음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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