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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미션 샘플 4Commission 2016. 3. 31. 00:29
C형.
앤지님의 커미션으로 진행한 글입니다.
커플링: 은혼 - 타카스기 신스케 X 카츠라 코타로
“쥐새끼가 있다더니.”
철창으로 메워진 방 안에서, 남자의 저음이 울렸다.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남자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철창의 좁은 틈새 사이로 보이는 작은 키의 남자는 눈을 부라린 채 비틀린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게 네 얘기일 줄은 몰랐다. 즈라.”
“즈라가 아니다.”
철창 안에 갇힌 이는 대답했다. 핏. 키 작은 남자는 또 웃었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카츠라.”
“…….”
철창에 갇힌 남자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카츠라라고 불린 이는 고개를 숙인다. 등을 덮는 장발이 어깨를 타고 스르륵 내려간다.
“네가 왜 여기 있는지 모르는 건 아니겠지?”
“당연히 알고 있다.”
남자의 물음에 카츠라는 대답했다. 남자의 뒤틀린 시선이 그대로 그에게 꽂힌다.
“내가 궁금한 건 딱 하나야. 네가 뭐가 아쉬워 끄나풀 짓까지 해 가며 여기에 있었는지.”
“대답할 의무는 없다.”
남자의 말에 카츠라는 단칼로 대답을 자른다.
“말할 생각은 없다. 그러니 죽이든 살리든, 네 마음대로 해라. 타카스기.”
타카스기. 그렇게 불린 남자는 피식 웃었다. 언제 피고 있었는지, 길게 뻗어진 곰방대에서는 독한 담배 향이 퍼졌다. 공기가 잘 통하지 않는 감옥이다. 담배 연기는 어느새 가득 방 안을 메운다. 카츠라는 눈살을 찌푸렸다.
“끄나풀 짓까지 하면서 버티려 했던 목숨 아냐? 나한테 맡겨도 괜찮겠어?”
타카스기는 킬킬대며 말하였다.
“어차피 잡힌 몸이다. 네가 놔 줄 리도 없겠지.”
“포기가 빠른데.”
타카스기의 얼굴이 철창 가까이에 있었다. 카츠라는 흠칫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깊은 곳에서부터 일렁이는 그 눈동자가 그대로 카츠라에게 박힌다.
“재미없잖아. 그러면.”
킬킬 웃는 타카스기의 몸에서 담배 냄새가 훅 올라왔다. 카츠라는 눈을 가늘게 뜬 채로, 타카스기의 시선을 외면하지 않고 있었다.
“내게서 재미 찾을 정도로 한가하나?”
카츠라가 말했다. 타카스기는 곧 칫, 소리를 내며 물러났다.
“고지식하기는.”
실망한 듯 미간을 찌푸리는 이의 얼굴이 진심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오래 전의 친구이자 동료였던 이는 이렇듯 쉽게 제 마음을 드러내는 일은 없다. 미친 척을 하면서, 더 미친 스스로를 감추고 있다. 끝도 보이지 않는 그 광기에는 어떠한 미래도 보이지 않는다. 카츠라는 눈을 감았다. 곧 다그닥 걷는 게다의 소리가 멀어졌다. 어느 새 타카스기는 보이지 않았다. 짙게 깔린 담배 냄새도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카츠라는 철창 사이를 보았다. 좁은 틈새 사이로 보이는 철로 된 벽이 암담하게만 느껴진다. 그러나 후회는 없었다. 자신이 했던 모든 것은 정당했다고 그 스스로는 생각한다. 물론 스스로의 상황 역시 자각하고 있다. 타카스기에게 들켜 이 감옥에 있는 시점에서 이미 카츠라 자신은 버려진 말. 아무도 구해주지 않을 것이다. 제 앞에 남겨진 것은 이제 혁명가라는 이름의 죽은 자들이 벼린 칼날뿐이다.
그럼에도 원망은 들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말이다.
*
외세의 침략으로 그들의 정부는 빠르게 무너졌다. 물론 명목은 존재하고 있었다. 소위 영웅담에서 말하는, 도탄에 빠진 세상을 구하기 위해 수많은 영웅들이 일어섰다. 라는 문장만큼은 확실히 지금 시대에 어울릴 것이다. 엉망진창인 세상 속이었다. 그 안에서 정부를 뒤집으려던 이들은 수도 없이 존재했다. 그러나 그들의 대부분은 정부의 손에서 아주 깔끔히 정리되었다. 언제 존재했냐는 듯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유는 간단하다. 정부 선에서 개혁이 이루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외세의 힘을 아주 받아들여 나라의 발전을 이루자는 명목 아래 정부는 집결하였다. 집결한, 거대한 존재에게 산발적으로 흩어진 반란군이란 아무 것도 아닌 것과 같았다. 그러나 그들 역시 물러서지는 않았다. 혁명이라는 물결을 어떻게든 타고 싶었던 이들은 타카스기 신타로라는 남자의 아래에 집결하였다. 그들은 ‘귀병대’라는 이름을 가지고서, 새로이 힘을 기르는 정부에 대항하는 저항 세력으로 성장하였다.
카츠라 코타로는 정부에서 파견한, 귀병대를 안에서부터 무너뜨리기 위한 스파이였다. 귀병대의 정보를 정부에 전달해 바깥에서 대책을 세울 수 있도록 하는. 그의 일은 아주 간단하고 명료했다. 그 사명을 처음 등에 이고서 귀병대에 들어선 날 타카스기의 표정은 잊을 수가 없었다. 친구의 가세에 기뻐하는 얼굴. 그러나 그 뒤로 이글대는 눈빛. 그렇다. 그 눈빛은 아까 보였던 타카스기의 시선과도 같았다.
“어서 와. 즈라. 기다리고 있었어.”
“즈라가 아니다. 카츠라다.”
“네가 들어서니 든든한데. 안 그래도 요즘 좀 힘들었거든.”
탁탁. 어느덧 카츠라에 옆에 선 단신의 남자는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린다. 긴장 풀어. 어차피 우린 친구 사이잖아? 그 뒤로 타카스기의 목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카츠라는 그 말이 더 안심이 되지 않았다. 날선 눈으로 그를 보고 있으면, 그는 언제 그랬냐는 듯 온화한 얼굴이다. 카츠라는 흠칫 놀랐다. 정말로 옛 친구를 만나 반가운 얼굴이었으니까.
“그럼 타카스기. 나는 이제 뭘 하면 되나?”
굳이 지금은 의문덩어리인 그 눈빛에 대해 파헤치지 않기로 카츠라는 다짐한다. 타카스기는 씩 웃더니 조만간 알려주겠다는 답변을 전하고 다른 동료들에게 말을 건다. 자연스러운 그 행위 속에서 카츠라는 어떤 의심을 더할 새도 없었더랬다.
그러나 곧 그것이 아주 크나큰 실책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타카스기는 몹시 유능한 인사였다. 아무래도 어둠의 힘에 의거한 것이 많았지만, 카츠라가 보기에 거의 희망을 버린 것이나 다름이 없는 인간들을 타카스기는 용케 잘도 이끌고 있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이 저항에는 희망이 없다. 적어도 카츠라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하지만 그 희망이 없는 이들이 악을 쓰며 버티는 그 뒤에 있는 건 분명하게 타카스기였다. 그의 무엇이 희망 없는 이들에게 그토록 버티게 하는가? 카츠라는 알고 싶었다.
‘현재 보유 병력 2천. 모두 상비.’
작은 관으로 쪽지가 말려 들어간다. 카츠라는 그것을 가까이 다가온 새에게 전한다. 이것이 그대로 정부에 들어갈 것이다. 새가 날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카츠라는 깊이 한숨을 쉬었다.
“뭘 그리 한숨이야?”
그 때 뒤에 들려오는 소리에 그는 크게 놀랐다. 돌아보면 그 자리엔 타카스기가 서 있었다. 품이 넓은 유카타에 한쪽 손을 집어넣은 채로, 그는 가만히 앉아 있는 카츠라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놀랐잖나.”
“놀랄 일이냐. 문이 열려 있어서 들어왔을 뿐인데.”
타카스기는 핏 웃었다. 카츠라는 눈을 가늘게 떴다. 이상하다. 문을 연 기억은 없었다.
“문이 열려 있었던가?”
카츠라는 고개를 갸웃하며 묻는다.
“열려 있던데. 문단속은 잘 하라고. 혹시 모르는 일이니 말이지.”
타카스기가 말한다. 여유롭게 핏 웃는 이를, 카츠라는 눈을 가늘게 뜨며 바라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상황 속에 문을 열어뒀을 리가 없다. 그 정도로 스스로가 부주의하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특히나 이 장소에서는. 하지만 마냥 열었다고 타카스기를 책할 수는 없었던 노릇이라, 카츠라는 고개를 돌리고 만다. 지금은 그저, 자신이 부주의했느니 생각할 수밖에는 없었다.
카츠라가 문을 열지 않았다고 확신하는 것은 비단 그가 스파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귀병대는 그에게 있어 답답한 감옥과도 같았다. 이곳에는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죽은 자들의 모임이다. 카츠라의 눈에는 그렇게밖에 보이지 않았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는 것 치고, 그는 사실 이전에 혁명군으로서 정부의 전복을 바라기도 했었다. 그를 위해 여러 테러 활동을 벌여온 전적도 있다. 귀병대에 들어올 때에도 그 전적을 이용했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지금의 카츠라는 달라져 있었다. 그는 정부 안에서 분명히 보았다. 그들이 바뀌려고 하는 의지를. 이미 썩어버린 과거의 정부와는 달리 새로운 세력들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각오를 보았다. 그랬기에 그는 기꺼이 이 작업에 협력했다. 무덤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나 다름이 없음을 알면서도 말이다. 그렇게 다짐하고 들어와도, 시체 더미 속에 있는 것은 답답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그러니 카츠라는 개인 시간에는 철저히 남을 차단했다. 어떠한 시체도 보고 싶지 않았다. 특히나 시체의 대장은.
“용무는 그것뿐인가, 타카스기?”
카츠라가 물었다. 타카스기는 고개를 저었다.
“오랜만에 방문이라고. 벌써 쫓아내는 거야?”
“너도 바쁘지 않나. 그만 쉬는 게 좋을 거다.”
“싱겁네. 여전히.”
타카스기는 어깨를 으쓱한다. 그의 온 몸에서 시체 냄새가 나는 것만 같다.
“하루 이틀 보는 게 아니지 않나.”
카츠라는 타카스기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제게 응할 생각이 없음을 알자, 타카스기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그에게서 물러났다. 잠이나 푹 자라고. 그런, 평소에는 하지도 않는 안부까지 전하며 떠난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카츠라는 슬그머니 문 앞으로 다가가, 문이 확실하게 잠겼는지를 확인한다. 철컥. 철컥. 문고리를 몇 번 흔들고 나서야 카츠라는 안심한 듯 길게 지친 한숨을 내쉬었다.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오래된 친우였어도 그를 마주하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다. 확 밀려오는 시체 냄새가 그에게만큼은 기묘한 향기까지 더해져 났다. 다시 그 감각을 떠올린 카츠라는 눈을 찌푸렸다.
푸르륵. 새 소리가 들렸다. 카츠라는 고개를 들어 그 소리 쪽을 바라보았다. 그의 창문 앞에 걸린 새장에는 새하얀 새가 있었다. 이미 열려 있는 문 쪽에 앉아 있는 그것은 종류를 알 수 없는 기묘한 것이었다. 카츠라가 새장을 들고 다니는 것은, 정부와의 연락책이 새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연락책이 없을 때에는 늘 빈 새장일 것을, 어느 날부터 저 하얀 새는 내려앉아 있었다. 남의 자리를 무턱대고 차지한 것임에도 카츠라는 딱히 그것을 쫓아낼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애초에 먹이를 제가 알아서 구해오는 놈이기도 하여, 카츠라가 굳이 손을 더할 필요도 없었던 것이다. 그것이 가끔 이렇게 푸드득 날개 소리를 내고 있는 걸 보고 있으면, 카츠라는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묘한 기분을 느끼곤 하는 것이었다. 이 새가 그 자신과 비슷한 점은 있는 것 같다. 타카스기를 싫어하는 새였으니까.
카츠라는 핏 웃었다. 이것도 곧 끝날 것이다. 얼마 전 연락책에게서 좋은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이상한 일이야.”
귀병대의 대책을 논의하는 자리에 선 타카스기가 말하였다.
“어디선가 새고 있어.”
타카스기가 다음에 꺼낸 말로 회의장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온갖 목소리들이 들렸다. 끄나풀이 섞인게 아니냐던가, 누가 그런 짓을 했냐던가, 목을 분질러버리겠다던가. 시체들이 지껄이는 소리에 귀를 닫고 있던 카츠라였으나, 그 닫은 귀 사이로 그의 목소리는 들렸다.
“끄나풀이 있다면 누구일까? 궁금하지 않아? 즈라.”
어느새 타카스기는 카츠라의 옆에 서 있었다. 어깨를 탁탁 치는 그의 시선을 내려다보며 카츠라는 고개를 저었다.
“짐작 가는 바가 없다. 그리고 난 즈라가 아니야. 카츠라다.”
“그래?”
타카스기는 웃었다. 붕대를 맨 이마 아래 보랏빛을 띄는 검은 눈. 사냥감을 노리는 번뜩이는 눈은, 어쩌면 시체를 늘리기 위한 숙주가 아닐까란 느낌도 드는 것이다.
“왠지 너라면 알 것 같았는데. 아쉽군.”
그 말을 남기며 타카스기는 카츠라의 어깨를 놓았다. 카츠라는 문득 제 코끝에 맺힌 땀을 알았다. 긴장한 것인가? 그의 앞에서 그것을 눈에 보여주지 않을 자신이 있었던지라 카츠라는 내심 당황하고 있었다. 타카스기의 뒷모습이 문득 보였다. 그것을 본 카츠라는 들리지 않게 한 번 한숨을 쉬었다. 그러다 문득 불안감이 들었다. 혹시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설마. 카츠라는 마른 침을 삼켰다. 그럴 리 없다. 여기에 들어온 이래 정보를 보낸 횟수는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터. 그 짧은 순간을 보이기라도 한 것일까. 그렇게까지 자신은 부주의했던가.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손이 닿지 않는 것을 보아 아직은 괜찮을지 모른다. 그러다 카츠라는 고개를 저었다. 이런 어설픈 안도야말로 위험하다. 당분간은 얌전히 지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카츠라가 빌어야 할 것은 그가 제 정체를 모르는 것이었다.
고요한 시간이 지나갔다. 그가 몸을 사린 덕일까. 그 동안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카츠라는 안심할 수가 없었다. 마치 폭풍 전야 같았다. 커다란 전운이 밀려오기 직전의 맑은 날씨와도 같은 불안함 속이다. 오히려 근래 들어 잠도 잘 자지 못하여, 그의 눈은 제법 충혈된 채이다.
“본부를 옮길 생각이야."”
수면 부족으로 약간 몽롱한 감도 있던 그였지만, 타카스기의 목소리에 퍼뜩 눈이 뜨인다. 카츠라의 깜짝 놀란 시선이 타카스기와 마주친다. 아까부터 계속 지켜보고 있었나.
“별로 마음에 안 드는 건가? 즈라.”
카츠라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것은 아니다. 그리고 나는 즈라가 아니….”
“왠지 아쉬워 보이는 얼굴인걸. 혹시 여길 벗어나면 곤란한 일이라도 있는 건가?”
“그런 일은 없다.”
카츠라는 마른 침을 삼키며 대답했다. 타카스기는 그에게 쪽지 하나를 내밀었다. 그것을 툭 치며 건네면 카츠라는 그것을 받는다. 그는 슬쩍 타카스기를 내려다보았다. 붕대를 감은 이마 아래에 보랏빛이 도는 검은 눈이 번뜩인다. 마치 읽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뭐 네가 안 내키더라도 어쩔 수 없어. 이미 준비는 끝났거든. 사흘 뒤에 여기 쓰인 곳으로 이동할 테니 미리 채비라도 해 두는 게 좋을 거야.”
“알았다.”
“의외네.”
순순히 대답하는 카츠라를 보며 타카스기가 눈웃음을 치며 말하였다.
“너도 나랑 비슷하게 방랑벽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여기가 마음에 들었나 보지?”
카츠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타카스기도 굳이 대답을 들을 생각은 없었던 모양인지 카츠라를 지나쳐 다른 이들에게도 비슷한 쪽지를 건네어 주고 있었다. 카츠라의 시선에는 타카스기의 뒷모습만이 보인다. 그에게 들리지 않도록, 카츠라는 조심스럽게 한숨을 푹 내쉰다. 본의였을지 아닐지 몰라도 타카스기는 정확했다. 정부에서 오는 정기 연락책이 오는 것이 앞으로 나흘 뒤인데, 사흘 뒤에 본거지를 옮겨버리면 그것과 제대로 접촉을 하지 못하게 된다. 이것은 카츠라에 있어 위기였다. 이 이야기를 전달하지 않으면 그 동안 그가 주었던 정보들의 대부분이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그의 등에는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어떻게든 해야 했다. 그러다 퍼뜩 깨닫는다. 함정일 지도 모른다. 이미 이전부터 들켰을 지도 모른다는 감은 있었기 때문에. 지금은 조용하다. 하지만 그것은 증거를 잡기 위함일지도 모른다. 카츠라는 잠시 눈을 감았다. 지금 피어나는 온갖 의혹을 떨쳐내기 위함이었다. 함정이든 아니든,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었다. 그것이 설사 범의 아가리 속이라 할지라도 뛰어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카츠라는 눈을 떴다. 더 이상 망설임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곧바로 그 날 밤에 행동을 개시했다. 쪽지에 장문의 내용을 적어 접고 난 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 때, 또 날갯짓 소리가 들렸다. 새장 안에는 그 새가 있었다. 카츠라는 그것을 보았다. 하얀 새와 눈이 마주쳤다. 착각일 지도 모르나, 새의 눈에 담긴 확신 비슷한 것을 카츠라는 보았다.
“네가 할 수 있겠나?”
새는 고개를 까딱였다. 제 말을 알아듣는 것일까. 하지만 카츠라는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새의 다리에 그 쪽지를 묶었다. 새는 움직이지 않고서 카츠라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새의 눈빛은 몹시도 기묘하다. 작업을 마친 카츠라는 창문을 열었다.
“그럼, 잘 부탁한다. 아주 중요한 것이거든.”
새는 고개를 한 번 까딱하더니 크게 날갯짓하며 창문으로 날아갔다. 카츠라는 그것을 가만히 지켜볼 양이었지만, 그럴 시간도 없이 덜컹 하며 문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뭐가 그리 중요한 거지? 꼭 듣고 싶은데. 즈라.”
카츠라가 뒤를 돌아보면 그 자리에는 타카스기와 몇몇 부하들이 있었다. 카츠라는 이를 악물었다. 역시나 함정이었다. 각오한 바였다. 그러나 막상 닥치니 그에게 밀려오는 것은 탁 내려앉는 듯한 허탈감이었다. 타카스기의 만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그리고 그의 옆으로 슬그머니 걸어오는 부하의 손에는 익숙한 새의 시체가 있었다. 카츠라가 연락책으로 쓰던 그 새였다. 그것을 보낸 날짜를 생각했다. 이미 들통이 났던 것이다. 카츠라는 탄식의 한숨을 쉬었다.
“네게 알려줄 필요는 없을 것 같다만.”
“그래?”
타카스기는 입꼬리를 비틀며 웃었다. 그리고는 죽은 새의 시체를 툭툭 쳤다.
“이게 꽤 재미있는 걸 물고 있더라고.”
타카스기가 게다 소리를 내며 카츠라에게 걸어왔다. 또각또각 소리가 날카롭게 울렸다.
“그래서 먹이를 물길 기다렸어. ‘누군가’는 움직이지 싶어서.”
“…….”
카츠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눈을 감았다. 어떠한 저항도, 무엇도 하지 않을 기세였다. 어차피 이미 화살은 제 시위를 떠났고, 그가 돌이킬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카츠라는 그저 기다릴 뿐이었다. 제게 내려올 어떠한 것이든.
*
자그마한 창살 사이에는 달빛이 들어온다. 그로부터 벌써 이틀의 시간이 지났다. 바깥의 일은 어떻게 되었을지. 고요한 감옥 안에 인기척이 부스스 들리면, 카츠라는 감고 있던 눈을 천천히 뜬다. 창살의 앞에는 익숙한 그림자가 있었다.
“죽이러 왔는가, 타카스기.”
카츠라는 그에게 시선을 마주하지 않았다.
“섭섭한데. 마치 사람을 살인귀 보듯 하고 말야.”
“네가 여기에 올 용건이 그것 말고 또 뭐가 있나.”
카츠라는 자세를 조금 고쳐, 무릎을 끌어안았다. 그런 그를 보며 타카스기는 슬그머니 쭈그려 앉았다.
“즈라. 솔직히 여기서 죽기엔 네 목숨이 아깝지 않아?”
타카스기가 물었다. 카츠라의 시선이 순간적으로 그에게 맞았다. 타카스기는 만족스러운 얼굴이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
카츠라가 물었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견제용 어구이다. 타카스기가 이 자리에서 목숨 이야기를 꺼낸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모를 카츠라가 아니었다. 너무도 빤히 보이는 것이다.
“누가 네 뒤에 있는지만 말해 줘.”
그리고 역시나 예상대로였다.
“너답지 않은 어설픈 회유로군.”
카츠라는 즉답했다.
“어느 기관에서 왔는지는 너무 훤하니 말할 필요 없고, 직속 상사 한 사람만 말해도 돼. 어차피 우린 여길 곧 떠날 거고, 너희들은 허탕을 치게 될 테니까.”
“그렇다면 내가 입을 연 들 네게 이익이 하나도 없지 않나?”
“나는 네게 기회를 주는 거야. 즈라.”
붕대 빛 검은 시선이 이글거렸다.
“네게 다시 시작할 기회를 주는 거라고. 정부의 끄나풀 신세가 아닌.”
“내가 그걸 말한들 거기에 내 자리가 있는가?”
카츠라가 답변했다. 타카스기는 묘한 웃음을 짓는다.
“당연히 여기에는 네 자리가 없지.”
“…….”
카츠라의 눈이 가늘어졌다. 지금 그가 한 말의 의미를 이해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놓아주겠다는 건가? 나를 놓아주면 어쩌겠다는 것인가? 카츠라는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아까부터 번뜩이는 그의 시선은 계속 카츠라에게 꽂힌 채였다.
“무슨 생각인 거냐.”
결국 카츠라는 되묻게 된다. 타카스기는 어깨를 으쓱였다.
“별로. 의도 같은 건 없어.”
“거짓말 마라. 그럴 리가 없지 않나.”
카츠라는 웅크리던 몸을 폈다.
“네가 여기서 날 놓아주면 어떻게 되겠나?”
“당연히, 네 선택이지.”
“여기를 바로 고발할 수도 있지 않나.”
나 참. 카츠라의 질문에 타카스기는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낸다.
“이동할 거라니까. 네가 알 리 없는 곳으로.”
“마음 편한 소리를 하는군. 그게 순순히 이뤄질 리 없지 않나.”
“그거야 그렇겠지. 네 놈의 마지막 연락책이 잘 전달해줬다면 말이야.”
말의 뉘앙스를 보아, 그 새는 잡히지 않았던 모양이다. 의도적으로 놓아준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 그것은 중요치 않다. 카츠라는 그의 제안에 대해 조금 생각해야 할 시간이 필요했다.
살고 싶나?
그렇게 묻는다면 당연히 살고 싶다. 새로운 시대를 살아가고 싶다. 그 시대를 위해 계속 이 몸을 바치고 싶다. 그러나 여기서 죽든 살든 지금의 카츠라에게 미래가 있나 묻는다면 아니었다. 아마 정부에서는 분명히 자신의 존재를 말소할 것이다. 당연하다. 신분이 들킨 스파이란 버릴 카드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니까. 그렇다고 귀병대에서 지낼 수는 당연히 없다. 그렇다면 그 뒤로 남은 삶은 혁명가로서의, 새로운 시대를 바라는 이의 삶이 아닌 아주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일상일 것이다. 하지만 카츠라가 거기로 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달려온 상태였다. 돌아갈 수 없다. 어떠한 길도 없었다. 그러나 그 안에서 선택해야 했다. 어느 것도 될 수 없는 삶, 혹은 아무 것도 아닌 채 맞이하는 죽음.
“…….”
카츠라는 입을 다문 채이다. 타카스기는 그것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어때. 말만 해 봐. 너는 바로 해방이다.”
어느새 익숙한 담배의 냄새가 났다. 그러나 카츠라는 곧 고개를 저었다.
“산다 해도 소용이 없다. 그냥 죽여다오. 타카스기.”
“…….”
아주 잠깐 타카스기의 시선이 흔들리던 것이 보였지만, 카츠라는 그것을 곧 제 착각이라 생각하였다. 곧 타카스기가 오른 입꼬리를 바짝 올렸다. 이를 드러내며 웃는 그의 얼굴에는 광기 비슷한 것이 서려 있는 것도 같다.
“정말 그게 네 선택이냐?”
타카스기가 물었다. 카츠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좋아. 죽겠다는 걸 말릴 생각은 없으니까.”
타카스기는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뒤르 휙 고개를 돌리는 이의 어깨가 이상하게 작아 보였던 것은 착각일까. 게다 소리가 멀어졌다. 또각대는 소리가 감옥에서 아주 사라질 즘이 되어야 카츠라는 한숨을 쉬었다. 이제는 더 이상 피할 길이 없음을 알았다. 그는 죽음을 택하였다. 처형일이 언제가 될지, 자기는 어떤 꼴로 죽을지. 그다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마치 그것이 남의 일인 것처럼 카츠라에게는 멀게만 느껴졌다. 원은 없는 삶이다. 그 일말의 정보라도 여기 있는 시체들을 소탕하는 데에 도움이 됐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 하얀 새를 떠올렸다. 그러나 역시 성공했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카츠라는 눈을 감았다. 죽음을 기다릴 양으로 그는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어차피 곧 사라질 몸을 굳이 움직일 필요가 있는가. 움직일 자리조차 얼마 없는 좁은 감옥 안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
부스럭. 부스럭. 철컹. 잠에 든 카츠라의 잠을 깨우는 것은 바깥에서 들리는 것 같은 복작한 소리였다. 그가 살짝 눈을 뜨고 보면 요상할 정도로 눈부신 빛이 감옥 안으로 들어오고 있음을 알았다. 곧 상황을 깨달았다. 문이 열린 것이다. 이제 자신은 죽는 것인가. 카츠라는 때가 되었음을 깨닫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곧 열린 문 앞으로 누군가 들어온다. 타카스기였다.
“잘 잤냐, 즈라?”
“…….”
“이젠 즈라가 아니란 소리도 안 하나 보네?”
카츠라는 고개를 숙였다. 어서 죽이라는 표시였다. 그러나 곧 무언가 이상한 점을 깨달은 카츠라가 고개를 들었다. 타카스기의 손은 어떠한 것도 들고 있지 않았다. 그저 품에 들고 있는 것은 그가 늘 애용하는 곰방대뿐이었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타카스기를 내려다보는 카츠라를 보며, 타카스기는 핏 웃고 만다.
“네 소원대로, 죽이려고.”
“이건 무슨.”
“어차피 너는 바깥을 나가도 죽어.”
타카스기가 씨익 웃었다. 그 때서야 카츠라는 그 때 흐르던 광기 비슷한 것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의 입술이 떨렸다.
“어째서냐.”
“사는 편이 더 재미있을 것 같아서.”
흥분이 섞인 목소리의 카츠라를 보며 타카스기는 건들건들 몸을 흔들고 있었다.
“죽여 달라 하지 않았나.”
“바깥을 나가도 어차피 넌 죽는다니까.”
타카스기는 그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어차피 여길 나가면 너는 자유야. 혼자 뒈지던 말던 알아서 하면 되는 거지. 정말 나는 관대하군. 끄나풀인 네게 선택의 자유까지 주다니 말이야.”
“타카스기…!”
“내 손에 죽으면, 명예롭게 죽을 줄 알았던 모양이지?”
타카스기가 슬그머니 뒤로 물러서 카츠라의 자리를 만들어주었다. 여전히 그의 얼굴은 웃는 채이다. 검은 눈이 반짝이는 채로.
“안타깝게도 나는 그럴 의무가 없어.”
타카스기는 제 유카타 품 안에 손을 넣었다.
“그러니 이것은 내 온정이다. 친우로서 줄 수 있는 마지막 온정이라고 생각해 둬라.”
“이럴 것 없이 죽이면…….”
타카스기가 갑자기 휙 고개를 카츠라 앞으로 들이밀었다. 그가 노려보는 시선이 매서웠다. 카츠라는 마른 침을 삼켰다.
“찢어 죽이고 싶은 정부의 끄나풀로 온 너를, 내가 이 손을 써서 죽이란 말이냐? 왜 그래야 하지? 내가?”
“…….”
“너인들 네가 경멸하는 존재의 손에 죽고 싶을까? 아니라고 보는데. 아마 살 수 있었다면 살았겠지. 그게 안 될 것 같으니 죽겠다고 한 것이고. 안타깝게도 즈라. 나는 절대 그런 걸 허용하지 않아. 어설픈 도피 같은 건 옛 저녁에 끝냈어야지.”
타카스기는 손을 뻗어 출구 쪽을 가리켰다. 카츠라의 눈이 가늘어졌다.
“자. 어서 나가. 이게 네 길이야. 아직 끝나지 않았어. 불명예스러운 죽음의 길은 말이야.”
타카스기의 웃는 소리가 들렸다. 카츠라는 입술을 짓씹었다. 분하다. 하지만 이것이 그의 앞에 주어진 길이었다. 아무 것도 아닌 존재에게 주어진, 아무 것도 아닐 길을. 카츠라는 이를 꽉 씹었다. 그리고는 타카스기를 스쳐 지나가 뛰어 나갔다. 익숙한 길을 지나서, 익숙하던 곳을 빠져나간다. 이미 사람의 흔적은 거의 사라져 있었다. 그들은 이미 이동을 마치고, 그 자리에 남아 있던 것은 타카스기 뿐이었던 모양이다. 이미 늦어버린 것을. 손을 쓸 틈새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카츠라는 터덜터덜 자갈밭 위를 걸었다. 발바닥이 지면에 닿을 때마다 화끈화끈하다. 얼마나 걸었을까. 곧 마을이 보였다. 귀병대 자체는 제법 인적이 드문 곳에 있었던 지라, 카츠라는 오랜만에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얼마 만이던가. 시체의 냄새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은.
살아 있는 냄새를 맡으며 숨을 들이쉬던 카츠라에 귀에 들려오는 것은, 이 근방에서 얼마 전에 큰 전투가 있었다는 소식이었다. 정부의 무서운 나리들이 이 근처에 숨어있던 혁명 뭐시깽이들이랑 전투를 벌였다는 둥. 그 소문으로 마을 사람들이 술렁이는 틈에 선 카츠라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해냈구나. 마지막 일은 결코 헛되지 않았구나.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살아남은 스스로가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우스웠다. 타카스기는 어떻게 되었을까. 살아남았을까. 아니면 그 전투에서 죽었을까.
실상 그것은 이제, 카츠라에게 있어서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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