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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슌] 엔게이지 매직 링가면라이더 2016. 11. 4. 20:53
왠지 컾링 보고 역시나... 라고 해야 할 것만 같네요.
둥지(@chinpuionstage) 님의 커미션입니다.
슬슬 전반적으로 글의 패턴이 일변화하는 느낌이라... 다른 방향에 대해서도 좀 고민해봐야겠네요.
어느 날 면영당에서 보았던 풍경은 너무도 이상하고 기묘한 일이었다. 이미 나는 누가 증명해 준 덕분에 마법이 존재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 날 보았던 모습은 마법들 중에서도 제법 기묘한 것이었다고 지금도 생각한다. 계기는 별 것 아니었다. 그냥 반지 장인인 와지마 씨의 제자로 들어간 슌페이 군이 만들어 낸 물건이 문제였다. 가만 보면 슌페이 군은 문제가 아니었던 적이 없다. 그러니 이번 것도 그 문제 현상의 연속일 뿐이라고 처음에는 생각했다.
“됐다!!”
사건으로부터 며칠 전의 일이었다. 일에 지쳐 면영당에 잠깐 쉬러 온 내게, 슌페이 군은 자기가 만든 것이라며 반지 하나를 보여주었다. 슌페이 군이 만든 그 반지는 제법 정교한 세공이 가운데에 있는 붉은 마보석을 감싸는 모양이었다. 슌페이 군이 만든 것들을 몇 개 본 적이 있는데, 딱 봐도 그 동안 봤던 것들과는 들인 정성부터가 다른 물건이었다. 나는 제법 놀랐다. 와지마 씨는 의외로 슌페이 군이 재능이 있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처음에 믿지는 않았다. 물론 동료를 이렇게 헐뜯거나 해서는 안 되지만, 내가 슌페이 군을 알게 된 이래 내 눈에는 그의 재능 같은 건 눈곱만치도 보이지 않았던 탓이다. 지금 슌페이 군을 보면 와지마 씨의 말이 아예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았다. 나는 슌페이 군의 반지를 이리 저리 뜯어보았다. 그리고 반지와 슌페이 군을 돌아가며 쳐다보았다.
“그렇게 의외란 얼굴 하지 마세요.”
그랬더니 슌페이 군이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너무 티가 났나? 난감해하며 웃은 나는 그 반지를 슌페이 군에게 돌려주었다.
“다시 보는 거야.”
“린코 씨가 다시 봐봤자…….”
“어허. 그거 뭔 의미지?”
“아무것도 아닙니다!”
눈을 동그랗게 뜨며 슌페이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그러고는 다시 받은 반지를 제 손으로 감싸 다시 제자리에 놓았다. 그 움직이는 모양새가 정말로 소중한 물건을 다루는 모양새였다. 나는 그게 단순히 처음 제대로 만든 작품이어서 그렇다고만 생각했다.
“신줏단지 모시는 것도 아니고. 그게 그렇게 소중한 물건이야? 처음 제대로 만든 거라 그런가.”
슌페이 군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처음 만든 것도 있고…….”
그러면서 손가락을 꼬물대며, 뭔가 말하기 머뭇거리는 분위기를 풍겼다. 다행히도 내가 다그치기 전에 그는 알아서 다음 말을 이어 주었다.
“하루토 씨를 위해 만든 거니까요.”
“하루토 군을?”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이름이 등장했다. 애초에 슌페이 군이 와지마 씨를 따라 마보석을 만지게 된 것도 결국은 하루토 군을 보조하기 위함이었으니까. 놀라울 것도 없는 것이지만 나는 다른 이유로 놀랄 수밖에 없었다. 반지를 보는 슌페이 군의 눈은 열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뭐. 일종의 사랑이겠지. 그렇게 납득하고 넘어가려 해도, 평소의 하루토 군을 보는 눈과는 조금 달랐다고 해야 할까.
“어떤 성능인데?”
“으음. 그건 비밀이에요. 아직 불완전해서 다 완성되면 알려줄게요.”
씨익 웃는 슌페이 군의 얼굴을 한 대 때리고 싶어진다. 그래도 사실 내가 조급해 할 부분도 아니고. 슌페이 군이 그런 것을 말하지 않을 이유도 없기 때문에 나는 그 이유를 조만간 알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다만 며칠 후 일어난 이 기묘한 일 때문에 알게 된 것은 웃긴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내가 그 날 면영당에서 본 것은, 하루토 군만을 잊은 슌페이 군이었다. 면영당 문을 열고 들어오니 오랜만에 돌아온 하루토 군이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 슌페이 군이 앉아 있었다. 여기까지는 평소대로의 면영당 풍경이라고 하기에는 지독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슌페이 군은 하루토 군에게 일말의 터치를 하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럴 리가 없다. 내 형사의 감이 말해주고 있어. 이건 분명히 아니라고! 그리고 내 감에 확신이라도 주려는 듯 슌페이 군은 나를 보자마자 내게 달려들었다.
“린코 씨! 저 좀 살려주세요!”
“살려달라고?”
나는 황당함을 감추지 못하고 물었다.
“갑자기 모르는 사람이 있어서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손님인가 했더니 그도 아닌 것 같고 어색하고 난감하고.”
정신이 혼미한 모양인지 슌페이 군은 횡설수설하더니 내 팔을 잡고는 내 뒤에 숨어서 하루토 군을 멀끔멀끔 쳐다보고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야? 나는 하루토 군과 내 뒤에 숨어 있는 슌페이 군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하루토 군은 그런 나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오랜만에 보는 그의 얼굴은 잔뜩 지쳐 보였다.
“반지가 문제야.”
한숨을 푹 쉬며 하루토 군은 말했다.
“반지?”
“슌페이의 왼쪽 약지에 낀 그거.”
하루토 군이 슌페이 군 쪽을 흘끔 보며 말했다. 나는 재빨리 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랬더니 있었다. 며칠 전에 보았던 문제의 그 반지가. 효과가 불완전하다더니 이 얘기였네. 나는 다시 하루토 군 쪽을 보았다.
“불완전하다고 그러더니 진짜인가 보네.”
“…….”
내가 얕게 한숨을 쉬자 하루토 군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처음엔 내가 끼려고 했어. 그냥 그렇게 할 걸 그랬지.”
하루토 군은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슌페이 군이 흠칫 놀라는 것이 보였다. 하루토 군은 다시 한숨을 쉬고는 이마에 손을 얹었다.
“더 자세히 설명해 줘. 어떻게 된 거야?”
“나도 모르겠어. 저걸 끼고 나서 저렇게 됐어. 아무래도 너는 알아보는 모양이네.”
“나를 알아본다고? 그럼 설마…….”
내 말에 하루토 군은 고개를 끄덕였다. 맙소사. 슌페이 군은, 하루토 군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반응이었던 것이다. 나는 믿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무슨 효과를 넣으려다 이런 부작용이 나온 건데.
“왜 끼지 않았던 건데?”
나는 재차 물었다.
“끼려던 중간에 역시 안 되겠다고 빼앗아버렸으니.”
그러고는 자기가 껴 버린 거야. 하루토는 말을 이었다. 그의 표정은 차분했지만 나는 평소보다 말이 많은 그의 행동과 눈빛으로 현재 불안한 상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루토 군은 말을 많이 하지 않는 편이다. 괴로운 일이 있어도 대체로 숨기는 편이었다. 물론 일련의 변화가 있어 요즘에는 그 현상이 상대적으로 덜한 편이지만 그렇다고 안 그러는 것은 아니니까. 그러나 웬일인지 오늘은 평소보다 속이 드러나는 편이었다. 슌페이 군이 자기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 그렇게나 불안한가.
“반지는 빼 봤어?”
내가 물었다. 하루토 군은 고개를 저었다.
“슌페이가 저 상태라 시도도 못 해봤지.”
“그럼 어쩔 수 없네. 자. 슌페이 군. 그 반지 빼.”
하루토 군의 말을 듣자마자 나는 내 뒤에 서 있는 슌페이 군을 돌아보며 말했다.
“반지요?”
“그래. 네 왼손에 낀 그거.”
슌페이 군은 자기 손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더니 요란한 소리를 내며 놀랐다. 좀 얌전히 놀라면 안 되는 걸까.
“뭐지? 이 반지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반지를 있는 힘껏 빼려고 한 슌페이 군이었지만, 반지는 무슨 수를 써도 빠지지 않았다. 마지막 남은 수단은 그의 손가락을 잘랐다 붙이는 것밖에 없을 정도로.
“반응하고 있군. 내 마력에.”
그 와중에 하루토 군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마워, 린코. 덕분에 그 반지의 구조를 안 것 같아.”
“뭐?”
뭔 소린지는 모르겠지만 하루토 군은 뭔가를 알게 된 모양이다. 아니, 그러면 나에게도 좀 알려줬으면 좋겠어. 나쁜 버릇이 또 나왔잖아. 그런 내 마음의 외침도 무색하게 하루토 군은 ‘슌페이를 잘 부탁한다.’ 라는 말을 남기고는 면영당 밖으로 나가버렸다. 어떻게 하란 말이야. 이 상황에서 슌페이 군을 부탁한다고 해봐야 나에게는 의미가 없다. 애초에 문제가 생긴 건 하루토 군 뿐이지 나는 평소와 다를 바가 없다. 그 생각대로 슌페이는 하루토 군이 나가기가 무섭게 한숨을 깊이 쉬면서 내 주변을 방방 뛰며 돌았기 때문에.
“저기. 슌페이 군.”
옆에서 너무 산만하게 구는 이를 나는 불러 세웠다.
“왜요?”
“정말로 저 사람이 누구인지 기억나지 않아?”
하루토 군 앞이라 말하지 못하는 것일지 모른다. 그런 마음으로 물었지만 슌페이 군은 고개를 저었다.
“전혀 모르겠어요.”
“정말로? 소우마 하루토라는 이름을 들어도?”
“전혀요.”
“나는 누구더라?”
“어디 아파요, 린코 씨?”
확 그냥.
“아픈 건 너라고. 슌페이 군. 정말로 기억 안 나? 하루토 군에 대해서.”
“몰라요!”
슌페이 군은 결국 소리를 질렀다.
“린코 씨는 왜 자꾸 모르는 소리만 하는 거예요? 저는 그 사람을 몰라요! 아무 것도 안 떠오른다고요!”
슌페이 군의 꽉 쥔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나는 어째서인지는 몰라도 굉장히 나쁜 느낌이 들었다. 이 느낌이 분명 내 나름의 형사의 감인 것 같은데 원인을 모르니 행동 지침을 붙일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내가 이도 저도 못하는 새 슌페이 군의 말은 이어지고 있었다.
“솔직히 저도 서럽다고요! 갑자기 모르는 사람이 내 눈 앞에 나타났다고요! 분명히 방금 전까지 얘기를 했던 것 같은데. 하나도 떠오르지 않아요. 이 사람이 뭐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겠고. 나는 왜 여기에서 이 사람과 둘이서 있는 건지. 아무 것도 모르겠단 말이에요! 그래서 린코 씨가 와줘서 얼마나 안심했는데 린코 씨마저 그런 소리나 하고!”
“미안…….”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 이 상황에서는 슌페이 군의 말이 맞았으니까. 내가 할 일은 하루토 군을 떠올리도록 다그치는 일이 아니었는데. 조금 후회했다. 내 얼굴을 본 슌페이 군은 곧 “아니에요. 린코 씨 잘못은 아니니까.” 라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쨌든 그 사람. 린코 씨가 아는 사람인 거죠?”
“너도 원래는 알던 사람이야.”
“그건 알아요. 하지만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으니까.”
슌페이 군은 한숨을 깊이 쉬며 소파 위에 앉았다.
“알려주세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말하기엔 길어. 네가 떠올리는 게 더 빠를 지도 몰라.”
“알고 싶어요.”
나를 올려보는 슌페이 군의 눈동자는 묘하게 촉촉했다.
“내가 그 사람을 알아보지 못했을 때 표정을 보니 마치 내가 실수한 것 같았어요. 모르겠어요. 제가 그 잠깐 사이에 뭘 잘못했던 걸까. 계속 신경 쓰여요. 물어보고도 싶었는데 입이 안 떨어졌어요. 내가 왜 이런지 이해하는 것도 힘들었으니까. 지금도 실은 잘 모르겠어요.”
“…….”
“알고 싶어요. 린코 씨. 알려주세요.”
“그 표정의 의미는 알려줄 수 있어.”
그렇게 대답해야 할 것 같았다.
“하루토 군은 슌페이 군을 소중히 여기니까. 그 상황은……그래. 소중한 사람이 갑자기 자기를 잊어버린 거야. 이를테면 내가 슌페이 군을 잊어버리는 거지. 그럼 어떨 것 같아?”
슌페이 군은 잠깐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힘들겠네요.”
나는 생각보다 슌페이 군 안에서 지위가 높은 모양이다. 의외인 걸.
“마찬가지인 거야. 하루토 군도.”
“믿을 수가 없어요.”
슌페이 군은 이상하게 겁에 질린 얼굴이었다.
“그런 사람이 저를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는 게.”
“하아?”
“그렇잖아요! 그 사람, 마법사죠? 그렇게 멋진 사람이 저를 그렇게까지 생각해줬단 말이에요? 와. 진짜 안 믿겨져. 린코 씨. 저 놀리려는 거 아니죠? 그렇죠? 진짜예요?”
그 뒤로 이어지는 말을 처음에는 잘못 들었나 생각했다. 아니, 뭔 소리야. 기억 잃어버린 슌페이 군이란 이렇게까지 감당이 안 됐던가? 생각하다가 원래 슌페이 군은 그랬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요즘 들어서 확실히 좀 예전보다는 성숙해졌을 뿐이지. 맞다. 그랬다.
“이 상황이 놀릴 판이냐고. 난 심각하게 말하는 거라고. 슌페이 군.”
“기분 좋네요.”
혼자서 이 표정 저 표정 짓고 있던 슌페이 군이 갑자기 정색하며 말했다. 늘 그랬지만 이 날도 정말 적응이 되지 않았다.
“제가 떠올리지 못하는 거잖아요. 분명 나도 그 사람이 소중했을 테니까. 나는 모르는 사람이지만 린코 씨의 말은 믿어요. 그럼 내가 전에 알던 사람이었던 거잖아요. 처음부터 신경이 쓰였는데, 이제야 그 이유를 알 것 같았어요. 나도 슬펐던 거예요. 그 사람이 그런 얼굴을 하는 게.”
혼자서 다 깨달아 버렸잖아. 이래서야 내 할 일이 없어진다. 안도의 한숨을 쉬며 웃던 나였지만 곧, 또 다시 나쁜 예감이 들었다. 아마 아까 들었던 예감이 이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
“하루토 군, 혹시 돌아왔어?”
나는 슌페이 군에게 물었다. 슌페이 군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역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슌페이를 잘 부탁한다고 그랬지. 그리고 자기 마력이랑 관련이 있다고 그랬고. 반지는 안 빠졌고. 그러면 설마.
“슌페이 군. 지금 반지 빼봐.”
“반지요?”
슌페이 군은 되묻다 곧 자신의 왼손 약지에 있는 그것임을 알았다. 붉은 마보석이 반짝이는 반지를 다시 빼려고 시도한 슌페이 군은 놀란 눈을 하고 있었다.
“어. 아까보다 잘 빠지는 것 같은데요?”
“다 빠져?”
“아니오. 빠질 듯 안 빠지는데.”
이럴 때의 불길한 예감은 절대로 틀리는 적이 없다.
“하루토 군을 찾아야 해!”
나는 곧바로 그 자리를 박차고 면영당 밖으로 뛰어나갔다. “잠깐만요, 린코 씨!!” 슌페이 군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지만 돌아볼 여유는 없었다. 이건 시급한 일이다. 왜 이걸 이제 깨달은 거야!
하루토 군은 분명 자기 마력을 고갈시키려 하는 것일 테다. 슌페이가 그 반지를 뺄 수 있도록. 그래서 자신을 떠올릴 수 있도록. 무모한 짓이다. 마력을 다 소모시켜버리면 몸의 상태가 나빠진다. 완전히 소멸하면 어떻게 되더라. 코요미처럼 될까.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결단코 하루토 군에게 좋은 일일 리가 없다. 알면서도 하는 것이다. 여전히 무모하다고! 그리고 말도 안 하고!
하루토 군을 찾으러 거리를 뛰어다니던 중 멀리서 굉음이 들렸다. 나는 굉음이 들린 쪽으로 뛰어갔다. 의외로 진원은 가까이 있었고, 거기에 서 있는 것은 예상대로 하루토 군이었다. 위자드의 모습을 한 이는 최대한 작은 범위 내에서 마법을 퍼붓고 있었다. 내 예상대로다. 말할 필요도 없다.
“하루토 군!!”
나는 소리쳤다. 하루토 군은 내 쪽을 돌아보았다.
“린코?”
의외라고 말하고 싶나?
“왜 여기로 온 거야? 슌페이는 어쩌고?”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나는 하루토 군에게 다가갔다. 하루토 군은 나를 지긋이 보더니 한숨을 쉬었다. 그냥 보아도 그 몸은 지쳐 보인다. 회복에 시간이 걸릴 것이 눈에 훤하다.
“말려도 소용없어.”
“이 이상 무리하지 마!”
“돌아가서 슌페이를 도와줘.”
하루토 군은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내가 여기서 그만둘 생각이 있었다면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슌페이 군을 내가 도울 필요는 없어. 그는 자기 스스로 해답을 찾았으니까! 내가 지금 해야 할 일은 하루토 군을 말리는 거야.”
“나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거야. 슌페이가 그렇게 된 건 내 탓이니까. 내가 그 반지를 발견하지만 않았더라도 그럴 일은 없었어! 슌페이가 만지지 말라 했는데 듣지를 않았으니까. 누구의 것인지도 모를 반지를 함부로 만진 대가가 이거라고.”
“아니야! 그 반지는 처음부터 네 거였어!”
내 말에 하루토 군은 놀라고 있었다. 몰랐던 모양이었다. 그 반지를 슌페이 군이 어떤 생각으로 만들었는지.
“그건 슌페이 군이 너한테 도움이 되려고 만든 거야! 불완전해서 사용할 수 없다고는 했어! 애초에 네 반지가 아니더라도, 그걸 만진 게 어떻게 네 탓이 돼! 다른 방법이 있을 지도 몰라. 네 몸을 혹사시키지 않더라도, 슌페이 군에게서 그 반지를 빼낼 방법이 있을 수도 있다고!”
하루토 군은 그 사이에 멀찍이 있던 드럼통 무더기에 불의 마법을 날렸다. 펑 소리가 들렸다. 내게는 그것이 하루토 군의 마음의 소리 같았다.
“그 반지를 빼는 게 급해. 방법을 찾으려면 어쨌든 반지를 빼야 한다고. 반지는 내 마력이랑 연계되어 있으니까, 빼려면 내 마력을 고갈시키는 편이 제일 빨라. 알고 있잖아.”
“너를 위해 만든 반지야. 너를 갉아먹으려고 존재할 리가 없잖아.”
“린코 씨!!”
하루토 군을 말리던 내 뒤에 슌페이 군의 목소리가 들렸다. 쫓아온 거야? 그 안에 얌전히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던 모양이다. 하루토 군 역시 놀란 얼굴이다.
"슌페이 군! 여긴 어떻게 온 거야!“
“린코 씨를 쫓아왔죠. 누가 형사 아니랄까봐. 왜 이리 빨라요?”
“한두 번 쫓아온 것도 아니잖아. 불만 금지야.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니까 말이지.”
하루토 군은 슌페이 군을 마주한 뒤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마법을 쓰려던 오른손이 떨리는 게 보였다.
“조금 들었어요. 결국 이 반지가 문제인 거죠?”
슌페이 군은 그렇게 말하며 왼손 약지에 끼고 있는 반지를 잡았다. 하루토 군을 바라보는 슌페이 군의 눈은 결의로 가득 차 있다. 나는 알았다. 역시 그 때 이미 슌페이 군은 답을 찾고 있었다. 그 방향이 어디인지는 지켜볼 수밖에 없겠지만.
“그럼 빼면 되겠네요.”
"잠깐만, 슌페이 군! 이번엔 왜 네가 무리하려는 건데!“
환장할 노릇이다.
“괜찮아요, 린코 씨. 이거 제 물건이니까 어떻게든 제가 해결할 수 있겠죠.”
“아니, 대책이 없어도 너무 없잖아!”
“그만 둬, 슌페이!”
하루토 군도 슌페이 군의 그것에는 놀란 모양이라 어느덧 변신도 풀고서 슌페이 군에게 뛰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슌페이 군이 더 빨랐다. 그는 반지를 쥔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있는 힘껏 힘을 줘 그것을 빼기 시작했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악!!”
비명소리가 들렸다. 빠지지 않는 듯 했다. 그것을 그만 두게 하려고 하루토 군이 재차 슌페이 군에게 뛰어갔다. 그러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슌페이 군의 주변에 생기는 방어막이 하루토 군이 접근하는 것을 막았다. 아. 그렇구나. 나는 깨달았다. 원래 반지의 목적은 저것이다. 쉽게 자기 몸을 던지는 하루토 군이 무리하지 않도록 그를 수호하는 반지. 지금은 장착자가 슌페이 군이기 때문에 슌페이 군을 지키는 거겠지. 슌페이 군의 비명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과정이 고통스러운지 그는 이미 주저앉아서 눈물을 방울방울 흘리고 있었다. 그러나 나나 하루토 군은 그를 막을 수 없었다. 접근조차 허용치 않는 방어막 너머에서 지켜보는 것만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파앗.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를 감싸던 방어막이 사라졌다. 소리도 멈추었다. 눈물범벅인 얼굴로 주저앉아 거친 숨을 잔뜩 내쉬고 있는 슌페이 군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바닥에는 아까까지 그의 약지에서 영롱히 빛나고 있던 반지가 구르고 있었다. 처음부터 이렇게 뺄 수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슌페이 군의 의지가 그것을 가능케 한 것일까? 하루토 군은 놀란 얼굴이었다. 그는 예상하지 못한 모양이다. 그럼 이건 슌페이 군이 이뤄낸 기적인 모양이다. 어쨌든 나와 하루토 군은 너나할 것 없이 슌페이 군에게 달려갔다.
“괜찮아? 슌페이 군!”
“슌페이!”
달려온 우리를 올려보며 슌페이 군은 배시시 웃었다. 익히 아는 그 얼굴이다.
“와……. 진짜 죽는 줄 알았어요.”
“바보야! 잘못하면 큰일 날 뻔했다고!”
“지금 괜찮으니까 봐 주세요. 린코 씨.”
슌페이는 머리를 긁적이며 반지를 주웠다. 그리고 그것을 서 있던 하루토 군에게 건네어 주었다.
“죄송해요, 하루토 씨. 미완성인 물건을 드릴 수는 없었어요.”
“……슌페이!”
하루토 군은 반지를 받을 생각은 하지도 않은 모양인지 그대로 슌페이 군에게 달려들었다. “자, 잠깐만요! 하루토 씨!” 슌페이의 비명 가까운 소리는 하루토 군에게 묻혔다. 하루토 군은 그를 꽉 안고 있었다. 슌페이는 물론이고 나도 그의 액션에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격한 하루토 군을 본 적이 있었던가? 없었을 텐데. 그 이후로 하루토 군이 무언가 달라지기라도 한 건지.
“너마저 잃을까봐 걱정했어.”
하루토 군은 그렇게 말했다.
“더 이상 누구든 잃고 싶지 않아. 너도 그렇고.”
그는 힘을 줘 슌페이 군을 안다가 천천히 놓았다. 슌페이 군을 바라보는 하루토 군의 눈은 확실히 이전에 알던 그의 눈과는 조금 달랐다. 불안했던 모양일까. 하기는, 나여도 그랬을 테니까.
“사실은 꿈을 꿨어요.”
그런 하루토 군을 보며 슌페이 군이 말했다.
“하루토 씨를 잃어버리는 꿈이었어요. 이 반지를 낀 하루토 씨가, 저를 알아보지 못하는 거예요.”
꿈은 무의식의 발현이라는 뉴스를 어디에선가 봤던 것 같다. 슌페이 군은 무의식적으로 두려워했던 것일까. 애초에 불완전한 물건이라고 했으니 그럴 법도 한데.
“거꾸로 됐잖아.”
“그게 너무 무서웠어요. 저는.”
“나는…….”
하루토 군은 말을 이으려다 다시 입을 다물었다. 아. 그렇네. 여기서는 내가 물러날 시간인 거네. 하아. 나는 한숨을 쉬었다.
“얘기 잘 하고 와. 나는 먼저 면영당에 가 있을 테니.”
그 뒤에서는 알아서 풀 일이지. 나는 지금이 물러날 타이밍임을 알았다. 어차피 중요한 문제는 해결이 되었으니까 이거면 될 것이다.
잘 된 일 아니겠어. 메데타시. 메데타시.
“저는 바보였어요. 린코 씨.”
며칠 뒤 다시 만난 슌페이 군은 보자마자 내게 그런 말을 했다. 네가 바보인 게 하루 이틀 일은 아니야, 슌페이 군. 그러니 너의 바보력에 대해 너무 걱정하지 말렴. 그렇게 말하려다가 그만두었다.
“그 반지 말이에요.”
“그래. 그게 뭐?”
“하루토 씨가 끼면 해결되는 거였어요.”
“아. 그러셔요?”
아차. 내 생각만 하려던 말이 그대로 튀어나왔다.
“괜히 혼자서 무서워했던 거더라고요. 하루토 씨가 끼니까 하루토 씨에 맞게 조율이 되면서 완성됐어요. 처음 예상했던 부작용도 없고.”
“그 부작용이 뭐였는데?”
지금 시점에서야 대충 예상이 가지만 나는 물어보았다. 궁금한 부분이기도 했으니까.
“와지마 씨한테 물어보니까, 그 반지가 사용자의 마력을 순환시켜서 보호막을 형성하도록 구성된 장치라고 하더라고요.”
“왜 와지마 씨한테 물어보는 건데. 너 효과 알고 만든 거 아니었어?”
내가 되묻자 슌페이는 난감한 빛을 띠며 웃었다.
“실은 저도 잘 몰랐어요. 하루토 씨를 지키는 기능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으니까요. 반지를 그렇게 막연한 생각으로 만들면 큰일 난다고 엄청 혼났지 뭐예요.”
저절로 한숨이 나오고 만다. 슌페이는 저를 한심하게 보고 있는 나를 보며 손사래를 치며 말을 이었다.
“어쨌든! 그런 기능이 있는 건데. 아무래도 보호하려고 만든 거다 보니, 사용자를 힘들게 하는 것들을 배제하려는 속성이 생기는 거래요. 이를테면 괴로운 기억을 지워버린다거나.”
“하루토에게 좋은 거 아니야, 그거?”
하루토 군은 상당히 괴로운 일이 많았으니까. 그렇게 덧붙이는 나를 보며 슌페이 군은 고개를 저었다.
“하루토 씨가 원하지 않을 테니까요.”
“하기는.”
그런 걸 다 끌어안고서 싸우는 게 하루토 군이 지금을 살아가는 방법이기도 하니까. 이런 부분에는 확실히 그의 의지가 중요하지 내가 왈가왈부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어쨌든 나를 곤란케 했던 그 사건도 어느 정도는 마무리가 된 모양이다. 그 날 하루토 군과 슌페이 군은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 프라이버시일 테니 묻지는 않을 생각이다. 다만 그 다음 날에 다시 면영당을 잠시 떠나기로 했던 하루토 군의 얼굴이 밝았으니, 나름대로 좋은 이야기를 했겠지 생각하는 정도다. 그 때 하루토 군을 만났을 때 나는, 슌페이 군이 끼웠던 반지의 위치와 똑같이 왼손 약지에 그것을 낀 것을 보았다. 원래 그 자리에 다른 반지는 끼지도 않으면서 말이지.
그러고 보니 잠깐만. 사용자의 괴로운 기억을 지운다고 했지? 슌페이 군이 그 반지를 꼈을 당시 지워버린 건 하루토 군의 기억. 그럼 슌페이 군은 하루토 군을 괴롭게 생각했던 건가?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그것을 슌페이 군에게 물었다. 그는 놀란 얼굴이었다. 아니, 놀랐다기 보다는 당황한 얼굴이었다. 당황하다 못해 얼굴 표정을 다양하게 바꾸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그, 그럴 리가 없잖아요. 하루토 씨가 절 괴롭게 하진 않았어요. 그런 일은 없었다고요. 게다가 다른 사람이 끼면 생기는 부작용은 좀 다른 거라고요.”
“호오. 그래?”
내가 씨익 웃자, 슌페이 군은 당황한 빛을 감추지 못한다. 저 반응이 지극히 수상쩍다.
“다른 사람이 끼면 어떻게 되는데?”
“……어차피 하루토 씨가 제대로 꼈으니 말할 필요 없잖아요!”
“흐음, 어쩌나. 나는 궁금한데.”
슌페이 군은 더욱 세게 고개를 저었다.
“어허. 어서 자백하지 못할까? 하루토 군이 너 괴롭혔어? 아니면 뭐야?”
“아무 일도 없었다니까요!”
그렇게 말하며 슌페이 군은 도망쳐버린다. 쫓아가서 잡을까 했지만, 아마도 그 때 둘이 남은 거랑 상관이 있지 싶으니 사정 모르는 나는 그냥 두기로 한다. 피식 웃고서 면영당 가운데의 소파에 앉아 몸을 쉬게 하기로 한 나는 위로 올라간 슌페이 군이 내려오지 않는 것을 보니 결국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웃어버렸다. 다른 감이 느껴진 탓이다. 이것을 형사의 감이라고 하기엔 뭐하고, 으음. 나만의 감이라고 하자.
뭐. 어련히 알아서들 잘 할까. 앞으로도 나는 그들을 잘 지켜보기로 다짐한다. 졸리네. 잠깐 눈 좀 붙여야겠다. 곧 내 의식은 잠 속으로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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